난 크리스마스가 싫다.
크리스마스를 처음 싫어하게 된 것은 어렸을적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일단 산타의 존재를 의심하면서부터 모든 것이 꼬이기 시작했다. 초등학생이 될 무렵, 난 산타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의심이 커지자 걷잡을 수 없어졌는지 부모님은 결국 진실을 말해주었고, 그 다음부터 애석하게도 크리스마스 선물은 오지 않았다. 산타가 없어져도 크리스마스 선물은 부모님이 그대로 주는거 아니냐! 라는 말을 할 수도 있는데, 나에겐 크나큰 핸디캡이 하나 있었으니...
내 생일이 크리스마스와 며칠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것.
결국 진실을 밝힌 나는 현실의 타협을 마주했다.
"음, 크리스마스 선물이랑 생일선물이랑 합쳐서 더 좋은걸로 사줄께~"
이 말의 뜻은 1+1 = 2 와 같은 원리가 아니라 1+1 > 1 정도라는 것을 처음에는 몰랐다. 그걸 깨달았을 때 즈음, 난 이미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을 나이를 지난 후였다.
커서는 크리스마스가 조금 다르게 보일 줄 알았지만, 사실 별반 차이가 없었다. 솔로 생활만이 계속되던 나에게 크리스마스는 외출하면 염장을 당하기 딱 좋은 날이 되었고, 그 마음을 이해해주듯 항상 크리스마스에는 풍성한 게임 이벤트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크리스마스를 생각하면 어떤 게임 이벤트를 열심히 했다는 기억이 참 많은 것 같다.
물론 그렇다고 사교활동이 전혀 없었다는 것은 아니고,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에 친구들과 옹기종기 모여 파티를 하고 집에 들어가면 어째서인지 잠이 잘 오지 않아 게임을 켜서, 한참이고 밤을 새다가 잠에 들곤 했다. 도대체 크리스마스가 누구를 위한 날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를 위한 날은 아니였음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듯 뭔가 울적해지는 하루하루였다.
그리고 2년 전 오늘, 내 생에 가장 울적한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입대 시기를 한참 놓친 나에게 날아든 입영통지서의 입영일자는 12월 26일. 크리스마스 다음날 입대란다. 나중에 들어보니 240명 중 60명 이상이 이 영장에 불응했다고 한다. 크리스마스가 뭐라고. 크리스마스라는 날에 의미부여 같은걸 하니까 마음이 약해지는게 아닐까?
작년의 오늘, 20대 마지막 크리스마스를 군대에서 보냈다. 참 신기했던게 그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크리스마스라는 이야기를 입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그런걸 신경 쓸만한 애들은 이미 휴가를 떠난 상태였고 모두 다 무언가의 분문율을 따르듯이 크리스마스라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래서 참 다행이였다. 그리고 눈이 안와서 더 다행이었다. 어려서부터 눈이 오지 않는 곳에 살던 나에게 화이트 크리스마스의 로망은 존재했지만, 군대에서만큼은 눈이 오지 않는게 최고였다. 제설을 위한 조기기상은 그 어떤 로망도 씹어먹을 정도로 짜증나는 일이다.
착한 아이처럼 살지 못해서 그럴까? 내 크리스마스는 항상 어딘가 쓸쓸한 면이 함께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 기억에서 지워버린건 아니다. 별로 대단한 기억은 아닐지라도, 전부 기억이 난다. 난 누구보다 크리스마스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 싫다고 애착을 버린것은 아니다.
전역한 현재, 난 직장경력이 애매한 경력단절 취준생으로써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취업이 뜻대로 되지 않아, 기껏 30번의 크리스마스를 거쳐 돌아온 것은 백수 크리스마스. 이거 참. 또 어떤 의미로는 화이트 크리스마스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반면, 정말 오랜만에 가족과 함께 보내는 크리스마스가 되었다.
백수라서 한가하게 요리도 하고, 크리스마스 겸 생일밥상도 차려보고, 원래라면 할 수 없었던 일들을 이번 연말에는 참 많이 했다. 난 여전히 크리스마스가 싫지만,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모두가 좋아한다면, 보다 특별한 날로 만들어주고 싶다.
크리스마스 하면 입대가 가장 먼저 떠오르지 않도록, 이 날에 더욱 행복한 일들이 채워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