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시판
:: 이전 게시판
|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19/11/03 07:20
청년세대 지적하는건 딱히 청년세대만이 아니라 한국 사람(외국에 나가 살아본적 없어서 외국이 어떤진 모르겠습니다만) 전체의 공통점 같습니다만...
그리고 미취업 청년에게 적대적이라는게 뭔소린지도 잘모르겠고요
19/11/03 08:45
미취업 상태를 감당하지 못한다는 말은 어떤 뜻으로 쓰신 말일까요?
휴학과 졸업유예를 거리낌없이 선택하며 취업준비를 이어나가는 한국의 상황이랑은 조금 안 맞는것 같은데 일본처럼 대부분이 무휴학 칼졸업을 하는 가운데에 학부 졸업전에 대기업이 됐건 중소가 됐건 90% 가량이 어디라도 붙어서 가는 경우가 이에 해당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한국 청년실업의 문제는 취업시장의 동향과 본인 스펙 사이의 미스매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기대이상의 양질의 일자리를 원하는 인구가 과도하다고 봐야하는거 아닌가요
19/11/03 09:02
미취업 상태의 청년들이 그것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불행한 이유가 그런 상태에 대해서 과도하게 못난이 취급하는 문화가 있기 때문인데, 정작 그런 청년들에게 가장 가혹한 집단이 동일 청년 세대라는 뜻 같습니다. 내가 포함되었을 때에는 사회가 나에게 가혹하다고 징징대지만 내가 포함되지 않았을 경우에는 관용을 전혀 베풀지 않는 이중성이 있다는 거지요. (저 말고 글쓰신 분 생각이 그렇다는 거. 전 뭐 이건 모든 세대 공통인 것 같아서 패스)
19/11/03 09:14
기성세대가 젊은이를 대하는게 미숙하다는 말은 일견 맞습니다. 자기 어린시절 문화랑 너무 다르니까.
근데 기존세대가 실력보다 비리와 부정으로 살아남았고, 공정하고 올바르게 되는 경험은 젊은이가 월등하게 우월하다구요? 글쓴이 본인도 그렇게 여기시는건지 요즘 그렇게 여기는 청년이 많다는건지 아님 둘다인지 모르겠지만, 정말 그거야말로 경험부족이고 편협한 시각의 단정이다 라고 하고 싶네요. 그시절이 지금에 보기에 부조리한게 많았던 것은 맞지만, 지금과 비교도 할수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다른 형제와의 차별까지 받으면서도 견디고 묵묵히 성실히 해서 가정을 일구고 지금의 자식들 키운 이야기.. 그게 얼마나 흔한건데... 저 역시 가난한 한국을 경험하지 않았고 전쟁 모르는 세대지만, 때론 꼰대같고 자신의 경험이 최고고 젊은이들은 나약하다 폄하하는게 기분나쁜 사람이지만, 그렇다고 그당시 최선을 다했던 기록들을 모조리 퉁치고싶지 않아요.
19/11/03 10:35
젊은 세대일수록 비리와 부정을 저지르거나 겪을 기간이 짧기 때문에, 연장자보다는 젊은 사람이 더 깨끗할 확률이 높겠죠. 이 부분은 어느 세대 사이에서나 발생할 갈등 같아요. 지금 젊은 세대들도 다음 세대들에게 비슷한 주제로 까일거라고 예상합니다. 하하하
그리고 예전에 열악하고 더욱 불공정한 환경에서는 관행으로 여겨지던 것들이, 현재는 비리와 부정으로 정의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죠. 폄하나 성과를 퉁치는 것이라기 보다는 공은 공이고 과를 구분해서 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중간에 낀 세대인 제 입장에서는 기성세대의 불합리함이 더 와닿긴 해요.
19/11/03 16:22
그런 느낌이라면 표현을 다르게 했겠죠. 제가 글쓴분에게 아니다 싶은 부분은 기성세대를 외려 올바르게 살아본 경험이 부족하다고 표현한거요. 저는 되려 요즘 세대도 얼마나 불공정하게 사나 싶은데 말이죠. 당장 조국때 대학생들 집회한게 뭣때문이에요. 그외 애들도 성격과 외모로 평가하고 왕따 은따 입는 옷. 사는 동네. 부모 직업에 따라 평가하는 게 여전한데 뭐가 공정한 경험이 많냐고 묻고싶은거죠.
19/11/03 09:50
글쎄요. 틀딱 이야기는 잘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우월한(경제적이나 사회 지휘적으로) 사람이 아랫사람을 멸시하거나 분리하고자 하는 행동은 어떤 세대나 시대에도 흔했던 일 아닌가요? 그게 젊은층에서 더 심한지에 대해선 별로 공감이 안되네요. 그냥 사람 본성이 그런거지. 차라리 청년층도 20:80처럼, 상위권 대학과 여러번 도전할 기회가 있는 계층과, 그게 안되는 사회 하위층을 구성하는 청년으로 갈등한다면 더 믿을만하다 보네요.
그리고 정치세력화가 되기위해선 축적된 자본이나 계기가 될만한 사건이 필요한데, 한국이 그정도로 역동적인 사회(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같지는 않습니다. 의견을 표출할 장소나 자격이 제한된 것도 있고요.
19/11/03 10:17
[요즘 젊은 커뮤니티에선 '틀니 2주 압수', '전국 노래자랑 2주 시청금지'와 같은 식으로 기성세대를 아이 취급하는 식으로 대우하는 밈이 유행인데, 이것은 지금의 청년층이 나이만 어릴 뿐 경험 자체 면에선 월등하다는 것을 은유한다.]
이 문장이 이해가 잘 안됩니다. 앞부분의 현상에 대해서는 저도 알고 있는데, 그게 어떻게 뒷부분에 쓰신 '쳥년층의 경험이 월등하다' 로 연결되는건지요...
19/11/03 10:28
저는 이런 시각이 위선적이라고 생각해요.
기성세대가 왜 청년층을 위해 부와 권력을 공짜로 내놓아야 하나요? 그리고 그걸 요구할 권리가 어떤 이유로 청년층에게 있는거죠? 지금 청년층이 처한 환경이 기성세대가 배설한 오물쯤으로 생각하는 시각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청년들이 욕하는 기성세대층에서 누가 사회 환경을 주도적으로 바꿀 수 있었죠? 대부분의 기성세대는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소시민들이에요 그럼 반대로 지금의 청년들은 왜 주어진 환경을 주도적으로 바꾸지 못하고 넷상에서 불만을 배설하죠? 그쵸.. 기성세대나 청년층이나 짜여진 사회구조를 바꿀 힘도 의지도 그닥 없는 소시민이 대부분이니까요 어려움과 아픔에 공감할 수 있겠지만 시대적 상황을 기성세대 잘못으로 전가하는 웃기는 상황은 이해도 못하지만 청년들에게 그닥 도움이 될만한 대적관은 아닐듯 합니다.
19/11/03 11:15
안 내놓으면 상관없는데 아무것도 안내놓으면서 꼰대질이나 우쭈쭈하는질이나 하는건 좀 웃기다는거죠. 걍 철저하게 남으로 인정하면 그만일뿐.. 어줍잖은 조언이나 부둥부둥 둘다 별로..
19/11/03 11:42
모든 이야기들을 어줍잖은 조언으로 밖에 안 받아들이는 태도도 절망적이에요. 그런 태도 접하다 보면 세상에서 가장 나쁜 말이 "네 잘못이 아냐"란 생각도 듭니다. 대화를 거부하는게 남이라고만 생각하는 건 정말 그릇된 태도에요
19/11/03 12:26
불만의 원인이 명확하고 그 본질을 해결하려면 밥그릇을 내놔야합니다. 애초에 대화로 해결될 불만이 아닌데 대화로 퉁치려는행위가 그릇된 태도죠.
19/11/03 12:30
힘들면 밥그릇을 좀 내줄 생각을 해야죠. 혼내던가 감정적으로 우쭈쭈해봐야 조소의 대상이 될뿐이죠. 밥그릇을 도저히 못내주겠거나 줘야할 이유를 모르겠으면 결국 다시 무시말고는 할수있는게 없구요.
19/11/03 12:37
그럼 처음부터 그렇게 말씀을 하셨어야죠. 안 내놓는 건 상관없고 남으로 인정하면 된다고 하셨으면서 이 짧은 댓글타래에서 이렇게 순식간에 정 반대로 입장이 바뀌시면 대화를 해드릴 수가 없습니다. 나는 아무렇게나 뱉을 테니 네가 노력해서 내 진의를 알아들어라라는 식으로는 상대방으로부터 제대로 된 반응을 이끌어낼 수 없습니다. 원하시는대로 이후에는 무시하도록 하겠습니다.
19/11/03 17:53
(a)왜 내놔야하는지 모르겠다는 사람에게, 너가 내놔야하는 대단한 근거는 없으니 어줍잖은 훈계나 위로를 하지 말고 남으로 대해라. (b)남으로 대한 것에 대해 징징대는 사람을 무시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그러면 넌 내놔라. 라는게 왜 정반대로 입장이 바뀐건지 모르겠네요.
(b)를 Orbef님이 댓글달기 전에 먼저 이야기하지 않은게 문제인가요? 제가 댓글타래를 시작한게 아니라, 왜 내놔야하는지 모르겠다는 댓글에 대한 피드백으로 시작한 댓글입니다. 아무렇게나 뱉은게 아니라 잉크부스님에게 뱉은거고 그러므로 잉크부스님의 댓글에 한정지어서 댓글을 단거니까 (b)를 달 이유가 없죠. 공간도 없고. 잉크부스님이 이야기하지않은 부분까지 제가 선제적으로 이야기해야합니까? Orbef님은 제 댓글과 관련없이 전혀 다른 제3자 입장에서의 오독의 가능성을 차단하는 댓글을 달고계시는지요? 아닌 것 같은데요. 무시하시겠다고 전시하셨으니 뭐 무시하실거면 하시구요.
19/11/03 18:13
남으로 인정해달라고 하기엔 청년층이 기성세대(부모)에 너무 오래도록 기생하니까요.
하루 세끼 부모가 안 도와주면 굶어죽을 청춘들이 잔소리하면 틀딱이라느니 꼰대라느니 웃기는 일이죠. 독일에서는 고등학교 졸업하면 부모의 지원을 스스로 받지 않아요.. 실업계는 약간더 빨리.. 삶은 캥거루처럼 살면서 우쭈쭈도 싫고 잔소리고 싫으니 결국 징징이인거죠
19/11/03 11:02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지금 젊은 세대가 공정성을 중시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취가 부족할 수 밖에 없는 젊은 세대가 기성세대에게 대적할 수 있는 무기로 이만한 것이 없죠. 하지만 공동체 의식이 희박한 것과 결합되면서 집착의 수준에 육박하고, '공정'한 과정을 거쳐 자신이 성취한 것으로 휘두르는 차별에 둔감한 것 같아 답답합니다. 좀 지난 이야기지만, 대학교 서열을 세세하게 매기는 것을 보고는 어안이 벙벙했었어요. 기성세대의 경험부족에 동의하는데, 저는 리더나 연장자가 할 수 있는 최대치는 '모범'을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젊은 세대에게 롤모델이 될 수 있는 기성세대가 사회 곳곳에 있었다면, 갈등이 이렇게 심하진 않았을 것 같습니다. 중간에 끼인 세대인 저부터라도 (이미 버린 몸 같지만) 노력해봐야죠. 다만 베이비시팅이라고 폄하하셨지만, 세대간에 소위 '어머니' 같은 포지셔닝도 필요한 것 같아요. 인기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 측면에서 사회적 안정성을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에게 애정과 안쓰러움을 가지는 것은 장기적으로 좋은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9/11/03 11:15
공동체 의식이 희박한게 아니라 공동체내에서 누가 약자고 더 도와야하나의 관점이 다른거죠.
그리고 대학서열화는 지금보다 과거가 훨씬 심하죠
19/11/03 11:23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공동체에 대해 기대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국가 단위의 공공부조는 늘어났지만, 개인이 체감할 수 있는 규모의 상호부조는 거의 사라지고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저만 해도 어렸을 때 부모님께서는 계모임에 나가시고 옆 집 아주머니께서 밥 챙겨주신 경험을 가지고 있지만, 젊은 세대 중에는 그런 것을 체감한 사람이 무척 소수일 거라고 봅니다. '날 챙겨준 건 넓게 봐도 가족 뿐인데, 왜 내가 옆 사람까지 챙겨야하나' 뭐 그런 느낌을 받아요.
19/11/03 11:27
그건 단순 젊은 세대의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만... 주거 형태의 변화로인한거죠 뭐 뭐 무슨 재해 터져서 대학에서 기부금 모금할때 모이던거라던가 보면 힘든 사람 돕는건 잘돕죠.
19/11/03 12:11
말씀처럼 주거 형태 같은 사회변화가 크죠. 다만 그런 변화 이전을 체감한 세대와 그렇지 못한 세대의 차이가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제가 말씀드린 공동체 의식은 약자를 돕는다라는 측면이 아니었습니다. (설마 젊은 세대의 인성이 나빠졌을리가 없지 않습니까;;;)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과 연대해서 문제를 해결한다라는 측면에서 말씀드린 거였어요.
19/11/03 15:45
그부분은 언더도그마라고 하던가요? 그런게 완전히 깨진게 큰거죠. 저런 연대를 하면 십중팔구 어디 한군데는 잘못된게 나올 수 밖에 없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잘못이 있으면 손잡으려고 하질 않게 됫으니까요
19/11/03 11:27
대학 서열의 단단함은 예전만 못하죠. 제가 놀랐던 것은 그 세세함이었어요.
나보다 잘난 놈은 인정해도, 못한 놈이 비비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19/11/03 11:34
사실 저희 세대도 큰 차이는 없어요. 남의 심장에 박힌 말뚝보다 제 손톱 밑 가시가 더 신경쓰이니까요.
그래도 전에는 사정이 다 거기서 거기니까 더 쉽게 공감했던 것 같은데, 계층 격차가 심해지고 다면화되면서 더 공감하기 어려워진 것 같습니다. SNS가 그런 공감을 도울 수 있을까 했지만, 오히려 갈등만 더 키우고 있고요 ㅠㅠㅠ
19/11/03 11:54
젊으니까 징징거릴 수 있는겁니다. 지금의 기득권층도 젊을때에는 징징거리면서 살았습니다. 나이든 지금은 징징거릴 힘도 없고, 내가 가진 것(가족, 재산 등...)을 지키는것만으로도 벅찹니다.
계속 징징거리십시요. 그래야 바뀝니다.
19/11/03 12:19
디테일을 떠나 징징이론 자체에는 생각해볼 만한 부분이 많네요. 약간은 간과하던 부분을 짚는 것 같아 통쾌하기도 하고요. 자기는 마땅히 더 대접받아야 된다고 생각하고, 대접이 만족스럽지 않으면 강한 피해의식을 갖는 부류들이 점점 더 많아진다는 느낌.
이 글은 윗부분만 있었으면 별로 안 까였을듯...크크
19/11/03 12:19
http://mlbpark.donga.com/mp/b.php?p=1&b=bullpen&id=201911020037231394&select=&query=&user=&site=&reply=&source=&sig=hgj9Gf2gjhXRKfX@h-jXGY-Yhhlq
얼마전에 본 짤인데 공감되서 올려봅니다. 개인적으로 지금 기성세대는 지나치게 많고 가진게 많아요. 견제가 불가능한 수준인데 폭주까지 하고 있는 세대라 봐서 젊은 사람들 입장에서는 평생 눌려 살다 끝날 것 같다는 걱정이 들 수 밖에 없습니다.
19/11/03 12:26
자기들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한 상대와 싸워본적 없다는 말이 참 공감되네요 크크... 정말 자한당이 아직도 안망하고 살아있다는 게 크나큰 비극입니다
19/11/03 12:26
전체가 전혀 공감이 안 가는글에도 부분적으로는 공감하는 부분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 글에서는 2~30대 젊은세대에게 징징이속성이 꽤 있다는 게 그렇네요.
19/11/03 12:46
모두까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글.
알맹이가 없지만 그냥 이런 글도 자유니까요. 다만 양 쪽 모두에 편협한 시야를 모두 까는 것으로 무마하려는 글이라 참 별로네요.
19/11/03 13:04
저도 비슷하게 생각하는게 이런 글 쓰는거야 글쓴이의 권리입니다만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래서 뭐 어쩌라고" 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드네요.
19/11/04 11:34
꼰대와 징징이란 표현으로 가리키는 그것은
그럴만 하니까 그렇게 되는 거라 생각합니다. 역사적 환경을 놓고 볼 때,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렇게 되는 거죠. 그런 환경에도 불구하고 꼰대가 안 되고, 징징이가 안 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특별한 거라 생각합니다. 아무튼... 저는 해결책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덧붙여보고 싶습니다. 저는 이 둘의 공통점이 두 가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로 남탓을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도덕을 즐겨 쓴다는 것입니다. 남탓을 하는데 그 도구로 각자의 도덕관념을 쓰는 거죠. 이때 권력이 있으면 꼰대가 되는 것이고, 권력이 없으면 징징이가 되는 것이고요. 나이를 초월해서 말이죠. 나이 적은 꼰대 많을 걸요? 나이 많은 징징이 많을 걸요? 뭐 아무튼... 그래서 본질적인 부분은 남탓과 도덕의 과용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도덕에 중독되어 있다고 생각하고요. 그리고 그것이 온라인상에 많이 표출되고 있는 상황이라 생각합니다. 왜 온라인상에 많이 표출되는가? 그 이유로 도시화와 자본주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이런 겁니다. 오프라인상에서도 익명성의 관계가 많습니다. 이름도 모르고 어디 사는지도 모르고 어차피 다시 마주칠 일도 없는... 혹은 마음 먹으면 쉽게 안 보고 살 수 있는... 그런 관계들이 삶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된 거죠. 어떤 마을 공동체가 있고, 교통과 통신이 그리 발달하지 못하면, 생활 반경 내에서 대부분 아는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상대가 뭔 잘못을 하면, 보복을 할 수 있습니다. 보복의 기본은 평판을 깍는 거죠. 그 특정인의 평판을 깍는 겁니다. 뒷담화 등으로 말이죠. 평판이 깍이면 깍일수록, 그 특정인은 그 마을에서 삶이 고단해집니다. 그와 달리 사람들에게 잘 대해주고 다니면, 평판이 높아지고 그 마을에서 삶이 좋아지죠. 소사회에서 권력을 가질 수도 있고요. 평판이 좋으면 결혼하는데도 유리할 것입니다. 아무튼 특정인이 잘못한 것과 잘한 것에 대한 피드백은 평판 등을 통해 그 특정인을 향하게 됩니다. 그런데 익명성의 사회에서는 그렇지 못합니다. 누군지 모르니 그 특정인의 평판을 깍을 수 없죠. 아는 경우도 여차하면 안 보고 살면 되니, 효용이 떨어집니다. 그래서 특정인의 잘못에 대해 충분히 보복을 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나 열받는 그 감정은 그대로 남아있죠. 이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하면, 특정인이 아니라 특정단어에 보복을 하게 됩니다. 특정 단어를 통해 매개되고 프레이밍되는 집단을 공격하게 됩니다. 도시에서 불량한 흑인을 만나고 안 좋은 일을 겪으면, 그게 바로 인종차별로 이어지는 거죠. 잘못은 특정인이 했는데, 보복은 집단을 향하게 되는 겁니다. 원래 보복이 집단을 향하더라도 그게 꽤 피드백이 잘 되면서 돌아가는 그런 경우가 있긴 합니다. 다만 그건 조건이 필요합니다. 그 집단이 내부 통제력이 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통제력이 없으면, 이 피드백이란 게 결국 마치 공유지의 비극 같은 것이 되어버립니다. 잘못은 특정인이 해놓고, 그 처벌은 전체가 받는 구조! 성갈등도 그렇습니다. 잘못은 정말 되먹지 않은 소수의 나쁜 남자들이 해놓고, 그로인해 남성 전체의 평판이 깍이는 거죠. 선량한 남성들도 보복당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남성들이 그 소수의 남성들을 내부적으로 통제할 능력이 있는가? 없죠. 법으로밖에 해결을 하지 못합니다. 즉 내부적 해결이 아니라, 전체로서 해결을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더해서, 익명의 관계가 아니더라도 오프라인상에서 충분히 보복을 못하게 되면, 미움이 남게 되고 그게 다시 특정 단어를 통해 지칭되는 집단을 향하게 되는 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위로를 받는다든지 화풀이를 한다든지 하는 수단으로 온라인이 이용될 수 있는 거죠. 여기에 자본주의 문제가 있습니다. 자본주의가 하는 일 중에 사람들을 편리하게 하는 게 있습니다. 그래서 온갖 것을 찾아다니며 편리하게 만들고 그 대가로 돈을 법니다. 우리나라는 특히 더 그런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빨리빨리 + 불편싫어 그런데 말이죠. 삶을 살아가면서 불편을 겪으면 그 해결책 중 하나가 타인의 도움을 받는 것입니다. 뭔가 큰 문제가 생긴 경우뿐만 아니라, 일상의 자잘한 것에 있어서도 타인의 도움을 받아 해결하는 그런 부분 말이죠. 편리의 자본주의는 바로 그것을 제거하게 됩니다. 혼자서도 다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고, 불편하게 남의 도움 요청하지 않아도 되게 만드는 것이죠. 이로인해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가 약해집니다. 자본주의의 편리 마인드! 그것은 다시 정책으로도 이어집니다. 왜 그런가 하면 정책 만드는 사람 및 이에 힘을 실어주는 사람들이 불편이란 걸 참 싫어하고, 오직 편리만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부족한 사고력과 도덕주의가 결합해 이런 것도 만들어집니다. 그게 바로 노약자석과 임산부석이죠. 말 안해도 알아서 비키라고! 아예 앉질 말어! 말하는 것도 불편하니까! 우리나라 공무원들 인간의 감정에 대해 상당히 무지하다 생각합니다. 그 원인은 인문학이 약해서라 생각하는데 아무튼... 법과 제도를 통해 강제되는 것은 외적동기라 할 수 있습니다. 외적동기는 내적동기를 망가뜨리죠. 노약자와 임산부! 그건 자리를 양보하는 사람이 즐거워야 합니다. 뭔가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된 것 같고, 뿌듯하고 그런 기분이 느껴져야 한다는 거죠. 그래야 그런 감정습관, 그런 태도가 다른 곳에도 발현될 수 있겠지요. 게다가 자리를 양보하는 다른 사람의 행동을 보면서 덩달아 배우게 되는 게 있습니다. 그런데 임산부석이어서 임산부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건 그리 즐겁지 않습니다. 이는 일상에서 문화를 만드는 그 부분을 박탈한 거라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그 내용이 다른 걸로 바뀌었을 뿐, 유교적 도덕주의의 나라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게 자본주의와 정반합 변증법을 하더니, 도덕주의적 정책들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그러니까 도덕에 해당하는 걸, 불편 등의 이유로 법으로 만들고 강제하는 거죠. 그러나 그럼으로써 내적 감정이 훼손되고, 문화가 훼손됩니다. 이건 상당히 일반적인 거라 생각합니다. 온갖 문제를 이런 식으로 해결하려 들게 됩니다. 도시화의 익명성과 자본주의의 편리주의에 유교적 뿌리가 강한 도덕주의 그리고 인간 심리에 대한 무지 즉 인문학의 빈곤. 이런 것들이 어울러져 있는 상황인 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게 바로 꼰대와 징징이의 좋은 환경이 되는 거죠. 아무튼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해결책은 이런 방향을 가리키게 됩니다. 우리는 좋은 불편을 분별해낼 수 있어야 합니다. 무조건 편해지려고만 하지 말고, 어떤 불편이란게 깊이 들여다보면 그게 문화적 가치를 창출하고 있거나 그러한 창출의 기회를 만들고 가능성을 높이고 있을 때, 우리는 불편을 감수해야 할 뿐더러 나아가 불편을 고의로 만드는 방법도 고려해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불편을 더 일반화해서 말하자면, 고통이죠. 전체적 장기적 안목을 갖고, 좋은 고통을 전략적으로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조건 고통을 피하려고만 하지 말고요. 그러다보면 훨씬 더 큰 고통이 사회 전체에 가해질 테니까요. 그리고 뭐든 도덕적 비난으로 해결하려 하고, 세계관도 각자가 가진 도덕관에 의해 왜곡되어 있고, 이런 걸 해결하기 위해 비도덕이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너무 도덕주의로 가서도 안 되고, 너무 비도덕주의로 가서도 안 되는데, 지금 우리 사회는 도덕주의이므로 꼰대의 도구도, 징징이의 도구도 도덕이므로, 남탓의 도덕이므로, 도덕의 에너지량이 너무 과해져 있는 상황이므로, 비도덕이 필요하단 거죠.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뭔가 문제가 생겼을 때, 사실을 파악하고 미래를 예측하고 대책을 세우는 쪽으로 주의가 흘러야 할 것입니다. 이 과정은 비도덕입니다. 도덕이 없죠. 그러나 뭔가 문제가 생겼을 때, 남탓을 하고 난 책임 없다 하고 여기에 더해 어떤 사악한 자들의 음모가 있다고 하고, 이건 다 도덕주의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도덕주의자에 대한 비판이 현재로서는 미약한 상태라 생각합니다. 이 사람들은 걸핏하면 의도를 따집니다. 그리고 누구편인지 따집니다. 누구편인지 알면 의도를 추정하기 쉽거든요. 사실과 합리를 통한 의사 표현도 그 의도를 임의로 지어내고 비난합니다. 비도덕주의와 도덕주의가 균형을 이뤄야 하는데 그게 되지 않는 거죠. 각자의 도덕을 가지고 유교적 도덕주의자처럼 행하는 것입니다. 저는 비도덕과 도덕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게 도교적인 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노자 철학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정도면 비도덕이 뭘 의미하는지 대강은 전달되었을 걸로 보고 다음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좋은 불편을 긍정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비도덕을 긍정하고 도덕과 조화시키고, 그 다음은 인문학과 문화의 발전입니다. 얼마 전에도 우리나라가 졸부의 나라라면서 '한강의 기적'이 뜻하는바가 그것이란 이야기를 했는데요. 문화 발전에 공을 쏟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매우 중요하다 생각하고요. 그리고 인문학, 특히 철학과 심리학을 중심으로, 역사학, 사회학 등의 발전이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이게 안 되고 있기 때문에 온갖 문제가 생기는 것이고, 문제해결이 잘 되질 않는 것이고, 문제해결을 하려다 오히려 더 망가지는 식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정치인 중에 법조인 출신이 많은 것에 대해 좋게 보지 않고 있습니다. 철학자, 심리학자, 물리학자 이런 사람들이 늘어났으면 하는 바램이 있고요. 왜 거기에 물리학자가 들어가는가 하면, 저는 정치인들이 대부분 기술자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변호사! 법의 기술자죠. 우리나라는 산업계뿐만 아니라 정치계도 기술의 나라라 생각합니다. 기술 그 상위에 있는 것은 선진국으로부터 배껴오면 되고, 기술 집중을 하는 그런 나라인 거죠. 그게 기술의 삼성뿐만 아니라 기술의 국회를 만든 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기술자만 득세하니 인간을 향한 정치가 잘 되질 않는 거죠. 기술과 인문이 조화되어야 국회도 잘 될텐데 그게 안 되고 있는 겁니다. 아무튼 그래서 인문학과 순수과학 출신의 인재들이 국회에서 지금보다 더 많은 비중을 차지했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철학, 심리학은 물론이고 물리학, 생물학 이런 것들 말이죠. 문제진단을 네 가지로 해놓고 해결책은 셋을 썼습니다. 이제 남은 하나 익명성입니다. 이건 해결하기 힘든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저는 평판 시스템이란 것에 대해 사람들이 많이 생각을 해보았으면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이를통해 뭔가 더 잘 돌아가고, 뭔가 더 재밌어지고 이런 부분이 늘어났으면 하고, 그 가능한 부분 중에 포털이나 게임 등... 소프트웨어로 관리 가능한 영역에 있어서 평판 시스템이 강화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소프트웨어 기업, 대표적으로 구글이 있죠. 구글이 워낙 소프트웨어 역량이 좋은 나머지 기업 경영도 많은 부분을 소프트웨어로서 개선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감명깊더군요. 그것에는 평판 시스템도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구글의 아침은 자유가 시작된다> 라는 책이었습니다. 그밖에도 오프라인에서도 만약에 화폐처럼 쓰는 게 가능한 무엇이 있다면 그걸 가지고 평판 시스템을 제한적으로나마 돌리는 게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모바일로 이를 구현할 수도 있겠고요. 학교에서 학생들 사회성을 위해서 만들고 경험해보게 하는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뭐 아무튼 저는 미래에는 구글의 스마트한 경영 도구가 사회의 도구로 쓰이게 되는 그런 일이 일어날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이를 잘 구현해내려면 고도의 사고력이 필요하겠지만요. 폰으로 쓴 댓글인데 너무 길어서 잘 썼는지 모르겠네요. 아무튼...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철학입니다. 이건 뭐 부족함이 많은 제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저는 다원주의 과학철학, 노자 철학, 니체 철학을 좋게 보고 있습니다. 이중에 노자는 앞서 잠깐 적었고, 니체 얘기를 하자면, 앞서 말한 불편을 긍정하고 고통을 긍정하고, 그리고 비도덕이 필요하다는 것... 이 부분은 니체 철학과 닿아있는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니체는 힘을 긍정하죠. 고통이 일어나도 힘에 대한 의지를 가져야 한다. 왜냐하면 힘에 대한 의지가 생명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뭐 이런 식의 생각을 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쾌락과 고통이 무엇인지에 대해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걸로 알고요. 아무튼... 우리 사회에서도 제 생각에 국민들 개개인이... 즉 개인이 인격적인 힘이 약해져 있는 상황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온갖 질병에 걸리기 쉬운 상태에 있는 거라 생각하고요. 꼰대와 징징이를 말씀하셨지만, 우울증이나 분노조절장애 이런 것들도 근본적으로는 힘이 약해서 일어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왜 힘이 약한가? 그 이유 중 하나는 개인의 힘을 두려워한 나머지, 사회가 개인을 억압하기 위해 만든 온갖 도덕에 의해 그렇게 된 거라 생각합니다. 니체는 이걸 노예의 도덕이라 부르곤 한 걸로 알고 있고요. 아무튼 인격적인 힘이 약해지면, 질병에 걸리기 쉬울 뿐더러, 누군가에 의지하려고 하게 됩니다. 그로인해 선동당하기 쉬워지죠. 히틀러 나치처럼 말이죠. 사람들은 온라인에서 악플을 왜 그렇게 쓰고 다닐까요? 그 가능한 이유 중 하나는, 악플 쓸 때는 자신이 힘이 있는 듯 느껴지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유명인을 비난하면 더욱 그렇게 느껴질 테죠. 연예인이나 정치인, 스포츠 스타 말이죠. 그러나 이때 느껴지는 힘은 가짜 힘이죠. 스스로 인격적인 힘이 없기 때문에, 가짜 힘에 중독되어 버리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이건 전체의 일부분을 설명한 것이지 전체는 상당히 여러 부분들의 복합으로 되어 있는 것이지만요. 그 전체를 3박4일 여행한다면 꼭 들러야 할 곳이 바로 힘이라 생각합니다. 아무튼 그래서 저는 이 부분에서 니체 철학을 긍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니체도 편향된 부분이 있어서 니체 그대로는 안 되고 그게 도교철학과 어울러진 상태여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얼마 전에도 잠깐 댓글로 썼지만, 우리나라 지식인 중에서 이에 가장 가까운 분은 철학자 최진석 교수님이라 생각합니다. 그분 말씀에 다 동의를 하는 게 아니고 특히 저는 다원주의 과학철학이 인문학 부분에도 융합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아무튼 누군가에게 미래적이고 선진적인 사상과 문화를 위해 우리나라 사람 한 명 소개시켜달라 하면 전 이 분을 꼽고 싶습니다. 유투브에 보면 대중강연 영상들이 꽤 있는데, 앞으로는 어찌 될지가 기대되는 분이기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