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무기력 극방 방법: 일기
앞선 행동 강령에서 필자는 유대감, 유능감, 자율성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효과적 연구 방법론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위의 행동강령을 감안하더라도 대부분의 사람은 본인이 뛰어넘을 수 없는 한계를 만났을 때 피할 수 없는 분노와 무기력을 겪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필자는 따로 한 절을 만들어서 독자 여러분과 분노와 무기력을 극복하는 방법론을 공유하고자 한다. 심리학 상담 절에서 언급했듯이, 본인의 감정과 행동을 잘 이해하는 것이 모든 변화의 출발점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리하여 필자는 필사적으로 일기를 쓰기 시작하였다.
하루하루가 너무 아쉽고 아깝게 느껴져 일기를 썼다. 심할 때는 분단위로 행동을 기록했고 하루에 시간을 어떻게 썼는지, 오늘의 감정은 어땠는지, 이 감정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오늘의 강의 내용은 무엇이었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연구실 생활에 주의 점은 뭔지, 교수님은 어떻기 대해야 하는지, 오늘의 연구 성과는 무엇인지, 내일은 어떻게 해야 할지, 밥은 뭘 먹었는지 등등을 세부적으로 기술했다.
그리하여 총 4년을 동안 일기를 쓰고나서, 필자가 느낀 것은 첫째 필자의 행동이 얼마나 비효율적인지 객관적으로 느낄 수 있었고, 둘째 해결할 수 있는 부분과 없는 부분을 명확히 했으며, 셋째 연구실 생활에서 본인의 입장에서 다양한 증거를 모을 수 있었으며, 네째 감정을 객관적으로 다루어 감정의 해소가 되었다는 점이다.
또한 부가적인 현상이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으로 매일 일기를 자그마한 성취가 축적되어, 필자 자신에게 신뢰가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또한 연구가 내 삶에 있어서 가장 큰 도구일 뿐이라는 것이다. 연구는 필자의 목표가 아니었다. 행복이란 목적을 위한 수단이라는 것이다.
슬럼프를 겪고 계신 많은 독자분들도 개인의 일기를 쓰기를 권장한다.
7. 지도교수와 미팅법
사실 필자는 석사의 졸업여부는 개인의 연구실력보다는 지도교수와의 관계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교수의 입장에서는 SCI 논문을 스스로 뽑아내는 석사생이 아니 고서야 굳이 석사를 높게 평가할 이유는 없다. 본인 주변에 차고 널려 있는 것이 박사이다. 때문에 교수와의 Communication은 석사 기간 중 가장 신경 써야 할 파트임을 잊지 말자.
이번 절에서만큼은, 필자의 경험이 독자에게 유용하다고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다양한 교수의 성격이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필자의 주관적 경험이 이번만큼은 도움이 될지 안될지 가늠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본인의 경우 지도교수가 매니지먼트 타입의 회장형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이와 관련한 조언을 적어 두었으니, 독자들이 본인의 교수와 잘 비교하여 적용하기 바란다.
본인의 지도교수는 필자의 연구 분야에 문외한 사람이었다. 때문에 교수와의 대화에서 석사기간동안 많은 애를 먹었는데, 그 이유를 한참 뒤에 서야 깨 달았다. 필자의 가정에는 교수도 필자의 분야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기초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1년이 지나가고 나서야, 필자의 분야에는 일도 모르는구나 하는 것을 진실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때문에 교수와의 대화 중에 유념해야 할 점은 교수를 모든 것을 다 아는 상사라고 생각 하기보단 고객으로 생각하는 것이 적절하단 것이다. 이런 타입의 지도 교수를 상사로 생각 한다면 대학원생이 수동적 자세를 취하게 될 확률이 높다.
그러나 고객으로 생각 한다면 주체적으로, 고객의 지적 호기심을 채워 주기 위해, 연구 결과를 보기 좋게 요리하고 플레이팅 하게 될 것이다. 안타깝지만 요즘 교수는 바쁩니다. 대학원생의 인권을 챙겨주며, 또한 기분을 신경 써주며 이끌어 주지 않았다.
오히려 본인의 테뉴어 혹은 인생의 질을 향상하기 위해 대학원생에 압력을 가할 구조적 불합리함에 놓여 있습니다 물론 교순 개인의 잘못도 있지만, 전체적인 구조적 불합리 함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수동적으로 살기에 대학원은 그렇게 녹록한 공간이 아닙니다.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기를 조언 드립니다.
8. 피해자 프레임
본 절은 나이브 하면서도, 착해 빠진 멍청이를 위한 장이다. 필자가 직접 느낀 사항을 정리한 절이니, 독자들이 집중해서 읽기를 바라는 절이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앞서 언급한 이상한 온갖 도라이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다. 친구라는 존재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 자신의 성향과 비슷한 사람을 고른 항목이기 때문에, 필자처럼 나이브하고 착한 사회 초년생들은 사회생활이라 것에 마음이 매우 아플 것이다. 본 절은 이들을 위한 것이다.
우선 프레임 전환이다. 필자는 연구실 생활을 하면서 본인이 도덕적으로 가해자라는 생각을 했다. 본인이 능력이 부족하고, 생각이 짧아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존재라고 생각한적이 많았다. 그래서 괴로웠다.
그러나 앞선 선배들이 겪을 박사 생활을 돌이켜 보니, 그저 그들의 생존 전략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필자는 이를 피해자 프레임이라고 부르는데,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들은 필자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면서, 해야 할 일이 많은데, 후배가 도와주지 못해 연구실이 돌아가지 못한다는 지속적이 세뇌작업을 실시한다. 필자가 보았을 때 이는, 고의적인 작업이 아니라, 그들의 생존 필수법이라고 생각을 한다. 필자는 과거에 이러한 프레임에 아주 잘 걸려들어서 심각한 자기 혐오에 들어간 적이 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단순한 그들의 생존 전략에 걸려든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