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 빅스비 한시간 뒤에 알람"
한번 게임을 하면 시간가는지 모르는 나에게 거는 최소한의 제약.
세상이 참 좋아졌다.
한 손은 마우스 한 손은 키보드에 둔 채 목소리 만으로 전화를 걸고 알람 설정을 할 수 있는 좋은 세상이다.
그런데 이놈이 자꾸 눈치를 보는 것 같다.
잠깐만 목소리를 높여 정신없이 떠들다 보면 어느새 핸드폰에 빅스비가 호출되어 있는 것을 본다.
말도 안되는 문장을 인식하고
"죄송해요. 제가 무슨말인지 이해하지 못하였어요"라고 사과를 하고 있다.
너 부른거 아니거든이라며 빅스비 알람을 끄지만, 블루투스 이어폰을 구매한 이후 다시 알람을 키게 되었다.
세상 참 많이 좋아졌다.
초등학교가 아니 국민학교가 끝나고 집에 가면 항상 내 덩치만한 개들이 날 반겼다.
동네를 사방팔방 돌아다니며 서로의 똥을 집어먹었을 놈들이 달라들어 핥고 물고 난리가 났지만, 그게 싫진 않았다.
다음으로 장수 할머니가
"호랭이가 잡아갈 것들"이라며 개들을 후두려 패고 나에게 갓 딴 오이나 가지를 주곤했다.
그럼 오수 할머니는 말없이 내 가방을 들어 옮기고 얼굴을 씻겨 주셨다.
나는 할머니가 두 분이셨다.
그리고 우리 아버지는 어머니가 두 분이셨다.
장수 시골 깡촌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난 아버지는 넷째 동생이 세상을 떠났을 때 인근 마을 오수에 어느정도 사는, 하지만 아들이 없어
제사 지내기가 걱정인 어느 집에 입양되었다.
아버지는 자기가 입양가는 날 할아버지가 술에 취해 일어나지 않았다는게 항상 잊히지 않는다 하셨다.
입양을 간 아버지는 몇가지 버릇이 생겼다.
아버지는 밥을 항상 반 숟가라씩 남기는 버릇이 있었다. 밥을 싹싹 다 긁어 먹으면 오수 어머니는 꼭 밥을 더 주려 했고 아버지는 그게 너무
어려웠다고 했다. 그렇다고 밥을 많이 남기면 다음 부터 반찬을 신경쓰는 오수 어머니를 보는 건 더 힘들어 아주 조금 밥을 남기게 되었다
했다.
그리고 어디서 무슨 말소리가 들리면 잠을 자다가도 당장 일어나 달려가는 버릇이 생겼다 했다.
오수 아버지가 자기를 불렀는데 반응이 늦어 오수 아버지가 새벽에 혼자 일을 하는 것을 몇번 본 뒤부터는 목소리만 들리면 항상
단박에 잠을 깼다고 한다.
덕분에 군대에서 개념병사라고 칭찬도 받았다니 소득이 없었던건 아닌 것 같다.
시간이 흘러 아버지는 성인이 되었고, 할아버지는 돌아가셨다. 두분다.
어찌된 영문인지 장수 어머니도 아버지가 모시게 되었고, 집에는 두 명의 할머니가 계시게 되었다.
이런 남자와 결혼한 우리 어머니는 정말 대단한 것 같다.
덕분에 그 집 큰아들인 나는 하루는 오수 할머니와 하루는 장수 할머니와 잠을 자게 되었고, 학교에서 할머니가 두 명이라는 얘기를 했다가
놀림도 받고, 더블로 케어를 받으며 그럭저럭 잘 커왔다.
하지만 아직도 아버지는 잠귀가 너무 밝으시고, 아들의 몰컴을 그렇게 잘도 잡아내셨다.
고작 50년 만에 산에서 나무하던 아버지는 스마트폰으로 고스톱을 치신다.
세상이 많이 좋아졌지만 어느새 나도 밥을 항상 조금씩 남기고, 잠귀가 밝은 걸 보면 변하지 않는 것도 있는 듯하다.
빅스비가 자꾸 내 눈치를 보는게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민감도를 가장 최저로 내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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