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설(序說)
1
‘그’ 가 서른 살이 되던 해 정든 고향마을을 떠나, 망치를 들고 야철장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달군 쇠를 메어치기를 10년. ‘그’ 는 뜨거운 강철과 그 자신의 고독을 즐기느라 전혀 지루한 줄 몰랐다. 그러다가 돌연 ‘그’ 의 마음의 변화가 생겨 쇳덩이로 커다랗고 동그란 솥을 만들었다.
‘그’ 는 근교의 철물점으로 가 기압계를 사고, 모터를 사고, 커다란 화로를 하나 장만했다. 동그란 솥에 손잡이를 달고, 베어링을 달고, 윤활유를 칠하고, 기압계를 달고, 모터와 손잡이를 벨트 풀리로 이어주니 이윽고 뻥튀기 기계가 되었다.
‘그’ 는 그제서야 태양을 보며 소리치기를
‘보라! 이곳에 초인의 지(智)가 있느니라! 이제 초인의 지는 경사를 따라 흐르며 대지의 뜻을 그대들에게 전하리라.’
2
그는 야철장을 나와 산길을 내려가며 아무와도 마주치지 않았다. 그러나 숲 속 작은 무료급식소를 지나갈 때, 그곳에서 배식을 기다리는 노인들을 만났다.
“아따, 이 뻥튀기 기계 아이라~ 참말로 오랜마이다~ 쌀 튀밥 한 되 을망교~”
뻥튀기 마이스터가 말했다.
“한 되에 오 천원, 그러나 나의 쌀로 하면 만원이라. 나의 쌀은 유기농이니 내 쌀로 튀기는 것이 그대에게 좋으리라.”
그러자 노인들은 웅성거리매,
“이래 비싼걸 누가 태아묵노. 쪼매만 싸게 해 주이소. 이 너무 비싸다. 우리 할매 할배들 돈없어가 여서 밥먹는 거 안 보입니껴! ”
소란이 일자 무료 급식소의 소장이 나왔다.
“아 몇 년 전 아무도 없는 야철장으로 가시던 분이시군요. 저는 이곳 아가페 무료급식소의 소장 조 시국 입니다. 몇 년 전에는 커다란 망치를 들고 올라가시더니 이제는 뻥튀기 기계를 가지고 내려오시는군요. 어르신들이 쌀 튀밥을 드시고 싶어 하시니 조금 공양하시면 어떻겠습니까? 여기 쌀은 있습니다”
“ 이 쌀은 페트병 속에 들어있던 쌀이니 바로 뻥튀기로 만들 수 없구나. 나의 유기농 쌀은 단가가 비싸니 거저 줄 수 없다. 이것이 내가 너희에게 줄 최선의 공양이요 진언이니라.”
“그런가요? 당신은 제가 어찌 이 산 가장 낮은 곳에 무료급식소를 만드셨는지 모르십니까? 인간을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주의 뜻을 전하고 그분의 사랑을 전할 뿐입니다. 자본의 논리는 그대를 추하게 만들지요. 당신은 마음이 빈곤한 자의 논리로 사랑을 욕되게 합니다.”
“싫다. 나는 스스로 든 수저를 권리라 생각하는 자들에게 더는 먹을 것을 베풀지 않겠다. 그저 수저 들 힘조차 없는 낙타들에게로 다가가 사카린조차 넣지 않은 튀밥을 베풀겠노라. 나는 고작 적선을 할 만큼 마음이 빈곤하지 않기에.”
이 말을 끝으로 뻥튀기 마이스터는 조 소장에게 작별을 고하며 말했다.
“내가 이들의 더 많은 것을 빼앗지 않도록 하여라.”
뻥튀기 마이스터가 홀로 숲 속으로 들어섰을 때, 그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이럴 수가! 저자는 아직도 ‘신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지 못했단 말인가!’
3
뻥튀기 마이스터가 숲을 나와 시장에 들어섰을때, 그곳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시장바닥에 주저앉은 그는 짐을 풀고는 뻥튀기 기계를 두었다. 뻥튀기 기계의 뚜껑을 닫고 아무것도 넣지 않은 채로 돌리기를 10분. 뚜껑을 열고 기계를 기름으로 닦자, 고소한 냄새가 온 시장에 퍼졌다. 고소한 냄새를 맡은 사람들이 뻥튀기 마이스터 주변으로 몰리자 뻥튀기 마이스터가,
“나는 그대들에게 초인의 지혜를 전하려 한다. 이 앞에 바로 초인이 있노라.”
그러자 시장에 모인 사람들이 와- 하고 웃었다. 뻥튀기 마이스터는 빈 깡통에 백미를 3분의 2 정도 채우고 그 쌀을 뻥튀기 기계에 넣었다. 그리고 뻥튀기 기계 뚜껑의 나사를 조이며 이르기를
“여기 인간의 영혼이 있다. 차갑고 딱딱하며 홀로 움직일 줄 모르는. 단지 굴종하고 무거우며, 방향성 없는 그저 녹말덩어리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는 화로에 불을 당기고 모터를 돌리자 압력계의 바늘이 올라가기 시작한다. 1도에서 5도에 이르기 까지, 한참의 시간이 걸리고,
“이 보듯 방향성 없는 인간의 영혼은 그저 멈춰있으려 하고, 변화하지 않으려 한다. 두꺼운 외투를 입고 있어 그 속에 소중한 것은 꽁꽁 감춰둔 채로 아무것도 보지 않으려 한다.”
압력계의 바늘이 5도가 된다. 이를 보던 뻥튀기 마이스터가 사람들에게 큰소리로 외친다.
“하지만 이제, 신은 죽었다. 인간의 영혼을 옭아 메는 두꺼운 외투는 더 이상 인간을 구속하지 못한다. 이제 인간은 외투를 벗기 시작해야 한다. 인간 영혼은 기계 속의 압력에 저항하고 싸우며 팽창하려 한다. 기계 속의 압력이 높아지는 속도가 빨라진다.”
압력계의 바늘이 순식간에 8도가 되었다. 뻥튀기 마이스터는 화덕을 끄고 재빨리 쇠막대기 두 개를 쥐더니 모터에 걸린 벨트 풀리를 벗긴다.
“뻥이요!”
큰 소리와 함께 쌀 튀밥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뜨거운 김을 내뿜는다. 뻥튀기 마이스터가 바닥에 흩어진 쌀 튀밥을 주워먹는 인간들에게 말하기를
“이것이 바로 초인이다!”
4
튀밥을 주워먹은 사람들은 이내 뿔뿔이 흩어지고 뻥튀기 마이스터 앞에는 한 아이만이 남아있었다. 뻥튀기 마이스터는 아이에게 말하기를,
“아아, 저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구나. 나는 저들의 입을 위한 음식이 아니다. 허리 굽힌 채 땅에 떨어진 튀밥만 주워 먹을 줄 모르는 저들은 그저 시정잡배와도 같다. 중력의 망령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만 바라보며, 바닥에 떨어진 음식만 주워먹으니, 그 누구도 고개를 들고 달콤한 열매에 손을 뻗지 못하는구나.”
아이가 뻥튀기 마이스터에게,
“아저씨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어요. 얼른 쌀 튀밥 만 원어치 주세요.”
뻥튀기 마이스터는 빙그레 웃더니, 아이가 건내는 돈을 받으며 아이에게 말한다.
“너는 곧 뜻을 알게 되리라.”
그때, 시장에 풍악소리가 나더니 커다란 사자탈을 쓴 사람들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정오의 가장 뜨거운 햇빛 속에서 그들은 소리치며 뛰어오르지만, 이내 땀으로 범벅이 되어 탈을 벗어 던지고 바닥에 드러눕는다.
“보아라 아이야. 저것이 사자의 영을 가진 자들이니라. 대지의 속박을 벗어나려 뜀박질하고 높이 뛰어오르나, 이내 추락하고 지쳐 드러눕는 자들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저들을 욕할 수는 없지.”
아이는 아리송한 표정으로 묻기를,.
“쌀 튀밥은 언제 주실건가요?”
“그런 건 중요치 않단다 아이야. 이 뻥튀기 기계를 보라! 깨우침은 바로 이 기계에 있노라. 대지의 뜨거운 의지는 이 강철을 낳고, 나는 그 대지를 파헤쳐 얻은 강철로 무쇠 기계를 빚었으니, 이 기계는 대지의 의지니라. 이 기계 속의 쌀은 곡물과 튀밥 사이를 위태롭게 오가는 외줄과도 같다. 그 줄에서 앞으로 나가는 것도 어렵고, 터지지 못하고 머물러 있는 것도 위험하다. 쌀이, 곡물이 위대한 이유는, 이 역시 대지의 의지로서 튀밥이 목적이 아니라 다리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튀밥의 ‘과정’이요 곡물로서의 몰락이니라.”
뻥튀기 마이스터는 이어서 아이에게 말했다.
“얼른 엄마에게 돌아가서 말씀 드리거라. 너는 쌀 튀밥 대신 초인의 지혜를 깨우쳤노라고.”
5
아이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돌아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락부락한 근육이 뻥튀기 마이스터를 찾아왔다.
“아저씨! 쌀 튀밥을 먹으면 근손실이 일어나나요?”
“본디 인간의 몰락은 예정 되어 있는 것이다. 인간은 상승의지로 충만하지만, 영원 불멸한 것은 존재하지 않으니, 그런 허구를 좇으려 하지 말라. 그대 육신은 단지 필연적으로 몰락함이라.”
우락부락한 근육은 눈물을 글썽이며 물으니,.
“그렇다면 이 근육은 쓸모 없는 건가요?”
그러자 뻥튀기 마이스터는,
“그대여. 그대에게 말하노라. 인간은 자아를 지배하는 숨은 현자가 있느니, 그는 바로 육체니라. 육체에는 가장 훌륭한 지혜보다 더 많은 이성이 있다. 힘찬 체력으로 그대가 좇아나가는 창조를 좇아가거라. 육체는 수단이지 최종 목적지가 아님을 그대는 알아야 한다. 그리고 쌀 튀밥에 든 덱스트린은 그대가 나아갈 힘을 줄 것이니라.”
망설이며 우락부락한 근육이 말했다.
“아저씨 뻥튀기 오 천 원어치요!”
뻥튀기 마이스터는 그제서야 화덕에 불을 당기며 근육에게 이르기를,
“그대의 육체는 상승의지를 가지고 있다. 이 상승의지는 그대의 육신 뿐 아니라 모든 존재들이 가지고 있는 의지이며, 존재는 자기 스스로 온전하기를 늘 갈구하고 있다. 그러니 그대는 육체의 욕망을 해방하고 부추기라. 그대의 육신은 자연스레 그대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리라. 그대는 육체의 지혜를 믿으라.”
그제서야 우락부락한 근육은 웃으며 말했다.
“뻥튀기 만 원어치 주세요!”
6
“그대 눈은 참 맑고 입가에는 역겨움이 어려있지 않도다. 그대는 춤추는 사람 마냥 가볍게 움직이며 쌀 튀밥을 만드는 자. 그대의 총기는 그대를 귀인이라 부르는구나. 나는 그대에게 깨달음을 전하려 하니 냉수 한 잔 청해도 되겠는가?”
뻥튀기 마이스터가 쌀 튀밥을 만들고 있을 때, 한 여자가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나는 ‘행복의 섬’의 지혜를 전하는 자. 심해 깊은 곳에 가라앉은 섬에는 온갖 지혜와 영광이 가득하나, 범인(凡人)은 털 끝 하나 닿을 수 없는 곳 이니, 그대와 같이 맑은 정신을 지닌 자만이 무의식 상태에서 근접할 수 있느니라.”
뻥튀기 마이스터는 그녀에게 말했다.
“모든 배후의 세계를 창조한 것은 고뇌와 무능이었다. 신을 열망하고 외부에서 지혜를 구하는 자들은, 병든 자들뿐이다. 그리하여 병든 육체를 탈피하고 피안으로 도피하고자 함이라. 그대는 대지의 의지를 잊고 바다로 도망가고자 하였으나, 바다 속에는 비린내와 죽음과도 같은 침묵뿐이다. 내가 그대에게 베풀 것이라곤 물 한 모금도 없으니 돌아가거라.”
이에 그녀가 떠나가며 말하기를,
“그대는 깊은 바다를 섬기는 자들을 알지 못한다. 바다 속에 사는 위대한 옛 존재의 의지를 이어받은 이들을. 지상의 삶은 괴로움. 그대들은 비관을 지속하며 비관을 기다리는 자들이니, 무지의 사슬에 묶여 죽음을 기다릴 수 밖에 없다. 지혜를 구하려는 자 바다로 가거라. 고통의 대지 끝에서, 그대는 대양을 바라보게 되리라.”
“병든 자나 노인이나 시체와 맞닥뜨리면 그들은 삶의 무의미성을 이야기 한다. 그러나 그들의 말이야 말로 의미가 없다. 그들은 삶의 한 면 밖에 보지 못하는 눈을 가지고 있기에. ”
나를 내침에 있어 그대는 얻을 것도 잃게 될 이고 먹을 것도 뱉게 되리라. 그대는 행복의 섬에서, 이 모든 것이 피안이 아님을 알게 되리라.”
사람들 사이로 그녀가 사라지고, 뻥튀기 마이스터는 이렇게 말했다.
“피안도 피안이 아니며, 허상도 더 이상 허상이 아니라.”
7
뻥튀기 마이스터는 그녀의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하더니, 듣는 자도 없는 가운데서 크게 벌떡 일어나 크게 소리치기를
“너희들은 그 누구의 말도 믿지 말라. 너희 자신의 목소리도 믿지 말며 심지어 나의 목소리 조차도 믿지 마라. 누군가의 말을 빌어 어떠한 깨우침의 도달하고 나면 그 말을 망치로 부숴 돌아갈 곳을 없애 버리라. 아니면 뜨거운 뻥튀기 기계에 넣고 터트려 산산조각 내어라. 이 말은 내 말을 듣는 모든 이들에 해당하는 말이니라.”
8
(그러더니 손을 뻗어 책을 찢으며 이르기를,
“보라 나는 이제 저 여자가 한 말이 거짓임을 증명하려 이 곳을 떠난다. 대지로 부터의 깨달음을 전하는 내 스스로의 깨우침 마저 산산조각 내려 한다. 불 속에서 태어나는 커다란 새처럼, 나는 이곳에서 몰락하나, 이 몰락은 진정 몰락이 아니라 또 다른 삶이요 시작이다.”
그리고는 찢은 종이를 구겨 뻥튀기 기계 속에 넣고 돌리기를 20분. 마침내 기압계의 압력이 8도에 이르니 뻥튀기 마이스터는 뻥이요를 외쳤다.
천지를 뒤흔드는 굉음과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자욱한 연기가 사방을 뒤덮으니 그곳에는 뻥튀기 기계도 뻥튀기 마이스터도 없었다.)
원래 하던 것 부터 마무리 짓고 하려 했으나, 급하게 독립출판 워크숍에 참여하게 되어서 이달 말 까지 글 한편을 완성해야 합니다.
뻥튀기 장인과, 성경과, 크툴루 신화와, 고딕 호러 풍으로 니체의 초인철학을 설명하려 하는데 이런 느낌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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