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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02 01:40
잘 읽었습니다.
초인공지능이 강림해서 인류의 역사가 이대로 끝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좀 진지하게 하던 시절에 어찌어찌 뮤지컬을 보러갔습니다. 고양이 옷을 입고 땀 뻘뻘 흘리면서 공연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다보니 '지금 이 시점에 초인공지능이 강림해서 인류의 역사가 끝난다고 한들 저 사람들이 저렇게 열심히 공연하고 있는 것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잖아. 그러니까 하쿠나마타타!' 하면서 고민 턴을 종료했어요. Farce 님은 그 반대쪽으로 생각하시는 셈인데, 물론 충분히 이해할만한 방향이고 우려하시는 그런 결론이 나오지 않게 모두들 노력을 해야겠지만, 설령 결과가 안 좋다고 해서 모든 것을 소급 적용해서 '그러니까 1392년의 조선 건국은 실수였다구!' 라고 말할 수는 없지 싶습니다.
19/09/02 17:06
저는 '인류 원리'를 아주 숭상하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아니 세상에! 어떻게 이렇게 복잡한 고도 생물체인 인간이 존재하고, 막 원소가 수백개가 되는 우주가 존재하지? 인간하고 말이 통하는 고등한 신이 설계한 것인가?"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선후관계는 그 반대인 것이지요. 우주가 그리 복잡하니 그걸 보고 감탄하는 메타적인 인간 같은게 튀어나온 것입니다. 아마 우주가 더 간단했다면, 그걸보고 감탄하는 더 간단한 인류-비스무리한-것이 나왔겠지요. "우리가 뇌를 이해할만큼 뇌가 단순해진다면, 우리는 결코 뇌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같은 역설이랄까요.
저는 상당히 염세적이고 비관적인 성정을 가진 사람이고, 덕분에 이런 제 스스로의 특질에 대해서 양가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번 글이 상당히 지리멸렬한데요. 제 내면 속의 결론이 끝나지 않은 상태로 글을 옮겨서 그런 것 같습니다. (정말 안 좋은 습관이지요. 다음에는 다시 한 점에 모이는 글로 찾아뵈겠습니다.) 저는 일직선 진행 (Railroaded) 게임을 하는 것을 정말 싫어합니다. 그런 게임은 플레이어를 존중해주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때문이지요. 대한민국에 살아있는 사람이 왜 필요합니까? 어차피 출신성분 보고서 졸업장을 줄거면 신생아는 왜 대한민국에 존재해야합니까? 노인들끼리 잘해보라지요. 스포일러를 당했으면 책을 왜 읽습니까? 달콤씁쓸한 인생은 숙련된 명품 브랜디의 맛이지만, 단 것을 멀리하고 쓴 것만 입에 넣고 싶은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한 배려심도 없는거에요! 단맛을 좋아하는 진화론이 준 뇌과학적인 뇌를 이념에 세뇌당해서 극복하는 중2병 환자라고요! 저는 세상을 저주하는 것 같아보이지만, 저주하지 않습니다. 제 인생을 저주하기 싫기 때문입니다. 제 삶을 저주하기 싫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가능성 탐구자'의 삶을 살고 싶은 것이고요. 하지만 동시에 저를 포함한 사람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지 않습니다. 막 사람이 보이면 숨이 막히는 결말로 달려가고 있구나 막 그런 생각을 해요... 제가 그래서 결혼을 못 하겠어요. 저 같은 아들을 낳는다면 저는 지구 최악의 아버지가 될 것입니다. 어쩔줄 몰라하겠지요... 아니 어쩌면 더 나은 사람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경험하지 못한 것을 아들에게 주고, 일어났던 모든 일을 일어나지 않게 해주면... 아니 아들은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저는 벌써 한 30대까지 강요하고 싶은 줄거리를 서사시로 적어놨네요? 정말 가증스러운 인간이 아닐수가 없습니다. 아무튼... 저는 우물안 개구리입니다. 저는 제 내면의 우주속에 있지 않은 이야기를 상상하고 공감해서 말하는 재주가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역사적 실수도 중요하지만, 제가 실수가 아니기를 바랄 뿐입니다.
19/09/02 07:35
생각해보면 독제자들은 다 우리는 [특별해]를 외치긴 하는데 대다수가 그냥 [보통]스럽게 끝나긴 하더군요.
그중 가장 크게 외치는 애들이 중국이구요. 정말 특별한지는 당해봐야 알겟죠?
19/09/03 20:42
타노스는 모든 독재자... 아니 빌런... 그러니까 이야기를 망치는 자들의 이상향이 아닐까요?
마블이 정말 캐릭터를 잘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누가 살아남는지는 이야기를 끝까지 봐야겠지요.
19/09/02 14:53
역알못에 전공도 다른 학부생따리일 뿐이지만 잘읽었습니다. 글솜씨가.. 아우..
개인적인 의문은 이거네요. 존더베크든 대동아공영권이든 혹은 명백한 운명이든. 어쩌면 우리 나라는 우리 민족은 특별하다는 주장이 먼저인가 혹은 제국주의와 확장이 우선인가. 결국 이 나라들이 폭주하고 정복하는 역사에서 이 사상이 도화선이 된건지 혹은 그 역사에 딸려오는 부산물인건지 궁금해집니다.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도 어쩌면 사상적 근원보다는 현상에 따라, 역사에 따라 사상이 정립된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어요.
19/09/03 20:46
사실 제가 저번 기생충 리뷰에서도 적었지만.
저는 극단적인 입장주의자입니다. 한국이 먼저 근대화를 했다면 파시스트 제국주의자들이 안 되었을까요? 모든 것은 입장의 문제이고, 모든 것은 위치의 문제이고, 모든 것은 최선의 문제이고, 모든 것은 맥락의 문제라면... 도대체... 도대체... 사람의 삶은 어떤 가치를 가지는 것일까요? 저는 사상과 서사를 통해서 통제를 통제한다는 착각이라도 하고 싶은 필멸자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iywaBOMvYLI 제가 좋아하는 락커가 쓴 가사가 생각나네요. "How do you own disorder, disorder" 통제할 수 없는것을 소유했다고 우기는 것은 역사라는 것을 인식하는 메타적인 현대인만이 할 수 있는 괴상한 행위겠지요.
19/09/03 20:54
저는 정치적인 사상에 따른 그런 건 잘 모르지만.. 제가 듣는 가수들 생각해보면 입장에 따라 사람이 바뀌는건 어쩔 수 없는거 같아요. 더콰이엇의 2-3집을 참 좋아하는데 지금의 더콰이엇은 그때처럼 젊고 재능있는 언더그라운드 래퍼가 아니라 성공한 오버그라운드 래퍼면서 사장님이니까요. 종신옹은 예전에 감성 충만한 찌질곡을 부르던 발라더지만 이젠 예능인이면서 아빠고, 가정이 있는 사람이니까요.
저는, 따지자면 몇몇 점들을 가지고 궤적을 그려낼 수 있는게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우리가 미래를 알수 없고, 나중에 돌아보면서 [아 그게 우리를 바꾸었구나]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건 제가 모든게 짜여져 있으면서 우리는 알 수 없다는 물리학적 생각에 꽤 경도되었던 공대생이라 그런거 일 수도 있을거 같아요. 뭐... 아직 고작 학부생이고 딴거 해볼까 고민하지만요 크크
19/09/02 20:58
밀리시타 아십니까? 정말 갓겜입니다!
뭐 농담은 제쳐두고, Farce님 글은 항상 재밌게 잘 읽고 있습니다. 근본적인 세계관이 극단적인 유물론으로 같기 때문이죠. 그런데도 꽤나 다른 결론이 나온다는게 흥미롭구요. Farce님은, 이 세상은 결국 원자로 이루어진 것이니, 의미란 것은 결국 인간이 만들어낸 것일진데 그렇다면 내 삶에 확고한 의미란 없는 것 아닌가? 그런 우울에 빠져들지 않기 위해서 꾸준히 무언가를 갈구하지만, 정작 그런 관점 안에서도 나라는 미약한 인간은 설 자리는 없구나 하는게 아닌가 해요 어디까지나 제 의문스러운 독해능력과 자의적인 해석의 결과입니다만.. 전 뭐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어차피 그런 거시적인 흐름이 있다면 그 안에 적응해 나가는 개인이 있을 뿐이고, 이러한 것들이 스러지고 남는 것은 전체적인 역사 뿐이라 한들 지금 현재 사는 우리 입장에서 무슨 상관입니까? 지금 무언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그 때 되면 이미 나란 존재는 사라져 있는데. 중요한건 그런 것보다 내 관심사를 어떻게 풀어나가느냐이죠. 예를들어 저는 지방민으로써 지방의 쇠락과 사투리의 소멸을 탄식하는 사람이지만, 정작 그 당사자인 제 뒷세대들은 그런걸 신경이나 쓰겠습니까? 그들이야 말이 변하든 말든 친구들이랑 노는게 중요하고, TV에서 나오는 표준어에 기반한 유행을 선도하고, 자기 앞가림 하는게 훨씬 중요하겠죠. 그들이 틀린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관심사가 다른 것 뿐입니다. 제 관심사를 그들에게 강요하는 건 폭력인 것이며 제가 상처 받는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지만 그건 자해입니다. Farce님은 후대를 위해서의 역사란 관점을 싫어하시고 개개인에 삶에 촛점을 맞추시는데 저도 동의하지만 또 그것만이 정답은 아니라고 봐요. 중요한 것이 중요한 것인 것은 그것이 중요한 것이어서라기 보단 사람들이 그걸 중요하다고 생각해서잖아요? 독일의 존더베크든 일본제국의 군국주의든 실제의 다름보다는 다르다는 인식에서 전개가 된 것이지요. 뭐 이렇게 장황하게 중언부언 해봤자 나오는 거라고는 '그래! 그냥 내가 하고 싶은걸 하자!'같은 진부한 결론밖에 안되는게 코미디입니다만은. 단지 이 내가 하고싶은 것이 이런 개인차원을 넘어 거시적인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라면 그건 그거대로 좋습니다. 단, 상처받지 않기를. 그래서 제가 하고싶은 말이 무엇이냐구요? 저도 잘 모릅니다! 전 어디까지나 어디에나 널린 애송이에 불과하기 때문에 유익한걸 기대하시면 안됩니다! 그래도 글 읽고 이렇게 머릿속에 든 생각을 나열하는 행위 자체가 꽤나 오랜만에 재밌었습니다. 잘 즐기다 갑니다!
19/09/03 20:51
저는 정치적인 사람입니다. 저는 제 목소리가 타인에게 들릴 수 있게 된다는 것에서 통제감을 얻는 Control Freak 통제광입니다. 저는 역사에 무관심한 사람에게 '깨어나라!' 외치고 싶진 않습니다. 저는 제 취향이 아닌 이야기를 듣는 것을 정말 싫어합니다. 어떤 사람이 저에게 그렇게 한다고 생각하면 짜증이 올라옵니다, 그게 저 자신이 될 수 있다면 더욱 더요. 다만 이런 의도와 달리, 글이 훈계조로 읽히셨다거나 하면 말씀해주세요. 저도 피드백이 있어야지 글이 다음에는 더 나은 MK2로 찾아뵈지 않겠습니까~
제 유물론은 반푼짜리 유물론입니다. 유아적이지요. 왜냐면, 아무리 봐도 사람은 물질의 총합이다라고 주장하는 사람이면서, 갑자기 결말부에서 커브볼을 던지거든요. 근데 이걸 낮게 보지는 말자, 왜냐면 내가 여기 포함되있어서 기분이 나빠~ 라고 결말 짓거든요. 아니 그러면, 좀 좋게 말해주던가 맨날 물질 물질 우주 우주 거리면서... 계속 글을 쓰다보면 언젠가 더 그럴싸한 개똥철학을 만들 수 있겠지요? 감사합니다.
19/09/03 21:24
앗, 다시 댓글을 곱씹어보니 오히려 저야말로 괜한 오지랖으로 뻔히 훈계하는 것 같아 죄송스럽습니다.
사실 제가 하고싶었던 말은 고뇌는 좋으나 그로인해 너무 상처, 고통받지는 말았으면 이었습니다. 역시나 저 또한 Control Freak적인 면모를 긍정합니다. 어차피 저를 포함한 사람들이 이 글을 읽는건 남이 시켜서가 아니라 Farce님의 글에 매료돼서잖아요? 누이도 좋고 매부도 좋은 일입니다. 그리고 Farce님의 유물론이 반푼짜리라고 전 생각 안합니다. 전 인간이 쌓아올린 것들(철학, 문명 등)을 긍정하는 사람이거든요. 단지 그러한 것들이 정신적인 세계를 뚫고 현실로 침투할거란 생각을 철저히 부정할 뿐입니다. 아무리 눈 감고 케찰코아틀에게 기도한들 두개골이 총탄을 반사해 낼 수는 없는거잖습니까! 뭔가 다시 중구난방으로 길어진 것 같은데, 결론은 자신을 긍정하고 행복하게 살자! 정도네요. 저도 감사드립니다.
19/09/03 21:30
케찰코아틀 이야기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크크크크....
제가 진짜 PGR에서 아즈텍 신화 관련해서는 글을 제 스스로도 정말 재미있게 잘 쓴 것 같아요. 신들의 변덕에 의해서 어쩔수 없이 파멸할 것이라는 상당히 '괴상한' 신화를 가졌던 그들은, 정말로 통제할 수 없는 서구의 발전에 운명을 선택하지 못하고 서구문명이 의도하지도 않은 천연두로 쓸려나갔지요... 사서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긍정이 여기서 필요한걸까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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