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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9/01/21 14:47:32
Name aurelius
Subject [일반] [역사] 1942년 이탈리아 외교관이 본 독일

스스로의 내구력과 공격력을 높이기 위해 지금껏 정복해온 엄청나게 많은 것들을 온 힘을 다해 지키고 개발하며, 유럽의 정치적 경제적 삶을 조직하는 것. 이 모두가 분명하고 정확한 목표를 구성하고 있으며, 그 목표를 중심으로 지지자들과 합의를 모으는 것처럼 보였다. 독일이 분명하고도 고치기 어려운 무능력을 보인 것은 바로 이 정치적 과업에서였다는 사실만 없었다면 말이다. 


전 유럽을 피라미드처럼 위계적으로 조직하고 그 정점에 독일을 두겠다는 야심 찬 독일의 의도는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유럽의 재건에 대한 독일의 태도를 파악할 수 없다. 프랑스 혁명으로 등장했고 베르사유에서 절정에 이르렀던 국제질서가 이제 종말을 고했으며, 민족국가가 자신의 자리를 훨씬 큰 규모의 정치체에 내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의 정치적 분위기나 흐름은 어디에도 없다. 심지어 바로 어제까지도 독일에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던 국가들에서도 그렇다. 


그러므로 유럽을 위계적으로 조직한다는 개념 그 자체를 수용하지 못할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독일인들과 만나 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그들이 유럽 질서를 기계적이고 물질적인 관점에서 생각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들은 유럽을 조직한다는 것을 곧 어떤 광물을 얼마나 생산하며, 얼마나 많은 노동자가 필요한가를 결정하는 것으로 파악하는 것 같다. 어떤 경제 질서도 정치 질서에 기초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독일인들은 모르고 있다. 벨기에와 보헤미아의 노동자들을 일하게 하려면 높은 임금을 약속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공동체, 즉 그 자신 역시 속해 있으며 그 속에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그런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1942년, 3월 14일. Mario Luciolli (이탈리아 외교관)



아래 Farce님의 댓글에 대한 대댓글 관련, 지금도 생각해볼만한 매우 흥미로운 대목입니다.


왜냐면 지금의 독일도 사실 저때랑 크게 다르지 않거든요. 적어도 유럽연합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 말이죠. 독일은 유럽연합을 순전히 경제적 논리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다른 회원국들의 반발을 잘 이해하고 있지 못하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사실 독일 역사에서 국가 단위에서 국민 국가를 초월하는 이념이나 정치적 프로젝트는 없었습니다. 유일한 예외가 있다면 <공산주의>겠죠. 하지만 독일에서 태동한 공산주의는 단 한번도 국가차원의 신념이 된 적이 없었고 오히려 러시아가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러시아 특유의 "정교회적-제3의로마적 세계관"으로 "메시아적인 국시"로 만들었습니다. 


독일의 그러한 경향은 나치 때나, 오늘날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은 매우 재미있는 현상인 거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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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역학제2법칙
19/01/21 15:38
수정 아이콘
국민성이란게 허상은 아니죠
19/01/21 15:40
수정 아이콘
(수정됨) 1919년 독일 공산당 중에서 '일부' 극좌파가 베를린 거리에서 나와 '스파르타쿠스단 봉기'를 일으켰지만, 국가적인 혁명이 되지 못하고 끝났지요. 이걸 무주공산이 되어버린 두마(=국회) 건물을 볼세비키라는 '일부' 러시아 혁명가들이 접수했던 10월 혁명과 비교하자면, 너무나도 미안해집니다. 지자체(?) 중 하나인 바이에른에서 바이에른 인민 공화국이 성립되고 몇주도 못 버티고 붕괴한 것을 보면 또 전독일이 공산주의로 대동단결이 가능했을지도 회의적이고요.

문제는 프러시아의 원죄라고 생각합니다. '군사적 또는 계산가능한 해결책을 찾으나, 보편 정치철학이 빈곤한' 그 특성. 1차대전의 시작을 알리고, 프러시아가 통일한 독일 제국을 붕괴시킨 그 '프러시아함'이요.
나폴레옹 전쟁 때 전쟁이라면 남에게 지는 것이 너무나도 부끄러웠던 프러시아 왕국은 '일반 참모 제도'를 도입하는 것으로 사회의 지적능력을 군대자원에 전부 몰아넣는 엄청난 짓을 저질렀지요. 아무리 본래 기사단령이 왕국이 된 나라라지만 대단합니다. 나치의 '리벤스라움'도 사실 '할 수 있으니, 가지면 좋으니, 해본다?' 이런 수준의 '민족국가' 논리이지, 어떤 세계패권을 위한 논리치고는 조악하다는 작성자분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독일인들의 폭주만큼 더 추앙하고 싶은 것은 보헤미아(즉 지금 체코) 사람들의 끈기인데요. 수도 프라하에서 사람이 창문 밖으로 내던저지어도, 독일은 제국이오, 보헤미아는 왕국이라고 절대 '끝까지' 투쟁을 하지 않고 체코인들의 국가인 보헤미아라는 정치체제를 존속시키는 것에 성공했지요.

이와 비교되는 것이 오스트리아의 독일인들과 머릿수 싸움이 얼추된다고 틈만나면 어깃장을 놓던 헝가리가 있겠지요. 덕분에 간접적으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억량이 떨어져서 제국이 붕괴했고, 체코는 독립하자마자 '뮌헨 협정'에서 '뮌헨 배신'을 당하여 히틀러의 독일에게 꿀꺽 삼켜지니, 헝가리가 체코에게 역사적인 사과(?)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긴 헝가리도 그 거대했던 헝가리 왕국 그대로 천년만년 갈줄 알았지, 지금 이 '작은' 헝가리가 될 줄은 상상도 못했겠지요.

사실 이런 관점에서는 동독이라는 '특이점'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지만, 베를린 봉쇄와 동베를린 민주화 시위 진압으로 시작한 국가였기에... 어쩌면 제3제국보다 더 독일인들을 위한 나라가 되기에 요원했지요. 그래도 오스탈기 (Ostalgie 동독에 대한 그리움)에는 사실 이런 이념적 포화 상태였던 그때에 대한 그리움도 포함이 되기에... 이런 현상에도 어떤 역사적 의미가 있지않나 생각해봅니다.

갑자기 영화 '타인의 삶'이 또 보고 싶어지네요. 정말 상호감시와 불신으로 가득차있던 동독 사회를 깊게 다룬 극영화치고는 꽤나 대중적인 순한맛이 있는 영화라 좋습니다.
aurelius
19/01/22 09:49
수정 아이콘
맞습니다. 사실 어떤 보편적 이데아보다 효율성에 치중한 [프로이센]적 특성 때문에 주변국들이 인망을 못얻고 있는 거 같은데, 최근 CDU 당수가 프로이센 출신 개신교 메르켈에서 라인강 쪽에 위치한 자르란트 출신 가톨릭 안네그레트 크람프 카렌바우어로 바뀐 것이 의미가 있을지 주목됩니다.
그린우드
19/01/21 23:59
수정 아이콘
유럽연합이 독일의 제4제국이 아니라 프랑스-독일의 연합제국이 될수밖에 없는 이유죠.
임전즉퇴
19/01/22 01:33
수정 아이콘
막상 그 유럽에서 리더십을 발휘한 다른 종족의 예가 있었나 하면 모르겠네요.. 로마?

독일어권의 지정학은 사통팔달 좋다면 좋지만 양면전선 걸리기도 좋고 왼쪽퍼렁이에 비해선 국토가 좋지도 않고.. 선진국들 중에 제일 순수노력형이라고는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독일에 이 글에서 말하는 한계가 있다면 그 또한 나름대로 그 캐릭터에 어울리는 모습-노잼-이 아닐까요.
aurelius
19/01/22 09:51
수정 아이콘
크크크 노잼이라는 말이 적절할지도 모르겠군요 흐흐
19/01/22 21:34
수정 아이콘
결국 시간이 얼마나 지나든 인간집단은 똑같은 생각과 행동을 반복한다..맞는말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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