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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8/08/05 23:42:45
Name 마스터충달
Subject [일반] [단편] 어느 게시물
  게시판에 다음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동성애가 에이즈를 퍼뜨린다는 게 맞나요?"

  내용은, 어찌 보면, 순수한 질문에 가까웠다.

  "권사님이 동성애는 죄악이고 그 결과로 에이즈라는 벌을 받는다고 하시던데요. 에이즈는 바이러스로 옮기는 병인데 이러면 동성애랑 상관없이 걸릴 수 있는 거 아닌가요? 그런데 통계를 보면 동성애자 중에서 에이즈 걸린 사람이 많다던데, 도대체 이유가 뭐죠?"

  처음에는 시답잖은 댓글이 달렸다.

  "질문은 질게로~"

  "여기는 지식인이 아닙니다."

  그러다 점차 진지한 답변이 달리기 시작했다.

  "일단 질게로... 동성애와 에이즈의 관계를 말씀드리자면,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이성애자도 에이즈 걸리면 섹스로 전염돼요. 초기에 동성애가 에이즈를 퍼트린다는 통계가 나온 이유는 콘돔이 성병 예방 도구로 인식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피임할 필요가 없는 동성애자들이 콘돔을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고, 자연스레 에이즈가 더 빨리 퍼져나갔죠. 게다가 관계 중에 상처가 나는 경우도 많아 혈액에 의한 감염도 많았습니다. 단지 바이러스가 퍼지기 좋은 환경이었을 뿐, 동성애가 에이즈를 퍼뜨렸다고 보긴 어렵죠."

  "윗분 말이 맞아요. 아무 상관 없어요. X독교가 지X하는 거임."

  분노에 찬 댓글도 등장했다.  

  "아직도 그런 소릴 하는 사람이 있군요. 진짜 내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은 아주 찜쪄먹었네요. 다 지옥 갈 겁니다."

  "이래도 일부입니까?"

  그런데 분노의 대상이 글쓴이를 향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이런 글을 올리는 이유는 뭐죠? 이게 헛소리라고 논파 된 게 벌써 수십 년인데, 진짜 궁금해서 적은 거예요? 아니죠? 아직도 이딴 식으로 선동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나요? 네이버 백과사전만 찾아봐도 알만한 얘기를 이렇게 적으시는 거 진짜 의도가 뻔히 보입니다. 운영진은 이런 사람 벌점 안 때리고 뭐 합니까?"

  그 밑으로 무수히 많은 대댓글이 달렸다.

  "아니 정말 모를 수도 있죠."

  "이걸 모르는 게 말이 되나? 저 사람 초딩입니까?"

  "초딩일 수도 있죠..."

  사람들은 글쓴이의 프로필을 살펴보았다.

  "게시물 수 : 1, 댓글 수 : 0"

  사람들은 글쓴이를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이거 보소. 어그로 끌려고 가입한 게 빤히 보이네요."

  "이거 완전 관종이네."

  "미친 어그로 새끼 진짜 개 짜증 난다."

  위 댓글이 달린 지 30초 만에 벌점 받고 삭제당하자, 이제 댓글 흐름은 운영진을 향하기 시작했다.

  "참나, 욕 쓴 건 바로바로 잡으면서, 이런 헤이트 스피치는 방관하는 건가요?"

  "운영진 일 좀 똑바로 하십쇼."

  운영진이 비난받기 시작하자, 글쓴이를 옹호하는, 아니 정확히는 운영진을 옹호한 댓글이 등장했다.

  "본문 보시면 차별적인 발언도 없고, 정말 순수하게 궁금해서 물어보는 것 같은데 이런 것마저 제재할 수는 없죠."

  "친절하게 알려주면 되지, 왜 글을 폭파시켜야 하나요?"

  댓글이 700개를 넘어갈 때 즈음 운영진이 댓글을 남겼다.

  "현재 운영위원회에서 회원에 대한 영구 강등과 벌점 부가 중에서 처분을 논의 중입니다. 헤이트 스피치는 용납할 수 없기에 헤이트 스피치라고 부릅니다. 우리 사이트는 이러한 발언을 용납치 않습니다."

  이 답변은 상황을 진정시키기는 커녕 오히려 불길에 기름을 부어버렸다.

  "아니 글쓴이의 선의를 생각해서 논의가 길어지는 줄 알았는데, 일단 제재를 깔고 가네요? 이 글이 정말 헤이트 스피치에요? 이게 정말 궁금할 수도 있잖아요."

  "독재네. 독재여."

  "여기는 맨날 이런 식이죠. 민주주의를 찬양하는 사람들이 사이트 운영에 관해선 독재를 신봉합니다."

  결국, 운영진을 비난하는 댓글과 옹호하는 댓글이 뒤엉켜 아수라장이 벌어졌다. 댓글 수가 1,500을 넘어갈 때쯤, 글이 삭제되었다.

  그로부터 7분이 지나고 새로운 게시물이 올라왔다.

  "동성애가 에이즈를 퍼뜨리는 게 맞나요? 라고 물어볼 수는 있는 거 아닌가요?"





  프롤로그

  당삼초등학교 5학년 3반 김영철 군은 숙제를 받고 혼란에 빠졌다.

  "혐오 발언을 하면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인지 적어오세요."

  선생님은 동성애 혐오가 나쁘다고 했다. 교회에서는 동성애가 지옥 갈 짓이라고 했다. 부모님께 물어봤자 답이 나올 것 같지 않았다. 영철이는 자기가 기웃거리던 인터넷 커뮤니티 전부에 글을 올렸다.





  에필로그

  한차례 논란이 휩쓴 후, 누군가 다른 커뮤니티에도 똑같은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는 캡쳐글을 올렸다. 사람들은 프로 어그로 꾼의 소행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Written by 충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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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노래선호자
18/08/06 00:16
수정 아이콘
프롤로그, 에필로그 부분은 제외한다치고

본문 내용이 실제로 PGR에서 있었던 일인가요?
마스터충달
18/08/06 00:18
수정 아이콘
아니요 100% 창작입니다.
유아린
18/08/06 00:37
수정 아이콘
동성애는 아니고 모 해설에대한 피지알에서 용납 불가능한 헤이트스피치글이 엄청난 추천과 댓글속에 700플넘게 타오르다가 삭제 후 운영진에 대한 엄청난 비판속에 끝내 복구된적이 있습니다.
찬공기
18/08/06 00:18
수정 아이콘
늘 PGR에 대해 품고 있던 생각들이, 충달님 이번 글 보면서 조금 정리가 되네요. 언제 한번 글로 써봐야지 했는데.. 오늘 밤에라도 다시 정리해봐야겠습니다.
유아린
18/08/06 00:41
수정 아이콘
창작물이라곤 하시지만 엄청나게 익숙한 패턴이네요
기분나빴던 기억이 다시 살아나기도 하는것같고..
사악군
18/08/06 00:46
수정 아이콘
내 댓글도 있을것 같네요 크크크크
18/08/06 01:24
수정 아이콘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생각나는 글이네요
-안군-
18/08/06 02:58
수정 아이콘
분명 창작인걸 아는데도 불구하고 느껴지는 엄청난 기시감...
김성수
18/08/06 03:58
수정 아이콘
나이가 들수록 더 확신이 생기는 것 중 하나는 다수를 비판하면서 생겨난 편견으로 한 사람을 섣불리 몰아붙이는 것은 가장 쉬운 실수이자 가장 잔인한 세상사라는 것입니다.

실수가 아니고 의도된 것이다. 저렇게 말하는 사람이면 안 보고도 뻔하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이런 말들을 더욱 조심히 살피게 됩니다.
저격수
18/08/06 08:47
수정 아이콘
3인칭의 '사람'을 1인칭의 '나'로 바꿔보곤 합니다. 사람 변하지 않는다는 말 참 잔인하고 어렵습니다.
18/08/06 08:40
수정 아이콘
질문인척 어그로 끄는 방식을 창조해낸 누군가는 꼭 지옥 갈 겁니다.
지금만나러갑니다
18/08/06 09:35
수정 아이콘
아니.. 그래서 "동성애가 에이즈를 퍼뜨린다는 게 맞나요?"
걸그룹노래선호자
18/08/06 09:55
수정 아이콘
본문에 진지한 답변이라고 소개된 문단 내용을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bemanner
18/08/06 11:59
수정 아이콘
(수정됨) 성교로 인한 에이즈 감염은 콘돔 없는 항문 성교 > 콘돔 없는 질 성교 .=. 콘돔 쓴 항문 성교 > 콘돔 쓴 질 성교 순으로 확률이 달라지는데, 동성애자의 경우 이성간 성교보다 항문 성교 비율이 높고 콘돔 사용률이 낮아서(임신이 안되니까..) 에이즈 감염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습니다.
플러스
18/08/06 12:09
수정 아이콘
남성동성애자의 경우 그럴 수 있겠지만, 여성동성애자의 경우는 해당사항이 없을 수도 있겠죠? (이성애자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비율)
bemanner
18/08/06 12:11
수정 아이콘
네 그렇겠죠.. 근데 성소수자쪽은 성별 종류가 워낙에 많아서 그냥 뭉뚱그렸습니다. 남자 동성애자라고 써놓으면 또 다른 예시 들고오고 이럴 거 같아서;
플러스
18/08/06 12:19
수정 아이콘
네,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아점화한틱
18/08/06 15:04
수정 아이콘
비감염자끼리 성교를 해서 에이즈가 발병할 확률이 조금이라도 있나용? 질문자체가 무지해보일까봐 못물어봤던 궁금증입니다 크크
괄하이드
18/08/06 22:24
수정 아이콘
당연히 없겠죠. 에이즈는 HIV라는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어서 발병하는 질병인데... 애초에 바이러스가 없는 사람끼리 무슨 짓을 해봤자 그 바이러스가 갑자기 창조될 일은 없으니까요.

다만 에이즈는 잠복기가 꽤 길게 있는 병이고, 때문에 에이즈 증상이 전혀 없는 상태(하지만 실제로 HIV에는 감염된 상태) 에서 성교를 하면 옮길수는 있겠습니다.
18/08/06 09:47
수정 아이콘
너무나도 익숙한 패턴...
18/08/06 10:58
수정 아이콘
뭐지? 이 기시감은...
raindraw
18/08/06 10:58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문제는 실제로 저런 식으로 어그로 끄는 사람이 더 많아서 그렇죠.
될 수 있으면 어그로가 아니라는 가정을 하고 댓글 달려고 노력합니다만 어그로인지 아닌지 확인하기 쉽지 않아서 문제네요.
밀물썰물
18/08/06 11:21
수정 아이콘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켈로그김
18/08/06 13:08
수정 아이콘
공격을 통해 오피니언 리더가 되고싶어하는 사람들이 참 많죠.
메가트롤
18/08/06 13:11
수정 아이콘
추천박고갑니다
감전주의
18/08/06 14:10
수정 아이콘
크크크. 많이 보던 전개네요.
아점화한틱
18/08/06 15:06
수정 아이콘
어느 커뮤니티에서나 보이는 흐름이네요. 피지알에서도 몇번인가 정치적 성향이 다른 사람이 혼자 열변토하다가 레벨업되서 사라진경우 많죠. 물론 개중에는 어그로꾼들도 많구요.(제 생각에는 순수하게 다른 정치적 성향을 가졌다기보다 어그로꾼이라는 판단이 든 경우가 더 많기는 했지만.)
18/08/06 17:11
수정 아이콘
인터넷에서 만나는 존재는 아무리 봐도 사람의 특징을 가지고 있지 않지요. 여러 장님이 코끼리를 만져서 논하려고 하니 싸울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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