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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8/01/27 02:14:11
Name Hospita
Subject [일반] 1년 전 지금, 혹한기 거점방어 훈련 (수정됨)
5시간 후면 알바 땜빵나가야 하는데 자다 깨서 이러고 있습니다. 문득 추운 날 고생하고 있을 내 후임동생들 생각하며 훈련하던 그 날의 기억 몇 자 적어봅니다.

사실 정확히 1년 전은 아니고, 혹한기 대비 거점 방어훈련을 하던게 12월 말이니 1년하고도 1개월 전으로 돌아가야 맞는 것 같습니다.

화천의 모 부대에서 근무하고 있던 저는 연대직할 지원중대의 FDC라는 직책을 맡고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연대장님의 주먹을 컨트롤하는, 연대에서 6명밖에 없는 아주 귀한 자원이였습니다. 때문에 이런 점이 저에게 군 생활 내내 사명감을 갖게 했고 모범적인 군생활을 하게 만들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훈련의 개요나 이런 것을 설명드리자면 좀 긴데 최대한 간략히 설명드리자면 대대가 훈련을 하면 우리 중대의 1개 소대가 지원을 하는 것입니다. 그 지원에 6명밖에 없는 FDC가 배속되어서 훈련을 나가는 것이고요.(사실 2명 1개 조로 3개조를 편성해서 따로 출동하는 것이 맞지만 고폭탄훈련인 만큼 정확성을 위해 6명 전원 출동했습니다)

문제는 1개 대대씩 띄엄띄엄 사격을 하러 나가면 상관이 없는데, 3개 대대가 3주 연속으로 훈련을 하는 날에는 정말 죽어납니다.

물론 고생은 보병분들이 제일 많이 하시겠지만 저희 FDC는 6명 전원이 3주 내내 모든 훈련을 다 참석했습니다. 아마 이 기록은 연대에서 저희 FDC를 제외하곤 없을거라고 자부합니다.



지역을 떠나서 12월, 1월의 군대는 어느 분들에게나 춥게 다가오실겁니다.
그 날의 저도 그랬습니다. 꼭두새벽부터 모 대대 훈련이 있던 날, 장비를 챙겨서 막사를 나가는데 찬바람이.. 어우야..

얼굴을 찢는 듯한 칼바람을 헤치고 전술차량타고 사격장 도착했습니다. 사격보조도구 다 깔고 대기하고 있었죠. 그러다가 좌표랑 기상값 하달되면 계산기에 입력 및 사격 도판 작성을 통해 제원을 산출 하는 겁니다.

당시 저는 짬이 좀 차서 편한 계산기를 했는데 장갑을 끼고 해도 됐었습니다. 근데 부사수들은 장갑을 끼면 제대로 사격도판을 작성할 수 없기에 맨손으로 그리는데 괜히 제가 다 미안해지더군요. 심지어 부사수놈은 핫팩도 안챙겨와서 제 핫팩 돌려썼습니다.
망할 넘...

제원 산출 다 하고 통보했습니다. 사격요청이 날아오자 포구안으로 조명탄을 넣자 뻥! 하는 소리와 함께 짙게 깔린 어둠속으로 포탄이 사라졌습니다.

몇 초 뒤, 화악~ 하는 소리(소리가 났었나?)와 함께 하늘에 주황색의 밝은 반딧불이가 생겼습니다. 정말 이쁘더군요.

그리고 나서 고폭탄 사격을 하려는데 대체 쏠 생각을 안하는겁니다. 지휘부에선 언제 사격을 하려는지..
결국 2시에 조명쏘고 5시간이 지나서야 고폭탄 사격요청왔네요.

그놈의 시나리오때문에 눈 밭 위에서 발 동동 굴려가며 후임이랑 '아.. X나 춥네'만 200번은 읇조린 것 같습니다.
이게 발목 위로는 방한만 잘 하면 최소한 춥지는 않을 수가 있는데 발목 아래로는 양말을 아무리 신고 털달린 군화를(있을리도 없지만) 신어도 답이 없습니다.
진짜 미칩니다. 발 전용 핫팩은 효능이 그리 좋지도 않고.. 한마디로 답이 없어요.

그렇게 고폭탄 사격을 마치고 아침이 식사추진와서 그 자리에서 먹는데, 사실 군필분들은 아시겠지만 훈련갈 때 빈손으로 가는 사람이 어딨습니까.
현장에서 밥 먹을 것 같다 싶으면 맛다시, 스팸, 참치 챙겨가고 심심할 때마다 까먹을 쪼꼬바 챙겨가고 그럽니다.

밥은 식단대로 오는데 메뉴가 형편없을 경우 소위 '쓰밥' 이라고 했습니다. 그 날도 쓰밥이였고요.
부사수애들은 사격도판 그리고 정리하느라 힘들테니 대강 쉬고 맞선임(최고참)하고 제가 밥을 타러 갔습니다. 흰 비닐봉투 하나에 6인분 받아서 맛다시, 참치, 스팸 등 넣고 섞어서 비닐봉투 6개에 나눠 담아서 짜요짜요로 먹고 그랬습니다.
혹여나 맛다시 같은거 못가져갔어도 소대애들한테 구걸하고(구걸해서 먹는게 더 맛있어요) 그랬어요.
그땐 그게 뭐라고 진짜 맛있었는데 말이죠.

그거 다 먹고 난 뒤, 차에 타서 1시간 가량 되는 복귀루트 달려서 부대 복귀하고 사격일지 정리한 다음 씻고 오침했습니다.

음.. 그냥 그랬습니다....

남의 군생활 이야기는 군필자들도 재미없다고들 하죠. 제 길고 지루한 이야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신상노출이 우려되어 약간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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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27 02:45
수정 아이콘
지원중대가 연대장 진급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죠....

포 맞추는 만큼 점수 주는 건데 솔직히 개운빨(....) 4발 중 한 발도 못 맞추고 나서

연대장 딥빡해서 대대장이랑 밤새내내 소주깠다는 얘기가 전설처럼 들려왔습니다
초코에몽
18/01/27 03:34
수정 아이콘
그건 또 아닙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지원중대가 작업중대 또는 연대장 공인 폐급병사간부 수용소가 될 리가 없죠.

그리고 네발 쏴서 한 발도 못맞췄으면 연대장 진급보다는 지원중대 중대장이랑 박격포소대 간부들 평정이... 애도를 액션빔.
18/01/27 04:30
수정 아이콘
화천의 모 부대면 지금 제가 있는곳일수도 있겠군요 흐흐
18/01/27 06:08
수정 아이콘
고생 많으십니다 :)
18/01/27 14:13
수정 아이콘
다른댓글보시니 쌍독수리 출신이시군요 흐흐 반갑습니다
18/01/27 16:10
수정 아이콘
흐흐흐 전 대령님께 안부 좀 전해주십쇼..
18/01/27 16:14
수정 아이콘
J대령님 12월에 전출가셨습니다.. ㅠ
18/01/27 16:25
수정 아이콘
:(
아무튼 추운 날 고생 많으십니다! 몸 건강히 사고 없이 전역하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이기즈아아아아~!
송파사랑
18/01/27 11:39
수정 아이콘
(수정됨)
삭제(벌점 4점), 표현을 주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18/01/27 16:42
수정 아이콘
예.. 인정합니다.
18/01/27 14:05
수정 아이콘
혹시 연대장이름이 김광석?은아니지요 크

저 혹한기첫날에 김정일죽은거 기억나네요.. 부소가 무전기로 농담하는줄
18/01/27 16:08
수정 아이콘
섬짓하셨겠습니다. 선배님 크크크
전 까마득한 후배네요. 반갑습니다
18/01/27 17:01
수정 아이콘
그리고나선 그날 새벽 연대장이 다모아놓고
전국에서 훈련하고있는 부대는 우리가 유일하다며 자랑스러워했죠... 이걸왜자랑스러워하는지
건강보험증
18/01/27 20:13
수정 아이콘
저랑 같은 시기 같은건물에서 군생활하신거같네요 반갑습니다 크크
18/01/27 20:51
수정 아이콘
반갑습니다~ 혹시 몇 층 쓰셨는지요?
건강보험증
18/01/27 21:20
수정 아이콘
연대장실이랑 같은층 썼습니다
18/01/27 22:41
수정 아이콘
아~ 알겠네요. 라면 드시러 함 올라오십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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