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처음 만난 것은 10년 전, 고등학교 시절이다. 외국에서 외국인으로 지내던 나는, 국적에서 비롯된 특별대우가 싫었다. 누군가는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은 사춘기를 보냈다면, 난 평범해지고 싶은 사춘기를 보냈다.
"너 한국말 잘해?" "한국말 좀 해봐!"
늘상 누군가와의 첫만남은 이렇게 시작되곤 했다. 나의 이름은 "한국인"이었다. 나도 모르지만 다들 나를 그렇게 불러줘서 끝내 그런가보다 하고 순응하게 되었다. 나에 대한 호기심은 한국에 대한 호기심이었고, 나라는 사람 그 자체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뭐 그래도 딱히 따돌림을 당한 것은 아니였기에, 외톨이가 되는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기에, 그 생활에 큰 불만을 가지지는 않았다.
"안녕?"
방과 후 집에 와서 메신저를 켜고, 하염없이 누군가가 말을 걸어주길 기다리던 중, 낮선 이로부터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안녕으로 화답한 나는, 그렇게 시작된 대화를 한참 이어갔다. 너무나도 평범한 대화였다. 내가 그토록 바라던, 처음 말하는 누군가와의 평범한 대화. 마음이 시켰을까, 그 뒤로는 방과 후 메신저를 켜는게 일상이 되었다. 그 때부터 미래의 결과가 예견되어 있었다면 그건 조금 가혹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그 때 만큼은 진심으로 행복했던 것 같다. 그 행복이 얼마 못가, 너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겨버렸고, 넌 나의 고백을 작별인사로 받아버렸지만.
질긴 인연은 가연(佳緣)만 있는 것이 아닌가 보다. 그렇게 너와 난 어쩌다보니 같은 대학교로 가게 되었고, 대학에서조차 같은 무리에 참여하게 되었다. 과거가 남긴 어색함을 깨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대학생활 2년만에 난 너와 다시 친구가 될 수 있었다. 난 나름 욕심을 버렸다고 생각했지만, 사람의 마음이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 때 깨달았다. 그렇게 한참을 갈등하다 난 미련을 버리기로 결심하고, 우리는 졸업을 맞이했고, 친구들과 함께 떠난 졸업여행에서, 난 너와 내 친구가 사귀게 되는 것을 목격했다.
그렇게 졸업하여 생업을 시작해 직장을 다닌 지 4년이 흐르고, 너를 처음 만난 것으로부터 10년, 군 문제로 해외체류를 더이상 계속할 수 없는 나이가 되었다. 귀국날짜를 잡고 외국생활을 정리하기 시작한 얼마 후, 나에게 페북 메시지 한통이 도착했다.
"안녕?"
난 너의 결혼소식을 이미 들어 알고 있었다. 그 안녕이 무엇을 위한 안녕인지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너는 나에게 한가한 일정을 물어볼 뿐, 결혼한다는 말을 차마 꺼내지 않았다. 대놓고 청첩장을 보내지 않은 것은, 나를 위한 최후의 배려가 아닐까 싶었다.
"귀국 직전이라 바쁠 것 같아. 뭐 그래도 꼭 행복해라."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비로소, 첫사랑에 마침표를 찍은 것 일지도 모르겠다.
미련은 진작에 버렸지만, 그래도 이제서야 완벽하게 정리된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렇게 한국에 돌아오고 시간이 한달 남짓 흘렀다. 앞으로 2년쯤을 더 보내고 나면 난 서른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시간 참 빠르다 느끼면서도, 다가올 군생활을 생각하자니 그런 것 같지만은 않다. 누군가는 새로운 삶의 단계로 넘어가는데, 난 아직도 출발선 근처에서 배회하고 있는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누구는 이른 늦봄에 가고,
너도나도 앞다투어 여름에 갈 때,
봉오리 속 묵묵히 제 때를 기다리다,
어느새 밖엔 가을이 한창이다.
장미는 여름이라지만,
늦가을 찬바람 속,
뒤늦게 꽃피우는 장미도 있다.
내가 늦은걸까,
평범한 여름 개화를 바란게,
그리 큰 욕심이었을까.
그 어떤 걱정도 잠시,
옆 자리 단풍보다도 붉고,
그 어떤 가을꽃보다도 화사하게,
자신의 때에 만개하는 모습을 보니,
가을의 주인공이 따로 없다.
동네에서 우연히 마주친 가을장미 몇 송이가, 조금은 희망이 되어서 다행이다.
*추신: 군입대가 이렇게 늦게까지 미뤄진 이유는 따로 설명하지 않았는데, 사정을 서술하다보면 글의 흐름을 끊을 것 같아서 따로 적지는 않았습니다. 궁금하신 분들이 계시면 댓글에서 조금씩 썰을 풀어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