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새벽 두 시 필통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옆집에 미안하지 않을만큼의 볼륨으로 낯선 팝 밴드의 노래를 틀어놓고 쿠션에 반쯤 누워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었다. 창 밖의 소리가 배수관 물소리가 아니라 빗소리이길 바라며 세 평 방바닥을 남부끄런 낭만으로 채웠다. 그렇게 한 달 전의 내가 남겨놓은 문장에 부끄러워하다가 감탄하기를 몇번이고 반복하던 중, 필통 생각이 났다.
두어 달 전 남색 인조가죽에 빨간 잠금 고리가 달린, 얼핏 보기에는 고급 가죽으로 만들어진 것 같은 필통을 샀다. 몇 년 전 동네 문구점에서 산 삼천원짜리 필통에서 만년필 네 자루를 빼어 옮겨 담았는데 만년필도 비싼 것이 아니라 중저가 브랜드에서 해마다 색색으로 나오는 것을 하나씩 모은 것이었다.
불규칙한 리듬으로 만년필을 살 때마다 나는 항상 합당한 이유를 만들곤 했다. 저 펜은 항상 잉크가 뭉쳐서 보기 좋지 않아. 이번엔 갈색 잉크로 글씨를 써보고 싶어. 캘리그라피가 유행이라는데 넓은 펜촉을 끼울 펜을 사볼까? 이 한정판은 정말 예쁜 색깔이야. 성능이 떨어지는 마이너한 만년필이지만 이런 식으로라도 소비해줘야 다음 세대 제품이 나오지 않을까? 망설임의 등을 떠밀기 위한 이유는 마를 일이 없었다.
밥벌이가 컴퓨터라 일주일에 한 번도 펜을 잡지 않을 때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내 물욕의 대상이 하필 만년필인 것은 글쓰기에 대한 남모르는 욕구 때문이었다. 오백원짜리 샤프로 밤새 공책을 가득 메웠던 소년 시절에 대한 향수와 볼품 없는 자부심이 버리지 못한 죽은 화초처럼 마음 구석에 남아 있었다. 거미줄 치고 찌그러진 트로피였지만 먼지만 닦아내면 새것처럼 반짝일 거라 애써 생각하고 싶었다. 하지만 엄선한 만년필들이 온전한 문장을 뱉는 일은 거의 없었다.
만년필들의 관(棺)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한 달여 전 해외 출장을 떠나기 전 날이었다. 비행기의 기압차로 잉크가 새는 일에 진절머리가 났던 터라 딱 한 자루만 골라 가방에 담았다. 이후로 내가 필통을 어디로 옮겼는가는 기억나지 않는다. 출장을 가서는 키보드로 글을 썼다.
출장을 다녀와서도 나는 필통을 찾지 않았다. 필통이 눈에 띄지 않는다고 생각했으나 만년필이 아닌 펜도 많이 가지고 있었고 만년필은 빠르게 휘갈기는 업무에 적합하지 않았다. 중고나라에서 산 오천원짜리 블루투스 키보드도 거칠지만 사용에 무리가 없었다. 필통을 찾지 못할까 두려운 마음도 있었다.
새벽 두 시 나는 머그컵 가득히 섞어 만든 진 토닉을 몇 잔쯤 마시고 간절한 심정으로 온 집안을 뒤졌다. 여행 가방, 출퇴근 가방, 핸드백, 전자기기 서랍, 잡동사니 서랍, 약장과 반짇고리함, 잘 여닫지 않는 서랍들, 침대와 소파 아래 짙은 먼지 속까지 엎드려 살폈지만 찾지 못했다. 그 동안 필통을 찾는 시도를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어느 날은 가방만 몇 개 뒤져보았고 다른 날은 옷장 속에 섞여 들어가지 않았는지, 벽 틈에 끼지 않았는지 어둠을 들여다 보았다. 그리고 여기 없으면 어디 있겠지, 어디선가 나오겠지, 라고 남은 수색을 애써 미루었다.
그 날이 달랐던 것은 그 모든 헤메임 끝에 드디어 필통을 잃어버렸다고 인정했다는 점이다. 어딘가에 있으리라는 막연한 기대에 끝점을 찍었다. 동시에 무척이나 우울해져서 술병의 뚜껑을 한 번 더 열었다. 물건을 좀처럼 잃어버리는 일이 없었기에 분실에 대한 아쉬움이 첫째였고, 그보다 큰 것이 한 달 동안이나 필통을 방치해 두었던 나의 게으른 낙관주의였다. 가만히 있으면 시간에 의해 해결되리라는 무책임함이나 열심히 찾아서 상황 정리를 꾀하는 추진력의 부재가 필통 찾기의 문제 뿐 아니라 꼭 내가 사는 모양 같았다. 되는 대로 지내다가 여기까지 흘러온 주소 잃은 엽서 같았다.
또 한 가지는 펜을 사기 위해 만들었던 사소한 핑계들을 돌이켜 보았을 때,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몇 년의 시간을 펜과 함께 했음에도 긴 시간 동안 결국 아무 것도 이루지 못했다는 것이 괴로웠다. 나는 아주 오래 전부터 여기에 서 있었고, 트로피에 먼지가 쌓이고 화분이 말라가는 동안 한 발자국 움직일 노력조차 하지 않은 채 곁눈질로 탄식만 하고 있었다. 내 죽은 문장에게 필요한 것은 펜도 필통도 아니었다.
다음날 아침 출근 준비를 하는데 어제 했던 귀걸이 한 짝이 보이지 않았다. 회의가 지루해서였는지 귓불이 무거워서였는지 한 쪽을 뺐던 기억이 났다. 자주 겪는 일이었고 비싸거나 의미 있는 귀걸이도 아니라 잠시 아쉬워하고 말았을 일이다. 그러나 잃어버린 필통에 생각이 미치면서 또 한 번 미안하고 외로워졌다. 언젠가 읽었던 잃어버린 양말과 우산의 세계에 대한 단편 소설 생각도 났다. 짝을 잃은 외귀걸이에게 하등 도움이 되지 않겠지만 죄책감에 그 날은 외귀걸이만 세 개를 달며 이것이 잃어버린 귀걸이에 대한 예의라 자위했다.
세 짝의 외귀걸이를 하고 평소처럼 출근 언덕길을 뛰어 내려갔다. 필통도 만년필도 귀걸이도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며 내 손을 떠났다는 것을 인정하는데 무려 한 달이란 시간이 걸린 것이 이상하고 미련하게 생각되었다. 나는 죽음의 5단계,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 중의 어느 단계쯤을 동시에 거치고 있었다. 하지만 옅은 숙취 덕분인지 어제 밤보다는 마음이 가벼웠다. 어린 시절을 돌이키자면 아끼던 만화 공책들도 표지에 이름 한 번 써보지 못하고 어디론가 떠나보내지 않았던가. 긴 시간이 지났지만 내 물욕 한 조각도 변하지 않았으니 하나씩 내려놓으라는 누군가의 뜻일지 몰랐다. 회사에 도착해 책상 위에 덩그란 잉크병들을 보며 생각이 더 굳어졌다.
그러나 간사함은 쉬이 떠나질 않아서, 몇 시간 후에는 어제 밤 필통을 찾다 발견한 약간의 돈과 얼마 전 보았던 예쁜 지함 필통을 떠올리고 말았다. 그리고 다시 한 번 현실을 부정하며 잃어버린 필통을 발견한다면 어떤 마음일지를 고민했다. 아꼈던 마음이 돌아와서 기쁠지 새 필통을 위한 돈이 굳어서 기쁠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나는 순진함으로부터 꼭 내 나이만큼 멀어진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의 나사못이 된 지 오래였다. 그렇다면 대체 언제까지 필통의 귀환을 기다려야 하는 것일까? 어디까지가 애도이고 어디부터가 집착일까? 나는 어째서 이 모든 사소한 감정들을 구분 짓고 이름 붙여 당신과 나에게 설명하고자 하는 것일까?
물론 사람은 한 가지 이유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어제 밤과 오늘 아침 나를 뒤흔들었던 여러 깨달음의 끝이 고작 유물의 처분에 관한 것이라니 회의감도 들고 웃음도 났다. 하루 종일 비생산적 고민에 빠져 지냈지만 결국 아무 답도 얻지 못했다.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 필통을 한 번 더 찾아보지도 않았고, 자기연민에 빠진 나를 위해 요술처럼 필통이 나타나지도 않았다.
결국 땅에 발 딛고 숨 쉬며 아주 가끔 하늘을 올려다보는 인간으로서 나는 별나지도 특별하지도 않았다. 앞으로도 반짝이는 돌을 모으듯 삶의 매 순간과 잡동사니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신성하게 섬기다 깨끗이 잊어버릴 것이다. 답도 없고 빛나지도 않는 생의 부조리함과, 깨달음과 어리석음 사이에서 춤추다 잠시 잠깐 기뻐하고 슬퍼할 것이다. 그렇게 아둥바둥 오 년 십 년 오십 년을 살다 돌아보았을 때 여전히 같은 자리에 서 있을 수도 있다. 안타깝지만 우리 대부분이 그렇게 될 것이고, 외람된 말이지만 지금 생각에는 그걸로 충분할 것도 같다.
나는 곧 잊겠지만, 그렇기에 마음 한 조각 뜯어 죽은 필통의 묘비 삼아 여기에 내려둔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필력과 성찰력(?)이 좋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생활의 한 순간조차 좋은 작품으로 만들 수 있다는 좋은 예시를 봤습니다. 특히 마음에 와닿았던 부분은 '가만히 있으면 시간에 의해 해결되리라는 무책임함이나 열심히 찾아서 상황 정리를 꾀하는 추진력의 부재가 필통 찾기의 문제 뿐 아니라 꼭 내가 사는 모양 같았다.' 이 부분이었고, 마지막 문장의 마무리는, 오묘한 의미를 담은 싯구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멋진 마무리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뭐라 평할 입장은 아니지만, 필력이 굉장히 좋으시네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