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 동안 연애 노래 외길인생을 걸어오며 연애 노래로 채워진 36개의 싱글과 12개의 정규 앨범을 발표해왔다는 건 역시 대단한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쯤 되면 공히 연애 노래의 장인이라 할 수 있겠지요. 오늘은 aiko의 메이저 데뷔 19주년 기념일입니다. 19년 전 오늘, 메이저 첫 싱글 あした가 발매되었습니다. 어느 공포 영화의 OST로 쓰인 연애 노래입니다. 그래요. 공포 영화라고 연애 노래를 OST로 못 쓸 건 없지요. 장인의 작품이란 그런 걸 겁니다. 생각해보니 가장 최근의 싱글도 OST로 쓰였군요. 목소리의 형태 엔딩곡, 恋をしたのは
극한을 추구하며 한 길을 걷는다. 장인의 삶이란 참 멋진 삶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나는 절대로 걷지 못할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충동적인 편이고, 한 가지 일을 꾸준히 하는 것에서 지겨움을 느끼며, 그닥 성실하지도 유능하지도 않은 편이라. 그래요, 당신처럼. 세상천지에 안 그런 사람이 어딨겠어요. 그래도 참고 가는 것이 장인의 삶이겠지요. 물론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지만, 즐기는 자들이라고 해도 일이란 언제나 힘든 것일 테니까. 그걸 이겨내야 되는 건데.
얼마 전에 한 단골손님이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묘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 며칠전에 퇴사했어요.' 약간 놀랐습니다. 그분의 삶을 완전히 알지 못하지만, 적어도 그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회사와 일을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처럼 보였거든요. 산업용 보일러와 관련된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마치 보일러와 같은 뜨거운 기세로 얼마 전에 시공한 보일러의 규모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도 했고, 중국의 자재 업체가 빠레트도 안 깔아둔 채로 컨테이너에 물건을 선적해 둔 덕에 꼬여버린 일정에 대하여 분노를 터뜨리고는 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며 그는 보일러메이커-미국식 폭탄주 칵테일입니다-를 주문하고는 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즐겁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겁니다. 그런 그도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물론 저는 일을 좋아했어요. 회사도 좋아했구요. 그래도 퇴사하고 집에서 쉬는 게 낫네요.'
아아, 장인이라는 건 무엇일까. 나는 그 손님 정도라면 언젠가 보일러의 장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지금의 그도 보일러의 귀재 정도는 되어 보이고. 그가 마음을 잘 추스리고, 잘 쉬고, 다시 좋은 회사를 구하면 좋겠네요. 퇴사 의향을 내비친 순간 다른 거래처에서 구인 제의가 들어왔다니-역시, 보일러의 귀재입니다-잘 풀리게 될 겁니다. 마침내 그가 보일러의 장인이 된다면 세상은 좀 더 따듯해 질 테니까.
뭐, 또, 장인이 아니면 어때요. 19년 전의 오늘 나는 무엇을 하고 무엇을 꿈꾸었더라. 많은 것들을 잊고 포기하며 살아온 것 같은데 그래도 살 만한 인생이네요. 그래요, 이래 사나 저래 사나, 살 만한 삶이면 되는 거죠. 장인의 길은 장인들에게 양보하고, 나는 오늘도 aiko의 노래를 들으며 적당한 하루를 즐겁게 견디렵니다. 모두들 오늘 하루도 내일도 이번 한 주도 이번 한 여름도 잘 버티고 견디고 이겨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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