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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7/03/18 16:45:40
Name Eternity
Subject [일반] [영화공간] 배우 유해진을 말하다
*반말체인 점 양해바랍니다.*





[영화공간] 배우 유해진을 말하다


개인적인 관점에서 볼 때, '제2의 송강호'라는 수식어에 어울리는 연기를 보여주는 두 명의 배우가 있다. 그 중 한명이 이희준이고, 또 한명이 오늘 얘기할 유해진이다. 코믹연기와 정극연기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정형화되지 않은 연기 내공을 선보인다는 점에서 그렇고 특히나 생활연기에 강하다는 측면에서 그렇다.

배우 송강호가 <넘버3>에서의 코믹연기로 대중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최초로 각인시킨 것처럼 충무로 조연배우로서의 유해진 연기의 시발점은 <공공의 적>이었다. 이 작품에서 ‘칼잡이 용만’으로 등장한 그는 취조 도중 설경구가 제공한 칼로 하나 하나 사용법을 설명하는 시범(?) 연기를 통해 많은 관객들에게 큰 웃음을 주며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른바 새로운 충무로 씬스틸러의 혜성 같은 등장이라 할만 했다.

​그 후 <타짜>의 고광렬, <왕의 남자>의 육갑, <전우치> 초랭이, <이끼>의 김덕천, <부당거래> 장석구, <해적 : 바다로 간 산적>의 철봉 등을 통해 남우조연상을 휩쓸며 웃음이면 웃음, 연기력이면 연기력 뭐 하나 부족함 없이 명품 조연으로 승승장구를 이어간다. 그 중 많은 이들이 <이끼>에서의 마지막 발광(?)씬을 유해진 최고의 연기 가운데 하나로 꼽는다. 이 장면에서 그는 발산하고 뿜어내는 연기가 무엇인지, 연기의 교본이라 해도 충분할만큼 인상적인 열연을 선보인다. 하지만 개인적으론 조금 과하게 느껴지는 면도 없지 않았다. 그래서 유해진 연기 인생의 최고의 캐릭터와 연기를 꼽으라면 나는 <부당거래>를 꼽고싶다. <부당거래>의 건설회사 대표 장석구. 류승완 감독의 최고작 중 하나로 일컬어지는 <부당거래>에선 황정민, 류승범을 필두로 한 주조연 모든 배우들의 연기가 다 훌륭하고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유해진의 악역 연기는 징글징글하도록 날카로웠고 특히나 '쓰레기장 협박씬'은 이른바 압권이라 할만 했다.  



처음으로 영화 속에서 '수트'를 입은 채 등장한 그는 이 작품에서 느물느물함 속에 날카로운 도끼를 감춘 듯한 날 것 그대로의 아우라를 관객들에게 선보인다. 이른바 피를 흘린 채 송곳니를 갈며 발톱을 긁어대는 하이에나 같은 캐릭터 연기. 황정민, 류승범, 천호진, 이성민 등등 명품배우들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오히려 날 선 포스을 뽐내며 한치의 물러섬 없이 날카롭게 빛났다. 류승완 감독이 수트를 입힌 보람이 있달까? 값비싼 수트값을 충분히 하고도 남을 명품연기였다.

수많은 '씬스틸러' 조연 배우들이 스스로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감초 역할에만 머무는 것에 비해, 오로지 연기력 하나로 스스로를 입증하며 어느새 주연급으로 성장한 유해진의 행보는 주목할만 하다. 이러한 유해진 연기의 비결을 나는 '부지런한 정직함'에서 찾는다. 많은 인터뷰에서 드러나듯 그는 끊임없이 주변을 관찰하고 스스로의 연기를 의심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려 노력한다. 슬럼프에 빠지면 오히려 나태해지기 보다는 운동 등으로 몸을 혹사시키고 괴롭히며 이겨낸다는 그는 천상 부지런한 농사꾼이다. 이른바 '연기 농부'랄까? 그의 연기에는 순간을 모면하기 위한 타협이나 관객을 향한 눈속임이 없다. '배우가 캐릭터에 천착하지 못하면 관객이 영화에 천착하지 못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경계하는 배우이다. 그래서 그는 끊임없이 세트장을 거닐며 대사를 외우고 다양한 각도에서 장면과 연기를 재구성해보고 또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낸다. 농작물에는 농부의 땀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것처럼, 그의 연기에는 자연인 유해진의 겸손함, 부지런함, 정직함이 담겨있다. 이렇듯 그는 농사꾼처럼 연기한다. 그래서 유해진의 연기는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러한 부지런함과 정직함도 이미지 소모의 늪과 기시감의 덫을 쉽게 벗어나진 못한다. 이것은 단지 배우 자신의 노력으로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충무로에서는 유해진을 통해 쉽게 작품을 만들고 쉽게 돈을 벌고 싶어하는 제작자들이 존재한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진하고 깊이 있는 유해진의 연기가 아니라, 관객의 빗장을 쉽게 풀어헤치는 코믹연기와 관객 친화적인 배우의 존재감이다. 감독이나 제작자가 이러한 배우의 아우라에 손쉽게 기대는 순간 작품에는 구멍이 생기게 마련이다. 돈은 쉽게 벌지 몰라도,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자세는 안일해지기 십상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최근의 흥행작 <공조>일 것이다. 나는 작품의 구멍을 배우의 개인기량과 아우라로 메우는 이런 식의 작품들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코믹영화로서의 <공조>는 재밌을지 몰라도 유해진의 연기는 재밌지 않았다. 이 작품에서의 그의 연기가 코믹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다. <공조>에서의 유해진식 연기가 반갑고 익숙할지언정 단 한 컷도 신선함과 이채로움을 느낄 수 없었다는 얘기다. 이런 식으로 뻔하게 소모되고 소비되기엔 유해진의 연기내공과 재능이 아깝다. 다만 다행인 것은 유해진 스스로도 이러한 부분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있다는 점이다.

["많은 분들이 저의 유머러스한 이미지에 대해 좋게 평가를 해줘요. 고마운 이미진데, 코미디만 고집하진 않을 거예요. 요즘 '또 다른 모습을 어떻게 보여줘야 하나', '내가 어떻게 접근을 해야 하나'에 대한 고민이 있어요."

"갈증이 있죠. 가슴이 쓰릴 정도로 진한 깊은 연기를 해보고 싶어요. 역할은 상관이 없어요. 같은 형사라고 하더라도 아픔을 가지고 있을 수 있잖아요. 그런 장르에 대한 목마름이 요즘 생겼어요. 너무 캔디만 먹고 있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었거든요. '럭키'로 인해 과한 기쁨을 느꼈지만, 또 한 구석에서는 다른 걸 찾아야 한다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텐아시아 인터뷰, 유해진 "연기 갈증 물론…깊은 아픔 연기하고파" 中)

배우 황정민이 비슷한 캐릭터 연기와 연이은 이미지 소모로 관객들에게 많은 피로감을 안겨주다가 나홍진 감독의 <곡성>을 통해 자신의 클래스를 입증한 것처럼, 유해진도 머지않아 달콤한 캔디 대신 쌉싸름한 갓김치의 깊은 맛을 관객들에게 선보일 것이라 믿는다. 그의 연기는 꾸준히 계속될 것이고 부지런한 농부가 일군 밭은 거짓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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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포도
17/03/18 17:32
수정 아이콘
영화배우들이 TV 드라마 출연을 꺼리는 이유 중 하나로 꼽는 것이 티켓을 사서 배우를 보는 게 아니라 무료로 얼굴을 본다는 점을 들더군요.
다른 말로 하면 TV 고정 출연이 이미지를 급격하고 값싸게 소모한다는 얘기겠죠. 그런 점에서 유해진이 대단한 게 1박2일, 삼시세끼 같이
주말 예능에 고정으로 출연했음에도 영화에서 관객몰이를 했다는 겁니다. 관객들이 아직도 유해진을 궁금해한다는 건 유해진의 연기 내공없이
불가능한 거죠. 공조 같은 영화는 아쉬운 선택이긴 했지만 본인도 그런 우려를 자각하고 있으니 다음 영화도 기대가 됩니다.
윌로우
17/03/18 17:35
수정 아이콘
공공의 적에서 씬스틸러가 세명이었죠. 유해진 성지루 이문식. 당시엔 산수가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17/03/20 15:19
수정 아이콘
공공의 적은 진짜 다른 것보다 그 조연들의 감칠맛나는 연기들이 일품이었죠.
세 명이 가장 빛나는 조연이었지만, 그 외에도 만만치 않은 씬스틸러들이 있었죠.

-목욕탕에서-
'어우~ 뭐 아무도 없어~! 새~가 날아든다~~ 웬간 짭새가 날아든다~~ (조용히해라!!)'
'언놈이여? 니가 그런겨? 왜그런겨~ 미친겨? (짜식아 공공장소잖냐) 공공장소에서 죽고싶은겨?'
'염병 언집 웃짝 새풀뜯는 소리여~'
'웃짝유? 암서유~ 음마?'

-리어카에서-
'아 아시면서 그러세요 (내가 알긴 뭘알아 임마?)'
'아무리 강호의 의리가 땅바닥에 떨어졌기로 서니, 사내새끼가 (따악)'
'아 .. 네 알겠습니다. 여기.. (씨익)'
'아 시바 대체 얼마를 달래는거야???'

-구멍가게에서-
'아저씨, 이 5백원이 왜 5백원인지 아세요? 보관료 운송료! 다 포함해서 500원이에요! 근데 아저씨 맘대로 가져가서!'
'가져가세요. (아 아줌마 왜이래~) 왜 이러긴 뭘 왜이래??'
'경찰? 니가 경찰이면 나는 영부인이다 이누마!'

등등..
파랑통닭
17/03/18 18:10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온니테란
17/03/18 19:04
수정 아이콘
개인적으로 김윤식이랑 같이찍은 극비수사에서 첫주연을 맡은거같은데 거기서 배역이랑 너무 안어울리더라고요. 그놈이다라는 영화에서도 별로라고생각하고 비중높은 조연이어울리겠다 생각했는데..

럭키를 보니까 영화도 잘이끌어나가고 최근공조에서도 괜찮게봤습니다.
17/03/18 20:40
수정 아이콘
좋아하는 배우에 대한 좋은글 잘 봤습니다!
17/03/18 21:12
수정 아이콘
잘 봤습니다.
저도 참 좋아하는 배우네요.
1,2년 내에 자신의 필모 가장 꼭대기에 오를 영화 한 편 찍기를 기대합니다.
많은 명품 조연들이 인기를 얻고 나서 주연으로 영화를 찍었다가 망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유해진씨라면 충분히 주연으로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생각하네요.
오씨디
17/03/18 22:39
수정 아이콘
근데 제 2의 송강호 씨 하시기에는 두분의 나이차이가...
17/03/19 00:59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이희준 씨는 저에겐 다소 생소한 배우인데 Eternity 님이 극찬하시니 어떤 배우인지 궁금해 지네요.
이민들레
17/03/19 09:22
수정 아이콘
공조 럭키 그놈이다.. 이렇게 최근 주연으로 나온 3편의 영화를 보면서 유해진씨는 연기는 잘하지만 주연이 되기는 힘들다고 느꼈습니다. 고정된 이미지가 너무 강한건지 진지한 역할에는 하나도 어울리지가 않더라구요.
남광주보라
17/03/19 10:18
수정 아이콘
갓해진씨, 역시 배우로서의 드높은 소망을 간직하고 계시는군요.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진하고 깊은 연기를 하고싶다는 그 소망과 노력.

유해진씨는 어쩌면 본인의 외모에 아쉬움을 갖고 있을지 모릅니다. 코믹스러운 양아치의 이미지는 그의 얼굴이 일조했죠. 물론 그걸로 성공했습니다만, 그가 황정민같은 얼굴이었다면 그의 고민은 지금보다는 덜할 겁니다.
황정민의 최대 강점은 천의 얼굴에 부합한 그 잘생겼으면서도 무난하고 스펙트럼 넓게 왔다갔다할 수 있는 마스크 같은데요.. 배우들에게 있어서 연기력의 내공보다는 사실 마스크가 더 중요하다고 보는 점이, 마치 관상빨로 인생이 달라진다는 미신처럼. . 유해진의 코믹 연기가 아닌 깊은 내면의 연기를 보고 싶어하는 관객들은 적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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