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었다. 나에게도 아버지가 생기는 거다. 난 엄마만 있어도 충분히 좋았지만 그래도 뭐, 썩 나쁘진 않았다. 다른 애들처럼 양손에 엄마 아빠 손잡고 행복을 뽐내며 걷을 수 있게 되니깐. 같이 공놀이도 해주고 맛난 것도 사주고, 때론 무서워지는 아버지가 생기는 거다. 솔직히 아빠가 생긴다는 이야길 처음 들었을 땐 잠도 설칠 정도였다.
처음 만난 날, 새아버지는 큼지막한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왠지 쑥스러워진 나는 말없이 웃었다. 처음 본 아버지는 생각 이상으로 거대했다. 어른 남자라는 게, 아버지란 존재가 그리 큰 것임을 나는 처음 알았다.
아버지는 고개를 힘껏 젖혀야 다 보일 정도로 키가 컸고 팔뚝이 내 허벅지보다도 굵었다. 상상과는 달리 뱃살이 좀 있었지만... 뭐, 아버지란 원래 그런 거라고 애써 무시했다.
새아버지는 야구 선수였다고 했다. 그것도 마음에 드는 점이었다. 나중에 가르쳐달라고 할 생각이었다. 다쳐서 그만두었다기에 걱정을 했는데 겉으로 보기엔 아주 튼튼해 보였다.
그날 우리 셋은 돼지갈비를 먹었다. 달콤 몰랑한 고기 맛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나는 온종일 어깨가 으쓱했다. 이제는 나도 남들처럼 아버지가 있는 아이니깐.
지금 떠올리면 왜 그토록 기분이 좋았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날 나는 무척 행복했다. 미래에 대한 걱정도 전혀 없을 나이였다. 어린 나는 참 단순했다. 세상은 너무 평화로웠고 모든 게 조화로웠다. 그날따라 돼지갈비 양념은 미친 듯이 달콤했다. 너무너무 달콤했다. 슬플 정도로.
내 나이 여섯 살 때였다. 엄마는 재혼을 했다. 우리 모자는 아버지를 따라 대전으로 이사했다. 나에겐 친아버지의 기억이 없었기에 새아버지가 유일한 아버지였다.
그런데 그는 금방 변했다. 다른 아버지들처럼 일하러 나가지도 않고 집에서 술만 마셨다. 급기야 엄마를 때리기까지 했다. 그는 나까지 때렸다. 나는 엉엉 울었다. 아프기도 했지만 그 상황이 너무 서러웠다. 그는 내가 울면 더 때렸다. 나더러 재수 없다고 했다. 나는 눈물을 삼켰다. 그때부터 나는 눈물을 흘리지 않고 삼키는 법을 익혔다.
예전에 본 동화책에서는 주인공들이 결국엔 행복해지는데 우리 집은 그렇지 않았다. 새아버지는 변하기는커녕 더 심해졌다. 그래도 엄마는 계속 그와 함께 살았다. 폭력은 힘들었지만 아주 조금씩은 익숙해졌다. 집안이 시끄러워지면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눈물을 삼켰다. 새아버지의 흉포한 모습도, 맞는 엄마의 모습도 보기 싫었다. 이불속 공간은 캄캄하고 포근했다. 이런 공간에서 영원히 머물고 싶었다.
상황은 변하지 않았지만 시간은 어찌어찌 흘렀고 나는 10살이 되었다. 어느 날 엄마는 내 손을 잡고 외할아버지 댁에 갔다. 유달리 그의 술 주정이 심하던 시기였다.
“진형아, 할머니 할아버지 말 잘 듣고 있어. 집에 있을 때처럼 떼쓰고 그럼 안 돼. 알았지?”
헤어지기 전, 엄마는 내 앞에 쭈그려 앉아 손을 감싸 쥐며 말했다. 그때 나는 오랜만에 엄마의 얼굴을 가까이서 보았다. 열 살의 나는 깜짝 놀랐다. 그건 내 기억 속의 엄마가 아니었다. 곱던 피부는 푸석하고, 거칠고, 어두웠다. 눈 주변엔 주름이 자글자글했다.
그때 문득 생각했던 것 같다. 엄마를 구해야 한다고. 빨리 커서 엄마를 구해야 한다고.
사실은 가지 말라고 떼쓰고 싶었지만, 이미 그렁그렁 한 엄마의 눈을 보니 그럴 수 없었다. 나는 엄지손가락으로 엄마의 눈을 닦아주었다.
“울지 마...”
그렇게 말하는 내 얼굴에는 이미 닭똥 같은 눈물이 흘러넘쳤다. 엄마는 날 꼬옥 안아주었다.
이렇게 평생 둘이 함께면 좋을 텐데... 아버지 같은 거 이젠 필요 없는데...
“진형아 꼭 데리러 올게. 할머니 할아버지 말 잘 듣고 있어.”
그때 엄마는 바보같이 했던 말만 반복했다. 나도 이제 10살인데... 아버지 같은 거 없어도 됐는데... 엄마는, 바보같이,
다시 돌아갔다. 홀로 돌아가는 엄마를 보며 내 마음은 영 찝찝했지만 솔직히 그가 너무 무서웠다.
할아버지 댁은 요즘은 흔치 않은 초가집이었다. 주변은 전에 살던 도시와 달리 산과 들, 강이 지천에 널려있었다.
악몽 같은 나날에서 벗어나 평화로운 일상이 시작되었다. 조그마한 초등학교의 선생님과 친구들은 친절하게 날 대해주었다. 친구들은 모두 착했지만 공부를 못했다. 나는 엄마 말대로 열심히 공부했고 마을에서 단연 눈에 띄는 모범생이 되었다. 이웃들이 늘 나를 칭찬했다. 그때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기뻐하셨다. 그래도 두 분께는 늘 죄송했다. 내색은 안 하셨지만 돈이 필요할 때마다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나 때문에 더 열심히 농사일을 해야 했다. 그리고 늘 무릎이나 허리를 아파하셨다. 나는 주말마다 도와드렸지만 죄송한 마음은 커져만 갔다.
엄마와는 1년에 한두 번 만나기도 힘들었다. 그나마 통화는 자주 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나는 엄마가 걱정되었지만 엄만 자신은 잘 지내니 걱정 말라고 했다. 그래도 늘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홀로 남겨둔 엄마와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미안한 마음을 품은 채 나는 중학생이 되었다. 그리고 그때, 내 인생에 한 줄기 빛이 내려왔다. c 고등학교를 알게 된 것이다. 여기에 가면 취업도 보장되고 잘하면 졸업 후 대기업에도 갈 수 있다. 그러면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짐이 안 되어도 되고 엄마를 데리러 갈 수 있다. 그렇게 꿈이 생겼다.
아토피 때문에 불편할 때도 있었지만 죄송한 마음에 제대로 치료를 받지는 못 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돈만 벌면 다 해결된다.
중학교 생활은 순탄했다. 친구들과 사이도 좋았다. 나는 별 탈 없이 중3이 되었고 c 고등학교를 목표로 열심히 공부했다. 내 인생엔 오직 그것밖에 없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짐을 덜어드리고 엄마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는,
c 고등학교에
합격하지 못 했다.
삶의 모든 걸 잃은 공허함은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었다. 나는 술과 담배에 손을 댔지만 뻥 뚫린 가슴은 채워지지 않았다. 친구의 소개로 혜정이를 만났고 성관계도 가졌다. 혜정이는 따뜻한 몸으로 나를 안아주었다. 잠시나마 외로움은 잊혔지만 일시적일 뿐이었다.
잠이 오지 않아 수면제를 먹기 시작했다.
나는 기숙사가 딸린 일반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여기 애들은 다 병신 같았다. 내가 있을 곳은 여기가 아닌데... 여기 애들과는 말도 섞기 싫었다. 내가 말도 안 걸고 대꾸도 안 하니 놈들도 다가오진 않았다.
한 날, 내가 적응을 못해서인지 선생님과 면담을 하게 되었다. 나는 c 고등학교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말없이 듣던 선생님께서는 다음 시험 때 좋은 성적이 나오면 전학을 도와주겠다고 약속하셨다.
이 생지옥 같은 학교를 벗어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나는 술, 담배, 성관계를 모두 끊고 공부했다. 이때쯤 한 가지 생각이 내 마음 한구석에서 똬리를 틀었다.
역시 내 인생에서는 이것밖에 없다. 미친 듯이 공부하자. 그리고 떨어지면...
미련 없이 떠나자. 내 인생 스스로 망쳐버렸으므로...
그런데 나의 간절한 바람은 어이없게 꺾였다.
약속한 시간이 되자 선생님은 난감한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전학은 힘들 것 같으니 지금 학교생활에 충실하자고...
그날 이후로 나는 모든 일에 흥미를 잃었다. 수업시간에는 잠만 잤다. 학교와 기숙사에서 아이들이 점점 더 괴롭혔다. 병신들 주제에... 나는 복수하고 싶었지만 딱히 방법이 없었다.
지금 학교에서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아이가 단 한 명 있었다. 나는 그 애에게 속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학교를 더 이상은 못 다니겠다. 초라하고 비참하다. 나는 주위 사람들에게 실망감만을 주었고 여기서 빠져나가지 못한 게 너무 슬프다.
나는 찌질하게 그 애 앞에서 서럽게 울었다. 매일 일기장에 죽고 싶다고 썼다.
엄마에게 전화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나란 존재가 없었다면 엄마는 그에게 맞지 않고 더 사랑받았을지도 모른다.
수업시간에는 잠만 자고 방에서는 천장만 바라보며 지냈다. 그러다 결심이 섰을 때 나는 기숙사에서 나왔다.
집에 와서 할머니 할아버지께 사과했다. 지금까지 뒷바라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짐이 되어 죄송합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자신들은 괜찮으니 계속 열심히 해보라고 하셨다.
나는 가게를 간다며 집을 나서 내가 좋아하는 산으로 향했다. 마음이 답답할 때 늘 오던 곳이었다. 여길 오르면 아주 멀리까지 보인다. c 고등학교에 붙었다면 저 멀리 있는 세상으로 나가는 건데... 엄마한테 가서 떳떳하게 자랑하는 건데... 병신같이... 그러질 못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무섭다. 나는 제자리만 맴돌았다. 마지막까지도 나는 병신이다. 나 때문에 엄마가 맞았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힘들었다. 그런데 무서워서 떠나지도 못하다니. 나는 한참을 더 돌았다. 그러다 문득 서쪽 능선에 걸린 해를 보았다. 해는 자꾸 떨어졌다. 그걸 보고 있으니 떨어짐이 덧없게 느껴졌다.
저 해가 사라지고 다시 떠오른다고 해도 내 삶은 달라질 게 없다. 오늘의 나는 병신이고 내일의 나도 병신이다. 뭘 망설이고 있는가. 더 이상 짐이 될 수 없다. 마지막 용기는 낼 수 있는 병신이 되어야지.
두려움이 조금은 가셨다. 나는 앞으로... 날카로운 밑바닥으로 도약했다. 산 공기가 맑고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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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부검’이라는 책을 읽고 먹먹한 마음에 쓴 팩션입니다.
사례는 2008년에 있었던 자살 사건입니다.
고등학교 입시. 정말 인생에서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일인데... 17세 소년에겐 삶의 전부였습니다. 소년은 원하는 고등학교에 합격해서 엄마를 만나러 가고 싶어 했습니다.
소년은 늘 어머니와 조부모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딱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말이죠. 주변에 적절한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어른이 단 한 명만이라도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아래는 소년의 실제 일기장 내용입니다. 출처-심리부검 서종한 학고재 142p
생지옥 ○○ 학교
‘2개월 남았을 시 숙면하고 과학 3시간, 영어 3시간 진짜 열심히 최선만 다하면 100% 합격, 20일 정도 악으로 견뎌 보는 거야. ○○고등학교에 합격해서 꼭 이 지옥 같은 곳을 벗어나자. 이 생지옥을 나오기 위해서라면 무조건 전교 10등 안에 들어서 ○○고등학교에 합격해야만 한다.’
‘분식점에서 용돈 사용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담배에 들어가는 비용은 최소화하고 술은 기말 고사 끝날 때까지 절대 입에 대지 말자. 합격했을 시 절대 자살 시도와 생각은 금물이다. 자살 충동을 억제하거나 약화시킬 수 있다. 합격 전까지는 혜정이와 성관계 일절하지 말자. 죽기 살기로 노력을 해 보자. 하지만 모든 게 망쳐지면 미련없이 할아버지, 할머니 짐을 덜어 드리자. 자살로 마무리하자. 달콤한 인생을 비참하게 망쳐 버렸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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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책에 나오는 사례에 약간의 에피소드+소년의 심정을 상상해서 쓴 글입니다.
책은 일반 대중에게 심리부검이라는 분야를 사례와 함께 가볍게 소개하는 내용입니다. 강추까진 아닌데 가볍게 읽을만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책을 읽고 자살에 대한 인식이 조금 바뀌었네요. 그 전엔 나랑 아무 관계 없는 일이라 관심이 전혀 없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