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0선생님. 잘 계셨어요?" 나 그 집주인이에요."
모르는 번호 전화는 왠만해서는 받지 않는데, 영 특이한 번호라 받았더니, 집주인이었다.
이년 전 부동산에서 전세 계약서를 작성할 때, 그래도 살 사람과 얼굴 한번은 봐야 하지 않겠냐고 하시던,
집만 다섯 채 이상 갖고 계시던 할아버지는, 그 후 이년 만에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이고 네 선생님, 어쩐일이십니까 전화를 다 주시고"
참,, 나도 사회인이 되었나보다.
이미 한달 전부터 새로 구할만한 집들을 하루에도 서너번씩 0빵, 0이0부0산에서 검색하던 나인데도, 짐짓 "엣헴, 난 아무것도 아쉬울 것이 없소" 하면서 전화를 받아버렸다.
뭐 여차저차 상호묵시적 계약연장이라는 제도 하에 나는 단 돈 백원의 전세보증금 상승 없이 지금 이곳에 더 머무르게 되었다.
주변 시세는 못해도 이천은 뛰었는데.. 그 간 단 한번도 집주인에게 문자 한 번 안한 나의 공덕이 아닌가 싶다.
나이 서른 먹도록, 군대 시절 제외하고는 한시도 엄마가 개어주지 않은 팬티를 입어본 적이 없던 나인데,
그 무슨 패기로 집을 뛰쳐나갔었는지, 그 시간이 벌써 이년이 되었던 것이다.
그래, 나의 독립계획은 오로지 하나였었다. 성공한 직장인의 싱글라이프.
밤에 아무도 없는 집에 비밀번호를 띡띡띡 누르고 들어와, 진열장에서 그날 마음에 드는 술을 꺼내어, 그날의 술에 맞는 잔에 가득 따라 붓고는,
오늘도 수고한 나에게 한 잔.
캬
솔직히 말해 내 자취 공약의 절반은 저것이었다.
하지만 자취를 해본 그 누구든 알 것이다.
자취란, 내 한 몸과의 싸움이다.
내 한 버러지 소리 안 듣게 살만큼 해 나가는데 데 드는 비용과 시간의 싸움이며,
전체 이용시간의 1/100이라도 되면 절이라도 하면서 낼 수 있는 관리비와의 투쟁이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고, 하루하루, 오늘 뭐 먹지?의 고뇌의 연속이다.
처음에는 집에서 싸다 준 김치로 끓여낸 김치찌개도 무언가 맛이 안맞는 것에 좌절했었다.
그런데 그런 날들이 지속되다보니, 스스로 꺳잎절임을 담그고, 회식날을 대비해 북엇국을 미리 끓여놓고, 주말용 미역국을 셋팅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나는 홀로사는 자취생 주제에, 게다가 일주일에 이틀이나 집에서 저녁을 먹을까 하는 주제에,
고기용 무쇠팬, 볶음용 스킬렛, 전골용 냄비. 국물용 냄비, 심지어 계란후라이용 냄비까지 갖춘 부루주아 자취생이 되어있었다.
자, 솔직히 얘기해서 나는 내가 만들어서 먹는 모든 음식들에 만족하고 있었다.
물론 일부는 못마땅할 수 있겠으나, 애초에 내가 자신없는 음식은 하지를 않았으니 실망할 것도 없었다는 것이 가장 정합한 설명일 것이다.
그 중 내가 가장 아쉬워 한 요리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미역국이다.
나도 기억은 잘 못하지만, 엄마가 그랬다. 나는 갓난쟁이 때부터 미역국이라면 그저 좋아했다고.
아마 신생아때부터 병원에서 검사결과 요오드가 부족하다며, 해조류 멕이라고 했던 것이,
지금의 내 식성을 만들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아무튼 자취생활을 하면서 나는 미역국을 종종 끓였는데, 하, 이게 도통 신기한것이, 아무리 미역국을 끓여도 도무지 엄마가 해주던 그 맛이 나지를 않았다.
내가 요리를 못하나? 아니다. 오징어볶음, 장조림, 심지어 해물탕까지, 내가 한 것이 외려 더 맛있었다. 근데 왜 미역국은 이럴까..
거진 삼년 째 나는 미역국의 미스테리를 품고 자취를 하고 있었다.
"처음에 국물 낼 때, 멸치랑 다시마랑 넣고 국물 내야지"
내가 끓인 미역국을 먹고는 여자친구가 한 말이다. 처음에는 왜 끓였냐며 승질 부리더니, 나중에는 두 그릇이나 먹어놓고서는 말이다.
"무슨 소리야? 미역국은 고기 볶은거랑 미역볶은것에서 우러나는 맛인데. 다시다는 이미 연0 한 숟갈 넣었어"
"하,, 역시 이거 잘 모르네, 암만 그래도 국물맛을 낼라면 더 해야지, 오빠가 원하는 맛이 이거보다 훨씬 더하구만, 그러면 더 해야지. 고기볶고 미역볶고 물 넣고 할 때, 다시마랑 멸치도 넣어, 그러고 끓이다가 중간에 빼, 쓰니깐."
하 씨, 사기당한 기분이다. 내가 이미 미역을 신나게 볶고 한시간동안 끓였는데, 대체 뭐가 더 필요하단 말인가???
뭐 그 이후 나는 여친 말은 "딱 한번만" 들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이주 후,, 나는 들른 엄마집에서 미역국을 먹으며, 드디어 이 말을 했다.
하, 이제 내가 한 미역국이 엄마 미역국보다 맛있네~
물론 몇가지 변명거리는 있었다. 고기를 조금쓰고 대신 조개로 때우려했던 것이 크지 않았다 싶다.
해조류로 끓인 미역국과 고기로 끓인 미역국의 차이는 어마어마 하다.
근데 그런것보다 더 큰 이유는, 이제 엄마는 더 이상 미역국을 맛있게 끓일 이유가 없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미역국은 그야말로 나만 환장하는 음식이었다. 아빠와 동생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메뉴이다.
그냥 여차저차 내가 일요일에 온다니깐 산악회 일정은 일정대로 대충 준비한 것이 아닌가 싶다.
여자는 나이가 들 수록 남설호르몬 비중이 높아져 사회적이 된다고 했었나? 주말이면 산악회나 모임에 가느라 바쁜 몸이 되었던 것이다.
나는 내뱉은 그 말을 하자마자, 금방 다시 벙어리가 되었다.
그리고 우리의 저녁식사는 곧 끝났다.
잘 모르겠다. 언젠가 내가 해준 음식을 엄마가 해준 것보다 더 맛있다라고 해줄 아이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아이가 이건 우리 아빠한테 배운 요리야 라고, 이름도 잘 모를 여자에게 해주더라도 좋겠다.
근데, 뭔가 지금의 이런 기분은, 뭔가 좀 그렇다.. 마냥 좋지많은 않네.
한줄 요약 : MSG는 넣으면 맛있습니다. 천연MSG? 더 넣으세요, 더 맛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