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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6/07/21 19:05:41
Name 스타슈터
Subject [일반] 구매자의 고민, 그리고 기다림.
사진을 취미로 하다보니, 중고 장터를 정말 많이 들락거리게 된다. 특히 카메라 렌즈는 써도 써도 써보고 싶은것 투성이고, 하나가 마음에 들면 다른 하나도 좋아보여서 고민된다. 사람들이 다 좋다고 하는 렌즈는 가격이 높아도 한번 쯤은 써보고 싶고, 더 비싼걸 써봤다고 해도 다른 가성비가 좋다는걸 소개받으면 눈이 뒤집히기도 한다. 아무튼 확실한건, 지르고 싶은 욕망 만큼은 절대로 부족해지지 않는다. 다만 자금이 부족하다보니, 최대한 많은 렌즈를 써보고 가장 마음에 드는 몇개에 정착하기 위해 중고를 사고 팔고 하는 것이 일상이 된다.

가끔 보면 중고 장터에 아주 좋은 매물이 올라온다. 그럴땐 그게 나에게 필요한 것이든 아니든, 주저하지 않고 오퍼를 넣기도 한다. 왜냐면 어짜피 오퍼가 거절되도 그만, 오퍼가 수락되도 그때 되서 진지하게 생각해보면 그만이다. 중고의 장점은, 사용해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되팔면 그만이다. 어짜피 중고로 산거를 중고로 다시 되파는건, 그리 큰 손해를 보는 장사는 아니다. 애초에 내가 좋은 매물이라고 생각한 것들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좋은 매물로 보이고, 살 사람은 절대 부족하지 않다. 일단 선빵 오퍼를 질러놓고 내것으로 확보한뒤,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같은 값에 되팔면 된다. 파는 과정이 좀 귀찮아질수는 있지만 손해는 보지 않는다. 잘만 되팔면 사실상 무료로 써보게 되니까.

근데 참 재미있는 사실은, 마음에 맞지 않으면 되팔기를 전제로 내가 샀던 물건들은, 거의 대부분의 경우 되팔게 되었고, 정말 필요해서 돌아보다가 절대 팔지 않을 각오로 고민하고 구매한 물건은, 상당히 오랫동안 쓰게 된다. 왜 고민했을까 생각해보면, 단순히 비싼 물건이라 고민을 한 것이 아니라, 정말로 필요한 것이였기에 오히려 더 오래 고민을 했다. 내 마음의 들지 않으면 아무리 비슷한 물건이 좋은 가격이라도 사지 않았다. 오로지 내가 원하는 물건이, 무리없는 가격으로 나타날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리고 구매할때는 가급적 흥정도 하지 않았다. 이미 구매할 각오를 끝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과정을 몇번 반복하고 느낀게 있다면, 순간 구매하고픈 욕구를 강하게 부르는 물건이, 내가 정말로 오래동안 간직할수 있을 물건이라는 증거가 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구매에 대해 고민하는 이유가, 절대로 물건이 충분히 좋지 않아서 그런게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그 반대로, 물건이 너무 좋아서 고민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정말로 필요한 것이기에 더욱 더 신중을 가하고, 실수하지 않기 위해 머리를 쓴다. 그리고, 남들이 좋다고 해서가 아니라, 정말 내 마음에 들어서 사는것임을 확인하고 싶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 아니라, 무조건 있었으면 싶은 것이기 때문에, 기왕 살거라면 충분한 각오를 하고 구매하기 때문이다. 남들이 단점이라고 치부하는 것도, 남들이 별로라고 말하는 부분도, 최대한 받아들이려고 노력해보고, 그 단점들이 나에게는 큰 지장이 없음을 재차 확인하게 된다. 그 과정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가지고 싶은 마음이 남는 물건이라면, 끝내 결단을 한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거치고 내린 구매결정은 보통 후회하지 않는다. 물론 그 와중에 다른 사람들이 먼저 사갈때도 있지만, 결국 기다리다 보면 다시 나타난다. 심지어 때로는 더욱 좋은 조건으로.

이건 중고 물품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인생의 수많은 결정들에서도 적용되는 이야기일 것이다.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이라면, 그 타오르는 열정으로 단시간에 과감한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 깨닫게 된건 그런 결정은 충동구매와 다를것이 없으며, 내가 채우고자 했던 것은 내 욕심이지, 그 결정을 내가 오래동안 책임질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은 전혀 없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건, 인생의 중요한 결정은 대체적으로 되팔기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되팔기가 가능하다 한들 보통 자신에게도 큰 상처를 남기게 되고, 최악의 경우 내 자신보다 나를 믿어준 타인에게 더 큰 상처를 주게 된다. 고민하다가 일을 그르치는 경우도 많지만, 마음속에 모든 욕심에서 비롯된 충동을 다 잠재웠을때, 비로소 내가 택한 것의 진가를 바로 보게 되고, 책임질수 있는 결정을 하게 된다.

요새 어떤 일로 심각하게 고민하던 중, 돌파구가 보이지 않다보니 생각없이 여기저기 찔러보며 도움도 안되는 무리수를 두고 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왜이리 조급해졌나 싶었고, 은근히 바보같은 실수를 많이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생각할 시간에 행동을 하자!"]
["뭐라도 해보고 안되면 할수 없는거지 뭐."]
아마도 이런 생각들이 점차 모여서 내가 무리수를 두기 시작한게 아닐까.

분명 뭐라도 하자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지금의 나로써는 한발 물러서서 여유를 가지고 고민해보는 것이 더 필요했다. 나의 붕 떠버린 마음은 앞으로 달리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사실 조금 냉정하게 고민해보면 지금 당장은 앞으로 나아갈 타이밍이 아니었다. 현재의 불확실한 미래가 견딜수 없어서 당장부터 앞으로 나아가려고 했지만, 사실 난 당장 이 선택이 가져다주는 결과를 감당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애초에 시간이 지나면 난 무리수를 두지 않아도, 필요 이상의 책임을 지지 않아도 이 문제를 해결할수 있다. 다만 조금 더 빨리 가고싶은 내 욕심이 자꾸만 나를 조급하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조급함이 불러온 불안감은 서서히 나의 마음을 잠식해간다.

뭐라도 하는게 나은 상황도 있지만,
무엇도 하지 않는게 정답인 상황도 있다.

흥미로운 것은 사람을 움직이게 하지만, 진짜로 소중한 것은 사람들을 참고 기다리게 만든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것이 때로는 더 힘들고 어려운 일이며, 그 수고는 무엇 하나 대단한 행동을 한 것 이상으로 가치있게 내 추억 속에 기록될 것이다.

지금 당장은, 조금씩 쉬어가면서 풍경을 즐기는게 좋지 않을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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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ights of Pen and Paper
16/07/21 19:19
수정 아이콘
근데 그래도 결국 겪어봐야 (만족스럽게) 알게되는게 아닌가 싶어요.

사실 저도 만년필 수집이 취미였는데, 처음엔 100자루 소유를 목표로 두었으나 부질없다는 것을 깨닫고 (사람은 평생 글을 많이 써도 만년필 촉 하나 다 닳게 하기가 쉬운게 아니기에..) 100자루 경험하기로 목표를 바꾸어 살고 있는데.. 지금 한 5-60 자루 정도 경험해본거 같고 그 과정에서 중고거래로 금액적인 손실도 상당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 과정 속에서 얻어진 경험이나 지름자제..... 와 같은 것들이 있다보니 아쉽진 않은 것 같습니다.

때로는 물러서서 고민하기 보다 과감하게 행동하되 그 행동으로부터 잘된 것이든 잘못된 것이든 충분한 경험과 인사이트를 얻는게 아닐까 합니다.
물론 단순 물욕으로 인한 지나친 지름은 어찌됐든 좋진 않지만요.

저도 한때 카메라 지름.... 을 했었으나 지금은 100D에 UFO 바디캡으로 물려서 쓰고 있는데 (서브로는 아트삼식이와 18-135 번들..) 그 이유는 세 가지 입니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아래의 내용들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1. 내 사진 실력이 그보다 위의 제품을 쓰기에 충분치 않다는 것을 상위 기종을 쓰면서 깨달았기 때문
2. 내 실력으로는 플래그십 바디 밑으로는 차이가 없음
3. 내가 주로 찍는 사진은 광각-표준 수준의 화각대와 낮은 F값이 필요한 경우가 많음

따라서, 쉴 땐 쉬고 갈 땐 가고, 다만 너무 무리가 되지 않게 가는 게 중요한게 아닐까요? 허허허.
스타슈터
16/07/21 19:49
수정 아이콘
저도 렌즈를 한 30종 가까이 경험했는데 (지금 가진건 4개정도), 사실 사진을 배우시는 분들께는 무조건 처음엔 중고로 사서 팔고 하면서 본인한테 맞는게 뭔지 찾고 배우라고 합니다. 크크;

하지만 장비는 되팔기라는 옵션으로 어느정도 손실이 커버 가능하지만, 당장 내가 진로를 어디로 결정하느냐 이런건 순간 타인의 권유나 외부적인 요소때문에 충동으로 결정하기보단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이 필요한것 같아서 써본 글이었습니다.

마지막 문단에 깊이 동의합니다. 무리수같아 보이면 멈추고, 가야 할때는 확실히 가는게 현명한 법이죠. 흐흐
Knights of Pen and Paper
16/07/21 19:57
수정 아이콘
근데 또 중간을 가려면 오바도 해보고 언더도 해보고 해야 어디가 중간인지 알겠더라고요. 처음부터 현명하기란, 어려움을 넘어 불가능에 가깝지 않을까 합니다.

혹 자책하시는 부분이 있으시거든 그러지 않으셔도 된다는 취지에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
스타슈터
16/07/21 20:08
수정 아이콘
흐흐.. 제 생각을 콕 찝으셨네요.
"내가 왜이리 바보같았지" 싶은 마음이 생겨서 쓴 글이기도 하니까요.
다만 그렇다고 자책하지는 않습니다! 이제라도 중간을 알았으니 잘 맞춰가면 되겠죠.
감사합니다!
작은마음
16/07/21 22:00
수정 아이콘
그래서 스타슈터님이 보유하고 계신 4개의 렌즈는 무엇인가요???
궁금한건 저 뿐인가요?

사실 적당한 줌렌즈와 준수한 F값과 편하게 느끼는 화각의 단렌즈 하나면 충분하다고는 하지만
풀프레임의 유혹과 광곽 및 망원 등등 렌즈의 종류는 많고 각자의 장점이 커서 ㅠ
스타슈터
16/07/21 22:47
수정 아이콘
원래 소니 A마운트를 고수하다가 최근 시대의 흐름을 따라 소니 E마운트로 왔습니다...크크
a7바디 쓰면서 A마운트에서 마음에 들었던 고전 렌즈 몇개를 어댑터로 계속 쓰고 있고요. (미놀타 덕후입니다 덕후 ㅠㅠ)

렌즈 구성은 망원을 잘 안써서 이렇게 가지고 있습니다 (줌 두개, 단렌즈 두개):
소니 FE 24-70mm CZ f4, 미놀타 50mm f1.4, 미놀타 35-105mm f3.5-4.5 Macro, 그리고 삼양의 MF 85mm f1.4이렇게 쓰네요.
1) 35-105 + 50 조합, 아니면
2) 24-70 + 85 조합으로 출사를 나갑니다.

서로 부족한 부분들이 잘 채워지더군요.
대체적으로 사물을 찍을 것 같다 싶으면 1번을,
풍경 & 사람들을 찍을 것 같다 싶으면 2번을 가지고 갑니다.

그리고 쓸수록 느끼는거지만, 화각 편리성은 풀프 기준 30~40mm이 킹왕짱이긴 합니다.
다만 늘 집에 와서 보면 50이랑 85에서 찍은게 더 예뻐요 ㅠㅠ
그래서 단렌즈는 늘 35mm을 고민만 하다가 꼭 50, 85 이런녀석들로 남기게 되더군요...
요새 돈모아서 35를 들일까 하는데 아마 성격상 결국 85 업글할것 같습니다. 허허....
한화이글스
16/07/21 22:51
수정 아이콘
저도 이것 저것 쓰다 지금 4개가 남았는데,
니콘 50.4, 시그마 35.4, 삼양 14어안, 시그마 70-200 남았네요.
팔았던 렌즈 중에 아쉬움이 남는 렌즈는 계륵이였습니다. 있으면 좋은데 막상 쓰지를 않는다... 라는 점
그리고 새걸로 사서 한 번 사용 후 팽시킨 녀석은 85mm였네요.
요새 가지고 싶은건 광각 쪽인데 막상 있어도 잘 안쓸 것 같아 고민중입니다.
스타슈터
16/07/21 23:11
수정 아이콘
제 2470도 늘 "이거 꼭 가지고 있어야 하나?" 하는 마음을 수시로 줍니다.
딱 하나만 골라 나간다면 이녀석인데, 딱히 하나만 골라 나가는 경우가 없다는것이... ㅠㅠ
게다가 광각쪽이 이 렌즈 하나라 17-35 같은걸 들이지 않는이상 광각이 아쉬운건 어쩔수가 없네요.

단렌즈에서 35랑 85는 마치 짬뽕과 짜장면 같습니다.
35쓰면 85가 아쉽고, 85쓰면 35가 아쉽고...50은 짬짜면인데 뭔가 둘다 아쉽고...
결국 85쪽이 더 마음에 든다고 기울었지만 막상 그러고나니 50을 버리고 35로 가고 싶어지는군요. 크크;
그러자니 50의 조리개 가성비가 아쉽고...

이렇게 말했지만 결국 주말도 편하게 50mm 하나 들고 나갈것 같습니다.
돈없으면 아쉬워도 참아야죠 ㅠㅠ
맥핑키
16/07/21 23:00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저도 카메라와 렌즈는 물론이거니와 각종 공산품들을 매입했다가 판매하는 과정을 무던히 반복했었네요.

제 경우는 중고로 구매하는 것은 거의 없고 대부분이 새제품을 (제 나름대로는) 매우 합리적인 고민과 비교의 과정을 통해 아주 신중하게 구매하여 마치 새것과 같은 상태로 판매하는 짓을 자주 하다 보니 친구와 가족들의 비아냥을 산 적이 많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배운 점, 느낀점도 많았지만 확실히 꼼꼼히 계산을 해 보면 전체적으로 마이너스인 것은 부정할 수 없겠네요.

저 역시 본문과 유사한 고민이나 생각을 했던 적이 많았는데, 제가 생각한 것과는 다른 접근이라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제가 생각한 소비의 이유는 행동보다는 순간의 만족이 더 컸던 것 같은데 본문 역시 상당한 설득력이 있네요.
스타슈터
16/07/21 23:17
수정 아이콘
수업료를 지불하면서 경험을 쌓는거겠죠. 흐흐
근데 확실히 곰곰히 따져보면 참았을때의 이득이 조금 더 크긴 합니다.
하지만 사람이 참는 법을 배우는건 가지는 것의 무의미함을 깨닫고 나서인지라,
첫플분이 말씀해주셨듯이 이 또한 실패를 학습해서 나오는 결과겠죠. 크크
수면왕 김수면
16/07/22 13:15
수정 아이콘
그러고 보니 전 활동적인 성향의 취미가 없네요. 좋은 취미를 오랫동안 즐길 수 있는 것도 복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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