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마시며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거의 막바지쯤에 수현이가 질문을 던진다. 아마 이 질문이 문돌이가 대학 입학 후 가장 많이 들어본 질문일 것이다. 그리고 아마 수현이도 많이 들어본 질문일 것 이다. 수현이도 일단은 철학과에 들어왔다가 편입을 했으니 말이다.
'철학과에 왜 갔냐? 철학이 뭐냐? 철학은 도대체 뭐 배우냐?' 누구를 만나서 철학과에 다닌다하면 반드시 질문으로 되돌아오는 삼종세트.
그게 아니면 '사주 볼 줄 알겠네?, 나 손금 좀 바줘, 졸업하면 철학관 차리는게 진짜냐?' 등의 반응을 보인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와 비슷한 반응을 보일것이다. 문돌이도 대학교 입학하고 선배들 처음 만났을때 저 질문들 부터 먼저 했으니까 말이다. 술에 취한 고학번 선배한테 '철학이 뭔지도 모르는 새끼가 철학과를 왜 왔냐?'면서 두시간동안 혼난건 안 자랑이지만. 아무튼 솔직하게 말하자면 문돌이는 철학과에 어떤 목적이 있어서 간게 아니다. 일단 수능을 치긴 쳤고 남들처럼 대학은 가야 될 것 같아서 문돌이의 성적에 맞는 학교를 찾아봤다. 부모님은 뭐 어딜가도 별로 상관 없다는 분위기 였다. 다만 어차피 공부에 관심도 없는데 비싼 사립보단 싼 국립대를 가길 바라는 눈치였다. 그래서 그냥 문돌이 혼자 결정하기로 했다. 부산에 있는 사립대 하나 국립대 하나, 지방에 있는 국립대 하나. 부산에 있는 대학 2군데에는 학과명부터 그럴듯한 뭔가 있어보이는 학과에 지원하고 지방에 있는 국립대에는 제일 안전하고 만만해 보이는 철학과에 지원했다. 그리고 철학과에만 합격했다. 그래서 그렇게 철학과에 간 것이다.
그렇게 대충 들어간 철학과 였지만 남들이 철학과에 대해서 무시하거나 오해를 하면 은근히 기분이 나쁘고 자존심이 상했다. 철학이 뭔지 설명해주기위해 열심히 공부도 하고 철학과 철학과에 대하여 매번 열변을 토하며 설명했지만 그게 다 헛수고라는 사실을 깨닫는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설명을 해줘도 다음에 만나면 철학과 나와서 뭐하는지 또 물어보고 새로 만나는 사람중 열에 아홉은 똑같이 '철학과에 왜 갔냐? 철학이 뭐냐? 철학은 도대체 뭐 배우냐?'고 물어봤다. 그래서 나중에는 문돌이도 철학에 대한 설명을 포기하고 여자가 손금 봐달라고 하면 그냥 손 잡고 쪼물 쪼물거리고 누가 사주 좀 봐달라고 하면 자신은 서양철학 전공이라서 타로카드만 할 줄 안다고 농을 치는 둥 어느새 즐기는 단계로 진화했다. 아무튼 이 사실 그대로 수현이한테 말하면 되게 철 없고 생각 없게 보일거 같아 최대한 포장을 하기로 한다.
'최대한 지적이면서 생각이 많아 보이게'
"어릴때부터 삶이란게 무엇인지 내가 어디서 왔는지 내가 누군지 그게 되게 궁금했거든. 그리고 부모님한테서 독립하고 싶어서
일부러 지방에 있는 대학으로 간거고....'
"아 그렇구나...."
수현이의 얼굴에서 약간의 실망스러움이 느껴진다. 수현이가 바라는 답이 따로 있는건가?
"수현이 니는 왜 철학과에 갔는데?"
"그냥 뭐 사립은 비싸서 못가고 국립대로 가려는데 부산에 있는 국립대는 성적이 딸려서 못가고 그냥 지방에 있는 국립대, 그중에서 철학과가
제일 만만해 보여서요. 그래서 갔죠."
수현이가 말을 마치자 문돌이와 수현이 둘 다 놀란 표정을 짓는다.
문돌이는 자기랑 너무 똑같아서 그리고 수현이는 철학이 좋아서 철학과에 갔다는 문돌이한테 철학과 무시 발언을 한거 같아서.
"오빠 죄송해요. 제가 그럴 의도가 아니라 말이 너무 편하게 나오다보니까 그러니까 그게..."
수현이가 당황했는지 말이 꼬이기 시작한다.
"아이다. 아이다.괜찮다.. 나도 니 마음 다 안다."
"아니 수현아 나는 진짜 괜찮다니까. 나는 니 마음 안다니까"
"알겠어요 오빠. 일단 나가서 밥 먹으면서 얘기해요. 시간도 점심 먹을때 됐잖아요"
수현이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을 챙기고 나갈 채비를 한다. 문돌이는 이 상황이 조금은 부담스럽지만 그래도 싫지 만은 않다.
수현이가 트레이를 들고 먼저 나간다. 그리고 수현이의 뒤를 따라가는 문돌이.
"야 수현아 진짜 괜찮다니까"
수현이의 뒤에서 소리치는 문돌이의 얼굴에서 미소가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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