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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게의 이 글에서 계속 댓글 달다가 문득 떠올라서 쓰던 글도 집어치우고 쓰게 됐는데요. (정말 재밌는 얘기 했네요 _-)b)
역사를 얘기함에 있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여기선 그 중 하나, 서울(수도)와 지방의 차이에 대해서 얘기해보고 싶네요.
지금이야 통신과 교통의 발달로 서울에서 내려진 결정이 지방까지 바로 닿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게 없었던 전근대에는 달랐죠. 한반도만 해도 먼 지방에서 서울까지 가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렸습니까. 걸어서 간다면 조선 나이키를 신어도 부산에서 서울까지 한 달은 더 걸렸을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에서 아무리 좋은 결정을 내려도 지방에서 그걸 받아들이는 게 쉬운 게 아니고, 서울에서 그걸 감시하기도 어렵습니다. 각 지방엔 언제나 그 지역의 유력자들이 있고, 먼 데 있는 나랏님보단 가까이 있는 높으신 분이 더 무서운 법이니까요. 팔은 안으로 굽기 마련이구요. 사실 이런 건 지금도 얼마든지 볼 수 있죠.
이들에게 중요한 건 위의 결정보다 자기 지역의 이익, 혹은 그 자신의 이익이었습니다. 따라서 보수적으로 흐를수밖에 없었죠. 그렇다고 이들을 때려잡으려 하면 이들이 아예 막장이 아닌 이상 그 지역 자체와 등져야 합니다. 거기다 이들이 지역강자로만 남으려고만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중앙을 노릴 경우 이것도 막아내야 했습니다. 따라서 동서를 막론하고 중앙집권을 강조하는 사상과 종교를 주입했고 채찍과 당근으로 이들을 길들여야 했죠. 유교부터가 중앙집권에 특화된 거 아니겠어요. 그 외에 지방 호족들의 가족을 수도에 인질로 삼는다든가 하는 방식도 있었구요.
+) 뭐 그렇다고 이들이 변화에 아예 장애물이 된 것만도 아니구요. 일본처럼 중앙집권이 약할 경우 서로 중앙을 차지하기 위해 더 강해지려고 변화를 더 받아들이기도 하는 경우도 있죠. 경직된 신라를 깨뜨린 것 역시 호족과 육두품 세력의 합작이었구요.
한국 역사를 보자면...
통일신라의 경우 한 쪽으로 치우친 수도를 옮기기는... 너무 힘들었죠. 때문에 5소경을 만듭니다. 하지만 이건 거대한 공룡의 뇌가 몸 전체를 움직이기 힘드니 몸 중간쯤에 작은 뇌를 만들었다 이런 느낌이죠 (...) 호족들은 신라에 충성한다고만 하고 자기 지역에선 왕이나 다름없는 권력을 누렸고, 중앙정부가 약해지자 일제히 일어납니다. 골품제로 중앙으로 가는 게 불가능했던 신라 체제의 문제도 있었습니다.
고려를 세운 왕건도 이런 호족 출신이었고, 최대한 호족들을 달래며 연합왕국 같은 느낌의 고려를 세웁니다. 때문에 초기 고려의 역사는 호족들을 때려잡는 역사였죠. 그렇게 중앙에 있는 귀족들이 집권하는 문벌귀족 사회가 만들어졌구요. 유교를 적극 도입해 중앙집권을 시도했지만 향, 소, 부곡(기억나시죠?) 등 중앙에서 터치할 수 없는 유력자들은 여전히 남았습니다.
그 뒤를 이은 조선, 유교를 근본으로 내세우며 중앙집권에 성공합니다. 속국 느낌이었던 제주도에도 수령을 파견할 정도가 됐죠. 지방 호족들은 이제 아전이 돼 중앙에서 내려온 수령을 보좌해야 했습니다. 그것도 무급으로 말이죠 -_-a 조선 초기에도 지방 호족들의 힘은 남아 있었고 이들의 힘을 제어하기 위해 많은 제제가 가해집니다. 부민고소금지법도 이렇게 해서 만들어졌죠. 호족들의 세가 여전히 강했던 함경도의 경우 이시애의 난도 일어났구요.
아전에서 가장 높았던 이방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십니까? 염소수염에 "예이~ 사또" 하면서 아첨하는 게 떠오르실 겁니다. 이것이 중앙정부에서 만들어낸 프로파간다일지 백성들 사이에 남은 이미지일지는 모르겠습니다. 이들이 한 푼도 못 받고 일했기에 수탈에 더 적극적이었고, 수령의 명령을 일선에서 행했기에 더 나쁜 기억으로 남았을 것 같긴 합니다만.
그 지역의 상황을 모르는 수령들도 이들의 힘을 빌려야 했습니다. 결국 실무는 아전들이 하는 거였으니까요. 장교와 부사관의 관계일까요. 그럼 백성들은 사병들? -_-; 나랏님의 방침은 이거다! 에이 사또 여기엔 여기만의 법이 있사옵니다 뭐 이런 대화가 언제나 오갔겠죠. 아마 같이 사이좋게 백성들을 수탈하거나 대립하거나 했겠죠. 중앙에서 제대로 파악하기 힘든 상황, 장화홍련에서 수령들이 오자마자 죽어나간 것이 그냥 공포분위기를 위한 설정은 아닐 겁니다. 암행어사 몇 명 보내는 걸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었구요.
조선시대가 계속되고 유교가 지방 곳곳에 스며들면서 상황은 조금 달라집니다. 사림의 출현이 그것이죠. 뭐 그 이전에도 양반들은 각 지역의 유력자긴 했습니다만 -_-a 이들은 향약으로 유교를 퍼뜨렸고, 그러면서 지역의 주도권을 잡습니다. 그나마 중기까진 그 기반으로 중앙으로 나갔습니다만 후기로 가면서 상황이 달라졌죠. 인구가 늘어나고 양반은 늘어나는데 벼슬자리는 그대로였거든요. 포화상태인 중앙, 기호니 영남이니 하는 건 의미가 없어집니다. 정약용이 한양을 떠나지 말라고 유언했듯, 서울에 있지 않으면 벼슬살이 하기 힘들어졌거든요.
이들은 각 지역에 뿌리를 더 깊숙하게 내리게 됩니다. 대표적인 것이 서원이죠.
영남 만인소가 몇 차례나 계속된 걸 보면 이들이 지방을 얼마나 확실히 장악했는지 느낄 수 있습니다. 특히 남인들이 중앙에서 소외돼 갔기에 더 그랬겠죠. 반면 집권층의 경우 여유가 있어서 이런 느낌이 비교적 덜 드네요. 지방에서 하는 거야 마찬가지였겠지만요.
뭐 그렇다고 이런 지방의 사림들을 아예 나쁜 쪽으로만 몰아붙일 순 없습니다.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킨 것도 지방의 사림들이었고 유교를 가르치고 기근이 닥칠 때 지방 사람들을 구호하는 것 역시 이들의 역할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지방을 지배하면서 폐단이 극에 치달았던 건 너무도 큰 문제였죠.
이전 시대의 호족이든, 조선시대의 사림(지방에 눌러앉아서 영향력을 발휘하던 선비들을 산림이라고 불렀죠)이든 신분제가 존재했던 그 때, 여론은 곧 이들을 뜻했습니다. 중앙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든 이들을 무시할 수 없었죠. 어느 시대든간에 이들을 경계하고 필요에 따라 억누르면서도 협력해야 했습니다. 참 이렇게 보면 현재 지방자치로 가는 건 정말 시대가 바뀌었다는 걸 느낄 수 있는 것이죠.
이건 지방의 유력자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지방에서나 왕이지 중앙의 힘에는 굴복해야 했으니까요. 중앙정권이 아예 망하지 않는 이상 겉으로만 충성을 맹세하거나 새로운 중앙정권이 만들어질 경우 바로 충성하고 대신 그 지역의 통치는 그대로 유지하거나 했죠. 중앙의 힘이 막강할 때 덤빈다면, 깡다구는 인정하지만 최악의 경우 소멸 (...)a
그나마 나라가 작았던 한국사도 이런데 중국은 어땠겠어요. 봉건제부터 중앙집권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군현제, 정말 온갖 노력을 다 했을 겁니다. 때로는 지방 호족들에게 맡겼고, 때로는 왕족들에게 맡겼으며,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군인을 보내기도 했죠. 하지만 나라가 혼란스러우면 참 믿을 놈이 없었죠 (...) 원래 거기의 유력자든 나라에서 파견돼 왔든간에 난세인데 뭔 상관이겠어요.
왠만하면 중앙에 충성하고 엥간하면 한나라에 충성하는 걸로 나오는 삼국지에서도 마찬가집니다.
가령 삼국지연의에서 유비와 같은 유씨라고 한나라 어쩌고저쩌고 하는 유표, 삼국지에서는 조공도 끊고 황제급으로 하고 다녔다고 합니다.
이미지 구하기 힘드니 아쉽게도 아들내미로.
역시 같은 유씨니 뭐니 하는 익주의 유언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장로를 파견해서 중앙과 연락을 끊으며 황제의 의복과 깃발을 잔뜩 만들었죠. (이를 일러바친 게 유표 (...)) 마등과 한수를 은밀히 지원하기도 했구요.
뭐 이들이야 그저 지방의 골목대장(골목이라기엔 좀 많이 크긴 하군요)에 만족했고, 조조가 중앙을 장악하고 자기들까지 노리려하자 바로 태도를 바꾸죠. 유표는 그 전에 죽었지만 유표라고 조조랑 계속 맞섰을까는 의문입니다. 어차피 유비라는 인물 덕에 이걸 확인할 방법은 없겠죠.
그 외에 왜 맹달이 저런 짓을 저질렀는데 멀쩡했고 제갈량은 그를 다시 꼬실 생각을 했을까, 맹달은 위에 항복한 후에도 입조하지 않고 상용에 독자적인 세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연의에서는 그냥 여포의 부하로 나오는 장패 역시 서주에 세력을 가지고 있었죠. 이후에는 가족을 업에 보내고 중앙에 진출합니다만... 연의에서 뭔가 이랬다 저랬다 하는 이상한 행보를 보이는 진등 부자도 서주의 호족 세력이었습니다.
이랬다 저랬다 하는 느낌이 드는 이들, 그런데도 중앙에서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는 이들은 주로 그 지역에서 지지하거나 애초에 그 지역의 유력자였다는 걸 생각하면 의문이 풀리는 것이죠.
음... 이 정도로 맺겠습니다. '-') 딱히 결론을 내릴 필요는 없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