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시절, 제 연애의 목표는 내가 좋아하는 상대방을 내 연인으로 만드는 것.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이었습니다.
딱 여기까지였어요. 그 이후의 일, 즉 뜨거운 사랑의 감정이 미지근하게 변하거나 차갑게 식은 후의 일은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연애라는 것이, 감정의 등락에 따라 얼마든지 유동적으로 바뀔 수 있는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서로의 마음, 혹은 어느 한쪽의 마음이 차갑게 식은 그 이후의 일을 생각하지 않았던 20대 시절의 연애들은 그래서 때때로는 외로웠고, 또 때때로는 비참했습니다. 그리고 그 외로움과 비참함은 저의 몫인 경우도 있었지만, 또한 상대방의 몫인 경우도 있었죠.
그리고 이러한 과정 속에서 제가 느낀 딜레마, 혹은 제가 느낀 고민의 지점은 이러했습니다.
'왜 내가 좋아했던 상대방이 나로 인해, 나와의 연애로 인해 외로움과 비참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나.'
난 분명 상대방을 사랑했으며, 행복하게 만들어주기 위해서 그 사람에게 다가갔을 뿐인데,
왜 그 사람은 결국 나로 인해 외로워지고 비참한 경험까지 해야 했을까.
많은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두 가지였습니다.
첫 번째는,
상대방뿐만 아니라 나 또한 내 감정에 배신당했기 때문에.
그리고 두 번째는,
뜨거운 사랑의 감정만을 생각했을 뿐, 교감의 과정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에.
상대방만 내 감정에 배신당하는 것이 아니다
우선 상대방뿐만 아니라 '나 스스로 마저도 내 감정에 배신당했기 때문'이라는 말은 이런 의미입니다. 연애 초기 훈훈한 설렘과 뜨거운 사랑을 서로가 함께 키워가던 시절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사랑의 감정이 차갑게 식을 것이라고 쉽게 예단하거나 섣불리 우려하지 않습니다. 오직 목표는 하나, 상대방이죠. 그 혹은 그녀만 내 사람, 내 연인으로 만든다면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은 기분일 것이고, 오직 연애의 성공 '그것만이 내 세상'이라는 생각만으로 가득차게 됩니다.
하지만 사람인지라, 그리고 마음을 주고받는 연애인지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람의 감정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고 또 변하기 마련이죠. 시간이 흘러 서로가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서로의 매력보다는 단점들이 점점 더 눈에 들어오게 될 때쯤, 어느새 설렘은 사라지고 익숙함이 그 자리를 대신할 때쯤, 그 어느 시점부터 더 이상 상대방에게 나를 온전히 맞춰주고 싶지 않은 시기가 찾아오곤 합니다. 이른바 일종의 귀차니즘과 피로감이 발동하는 시기이고, 이때쯤부터 연인들은 더 많이 다투고 더 많이 지치게 됩니다. 잦은 다툼과 싸움이 이어지게 되면 싸우는 것도 슬슬 지치고 지겹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죠.
하지만 중요한 것은 오직 상대방만이, 식어버린 내 마음에 배신당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그래도 설마 나만큼은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던 나 조차도, 뜻뜨미지근하게 식어버린 내 마음에 배신당하며 적잖이 당황하게 된다는 얘기이죠.
제목은 기억 나지 않지만, 은희경의 어떤 소설 가운데 이런 비슷한 구절이 하나 있습니다.
[대화가 통하지 않는 부부 사이에서 뜨거운 사랑이 식은 후에 남는 것은 증오뿐이다.]
맞춰주기 ≠ 이해하기
결국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된 연인들의 가장 큰 문제는 애초에 서로의 호감만을 믿고 그 감정만을 중시여겼을 뿐, 교감이니, 소통이니 하는 것들에는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점이죠. 뜨거운 사랑의 감정만을 너무 과신했달까요. 물론 사랑의 감정이 충만한 상태였을 때는 서로 간에 별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설령 서로간에 생각이 다르고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손 치더라도, 사랑의 힘으로 어느 한 쪽에서 열심히 참고 맞춰주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겉으로 보기엔 별다른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적어도 사랑이 식기 전까지는 말이죠.
하지만 어느 한 쪽의 사랑이 식거나 권태기가 찾아오면 관계의 양상은 달라집니다. 대화와 생각이 통하지 않는 상대방이 답답하게만 느껴지고, 날 이해해주지 못하는 상대방이 야속하고 서운하게 느껴지는 거죠. 지금껏 나는 상대방에게 맞춰주기 위해 A부터 Z까지 최선을 다해 노력했는데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고 상대방은 그런 내 노력의 반에 반도 하지 않는다는 생각에서 쉽게 야속해지고 지치게 됩니다.
하지만 따지고보면 이 남자 혹은 이 여자는 한 번도 상대방의 마음을 진심으로 이해해보려 노력했던 적이 별로 없습니다. 오로지 트러블만이 생기지 않도록 열심히 내쪽에서 참고 맞춰주려고 노력했을 뿐. 애초에 서로의 생각이 이해 자체가 되지 않으니, 가장 쉬운 방법은 이해하지 않고 열심히 참고 맞춰주는 것 뿐이었죠. 하지만 이런 식의 노력은 결국 트러블의 봉합에 그칠 뿐이고 결국 이렇듯 (이해가 결여된) 봉합우선주의는 둘 사이에 부메랑으로 되돌아오기 마련입니다.
호감보다 중요한 것은 교감
그래서 결국, 호감 보다 중요한 것은 교감입니다.
교감이 없는 관계는 호감이 사라졌을 때 금방 피로해지고 건조해지기 쉽습니다.
어느 날부턴가 여자친구와 커피숍에 마주앉아서 대화를 나눠도 재미가 없고 빨리 상대방을 들여보내고 나도 집에 들어가서 쉬고 싶어지고 차라리 대화가 잘 통하는 친구들이나 만나 술 한잔하며 이런 저런 얘기로 수다를 떨고 싶어지죠.
어느 날부턴가 남자친구가 하는 말들이 무심하게 느껴지고, 나를 이해하기는커녕 오로지 맞춰주기에만 급급하고 수습과 봉합에만 급급한 상대방의 모습에 답답하고 서운합니다. 진지한 대화를 시도하지만 언제나 되돌아오는 대답은 '노력하겠다.', '변하겠다.'라는 공허한 외침과 다짐뿐, 시간이 지나면 항상 똑같은 문제로 되돌아오는 도돌이표 상황에 서운할 틈도 없이 어느새 지쳐만 갑니다.
결국 이런 지경까지 오게 되면, 누군가는 외로워집니다. 아무런 교감이 없이, 소통에 대한 고민 없이 만나던 관계에서 호감마저 식어버린 연애는 필연적으로 외로워지고 비참해지기가 쉽습니다.
연애는 동정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비슷한 과정 속에서 결국 헤어진 한 친구가 어느 날 저에게 이런 말을 해오더군요.
"상대방이 너무 힘들어하고 마음 아파하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도 마음이 짠하고 미안하다. 다시 재결합할지 고민 중이다." 라고 말이죠.
저는 그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연애는 동정으로 하는 게 아니잖아. 단순히 미안하고 짠한 마음에 재결합하는 거라면, 후에 그 사람이 더 외롭고 비참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생각해."
"그 사람은 너에게 사랑받고 싶은 거지, 동정받고 싶은 게 아냐."
행복하게 해주기보다, 비참하지 않게 해주는 것이 더 어렵다
결국 20대 시절의 연애를 통해, 저에게 남겨진 생각의 종착역은
'내가 이 사람을 얼마나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가', '얼마나 뜨겁게 사랑할 수 있는가' 가 아니라
'설령 사랑의 감정이 식더라도 얼마나 외롭지 않게 만들어 줄 수 있는가'
'막다른 골목에서도 얼마나 비참하지 않게 내 사람을 지켜줄 수 있는가' 로 귀결되더군요.
그래서 저는 이성을 바라볼 때,
'이 사람이 얼마나 이성으로서 매력적인가' 보다는 (남녀라는 계급장 혹은 젠더적 이름표를 떼고)
'친구로서, 그리고 동반자로서 얼마나 나와 대화와 생각이 잘 통하는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매력적인 이성도 좋지만, 그보다
대화와 생각이 통하는 좋은 친구와 사랑을 하고 싶은 거죠.
그래야만 뜨거운 사랑의 감정이 식더라도, 믿음직한 동반자이자 좋은 친구로서 꾸준히 생각을 공유하며 함께 웃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물론 사랑이 식어서 헤어질 수도 있죠. 대화와 생각이 통하는 상대라해도 연애를 하다보면 상황에 따라 어떻게든, 어느 시점에서든 헤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내 마음이 변했다 해서, 마치 소모품 취급하듯, 지겨워진 게임 어플 삭제하듯 그렇게 간단하게 치워버리고 지워버릴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한때나마 서로 사랑하고 좋아했던 사이라면 삶의 막다른 골목에서도 서로가 비참해지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하고 지켜줘야죠.
이것이 이른바, 관계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요?
세상에 덜 소중한 사람은 없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20대 시절, 제 연애의 목표는 내가 좋아하는 상대방을 내 연인으로 만드는 것.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이었다면, 서른 살에 접어든 지금의 제 연애의 목표는 이렇습니다.
[막다른 골목에서도 서로가 비참해지고 외로워지지 않도록 서로를 지켜주는 것.]
이것을 사랑이 아닌 의리나 정이라고 치부해도 좋고, 사랑을 가장한 우정에 불과하다고 말해도 좋습니다.
어떤 연유에서건 내 사람, 내 연인만큼은 비참하지 않게, 외롭지 않게 평생 지켜주고 싶은 것이 제 마음이니까요.
결국 아프고 힘들었던 지난 연애가 저에게 준 가장 큰 교훈은, [나만큼 상대방도 소중하다.
그리고 상대방만큼 내 자신도 소중하다.] 라는 엄연한 사실.
'이 세상에 덜 소중한 사람은 없다.' 라는, 새삼스럽지만 당연한 진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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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못본 글이 있는건지 무지 오랜만에 보는듯한 기분이네요.
왼손검지와 오른손검지가 한동안 왔다갔다 하다가...
결국은 뭐.. 오늘도 이렇게 글로 지식을 하나라도 더 쌓아가는군요.
개인적인 메모장에 글을 하나 더 늘렸습니다.
일단 반가움에 생각을 덜하고 리플을 적어제낀 후 다시 적어봅니다..
마지막 연예였던.. 삼년전.. 그때가 생각나네요.
반 헤어짐의 상태였던.. 그 이후에도 서로 교감을 가질수 있었다면 조금은 다른 결과를 얻었을지도 모르겠네요.
물론 제가 조금더 노력했더라면 몰랐겠지만 중국과 한국이라는 거리를 메꿀만큼의 감정은 없었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