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시BB님이 일본, 제국의 길로 이 글에서 류큐에 관련한 글을 올리셨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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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류큐가 어떻게 사쓰마 번에게 수탈당했는지 보충하는 글입니다.
1609년 사쓰마번은 류큐를 침공해 점령합니다. 1609년은 명 만력 37년으로 이미 명 조정은 매우 혼란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쓰마는 류큐 전체를 집어삼키고 직할통치하기에는 류큐의 위치가 명에 있어서 매우 중요했습니다. 따라서 사쓰마번은 류큐에서 아마미 제도만 직할 식민지로 만들고 나머지는 독립을 유지시켜 주죠.
이는 류큐가 명과의 교역으로 많은 부를 창출하고, 명과 긴밀하게 연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명과의 무역 이익을 사쓰마번으로 돌리려 했죠.
사쓰마 번에서는 류큐인에게 대한 통치를 할때 사쓰마 번에 거주중인 류큐인들에게 일본식 풍속을 따르는 것을 엄금하고 명이나 청에서 사절이 오면 나하에 주재중이던 사쓰마 번의 관리들을 나하에서 피난시킵니다. 류큐가 사쓰마의 영향력이 있다는 것을 감추기 위함이었죠. 그런데 에도의 쇼군(장군)이 바뀌면서 오는 류큐의 경축사절단에게 반대의 행동을 취합니다. 류큐 사절단에게 중국식 예복과 사절의 이름 역시 중국어로 부르게하고 식사 예절까지 중국식 예절을 강요하죠. 이 시절을 일지양속(日支兩屬)시대라고 합니다. 겉으로는 독립국을 유지시켜주면서 중국과의 무역을 통해 이익을 얻었지만 실제로는 식민지나 다름없었죠.
하지만 경제적 수탈은 매우 심각했습니다. 바로 이것을 이용해 류큐를 수탈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얀 단맛의 가루, 설탕입니다.
1623년 기마신죠(儀間眞常)이라는 사람이 중국에서 제당법을 배워와서 류큐에서 처음으로 설탕을 생산하는데 성공합니다. 설탕은 감미료로서 매우 비싼 물품이었고 설탕은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터라 그 가격이 더 비쌌습니다. 따라서 이 설탕의 생산량은 급격하게 늘어나죠. 설탕은 일부는 조세로 납부되고 남은 물량 중 대부분은 류큐 왕부가 사들여 사쓰마에 되파는 형식을 취합니다. 사쓰마 번은 본토에서 판매되는 가격의 반도 안되는 가격으로 이 설탕을 사들였고, 류큐 왕부는 농민들에게서 이 가격의 반액으로 농민들에게서 설탕을 사들입니다. 즉 6할이 넘는 이익이 사쓰마번에게 유입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18세기 중반경에 아마미 제도에서는 설탕 수매를 시작합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사쓰마번은 아마미 제도의 주민들이 사쓰마 번에 바치는 공물을 모두 설탕으로 현물납부하도록 강요합니다. 거기에 19세기에는 아예 아마미제도의 주민들을 노예처럼 부려 사탕수수 농사를 짓도록 강요하고 설탕을 생산한 이후 이 설탕을 헐값에 사들입니다.
사쓰마번은 이에 그치지 않고 아마미 제도에서 설탕을 제외한 다른 농사와 산업을 일체 금지시켰고, 곡물을 비롯한 생필품들을 사쓰마를 비롯한 가고시마 지역에서 사와야 했습니다. 당연히 이 생필품들을 팔때 막대한 이문을 붙여 폭리를 취하죠.
사쓰마 번의 강력한 경제력은 이러한 류큐의 설탕산업에 의해 뒷받침 되었습니다. 이후 1897년 류큐 왕은 강제로 도쿄에 이주당해서 후작이 되고 독단으로 류큐를 병합해 오키나와 현을 설치하죠. 그러나 설탕산업으로 인한 착취는 여전했습니다.
블러드 다이아몬드 이전에 피의 설탕은 사쓰마번이 성장하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사쓰마번이 성장하는 사이, 류큐와 아마미 제도의 주민들은 달디단 하얀 가루를 생산했고 그들이 이 설탕의 단맛을 일체 즐기지도 못하고 모든걸 빼앗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