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Date 2002/10/13 14:49:52
Name antilaw
Subject 난세의 영웅-임도령과 박도령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백마탄 초인이 나타나 구원하고 이 땅에 천년왕국을 구현한다..'

이른바 메시아 사상은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와 같은 종교 뿐만 아니라 많은 민간신앙

이나 도참사상을 통해 전해지는 것들이기도 하다. 조선왕조 최고의 비극으로 일컬어지는

'정여립의 난' 뿐만 아니라 이후 왕조가 소멸하는 순간까지 주요한 격변기마다 '계룡산에

서 일어날 진인 정도령' 의 전설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는 하지만 너무도 각박한 현실의 질곡이 민중들에게 이러한 메시아 신앙이 자연스레 받아

들여지게 된 것이리라.

  어제의 결승전 중계창에 300개가 넘는 리플이 달리게 만든, 그리고 올림픽 공원에 만 여

명의 인파가 몰려드게 만든 두 주인공은 다른 프로게이머들과는 차별되는 극적인 캐릭터

를 가진 이들이다. 패치 이후의 테란, 특히 2002시즌의 테란은 모든 대회를 석권하다시피

하고 밸런스 붕괴의 주범인 '우주 깡패' 로 지목되기도 하지만.. 07중반기로 시점을 옮겨

보면 이야기는 현격하게 달라진다. 당시만 해도 '로망' 은 플토가 아닌 테란의 것이었고

키글과 게임큐의 리그를 통해 매니아들에게 깊은 인상을 안겨준 임요환이라는 게이머는

'희망' 이라는 이름과 동일시 되었다. '환상의 테란' 이 재미있는 '꽁트' 의 차원을 넘어서

테란유저들의 '메시아 신앙' 을 대변하는 하나의 '경전' 으로 읽혀진 것은 지금과는 너무

도 다른 그 당시의 상황 탓이었을 것이다.  '경기력' 의 측면만 본다면  여타 '6인방'

은 모두 그와  근접한 수준에 이르렀고 이윤열이라는 신성은 이미 그를 넘어섰다고 보아도

좋을 지금에 이르러서도 그가 '특별' 한 것은 그가 패치 이전부터 테란의 한계를 극복해왔

고 남들과는 '다른' 플레이를 통해 테란이라는 종족의 지평을 넓혀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변함없는 도전자의 자세로 승리를 향해 매진하는 그의 모습이.. 너무도 매력적이기 때문

이다.

그런 그가 어제 '박도령' 에게 패배하고 말았다. 어제 그의 모습은.. 그가 가진 능력을

채 발휘하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반면,  그렇지 않아도 막강한 박정석의 플레이는.. 보는

사람을 전율케 할만한..'최상' 그 이상의 것이었다. 2차전, 비프로스트의 뒷동산에 벙커를

지을 수 있었다면 5차전까지 승부를 이을 수 있었겠지만, 그렇다 해도 그의 승리를 낙관하

기 어려울 만큼 어제의 박정석은 강력했다.  두 사람이 다시 한 번 다섯 번의 대결을 벌인

다해도.. 벅정석의 손을 들어줄만큼.. 적어도 ' 두 사람 간의 대결' 에선 박정석의 강력함

을 임요환이 대적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황제와 영웅의 대결이라는 상황설정이 더 없이 잘 맞아떨어질 만큼.. 정상에 오르기까

지 박정석의 '천로역정' 은 고난의 가시밭길이었다. 챌린지리그와 듀얼토너먼트의 험로.

잇단 재경기. 4강에서 맞닥뜨린 홍진호라는 '태산준령'.  어제의 경기는 영웅이 황제의 힘

을 압도한 경기였기에 오히려 그의 힘이 극명하게 드러나지 않았지만.. 4강의 5경기는 보

는 이들로 하여금 몇 차례나 전율하게끔 만들었던가.  마치 강백호의 경이적인 운동능력에

전율을 느끼며 두 주먹을 불끈 쥐던 안선생 처럼 말이다..

임요환만큼.. 박정석이라는 '남자' 도 정말 멋진 남자다. 그 어려운 험로를 걸어오며.. 극

적이고 어려운 경기에서 빛을 발하는 그의 집중력과 투지.. 불과 일주일 전의 참혹한 패배

를 '완벽하게' 극복하는 승부사의 모습. 팀동료 강도경을 밟고 올라서며 전혀 가식없는 미

안함을 표시하며 상금 타면 나눠가지고 싶다던 그의 모습. 데뷔 무렵 임요환을 가장 존경

한다던 그는 지금에 와서도 임요환과의 비교를 질문하는 이에게 '아직 요환이 형한테는

턱없이 부족하죠' 라고 말하는 그의 겸손하면서도 수줍은 미소..  정말 미워하기 '어려운'

사람이다.


어제의 황제의 경기는..

과거의 그의 숙적이었던 임성춘과의 대결을 연상하게 한다. 그가 어떤 전략을 들고 허점

을 파고 든다 해도 도저히 흔들수 없는 철옹성의 단단함으로 다 막아내고 패배의 쓴잔을

안기었던 과거의 대결을 말이다. 정말.. 임성춘과 김동수, 박정석이 없었다면.. 희망봉

에서 '황제' 로의 즉위는 훨씬 빨라졌을 것이고 지금의 춘추전국 시대 대신 그의 절대왕조

가 오래 동안 계속되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잘못 본 것일 수 도 있지만...어제의 그는

패배를 어느 때보다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이었다. 가림토에 의해 전무후무한 시즌

의 완전제패가 좌절된 후.. 한동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할만큼 힘들어하던 1년 전의

모습과는 달라보였다. 1년 전의 그의 패인은 물론 가림토의 뛰어난 재능, 그리고 집념이

었다. 그러나 온게임넷을 연패하고 wcg를 석권한 후 한 사람의 게이머가 얻을 수 있는

모든 영광을 이룬 후 그가 느꼈을 '포만감' 또한 큰 원인이었다. 사실상의 결승이라는 소리

를 들었던 준결승전에서 최고의 숙적 김정민을 잡아낸 것 또한 그의 포만감과 승리에 대한

굶주림을 다소 완화시켰을 것이다. 결국 그는 나머지 4강 상대중 상대적으로 상대하기 수

월하다고 평가되었고 이전의 전적에서도 압도했던 가림토에게 정상을 내어주었다.

  어제의 그가 '비교적' 담담했던 것은..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했기 때문일 것

이다. 그리고 그 또한 상대했던 '영웅' 의 강력함을 '인정' 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일 것

이다.

어제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그는 최정상의 게이머이다. 박정석과 이윤열이 아니라면..

그와의 대결에서 50%이상의 승산을 기대받을 수 있는 게이머는 전무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제부터의 그의 길을 더욱 험난할지도 모른다. 이제 그의 천적으로 완전

히 자리잡은 토스의 새로운 영웅은 과거 그의 어느 숙적들보다 강력하다. 그리고 변방에

서 중앙무대로 서서히 진군해 들어온 황태자는 마침내 차기 시즌의 온게임넷에 입성하는

데까지 성공했다. 과거의 게이머들과 다른.. '완성형' 타입의 젊은 게이머들이 또 다른 영

웅의 탄생을 위해 달려오고 있다. 이제 많은 팬들은 '임요환 vs somebody' 의 대결이

아닌 '이윤열 vs 박정석' 의 대결을 드림매치로 꿈꾸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그의 눈부신

활약으로도 충분하고도 넘침이 있지만.. '희망' 과 '혁명' 이 아닌 왕조의 수성과 번영을

이루고자 할 그에게 앞으로의 길은 험난할 것으로 보인다. 당장 이틀 뒤에 그는 마주하기

조차 싫을 영웅과 다시 마주해야한다. 그리고 영웅을 꿈꾸는 많인 이들과의 대결이 시작된

다. 박정석과의 '문제' 는 단순한 상성관계 일뿐 그가 여전히 최강의 게이머임을 입증해야

할 시험대는 그가 낙담하고 있을 여유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비로서 이제부터.. 게이머로서, 승부사로서 그의 역량의 극한을 지켜보게 될 것

이다.


새로운 영웅의 탄생으로.. 프로토스라는 종족은 힘겹게 타 종족들과의 경쟁에서 생존하

는데 성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천로역정' 을 통해 양 대회 결승에 진출하고 최고

의 대회인 온게임넷의 패왕이 된 그의 업적은 한빛 배에서 최초의 테란 유저의 우승을

거머쥔 황제의 위용과 비교할 만 하다. 그러나 영웅의 험로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황제가 새로운 유형의 테란을 선보이며 종족의 지평을 넓힘으로.. 어둠을 걷어냈지만

프로토스라는 종족에 드리워진 어둠은.. 그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쉽게 떨치기 어려운 것

들이다. 박정석 개인은 이제 임요환 이윤열 홍진호와 함께 4대 천황으로 일컬어지며 모든

대회의 우승후보, 만년 4강예상 리스트에 들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예상을 현실화 시킬

수 있느냐의 가능성은.. 그렇게 낙관적이지 못한 것 또한 사실이다.

임테란은 분명 약점이 있는 게이머이다. 저그를 '말살' 하다시피 하는 그의 능력, 작년 후

반기에 김정민을 극복하고 이윤열이 is에 입단 한 후.. 동족싸움에서도 그는 이윤열과 함

께 최강자의 면모를 가지고 있음에도 생산력과 힘싸움에 관한한 최극상에 오르지 못한 그

에게 박정석과 같은 완성형의 토스는 '족쇄' 나 마찬가지 이다. 그러나.. 황제가 극상의

플토에게 언제든지 질 수 있는 것처럼 영웅도 극상의 저그 유저에게는 언제든지 질 수 있

다.  극상의 토스 유저, 극상의 저그 유저의 숫자는 비교 자체가 어렵다. 영웅의 출중함과

는 별개로.. 그가 선택한 종족의 특성과 상성이 영웅의 앞날에게도 떨치기 어려운 어둠을

비춘다.

축제의 여흥이 끝나기 무섭게 당장 이번 주 부터 시작될 새로운 전쟁이 이들을 불러모을

것이다. 단순한 게임을 넘어서서.. 보는 이들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이들에게 다시 한 번

경의를 표하고 싶다. 그리고 새삼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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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자마린
02/10/13 17:26
수정 아이콘
길지만 감명깊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전 황제라는 칭호를 박정석선수가 가져가 버렸으면 한답니다.
그리고, 그 황제자리를 찬탈하려는 도전자로서의 임요환선수의 모습을 또 기대합니다.
임요환선수는 그의 도전정신과 승부사기질을 보았을 때, 현 위치의 수성보다는
마치 처음 등장했을때의 그것처럼, 정복해나가는 모습이 멋져보입니다.

어쩌면 어제의 패배는 그에게 여러 춘추전국시대의 일개 제후의 자리로 물러나 앉는 비참함을 맛보여주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다시 제국을 통일하는 그날까지..
언제나 GG
02/10/13 20:24
수정 아이콘
역시 어제의 경기는... 임요환 선수도 변화해야만 한다는 걸 일깨워주었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뭐 임요환 선수가 아직 부족하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어제의 박정석 선수는 그야말로 200% 그 이상이였거든요.
임요환 선수가 생각한 박정석 선수가 아니였던거죠^^.

승부처에서의 박정석 선수는... 그 누구도 이길 수 없을 것 같습니다.
4강전에서도 괴력을 보여주더니...
그렇게 보니, 16강 재경기 때도 마지막 경기는 엄청난 경기였었다는...
02/10/13 20:48
수정 아이콘
이제 임선수도 시대에 맞게 올라운드 플레이어로 거듭 나는것이 어떨런지 이번 온게임넷이 우승확률이 그나마 젤 높았는데 이제 다음시즌이 오고 넘넘 강력한 실력있는 테란유저,플토유저,저그유저 서지훈,이윤열,박정석,박경락 선수 다 겜비씨 온게임넷 진출 임요환 선수 과연 이번시즌도 저번 시즌처럼 연승가도를 달릴수 있을까 귀추가 주목됩니다..
02/10/13 21:45
수정 아이콘
오늘 '도둑맞고 못살아' 배에서 아마추어 선수에게 로템에서의 1차전을
내어주는 모습을 보고.. 무척이나 안쓰러웠습니다. 몸서리 처질만큼 강한
상대와의 격전.. 자신감마저 잃지 않았길 바래봅니다. 화요일의 대결에서 좋은 모습 보여주길.. (아직까지 어제본 무한스톰의 잔영이 머리 속에
서 떠나질 않는군요^^)
02/10/14 01:13
수정 아이콘
저도 어저께 그 현장에 있었습니다만...
제 생각은 임요환선수의 전략이 먹히지 않는 박정석선수더군요...
임요환선수의 강점인 상대의 약점을 파고드는 칼 타이밍, 상대방의 심기를 뒤흔드는 심리전, 뛰어난 컨트롤(거의 저그유저와의 대결에서지만)등을 거의 무력화 시키더군요...
제 개인적인 생각은 박정석선수가 임요환선수가 생각했던 토스유저보다 훨씬 더 강했다는 사실이죠...
이제 임요환선수에게 남은 것은 그 강함을 압도할 수 있도록 자신의 장점을 200%로 끌어올릴 것인가 아니면 올라운드 플레이어로 거듭날 것인가 하는 선택의 문제만이 남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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