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te |
2002/05/24 02:11:04 |
Name |
최동민 |
Subject |
<잡설>2055년, 스타크래프트... |
어디인지 알 수도 없는 이곳.. 다만 괴이한 정적과 함께 녹록치 않은 기운마저 감도는 이곳.. 차라리 괴이쩍다 싶을 정도의 삼림들, 그리고 그 위로 간간히 보이는 짓푸른 하늘.. 괴테가 말하던 연옥이 이런 모습일까?
...
어디선가 물 내음이 난다. 작은 오두막도 보이는 듯 하고..
"멋진 경기였네. 자네만한 실력을 가진 이도 세상에 드물걸세."
" ... 과찬이십니다."
"음.. 겸손은 실력이 뒷받침 될 때에야 더욱 아름다운 법이거늘.. 아직 젊은 나이에 지나지 않은 자네라면.."
땀...... 조금전의 경기가 상당했다는 것은 두 사람의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만봐도 알 수 있었다. 경기... 그것은 개인과 개인의 실력의 대결을 넘어선 그 무언가이다. 적어도 그들에겐 그래보였다.
일노일소(一老一少)..... 노인은 지긋한 나이에 호리호리한 풍채였다. 언뜻봐도 무언가 무게감이 실리는 듯한 그 풍채와 곧게 다문 입술이 녹록치 않은 경력을 말해주는 듯하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적당한 풍채에 곧게 뻗은 검미(劍眉)의 젊은이는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온갖 험난함을 뚫고 올라온 노련미가 보인다. 어떠한 관계일까...?
"... 테란이란 종족은 본래 수비의 종족이었다고 할 수 있지. 내가 스타크래프트 초창기부터 암울하던 테란을 고른 이유는 단지 수비하는 재미가 있어서..란 단 한가지 이유 때문이었네.. 그러나 왠일인지 스타크래프트가 진보되어 나갈수록 테란은 수비적인 태도를 버리고 공격일변도의 자세를 취하게 되었고, 언제부터인가 그 유저층이 두터워지면서 엄청난 변초(變招)를 갈무리하게 되면서 극강의 종족이 되었네... 지금의 경우도 마찬가지. 자넨 내가아는 모든 테란 유저중 자네가 으뜸이네. 아마 세계 최고일지도 모르겠네. 자넨 온갖 변초에 능숙하지. 그래서 일견 화려하다 못해 장중한 면도 보여주고 있네. 나는 단연코 말하건데 자네 이상의 실력을 가진이는 없다고 보네."
"... 과찬이십니다."
"겸손도 지나치면 예가 아니라고 했거늘.. 허허.. 저녁이나 해결하고 하산하시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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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서기로 2055년.. 지구종말설은 이미 그 대부분이 사라지고 아직 소수의 신흥종교로 가장한 사이비집단만이 득세하는 시절.. 여섯번째 천년이 끝나고 바야흐로 일곱번째 천년이 도래한 시기.. 모든것이 윤택해졌으나 행복해졌는지는 알수 없으며 살기에 편해진 것은 확연하나 살기에 좋아진 것인지는 알 수 없는 시기...지구 공동체를 이루는 개개인 하나하나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린 시대... 여가는 사라지고 오로지 일만이 남아 기계가 사람을 부리는 시대... 20C의 사람들이 그토록 그리고 갈망하던 새로운 천년의 모습은 그랬다. 세계화의 만연은 결국 극소수의 반발계층을 소외시킨채 하나의 정부로의 탈바꿈을 주도했고, 강력한 집권체제 아래의 시민들은 효율을 빙자한 과잉업무로 몸살을 겪어야만 했다.
땅 속 짐승들을 출구를 두개 낸다던가..? 사람도 다를 바는 없었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자 서서히 반란을 꿈꾸는 세력도 등장했다. 비록 지금은 무모한 시도였다는 것이 증명되었으나 한때는 이 통합정부를 몰아붙일 정도로 강력했던 반체제 인사들.. 그들은 결국 시베리아 벌판의 형무소에서 종신으로 징역을 살고 있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예전으로의 회귀를 포기하게 되었고 서서히 현실에 안주하게 되었다. 3S란 말이 있다. 이 체제도 거기까지는 막을 수 없었는지 개개인의 자유시간에 한한 게임과 간단한 스포츠는 허용되었다. 그러나 역시 정치색을 지닌 건 허용되지 않았던 터에 고전게임 몇 가지만이 채택되었고 그중에 가장 각광을 받은 것이 스타크래프트란 게임이었다.
2055년... 스타크래프트를 기억해내는 사람은 생각보다 적었다. 그 자체가 이미 40여년전 테란의 삼족일통(三族一統)과 함께 흥미가 반감되어 버린 데에다가 때마침 스타크래프트의 산모인 블리자드에서도 더이상의 패치를 허용하지 않았기에 생겨버린 현상이었다. 패치가 더이상 나오지 않은 이유에 대해 많은 논쟁이 있었다. 그러나 정작 블리자드측에서는 함구령이 내려졌다 한다. 항간에는 그 당시의 테란족이 지금의 지구통합사령부를 본뜬 것이라고 하는 소문도 있다. 그 대략의 요지를 살펴보면 지금 당장의 인간들의 힘은 미약하나 힘을 단결할 그 어떤 매개체가 나오면 어떠한 외계종족도 물리칠 수 있다는 식의 이야기 구성을 스타크래프트가 보여주고 있는데 그 매개체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지구통합사령부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여부는 확인할 길이 없다...
스타크래프트가 대중화 된지 어느덧 5년... 이미 예전의 명성은 되찾고도 남음이 있으나 스타크래프트가 활성화되던 20세기 말엽같은 초고수들은 고된 노동에 지쳐 단축키조차 잊어버릴 정도의 노인이 되었고 혹여는 잦은 전쟁으로 인해 사망한 이들도 많았기에 테란이 그때처럼 강한 종족은 아니었다. 오히려 엄청나게 많은 컨트롤을 요하는 종족이었기에 승률은 세 종족이 공히 비슷한 편이었고, 다분히 저그쪽이 우세한 형국이었다.
그 둘도 지금 막 경기를 마친 듯했다. 이 곱상하게 늙은 노인.. 이 노인은 과거 살아있는 테란의 전설 김정민이었다. 그때의 준수하던 용모를 이제와서 다시 찾을 길은 없지만 아직도 그의 풍모는 다른이를 압도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러나 단연코 외모에서만 다가오는 경외감은 아니었다. 뭐라할까... 고색창연한 예술품을 볼 때의 외경이랄까 하는 감정.. 그는 그런 존재였다. 다시한번 스타크래프트에 테란열풍을 일으켜보려는 귀족... 그리고 그의 앞에서 태연하게 식사를 같이하는 이 청년... 이제 막 스물 한 살을 넘어가는 임요환이라는 이름의 청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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