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江에 유람선 띄운다 경향신문 | 1985.03.14
https://bre.is/m2UFtroj
1985년, 서울시는 한강종합개발사업을 마무리 지으며, 수상 이용에 대한 계획을 잡기 시작합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민자사업자를 유치하여 운영하는 유람선 계획.
약 70억원 규모의 사업이었고, 신청을 받기 전부터 유수의 기업들이 관심을 보이며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한강 유람선 사업자는 주식회사 원광과 주식회사 세모, 2개 회사로 결정되게 됩니다.
漢江에「호랑이 遊覽船」 6월부터 7개模型 운항 매일경제 | 1986.01.17
https://bre.is/UPMh2bP8
1986년 1월 17일, 두 회사의 유람선 모형이 공개되었습니다.
그런데 비교적 평범한 원광의 유람선과는 달리, 세모 측 유람선은 상당히 독특한 모양새를 하고 있었습니다.
호랑이와 사자가 각각 선수에 위치한 1, 2호, 갑판에 길이 20m 짜리 날개를 지닌 공작을 배치한 3호, 천마를 사이에 둔 채 양 쪽에서 유니콘이 옹위하는 모습의 4호까지.
모형과 시안이 공개된 이후, 상당한 반발이 일어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漢江유람선 動物모형 白紙化 매일경제 | 1986.01.21
https://bre.is/Ry7EKs2j
결국 고작 닷새만에 이 호랑이 모형 유람선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운행 백지화에 이르게 됩니다.
당시 시민들 반응은 "서울시가 한강을 어린이 놀이터로 생각하느냐", "당국의 유치한 심미안에 놀랐다", "서울에는 어린이만 사느냐" 는 등 자못 거센 반발투성이였습니다.
"동물모형 유람선 왜 헐뜯나…" 동아일보 | 1986.01.27
https://bre.is/HtFTc35M
기묘하게도 이 무렵, 언론사에는 호랑이 모형 유람선을 옹호하는 독자들의 편지가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 편지들이 여론조작을 위해 누군가에 의해 보내진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있다는 점이었죠.
우체국의 소인이 모두 같고, 주소와 발신인이 거짓된 것도 있어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염원에도 불구하고, 호랑이 모형 유람선은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漢江에 맹수는 안어울린다 경향신문 | 1986.02.04
https://bre.is/gbqGojad
당시 서울시 시정자문위원회에서 나온 전문 자문위원들의 평가 또한 상당히 혹독했기 때문입니다.
세모 측에서는 사자나 공작은 포기하더라도, 끝까지 호랑이는 지키고 싶었던 모양이었지만...
호랑이만 예외가 될 수는 없었습니다.
그나저나 세모 측에서 왜 하필 호랑이만은 꼭 지키고 싶어했을까요?
사실 그 이유가 있었습니다...
하필 호랑이 모형은 이미 만들어 놨었거든요.
그것도 엄청 큰 규모로...
결국 이 호랑이 모형은 쓰임을 잃고 한동안 방치되게 됩니다.
漢江유람선 우여곡절 끝에「새模型」공개 매일경제 | 1986.02.15
https://bre.is/GPAmKtYN
세모 측에서는 결국 새로운 디자인의 유람선을 제작해 한강 유람선 사업에 뛰어들게 됩니다.
이렇게 사업을 시작한 것까지는 좋은데...
기껏 만들어 놓은 호랑이 모형이, 이제는 그저 짐덩어리가 되고 만 게 문제였죠.
결국 1988년, 세모 측은 쓸모 없어진 호랑이 모형을 서울시에 기증합니다.
호랑이모형 유람선 果川수송싸고 고민 경향신문 | 1988.03.17
https://bre.is/XTcUK2tf
일단 기증을 받았으니 어디 놓긴 놓아야겠죠.
서울시에서는 과거 시정자문위원들의 의견을 따라, 과천 서울대공원에 이 호랑이 모형을 세워두기로 합니다.
하지만 앞서 보았다시피 워낙에 큰 모형이라, 육로로는 도저히 이동이 불가능했습니다.
결국 동작대교까지 한강을 따라 수상 이동하고, 동작대교에서 건져올려 과천으로 이동하는 플랜을 세우게 됩니다.
https://bre.is/ME95jDde
그리하여 이 기구한 호랑이 모형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강 유람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행주대교에서 동작대교까지 한강을 타고 이동한 뒤, 거기서 끌어올려져 과천 서울대공원으로.
호랑이 모형의 이야기가 여기서 끝이라면 참 좋을텐데.
아마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은 이 이야기의 끝이 고작 이렇게 끝나지 않으리라는 걸 알고 계시겠지요.
세모유람선 특혜 확인 한겨레 | 1991.08.21
https://bre.is/rXEAsSNP
1991년, 한강 유람선 사업의 특혜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원래부터 세모 측에게 사업을 넘겨주는 것이 결정되어 있었고, 사업자 선정 기준 또한 이에 따라 바뀌었습니다.
당초 단일 기업이 참여하는 사업이 될 예정이었지만, 기준상 세모가 2위에 머무르자 억지로 사업자를 둘로 늘리기까지 했죠.
이는 염보현 당시 서울시장의 지시에 의해 벌어진 것이었고, 명백한 비리 스캔들이었습니다.
이때 세모의 비리를 미리 뿌리 뽑았더라면, 어쩌면 먼훗날의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세모의 한강 유람선 사업은 1997년 사업 부도로 인해 막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1999년, 청해진해운으로 이름을 바꿔 해운 사업에 발을 들인 이들은, 우리 모두가 결코 잊지 못할, 끔찍하고 참혹한 사고를 저지르고 맙니다.
아직도 서울대공원, 동물원 앞에 호랑이 모형은 앉아있습니다.
그저 아이들을 위한, 구경거리에 불과할지도 모르는 호랑이 모형.
하지만 이 호랑이 모형에 얽힌 이야기들은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