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종교가 없다. 그렇다고 무신론자까지는 아니다. 지금은 교회를 다니지 않지만 어릴 때는 가끔 다녔다. 특히 초딩 때는 자주 다녔다. 교회 가면 재미있는 노래도 부르고 친구들도 많고, 맛있는 것도 먹어서 너무 좋았다.
고향이 시골이라 밤이 되면 모든 불이 꺼진다. 다들 전기 애끼느라 불도 끄시고 티비를 보았고, 가로등도 없어서 마을이 깜깜했다. 수요일 밤마다 어둡고 조용한 밤 거리에서 조잘대는 친구들을 만나서 동네 장로님 집에서 찬송부르고 성경공부를 했다. 또 한 여름에는 천장이 높고 조금은 썰렁한 교회 안에서 여름성경학교를 며칠씩 하고는 했었는데, 집을 떠나 교회에서 지낸다는 게 그렇게 좋을 수 가 없었다.
중학생이 되면서 교회가 별로 재미가 없어졌다. 근데 친구가 날 위해 매번 기도해준다고 성화라 몇 번씩 가기는 했었다. 고등학교 때도 친구 누나가 교회를 다녀서 누나 보러 가끔 가긴 했었다. 대학교 때도 고향 선배가 같이 수련회를 갔으면 좋겠다고 해서 따라 갔더니 밥을 안준다. 금식 수련회였던 것이다. 3박 4일동안 물과 소금만 먹었더니 마지막 날에는 기도하다가 절로 눈물이 나고 방언이 나왔던 기억이 있다.
그 수련회 이후로 더 이상 교회를 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교회는, 그 빠알간 십자가가 빛나던 그 새벽의 교회는, 여전히 나에게 좋은 이미지로 남아있다. 어릴 적 가끔 새벽기도를 나가기도 했었는데, 마을과 교회는 2키로 정도 떨어져 있어서 어린 발걸음으로 어둠 속을 한참을 걸었어야 했다. 약간 쌀쌀한 날씨에 볼은 발개지고, 도로를 홀로 걷고 있으면 양쪽 논에서 개구리들이 시끄럽게 울었다. 어둠 속에 보이는 것이라곤 저 멀리 빨갛게 빛나는 십자가 뿐이였다. 그 십자가를 쫓으며 30분을 걸어서 교회에 갔던 기억이 난다.
성탄절은 정말 특별한 날이었다. 어릴 적에 부모님은 먹고 살기 바빠서 따로 성탄절을 챙기시지 못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양말을 머리맡에 두고 잔 적도 있었지만 산타는 오지 않았다. 그래서 성탄절의 교회는 더욱이 특별했다. 친구들과 몇 주간 공연을 준비했고, 당일 날은 교회에서 선물도 많이 받았다. 찬송 캐롤은 너무 성스럽고 때론 신나기도 해서 자꾸 부르고 싶었다. 내 생일날도, 운동회날도, 성탄절만큼 즐겁지는 않았다.
요즘은 12월이 되면 항상 집 한 켠에 커다란 크리스마스 트리를 꺼내서 장신구를 한껏 달고 불을 켜놓는다. 늦게 퇴근해서 불 꺼진 집에 들어오면 트리의 불빛이, 마치 예전 그 빠알간 십자가처럼, 내 맘을 평온하게 한다. 전등을 켜지않고 잔잔한 캐롤을 틀어본다. 교회는 안 가지만, 예수님께서 탄생한 성탄절은 내게 즐겁고도 성스러운 날이다.
그나저나 이번 크리스마스 선물은 무얼 살까. 시크릿쥬쥬 메이크업 박스를 사달라는 것 같던데..5살 짜리가 무슨 화장을 한다고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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