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하니 사무실이 추웠다. 조그마한 사무실에 난방을 키고 컴퓨터 앞에 앉으니 아침에 업무 차를 몰고 외근을 나가신 여직원분께 전화가 왔다.
= 이사님, 지금 차에 소화전 모양 같은게 노랗게 불이 들어오는데 이거 그냥 가도 될까요?
엔진 체크등에 또 불이 들어 왔나보다. 두번이나 가서 고쳤는데, 세번째다.
- 예, 선생님. 몰고 가지 마시고 들어 오이소. 그게 또 그카네요. 고쳤는데 와자꾸 그카지.
여직원분이 돌아오신 뒤 오늘 일정이 있는데라며 말을 얼버무리기에 퍼뜩 고쳐 오겠습니더. 하고 키를 받아 차를 몰로 사무실을 나섰다.
벌써 두번이나 수리를 받은 제조사 직영 서비스센터로 가면서 일전에 서비스를 해준 센터 직원의 말이 떠 올랐다. 첫번째 체크등이 들어 왔을 때 엔진에는 이상이 없고 배선 문제라 했다. 수리 비용을 지불하고 차량을 타고 다닌 얼마 뒤 두번째로 엔진 체크등이 들어 와 갔더니 이번에도 엔진 문제는 아니고 배선 문제라 했다. 또 불이 들어오면 뭐라드라 부분 배선만 교체해서는 안되고 전체 다 교체를 해야 한다고 했다. 두번째는 수리비를 요구하지 않았다. 사무실로 돌아오니 차를 좀 안다는 직원들은 그런거면 엔진 체크등에 불이 들어와도 상관 없으니 돈 주고 수리 말고 그냥 타자고 했다. 그래도 겁 많은 내 성격에 내가 타는 차도 아니고 직원들이 타고 다니는 차를 그리 관리 할수가 없었다. 정말 엔진에 문제가 생겨서 엔진 체크등이 들어올 수도 있는 문제니 말이다.
서비스센터에 도착하니 입구에 그 센터 직원이 보였다. 눈 동그랗게 뜨고 왜 또 왔을까하는 식으로 보고 있는 직원에게 엔진 체크등이요, 하며 손가락을 세개 펴 보이니 아~네, 하며 찰지게 내말을 접수해 줬다. 고객 대기실에 앉아 세계문화대기행 시베리아 편을 50~60대 아저씨 두분과 함께 열심히 봤다. 아침을 굶고 10시 30분쯤되니 tv속 체험하러 간 사람이 별 맛도 없어 보이는 음식을 맛있다며 잘 먹으니 나도 배가 고파왔다. 별 도움도 안되는 원두 커피를 두잔째 먹고 있는데 센터 직원왔다. 내 옆에 친근하게 앉더니 첫번째에는 부품을 교체했었고 두번째는 원래 부품으로 재 교체를 했다고 했다. 그래서 두번째는 수리비가 없었나?????? 어찌 되었건 이번에는 원인을 모르겠으니 차를 좀 맡겨두고 가라고 한다. 한나절 정도 시험을 해보고 부품 교체가 필요하면 전화를 주겠다며. 잘 부탁한다고 이야기하고 서비스 센터에서 나왔다.
시계를 보니 10시 45분이었다. 배가 고팠고 마침 근처에 생각날 때마다 한번씩 가던 칼국수 집이 생각이 났다. 칼국수집 앞에 도착해서 영업시간을 보니 11시에 영업 시작이었다. 자리에 앉아도 직원이 오지 않았다. 시계를 보니 10시 55분이었다. 그래서 직원에게로 갔다.
- 5분 더 있다가 주문 하까요?
= 우리 사장 지금 업 슴다. 혼자 오셨슴까? 좀 기다리세요.
한국분이 아니네. 예 하고 자리 앉아 있었다. 오늘은 뭘로 함 조져 보까. 올만에 왔는데 꼽빼기에 김치만두 한판 묵어야지. 카톡으로 마누라에게 이런 좋은 소식을 알려주니 배 터진다라며 내 건강을 걱정해 주었다. 우리 마누라는 항상 날 과소평가한다.
뒷문에서 터덜 터덜 발걸음이 들리더니 매번 보던 여사장님이 뒷문으로 들어 왔다. 몸은 그대로 직진하고 머리만 우로 90도 돌려 나를 본다. 한 2초 빤히 보더니
= 혼자 왔습니꺼?
- 예, 이모님 여 꼽빼기하고 김치만두 한판 주이소.
3초 정적
= 지금은 혼자 온 사람한테 안팝니더.
내가 잘못들었나 싶었다.
- 아, 아직 장사할 시간 아입니까?
4초 정적
= 그게 아니고 이시간에는 혼자 온 사람한테 칼국수 안판다꼬요. 그카기로 했습니더.
- 예??
뭔 소린가 싶어 다시 물었다.
= 내가 그라기로 했어. 나중에 오이소, 나중에. 오후 나~~중에.
이제는 몸도 얼굴도 직진하며 손만 내쪽으로 휘휘 내젓는다. 이윽고 주방으로 사라지고 드넓은 홀에 혼자 앉아 있다. 17년도 들어 이렇게 외롭긴 처음이다.
일단 밖으로 나와서 걸으며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했다. 내 생각인데 그 사장님의 미신, 징크스, 통계인가 싶다. 혼자 온 사람으로 장사 개시하면 그날 장사가 별로였나 보다. 뭐 손님 안받는다는데 할말은 없지하며 터덜터덜 걷는데 생각을 꼽씹으니 좀 황당하고 많이 섭섭했다. 무엇보다 밥먹으러 갔다가 내쫓기니 조금 서러운 마음도 들었다. 일전에 먹으러 갔을 때는 고추가루 값이 많이 올랐다고 김치 더 달라고 하니 거절 당했던 기억까지 나니 더 섭섭했다. 네이버에 그집 상호를 검색하니 지역 맛집으로 호평 받는 걸 보니 마음이 씁쓸했다. 어디 댓글이라도 달 수 없나 싶어서 모바일 버전을 PC 버전으로 몇번이나 바꾸다가 갑자기 쪼잔한 놈 같이 생각되어 관뒀다.
터덜 터덜 길을 걸어 시장까지 와 한개 오백원 물오뎅을 세개와 김말이 한개를 먹었다. 이렇게 끝낼순 없다. 다음 블럭으로 넘어가 칼국수 집에 가서 칼제비를 주문했다. 먹다가 깍두기를 더 달라고 하니 아주머니가 처음에 줬던거 보다 더 많이 줬다. 그 순간 내 신체를 내 세번째 인격인 찌질이가 차지했다.
- 여는 XX집 보다 더 좋네요.
= 맞쩨, 내가 시장에서 장사 오래 했떼이~ 맛있쩨.
- XX집에 오늘 가띠 혼자 왔다고 칼국수 안주고 가라 크떤데요.
3초 정적.
= 에이, 요새 장사 그래하는 사람 어딘노, 삼촌아. 뭐가 섭섭해가 그런말을 하노.
- 진짠데요.
= 아이다. 내 그 사람 좀 아는데 그칼 사람이 에이다. 삼촌아, 그런말 하지마라.
- 거짓말 아입니다. 근데 좀 아시는 분입니꺼.
= 뭐 오다가다 좀 안다.
아, 이 좁은 지역사회에 동종업계 카르텔을 간과 했나 보다.
= 삼촌이 뭐가 섭섭해가 그카는지 몰라도, 없는말 하면 안된데이. 젊은 사람이.
나는 반박하는 것을 포기했다. 있는 칼제비나 다 먹고 가자.
돈을 지불하고 그 가게를 나와 찹쌀 도나스 집을 지나칠 때 힐긋 뒤를 보니 칼국수 아줌마가, 김밥집 아줌마와 호박죽 아줌마와 함께 나를 보며 수군거리는 것이 보였다.
이게 오늘 내가 칼국수 집에서 내쫓기고, 칼국수 집에서 거짓말하는 사람이 된 사연이다.
이번달은 칼국수 안묵어야겠다. 탄수화물의 폐해를 몸소 경험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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