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역사가 전쟁의 역사와 함께 하면서, 셀수도 없는 전사에 남을 희대의 전투와 불후의 명성을 떨친 명장들이 탄생했습니다. 명장이라고 하면 한니발, 칭기즈칸, 티무르, 알렉산드로스, 나폴레옹, 한신, 구스타프 아돌프 등 수 많은 사람을 언급할 수 있고, 엄청난 명성을 가지고 있는 전투라고 하면 아우스트리츠 전투, 칸나에 전투, 앙카라 전투, 파양호 대전, 스탈린그란드 전투 등 역시 셀 수도 없는 많은 전투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전투와 개인을 떠나, 어떤 경우에는 '집단' 자체가 주목 받기도 합니다. 말 그대로, '최강의 군단' 입니다. 한니발을 따라 로마를 뒤집어엎은 군단, 나폴레옹을 따라 전유럽을 굴복시킨 전설의 고참 근위대, 세계를 들쑤신 몽골 기병대와 기원전 시대에 사막을 가로질러 바이칼 호에 다다른 곽거병의 정예기마대 등 무수한 부대들이 많이 있습니다.
한국의 역사라고 전쟁의 역사와 동떨어져 있지는 않기에 수많은 명장과 전투의 기록이 있습니다. 이순신, 을지문덕, 양규, 김유신 등등에 한산도 대첩, 명량대첩, 귀주대첩, 살수대첩 등등...
그렇다면, 한국사에 길이 남을 '최강의 군단' 을 따져보면 어떤 군단이 있을까요?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이순신의 조선해군이 생각납니다. 22년간의 재위기간 동안 수많은 전투에 참여한 광개토대왕의 군대도 있겠구요. 살수대첩의 고구려군도 있긴 하겠지만, 이 경우는 국가 총력전 느낌이라 '최강의 군단' 이라는 호사가들이 언급할 주제와는 좀 동 떨어진것 같고, 차라리 당태종의 침공을 저지한 안시성의 부대들이 어떤가 싶습니다.
이런저런 부대들이 있긴 하겠지만....이들 대부분이 '국가 차원' 에서 동원한, 일종의 '국가의 힘' 이라는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는 부대라고 설명한다고 치면 약간 논외의 대상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가령 로마는 강력한 나라였고 로마군은 강력한 군대였지만, '카이사르의 10군단' 은 로마라는 나라의 힘과 로마군의 강력함을 떠나 별개로 유명합니다.
그렇다면, 일종의 '부대' 라는 성격으로서 국내 역사에서 아주 강력했던, 그리고 동시에 눈길을 끄는 요소도 많은 부대는 또 무엇이 있을까요?
개인적으론, 고려 말 이성계의 사병 집단에 한 표를 던져봅니다.
드라마 정도전에 나온, 이성계의 부대
고려 말은 국가의 병력이 전체적으로 개인의 사병집단화 되면서 수 많은 장수들이 개별적인 병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가령 정몽주와 함께 고려 최후의 충신으로 이름이 높은 최영만 하더라도 따져보면 '수천의 병력을 가진 무장 군벌'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령 다음과 같은 기록을 보면,
'瑩怒曰 吾旣分管楊廣道 豈可之他乎奫 최영이 노하여 말하기를 “나는 이미 양광도를 나누어 맡았는데 어찌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는가." 하였다.' (고려사절요 1376)
'臣麾下士數千餘人' "신의 휘하 군사가 수천이다." (고려사절요 1385)
해당 기록을 보면 최영이 "양광도는 내 관할이다." 라거나, "내 밑의 병력이 수천명이다." 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고려 말에 여러 지방에 왜구가 빈번하게 침공하자 우왕 대 고려의 지방군은 여러 재상들에게 예속되어 있었는데, 최영이 '양광도를 나누어 맡고 있다' 는 부분은 이를 언급하는 부분입니다. 그외 절제사 개인을 위해 병사들이 사역되는 경우는 허다한 경우였습니다.
이런 기록은 더 찾아보면 많이 있는데, 가령 고려 말에 여러 장수들이 관에 병력은 등록 안 시키고 개별적으로 가지고 있는데, 대부분 그런 군대는 똥군기가 만연하고 사람을 두들겨 패서 못 살게 하는데 그나마 이성계의 부대는 덜해서 많은 사병들이 "차라리 소속되려면 이성계 밑에" 를 바랬다거나, 최영이 자기 휘하 병사를 이끌고 전투에 참여했는데 전투 참여 후 그 사병들이 상을 받지 못해 불평하자 최영이 개인적으로 이들을 처벌, 우왕이 설득끝에 만류하고 상을 주었다는 식의 기록이 있습니다.
즉 고려 말에 장수들이 사병을 가지고 있는 것은 흔한 일이었습니다. 대부분은 규모가 크지 않았지만, 최영급 되는 인사 쯤 되면 역시 과장을 걸른다고 하더라도 백단위는 훨씬 넘고 4자리수에 가까운 사병을 가지고 있기도 했었구요.
보통 중앙군을 동원해야 하는 국가 입장에서 보면, 이런 사병집단화는 전투력을 약화시킨다고 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그 사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전투력을 키우는데 관심이 많거나 병력을 동원하는데 능숙하다면, 오히려 사병집단이 일반 농민군보다 훨씬 강력한 경우도 비일비재합니다. 서양의 봉건제 기사들이 가지고 있는 전투력도 그렇고, 삼국지로 비유하자면 공손찬은 따로 강력한 백마의종 부대를 육성하기도 했었죠.
그럼 이성계의 사병 집단이 동시기 다른 고려 장수들의 사병 집단과 무엇이 달랐나?
첫번째, 규모입니다. 다음은 이성계가 치룬 전투들에서, 직접적으로 사병을 동원한 게 확인되는 기록에서 써져있는 병력의 규모에 대한 언급입니다.
1361년 - 박의의 군대를 진압하며 1,500명 동원
1362년 - 개경 탈환전에서 2,000명 동원
1364년 - 최유의 군대를 격파할때 1,000여명 동원
1370년 - 1,600여명 정도가 1차 요동 원정에 동원
그 외에 사병을 동원한 기록이 딱히 없는 전투들도 있지만, 그 전투에서도 의형제이자 여진족인 '이지란' 등이 참여한 사실을 보면, 이들이 사병을 이끌고 합류했다고 보는 편이 합리적입니다. 기록을 살펴보면 이성계는 전투에 나설때마다 자기 휘하의 사병 1,000명 정도는 무리없이 동원했고, 2,000명을 동원한 사례도 있습니다. '동원한' 병력만 2,000명이고, 이 사람들이 무슨 전부 기사집단도 아니고 평소에는 생업에 종사하기도 했을테니 실제로는 더 많다고 보면 됩니다. 이성계의 사병 집단의 숫자는 3,000명 정도로 추정됩니다.
일단 규모 자체도 대단한데, 또다른 요소가 있습니다. 바로 이성계의 사병집단 중 대부분이 '정예기병' 이었다는 점입니다.
1. (공민)왕은 찬성사(贊成事) 최영(崔瑩)에게 명하여 날랜 군사[精兵]를 거느리고 안주(安州)로 빨리 가서 여러 군대를 지휘(指揮)하게 하고, 태조에게 명하여 동북면으로부터 날랜 기병[精騎] 1천 명을 거느리고 가게 하였다.
2. 태조가 비장(裨將)을 보내어 군사를 거느리고 이를 치게 했더니, 비장이 돌아와서 아뢰기를,“바위가 높고 가팔라서 말이 올라갈 수가 없습니다.”
3. 적군이 최영을 쫓으니, 최영이 패하여 달아났다. 태조가 날랜 기병[精騎]을 거느리고 바로 나아가서 백연과 합세하여 쳐서 적군을 크게 부수었다. 최영은 적군이 쓰러져 흔들림을 보고는 휘하의 군사를 거느리고 나아가서 곁에서 적군을 치니, 적군이 거의 다 죽었으며 남은 무리는 밤에 도망하였다.
4. 태조는 장수와 군사들을 돌아보고 말하기를,“말고삐를 단단히 잡고 말을 넘어지지 못하게 하라.”하였다.
5. 적군이 태조를 두서너 겹으로 포위하니, 태조는 기병 두어 명과 함께 포위를 뚫고 나갔다.
이성계가 기병을 동원한 여러 사례에 대한 기록들인데, 수 많은 전투에서 이성계가 활약하는 모습들인데 '활약' 은 과장이 있을 수 있으나, 그 활약이 대부분 '기병' 을 동원한 싸움으로 묘사되는 건 자체는 분명합니다. 즉 이성계의 싸움에 있어 기병은 떌 수 없는 요소였다는 걸 보여주는 부분인데..
가장 볼만한 기록은 첫번째 기록입니다. 첫번째 기록은 "내가 고려왕 하겠다." 며 쳐들어온 덕흥군의 침입 당시 고려 왕이었던 공민왕이 최영을 대장으로 삼아 적을 막게 하면서, 동시에 이성계에게 "동북면의 정예 기병 1천명을 이끌고 합류하라." 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고려의 왕이었던 공민왕이 이성계를 참전시키면서 유독 꼬집어 '정예기병을 합류시켜라.' 라고 하는가 하면, 그 동원하라는 기병의 숫자가 무려 1천명이나 된다는 점 등을 보면 동북면의 정예 기병이 당시에 이름이 났다고 보는 편이 합리적입니다. 앞서 이성계 사병 집단이 3천 명 정도 된다고 했는데, 게중에 동원할 수 있는 기병이 천명이 넘는다는 건 엄청난 비율입니다.
자, 이제 이성계에게 상당한 숫자의 사병이 있었고, 그 사병의 많은 숫자가 기병이었다는 점까지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 또 어떤 요소가 있을까요?
위치 비정은 역개루 앨런비님.
지도에 나온 포인트들은 여말선초 무렵, 이성계의 영향력 아래 있던 모든 여진족 부락들입니다. 이성계는 이 여진족들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어느정도냐 하면 왕이 되고 난 이후의 이성계가 북방의 조상들 무덤에 제사 좀 지내려고 하면 사방에 있던 여진족들이 "어르신이 오셨다고? 그럼 당연히 인사 하러 가야지" 하면서 백리길을 마다하고 달려오고, 평범한 여진족 부락의 사람들도 술 마시다가 얼큰히 취하면 "쓰읍!~ 어르신 있었을떄는 요 모양 요 꼴이 아니었는데~ 쓰읍!" 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을 정도입니다(...)
고려 말의 모든 여진 부족들이 이성계의 영향력 아래 있지는 않았습니다. 가령 호바투 같은 여진족은 강력한 대항세력이긴 했지만, 특별한 경우를 빼면 대다수 여진족들은 이성계의 영향력 아래 있었다고 보면 됩니다. 이를테면 이성계가 잠깐 동북면에서 자리를 비운 사이 반란을 일으킨 여진족 삼선, 삼개의 경우 이성계가 돌아오자마자 여진족 협력자들이 도망치거나 이성계 쪽으로 배신하는 바람에 반란을 실패한 적도 있었을 정도입니다.
또 이성계는 쓸만하지만 당장 세력이 곤궁한 여진족의 유력한 인물이나 부족에게 생필품을 지원해주거나 이주지를 마련해주기도 했는데, 누르하치의 조상인 맹가첩목아도 그렇게 이성계에게 도움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렇게 고려 조정의 영향력은 일절 존재하지 않고, 이성계 개인의 카리스마와 가문의 영향력 아래 모인 여진족들은 평소에는 생업에 종사하다가 이성계가 "전쟁이다! 소집!" 하면 즉시 추장이 수십에서 수백 정도의 족원들을 데리고 "충성충성충성" 하며 몰려들었습니다. 그 숫자가 대략 1,500명 이상.
이성계는 이런 여진 기병을 이끌고 전투에 나섰는데, 수 많은 전장에서, 특히 왜구를 상대로 이들의 전투력은 무시무시한 수준이었습니다.
여진군을 이끌고 왜구를 막은 사례 중 하나. 여진족 부대들이 거의 악귀나찰 같은 모습으로 왜구를 무참하게 패배시키고 무지막지하게 학살하자, 보다못한 이성계가 "적당히 해라. 적이 불쌍하다." 라며 자제를 시켰다는 기록입니다. 흠좀무...
상당한 규모의 사병, 그 사병이 대부분 기병, 그리고 그 기병이 이민족인 여진족 정예 기병.... 여기까지만 해도 캐릭터성이 상당한데, 이성계 군단의 특수성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바로 그 부대를 이끌고 있는 지휘관들 역시 굉장히 독특한 캐릭터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선 대장인 이성계. 그 본인부터가 원나라와 고려의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던 가문의 후예로 변방의 장수로서 묘한 캐릭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의형제인 이지란. 이쪽은 아예 본인이 여진족입니다. 거기다 곰 같은 체구의 이성계와 달리 '아녀자와 같이 고운' 외모를 가졌다고 하며, 이성계의 명령을 받고 여진족 부락을 순회하며 그들을 다독일만큼 여진족 관리에 있어 이성계 부대에서 핵심을 담당하는 인물이었습니다.
측근인 조영규. 이쪽은 조상 가계도 불분명하며, 아마도 평민 출신으로 추정됩니다.
아들 이방과. 이성계의 아들 중에 몇 안되는 무골로 아버지를 전투의 지근거리에서 보필했습니다.
처명. 이 사람은 아예 이성계의 적이었다가 항복한 항장으로서, 이성계가 재주를 아껴서 일부러 죽이지 않고 "너! 내 동료가 되라!" 며 살려서 귀순시켰고 그 이후로는 이성계가 전투에 나설때마다 바로 지근거리에서 보필하며 싸운 인물입니다.
조무. 이 사람은 본래 원나라 군벌인 몽골인으로서, 역시 이성계의 적이었지만 이성계가 또 "너! 내 동료가 되라!" 를 시전해서 이성계에게 귀순, 그 밑에서 계속해서 복역하면서 싸웠습니다.
김인찬, 한충. 이 두 사람은 본래 농부로서, 우연히 이성계를 만나 그에게 식사를 대접하다가 이성계에게 감복해 무턱대고 그를 따라가 보필했고, 개국후 이성계의 친위대인 의흥친군위(義興親軍衛)의 대장이 되었습니다. 밭갈다가 우연히 만난 장군 따라 친위대 대장이 된 겁니다.
먼터무(맹가첩목아) 등등의 여진족들 - 앞서 말했다시피, 이들은 이성계가 소집 명령을 내리면 곤도르의 봉화를 본 로한 기병들마냥 이성계의 곁으로 달려왔습니다.
그 외에도 수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다들 당대 고려의 중앙정치에서 아웃사이더 취급을 받을 만한 사람들로서 농부, 개족보의 정체불명인, 여진족, 몽골인들이 모두 잡다하게 섞인 다민족 혼성부대 였습니다. 아지발도에도 이성계가 쩝쩝거리며 "내 동료가 되라" 를 시전하려 했지만 잘 안됬는데, 되었으면 일본인까지 더해져서 볼만했을듯..
이성계 군단의 성격에 대해서는 대략 설명했고, 다음은 전공에 대한 부분인데... 짤로 대신하겠습니다.
이성계 휘하의 다민족 혼성 군단은 그야말로 당시 고려의 북방과 남방을 가리지 않고 쉴새없이 오고가며 싸웠습니다. 지리산 유역, 경상도 부근, 경기도, 황해도, 함경도, 평안도, 압록강을 지나 요동성을 공격하기도 했고, 여진족-몽골 군벌-왜구 등 적을 가리지 않고 싸웠습니다.
그런데 이런 전투 역시 살펴보면 흥미로운 점이 있는데...
그림출처 :
1. 박의의 반란 진압
太祖以親兵一千五百人赴之, 儀已率其黨, 逃入江界, 盡捕誅之。
태조는 친병(親兵) 1천 5백 명을 거느리고 그곳에 가니, 박의는 벌써 그 무리를 거느리고 도망하여 강계(江界)로 들어갔으나, 다 잡아서 이를 목베었다.
2. 나하추의 침입 격파
於是大戰良久, 互有勝負
이에 한참 동안 크게 싸우니, 서로 이기고 짐이 있었다.
3. 최유, 덕흥군의 침입 격파
賊分爲三隊。 太祖居中, 手下老將二人爲左右, 各當其一隊奮擊之。
적병은 3대(隊)로 나누어 오매, 태조는 가운데 있고, 수하(手下)의 늙은 장수 두 사람을 좌군(左軍)과 우군(右軍)으로 삼아, 각기 그 1대(隊)를 대적하게 하여 용기를 내어 적을 쳤다.
4. 삼선, 삼개의 난 진압
與方信、貴, 三面進攻, 大破走之, 悉復和、咸等州。 三善、三介奔于女眞, 終不返。
한방신·김귀와 함께 삼면(三面)에서 전진해 공격하여 크게 부수어 그들을 달아나게 하고 화주(和州)와 함주(咸州) 등 고을을 수복하니, 삼선과 삼개는 여진 땅으로 달아나서 마침내 돌아오지 않았다.
5. 지리산 전투
遂鞭馬互馳, 觀其地勢, 卽拔劍用刃背打馬。 時日方中, 劍光如電, 馬一躍而登, 軍士或推或攀而隨。 於是奮擊之, 賊墜崖而死者太半, 遂擊餘賊盡殲焉。
드디어 말을 채찍질하여 함께 달려가서 그 지세(地勢)를 보고는 즉시 칼을 빼어 칼등으로 말을 때리니, 이때 해가 한낮이므로 칼빛이 번개처럼 번득였다. 말이 한번에 뛰어서 오르니, 군사들이 혹은 밀고 혹은 더위잡아서 따랐다. 이에 분발하여 적군을 냅다 치니, 적군이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죽은 사람이 반수 이상이나 되었다. 마침내 남은 적군까지 쳐서 이들을 다 죽였다.
6. 황산 전투
官軍乘勝馳上山, 歡呼皷譟, 震天地, 四面崩之, 遂大破之。
적군이 말을 버리고 산으로 올라가므로, 관군(官軍)이 이긴 기세를 타서 달려 산으로 올라가서, 기뻐서 고함을 지르고 북을 치며 함성을 질러, 소리가 천지(天地)를 진동시켜 사면에서 이를 무너뜨리고 마침내 크게 쳐부수었다.
7. 호바투 격퇴
太祖縱兵破之, 胡拔都僅以身遁去。
태조가 군사를 놓아 크게 적군을 쳐부수니, 호바투는 겨우 몸을 피해 도망해 갔다.
8. 함주 전투
賊徒分崩, 官軍乘之, 呼聲動天地, 僵尸蔽野塞川, 無一人得脫者。
적의 무리가 무너지므로 관군(官軍)이 이 기세를 이용하여 고함소리가 천지를 진동하니, 넘어진 시체가 들판을 덮고 내를 막아, 한 사람도 빠져 도망한 자가 없었다.
또 이런 기병집단은 전투에 나설때의 기동력도 장난 아니었는데, 가령 요동 원정 당시에는 일일 40km를 주파하는 강행군을 펼치기도 했고, 지리산 전투 당시에는 이틀길을 하루만에 주파해 필사적으로 달려 위협에 처한 아군을 구원하고 전투의 향방을 바꾼 적도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 마지막으로 더 소개해볼만한 부분이 하나 정도 남았는데... 개인적으론 이 부분이 가장 이성계 군단의 개성적인 부분이자, "간지폭풍" 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그 대라 소리가 울려퍼진 잠시 후엔 어김없이 수천의 기마병이 전장에 도착...
1377년 해풍 전투 당시 최영이 이끄는 고려군은 왜구와 싸우다가 위기에 몰려 패퇴하는 상황까지 되었지만, 바로 그때 이성계 군단이 대라 소리와 함께 나타나 전황을 뒤집어 버린 적이 있었습니다. 여태까지 전투에서 대라 소리가 울려퍼질때마다 "아군이 왔다" 며 든든했을 최영 휘하의 부대원들이 개경 전투 당시에 대라 소리를 들었을때는 무슨 느낌이었을지...
지옥같은 난세의 여말. 전국이 전란으로 초토화되는 와중에, 동해번쩍 서해번쩍 하며 나타나는 다민족 혼성부대. 절망적인 상황을 대라 소리와 함께 뒤짚어 엎어 버리는 부대와 그 부대를 지휘하고 있는 여진족, 몽골인, 변방 출신 장수들...
적어도 캐릭터성으로 보면, 한국사 통틀어서도 손에 꼽을만한 집단이 아닌가 싶습니다. 공포의 외인구단 느낌도 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