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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7/03/21 01:43:31
Name 소로리
Subject [일반] 빚으로 님을 떠나보내고

주변 친구들이 하나둘씩 자식자랑할 나이가 되었습니다.
헌데 저는 인생진로를 잘못 밟아 이제사 다시 시작할 처지입니다.

그래도 어떻게든 이렇게 저도 드디어 인생의 수레바퀴 위에 살짝 올라왔습니다.
그렇게 바퀴를 굴리는 와중에, 문득 드는 생각.

그동안 책상과 벽을 마주한 생활 중에(그나마 결과적으로 실패한) 어찌 좋은 일이 있었겠습니까마는,
그래도 굳이 찾아보자면 하나 있긴 했습니다.

돈 빌려달라는 사람이 없더군요......

헌데 이제 어찌저찌 일을 하고 수중에 돈이 들어오니 돈을 빌려달라는 사람들이 발생합니다.
예전같으면 내가 하루에 고시식당에서 뭘 먹고 저 언덕 위 무슨 방에서 어떻게잔다는 그런 이야기를 하면 대개 퇴치되었는데,

이제는 그런 거 없고 저울질을 강요받게 됩니다.

내가 버는 돈이 지극히 초라하다 말을 하여도
세상이 어찌나 어렵고 흉흉한지 그 돈이라도 필요하다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결국 지난 십여 년 빌려주지 못한 미안함과,
그놈의 우정 운운하는 이야기와,
어쨌든 돈이 있잖아라는,

그런 생각......

빌려줄 때 상환 계획을 들어보면 대개 현란합니다.
요렇게저렇게 돈이 들어오고, 며칠까지 갚을 수 있고...

허나 독일의 슐리펜 계획이 그 화려함과 거창함에 비해 결과적으로 처참하게 박살났던 것처럼
그 계획은 절대 제대로 실현되지 않습니다.

친구와의 연락은 점점 뜸해지고,
결국 저는 그렇게 친구 하나를 잃고 맙니다.

살아가면서 그리 많은 친구를 만드는 성격이 아니기에,
이런 아픔이 매번 꽤 크게 다가옵니다.

그래서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이야기합니다.

차라리 내가 술을 사고 밥을 사지 돈은 절대 못 빌려주겠다......

허나 예외는 결국 발생하고,
그렇게 얼마 전 또 한 명의 친구를 잃고 말았습니다.


*


이따금 생각해봅니다.
왜 나한테서 돈을 빌려간 친구들은 죄다 이럴까.

돈을 빌려주기 전까지는 참 좋은 친구들이었는데,
이제는 다시는 볼 수 없는 얼굴들입니다.

술과 술로 씁쓸함을 씁쓸함으로 지워내는 동안,
좋게좋게 생각해봅니다.

그래도 돈이 없어서 빌려주고 떼인 돈은 적지 않은가.
나같은 놈한테 돈을 빌릴 정도로 곤궁하니 결국 갚지 못한게 아니겠는가.

허나

늘어난 건 뱃살이고 나이이고 불평뿐인데
줄어드는 건 친구들 뿐이라니 너무 불공평한게 세월이 아닌가 싶어 좋게좋게 생각하기가 힘이 듭니다.

과연 결혼을 할 때까지 내 뒤에 설 친구가 몇이나 남아있을지,
힘들 때 아무 말 없이 나와서 같이 맥주 한 캔으로 밤새 이야기할 친구가 남아있긴 할런지,

심란한 김에 호기롭게 산 싸구려 와인 한 병을 비우고
외지에서 홀로 불빛에 기대 끄적거리는 와중에 생각해봅니다.

......망할 놈의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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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uefake
17/03/21 01:54
수정 아이콘
..돈을 빌려주면 돈과 친구를 잃고, 빌려주지 않으면 친구를 잃는다..라는 말이 있었는데, 상황에 처해보면 빌려주지 않기도 어렵죠..
돈이 뭔지.
사악군
17/03/21 01:58
수정 아이콘
돈을 빌려주면 친구는 할부(?)로 잃고 빌려주지 않으연 바로 잃어서.. 잃기 전까지의 기간동안의 유예기간을 위해 돈을 낸다..고 하면 넘 정없을까요. 흐흐
cluefake
17/03/21 02:11
수정 아이콘
뭐어..저희 집도 친척들에게 빌린 돈으로 회생해서 갚고 살림 펴진 후엔 다시 좀 빌려주거나 그냥 주거나 했으니 생각해보면 뭐 잘 굴러갈수도 있겠죠 뭐. 그게 엄청 드무니 그렇지만...
17/03/21 07:50
수정 아이콘
빌려주지 않아서 잃을 친구면 빨리 잃는게 낫습니다.
sen vastaan
17/03/21 02:09
수정 아이콘
뭐 빚 갚는 중이라고 하면 되려나요. 저도 빌려달라는 사람이 없는 상황이라 잘 모르겠지만;
17/03/21 02:10
수정 아이콘
매정한 이야기지만, '이렇게 적은 돈을 빌려달라는' 친구라면, 그 적은 돈도 못 갚을 확률이 제법 된다는 이야기지요. 돌려받지 못한다는 기본 가정을 세우고 빌려주는 것이 맞지 싶습니다.
호리 미오나
17/03/21 02:57
수정 아이콘
맞는 말씀이죠.
전에 직장도 작은 곳이긴 해도 다니는 학교 후배가 40만원만 빌려달라고 전화가 왔더군요.
저랑 그리 친하진 않은데 접점만(학교, 과, 농구팀 등등) 많던 친구라 오죽하면 나한테까지 전화했겠냐 싶기도 하고
근데 저도 사정이 넉넉치 않아 "그럼 10만원은 빌려줄게. 당장 40은 나도 좀 어렵다. 30은 다른데 찾아봐"라고 했는데...
다음달 중에 갚겠다더니 아예 연락이 끊기더군요 흐. 직장도 그만두고...
그떄 처음 깨달았습니다. 핸드폰 번호 바뀌니 연락할 방법이 없더라구요.
파라돌
17/03/21 03:39
수정 아이콘
돈을 종종 빌려주는데 제때 갚으리란 생각 전혀 안하고 넉넉해질때쯤 갚으라고 합니다.
넉넉한데 안갚으면 친구가 아니라 생각하고 있는데
아직은 별 문제없네요.
산울림
17/03/21 04:04
수정 아이콘
그 정도로 소액이라면 상황자체가 갚을래야 갚을수 없을정도로 처절할수도 있어서...
음주갈매기
17/03/21 05:02
수정 아이콘
몇십만원정도의 돈을 빌리는건 그만큼 절박할수도 있고

딱 그돈만 필요할수도 있는거죠..

전 100만원 이하는 받을생각 안하고 빌려줍니다.

빌려줄때 갚으라는 말도 안하지만 반대로 갚지말라는 말도 안하지요.

사실 돈몇푼에 정리한 인간관계도 꽤있고

잘썻다면서 갚고 저도 급할때 소액으로 빌려쓰고 갚은적도 있습니다.

그냥 인간관계 정리했다 생각하세요.

돈 몇푼에 연락끈으면 그거 아니더라도 정리될 인연입니다.
솔로12년차
17/03/21 07:08
수정 아이콘
개인적으로는 오래 알고 지냈지만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딱히 상환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200이 넘는 큰 돈을 빌렸었던 경험이 있어서. 1년이 넘게 흐른 후에야 갚을 수 있었구요. 다시 생각해도 참 고마운 사람입니다.
이쥴레이
17/03/21 08:40
수정 아이콘
https://cdn.pgr21.com/pb/pb.php?id=freedom&no=17815

약간 반대되는 돈을 빌리는 입장에서 글쓴 과거가 있었네요. 하하하...
그리움 그 뒤
17/03/21 10:36
수정 아이콘
제 경험상 여지껏 돈빌려준 친구는 예외없이 다 지금 안보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알아서들 연락도 없고 연락해도 안받더군요. 심지어 제가 돈이 없어 어머니에게 돈을 융통해서 빌려준 적도 있었는데...
당연히 빌려준 돈은 못받았구요.

돈을 안 빌려주면 싫은 소리를 들을 수도 있겠지만 그 친구를 잃을 확률은 반반입니다.
하지만 돈을 빌려주면 훨씬 높은 확률로 그 친구를 잃을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돈을 빌려주려거든 못받을 각오를 하고 빌려주거나 아니면 돈을 아예 안빌려주는게 낫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모지후
17/03/21 11:20
수정 아이콘
부모님이 저한테 자주 하시는 말씀이 '절친한테도 돈 빌려주지 마라. 차라리 욕먹어라.' 였습니다.
저야 백수겸취준생이라 빌려줄 일은 없는데, 주변을 바라보니 부모님 말씀이 맞더군요...
17/03/21 11:37
수정 아이콘
얼마전에 저도 친구가 삼백정도 돈을 빌려 달라고 해서 처음엔 장난인줄 알고 장난식으로 받아치다가 진지하게 대출이라도 내서 빌려 줄 것인지 물어봤습니다. 그 과정에서 제가 격이 없는 사이라 생각했고 안 좋은 일인가 걱정되어 약간 화를 내며 꼬치 꼬치 물어본게 친구 자존심을 크게 상하게 한 모양입니다. 결과적으로 친구가 다른이에게 빌린다며 약간 안좋게 통화가 끊났고 바로 카톡으로 내가 그런 뜻이 아니였음을 밝히며 알아보고 없다면 다시 이야기하면 빌려 주겠다 보냈습니다. 친구는 괜찮다며 다른 친구에게 빌렸고 마음 상한것도 없다고 했지만 어쩐지 관계가 서먹해졌네요. 힘들 때 서로 의지하며 이겨내왔고 평소에도 일주일에 3~4회 통화하며 시덥잖은 얘기를 나누던 친구 였는데 이제는 카톡 한통 주고 받는게 쉽지 않아졌습니다. 먼저 연락도 많이 주던 친군데 이제는 제가 연락하면 받아 주는 정도네요.
결과적으로 제가 후회가 더 많이 되네요. 돈 삼백 술 사줘도 아깝지 않은 친군데. 친구 자존심 상하게 하고 돈도 못 빌려줬고. 요즘은 미안하고 후회가 많이 됩니다. 돈 삼백 때문에 이 친구와 소원해진게 너무 마음이 아프네요.
Grateful Days~
17/03/21 13:11
수정 아이콘
안 받아도 되겠다는 정도의 돈. 줘도 된다는정도의 돈.. 이거 그냥 댓가라 생각하겠다는 심정 아니면 빌려주지 마세요.

안 갚아도 할수 없지.. 내가 사람을 잘못본거야.. 하면서 바로 잊어버려야합니다. 내가 상처를 가장 덜 받는 방법으로 살아야죠. ㅠ.ㅠ
러블세가족
17/03/21 14:31
수정 아이콘
전 그렇게 친한사이면 돈 빌려달라고 하면 안된다고 생각을 해서.. 내가 그렇게 얘기함으로써 곤란해질 상대방을 생각하면 그런 얘기를 하면 안되죠..
신선미 Faker
17/03/22 10:09
수정 아이콘
진짜 자신을 친구라고 생각한다면 절대 돈 빌려달라는 말 함부로 못합니다. 설사 말했다 하더라도 굉장히 미안한 마음이 들고 설사 자신이 거부한다 하더라도 그러한 이유를 알기때문에 납득하는 사람이 많죠. 오히려 화내고 성낸다? 그럼 그쪽에서 딱 그런 관계인 사람으로 본 겁니다. 저도 비슷한건아니지만 무더기로 잃었던 친구들이 있긴한데 별 생각안합니다. 오히려 그들이 나를 이런 식으로 생각했구나 합니다.

사람마다 친구의 가치관과 어디까지 받아들이는 선이냐에 따라서 다르지만, 현재까지 제가 다시 만들고 진중하게 만나는 친구들은 그런 사람이 거의 없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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