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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7/03/06 01:34:56
Name 신불해
Subject [일반] 최초로 삼국지를 본 서양인들, 그들의 눈에는 어떻게 보였을까


동아시아 고전 문학 소설로 가장 널리 사랑 받고 알려진 작품은 말할 것도 없이 '삼국지연의' 입니다. 지난 역사를 통틀어 셀 수도 없는 사람들이 이 불후의 명작을 읽고, 읽고, 또 읽었습니다. 이 소설은 예전에도 가장 인기 있었고, 지금도 가장 인기 있는 소설입니다. 



국내에서 이문열 삼국지가 2천만부 팔렸으며, 황석영 삼국지가 200만부 정도 팔린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 두 명만 합쳐도 2300만부인데 무수한 판본을 모조리 합치면 정말 어마어마하게 팔렸을 겁니다. 일본에서도 요시카와 에이지 삼국지가 대히트를 했고, 중국에서야 몇 세기에 걸쳐 수 많은 판본이 팔렸습니다.



말하자면 삼국지연의는 중국을 대표하는 소설이자, 동아시아 역사를 대표하는 소설 중에 하나라고 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궁금할 수 있습니다. 이 소설은 서양인들의 눈에 어떻게 비쳤을까?



소설 '삼국지연의' 를 서양에 소개한 최초의 사람들은 바로 '선교사' 입니다. 아직 아편전쟁도 일어나기 이전, 청조의 관할 아래 철저하게 통제된 중국과의 교역을 뚫기 위해 영국 동인도 회사는 안간힘을 썼고, 그런 동인도 회사의 협조인으로 선교사들이 중국에 와 선교활동을 벌였습니다. 



때문에 뭐 이런 선교사들은 일종의 '제국주의 앞잡이' 로 불리며 비난 받기도 하고 사실 크게 틀린 말도 아니긴 하지만, 어쨌거나 그 제국주의 앞잡이 노릇을 하건 선교 활동을 하려고 하건, 그런 일을 하려면 현지인과 교섭해야 하고 현지인과 교섭하려면 그 말을 배워야 하며, 그 말을 배우고 대화를 나누려고 하면 현지인의 문화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때문에 아직 청나라가 완전히 개방되지 않았던 19세기 초중반, 이들만큼 중국과 중국 문화를 서양에 소개했던 사람들도 없다시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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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버트 모리슨(Robert Morrison).




 그런 19세기의 선교사들 가운데 로버트 모리슨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영국에서 신학 공부 하고 중국으로 선교 활동을 가고 싶었던 그는, 당시만 해도 동인도회사가 이권 보호 목적인지 선교사가 배 타고 중국에 가는 것을 제한하자 미국 쪽 루트를 이용해 대외무역이 제한적으로 허용되던 광저우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한동안 선교사라는것도 속이고 현지에서 지식을 얻고 공부하다가, 나중에 상황이 호전되자 동인도회사의 통역으로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이 모리슨은 꽤 유명한 사람인데, 다름아닌 '성경' 의 중국어 완역본을 만든 사람 입니다. 그전까지 선교사들의 뜬구름 잡는 소리로 여겼던 중국 내 포교 활동은 성경이 번역되어 중국인들이 읽을 수 있게 되자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됩니다. 특히, 모리슨에게 선교를 받고 중국인으로서 최초의 선교사가 된 양아발(梁阿發)이 짓고 모리슨이 감수한 권세양언(勸世良言)이라는 소책자는 훗날 태평천국의 난을 일으킨 홍수전이 입수해서 공부, 그 사상을 바탕으로 태평천국을 일으키는 나비효과를 만들기도 합니다.




 하여튼... 이 모리슨은 중국 내에 이주한 선교사이자 중국과 서양의 접촉을 꾀하는 사람으로서, 가장 합리적인 저술활동에 나섭니다. 바로 서양인들을 위한 중국어 교육서를 만든 겁니다. 말을 알아야 접촉을 하던가 알게 아닌가...



 그래서 모리슨이 저술한 책이 화양자전(華英字典 A Dictionary of the Chinese Language)이라는 책입니다. 이 책은 4만여자의 한자를 설명하고, 동시에 다음절어와 성어(成語) 역시 소개 했습니다. 모리슨은 이 책에서 다름 아닌 '제갈 공명' 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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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로 서양에 소개된 삼국지 인물, 제갈량



KUNG-MING ( __ 明) or Choo-kŏ-leang (諸葛亮) lived in the closeof the reign of Hëen-te 獻帝 (A.D. 226), the last Emperor of theHan dynasty; and he took a conspicuous part in the civil wars ofthe San-kwŏ 三國 which succeeded the overthrow of that family,after swaying the sceptre of China 400 years. Kung-ming was anative of the Lang-yay 琅琊 mountains, on the sea coast ofShan-tung province.



제갈량이 후한 말에 낭야에서 태어나 삼국이 전쟁을 벌이던 시대에 큰 역할을 했다는 설명입니다. 제갈량에 대한 설명 이후, 모리슨은 이 제갈량이 활동한 시대를 독자들에게 이해하기 위해 '삼국지' 의 배경이 되는 시대를 추가로 언급합니다.



모리슨은 강목발명(綱目發明)을 인용하여 후한 말엽의 대체적인 상황을 설명하고, 역대통 기표(歷代統 紀表)라는 책을 인용하여 무능한 황제 영제와 십상시의 전횡에 관한 설명을 합니다. 그리고 이십이사(二十一史)에 포함된 삼국지 본문을 직접 인용하여 동탁이 세력을 잡았다가 여포에게 살해당하는 부분을 언급했습니다.



이후 단락에서 모리슨은 조조를 언급하며 '중국의 나폴레옹' 이라고 소개했고, 유비 관우 장비의 도원결의와 다시 돌아와 제갈량이 이들을 위해 한 일을 설명했습니다.



 이 모리슨이 중국 문헌에 굉장히 해박했다는 점이 나오는데... 모리슨은 제갈량을 언급하면서 "한 손에 부채를, 한 손에 손수건을" 들었다는 보통 생각하는 제갈량의 스탠다드한 모습을 이야기하며 이렇게 설명합니다.



 "아마도 이 부분은 '역사소설' 삼국지(San-kwŏ-che, an historical novel of that period)에서 나온 것이며, 같은 이름의 엄중한 사서(the grave histories) 와는 관련이 없다. 실제 제갈량이 남긴 문장은 24권 짜리 제갈량집(諸葛亮集)에 전해지고 있다."



 제갈량집은 진수의 정사 삼국지에 배송지가 역을 달때 사용한 제갈량의 저서로, 청나라 무렵에는 이미 서술된지 오래였습니다. 모리슨이 보존된 제갈량집을 발견해서 읽는, 중국 사학계가 총공그깽 할 만한 일을 했을리는 만무하기에 모리슨이 제갈량집의 존재를 안다는건, 정사 삼국지를 읽었다는 이야기가 되고, 실제로 '정사 삼국지' 와 '삼국지연의' 를 완벽하게 구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모리슨이 굳이 삼국지를 제갈량을 통해 소개한 것은, 종교인이었던 모리슨이 제갈량이 하늘과 교감하고 나라를 위해 눈물 흘리는 모습 등에 감동 받아서 그런 것 같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하간, 이 모리슨은 소설 '삼국지연의' 의 존재를 처음으로 언급하여 알리긴 했지만, 통속소설을 부정하던 종교인이라 '비평' 자체는 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언급은 했다' 이상의 의미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삼국지연의의 존재가 모리슨을 통해 처음 알려진 것이 1815년 입니다. 그렇다면 최초의 비평은 언제였을까? 바로 1833년까지 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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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프리데릭 어거스트 귀츨라프(Karl Friedrich August Gützlaff)




삼국지연의에 대한 최초의 비평을 남긴 사람은 폴란드 계 유대인 출신의 독일인이었던 귀츨라프 입니다. 이 귀츨라프는 “목사이면서 해적, 협잡꾼이면서 천재, 박애주의자이면서 사기꾼" 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는데, 여하간 행적 자체는 꽤 신출귀몰했던 사람입니다. 대략의 내력은 다음과 같습니다. 



 어린 시절 학문에 재능이 있었으나 어려운 가정 환경 탓에 공부는 포기하고 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하다가, 마침 근처로 행차한 프로이센 왕 빌헬름 3세에게 장편시를 보냈고, 이 장편시를 본 빌헬름 3세가 "아니, 이런 시를 쓰는 사람이 있다니!" 하고 감동해서 왕립 장학생으로 베를린의 학교에 입학, 여기서 6개국의 외국어를 익히고 20대에 인도네시아에 선교사로 파견됩니다.



 그리고 위에 소개한 모리슨이 사망한 이후 통역을 대신 맡고, 아편 중개상의 통역도 하고, 아편전쟁 시기 교섭까지 나서고, 홍콩에 중국인 선교사를 위한 교육 시설을 세웠다가, 일본에도 갔다가 거부 당해서 돌아오고, 아편 파는 배 타고 중국 해안을 돌아다니다가 폭풍우에 휩쓸려 충청남도 홍주에 도착 하기도 합니다. 졸지에 '한국 땅을 밞은 최초의 개신교 선도사' 가 된 그는 여기서 성경을 가지고 한국에서 선교하려다가 일이 잘 안되자, 기왕 온 김에 주민에게 감자 심는 법을 알려주고 떠나는 등, 여러모로 괴짜같은 행보를 보였습니다.



 
 때문에 굳이 무슨 삼국지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귀츨라프는 꽤 유명한 인물이며, 특히 국내 교회사, 선교사를 이야기할때도 꼭 한번쯤 언급되는 역사적 인물입니다. 찾아보니 귀츨라프를 다루는 책만 국내에 한 3권은 되는듯...





 아무튼 다시 본래 주제로 돌아와서, 1833년 귀츨라프는 여행 중에 보타사의 한 승려로부터 향산보권(香山寶卷)이라는 책을 받습니다. 이 향산보권은 불교적 성격의 문학작품이었는데 이걸 본 귀츨라프는 "아, 그렇지! 선교하려면 차라리 통속문학을 이용하는 편이 차라리 효과가 좋겠구나!" 라고 깨닫고 중국 고전 문학을 탐독하기 시작합니다.



 귀츨라프는 막 중국학에 입문하려는 사람들에게 "역사소설은 정말 재미있으니 초심자는 경전보다는 소설을 통해 먼저 공부하자." 라는 입장을 견지하며 여러 편의 중국 소설을 서평했는데, 게중에서 역사물 중에 가장 높은 평가를 내린게 다름아닌 삼국지연의 였습니다.



 귀츨라프는 삼국지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남녀 노소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중국인들은 삼국지연의가 중국 문학에서 가장 재미난 소설이며 문체, 언어, 사건을 서술하는 방식이 다른 소설과 비교할 바 없을 정도로 훌륭하다고 여긴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중국 문학에서 삼국지연의만큼 인기 있는 소설은 없다. 중국 문학 중 가장 재밌다고 알려진 십재자서(十才子書) 중에서도 삼국지는 가장 으뜸이다. 삼국지의 훌륭함을 부정하는 것은, 호메루스가 시인이 아니고 타키투스가 역사가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나 진배 없는 짓이다."


 
 귀츨라프는 삼국지연의에 대해 그야말로 극찬 하며, 나관중을 일리아스, 오디세이아를 호메루스와 로마 역사가 타키투스에 비견합니다. 뒤에 언급하지만, 귀츨라프는 나관중을 직접적으로 '문학의 천재' 라고 표현합니다. 다만 귀츨라프가 조금 잘못 이해한 부분이 있는데,



 "이 소설이 14세기 전에 출판되었다는 점을 생각하면(published nearly fourteen centuries ago), 일찌기 중국에서 가히 문학의 천재가 태어났다는 것을 난 인정 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그 이후로 여기에 필적할 사람이 나오지 않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귀츨라프는 모리슨과는 달리 '정사 삼국지' 와 '삼국지연의' 를 잘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삼국지연의가 소설이라는것 자체는 분명하게 이해하고 있긴 한데, 삼국지연의를 정사 삼국지가 쓰여진 14세기 전에 쓰여진 것으로 오해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정사 삼국지는 귀츨라프의 시대로부터도 14세기 보다 이전에 쓰여졌습니다. 아마도 귀츨라프는 14세기 전에 삼국지에 주석을 단 '배송지' 를 실제 삼국지연의의 작가로 착각한 듯 합니다. 



아무튼 그는 삼국지에 대해 극찬을 한 뒤, 자신의 주장에 힘을 실기 위해서인지 중국 내 삼국지의 인기에 대해 다시 한번 언급합니다.



 "책의 분량이 24권 이상이지만 이 책을 최소한 한 번 이상 읽지 않은 사람은 한명도 없다. 심지어 글을 모르는 사람조차 삼국지 얘기를 모르면 치욕으로 여길 정도다. 우리는 종종 삼국지에 재미가 들려서 영웅들을 공적을 열번씩이나 말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했다. 중국인들의 시와 산문은 삼국지에 관한 전고로 더욱 흥미로워지고 개인의 집과 사원에는 삼국지 관련 그림들이 걸려 있다. 심지어, 당시 몇몇 뛰어난 인물들은 신격화 되어 있으며 지금까지 숭배의 대상이다."



 삼국지의 인기에 대해 언급하는 작품 이해를 돕기 위해 책이 쓰여진 환경을 설명합니다.



 "중국은 공자 이래로 완비된 정치 체제를 활용하면서 진 황제(Che hwangte) 가 기원전 3세기에 여러 국가를 통일하여 봉건 제도(feudal system)를 종식 시켰을 때 미개한 상태에서 빠져 나왔다. 이후 많은 서적들이 사라졌지만 진시황제는 고전을 읽는 것보다 좀 더 중요한 국가사에 관심을 기울인 것으로 보인다."


 "기원전 202년 한(漢)의 왕(유방)이 왕권을 차지하고 고전 문학(classical lore)을 후원하면서 문학이 다시 발전하였고, 학자들은 최고의 대접을 받았다. 다음으로 정사가 편찬되었고 서구에서의 우리 시대에서와 같이 글쓰기에 대한 마니아들이 출현하였다. 아우구스트의 시대(Augustan epoch)에 해당하는 이 시기에 삼국지의 이야기들(episodes)이 형성되었다. 어떤 천재가 허구와 역사적 사실을 섞어서 예술적으로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삼국지는 170년부터 317년까지 진행된 삼국 시대를 충실하게 보여준다."




 귀츨라프는 다시 한번 (그가 착각하는) 나관중에 대해 또다시 '천재' 라는 표현을 쓰며 극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이후의 내용은 길게 줄거리를 서술하는 식입니다. 



 이 줄거리 서술에서도 또 묘한 부분이 있는데, 소설에서 (재해석되지 않은)고전적인 영웅에 가까운 유비에 대해서는 딱히 쓸 말이 많지 않은지 귀츨라프는 간략하게 언급합니다. 대신, 고전 소설에서는 극히 드물게 지극히 입체적인 인물로 묘사된 삼국지연의의 조조에 대해서 포커스를 맞추며, 조조를 프랑스 대혁명 시기의 인물인 '당통' 과 비교했습니다. 귀츨라프는 조조가 자신이 도망자였을때 돌봐준 여백사 가족을 살해하는 등 잔인하고 이중적인 모습이 있었지만, 목적 자체는 '애국적' 이었기에 당통처럼 사랑받았다고 묘사했습니다.



 다만 귀츨라프는 삼국지를 극찬하면서도 어느정도의 비판 역시 남겼습니다.



 "이토록 가장 완벽한 책에서도 약간의 흠이 발견된다. 독자들은 우리들 서양 오랑캐의 견해가 한(Han)의 자손들과 견해가 조금은 다른 것을 부디 용서해 주기 바란다."



 "전쟁의 세부묘사는 무척 지루하고 동어반복으로 가득 차 있다. 이러한 내용은 간단히 몇 마디로 끝낼 수 있다. 40,000명에서 100,000명에 이르는 군사들이 순식간에 모여서 전장에 나간다. 이들이 며칠 만에 무장하고 훈련을 받고 몇 달치의 군량으로 지급 받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는 우리가 풀 수 없는 문제이다. 현재 제국에서 수많은 군사를 세는 방식을 고려해 볼 때, 어쩌면 몇 만 명이라는 인원을 몇 백 명으로 보아야 할 수도 있다."



 귀츨라프는 전쟁의 묘사가 굉장히 천편일률적이고, 대부분의 전쟁 장면이 장수의 이름만 다르지 거의 똑같다고 지적합니다. 동시에, '병사들 숫자가 너무 과장이 심한거 아니냐' '보급은 어떻게 하냐' '몇만 명을 몇백명으로 줄여서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등 삼국지연의를 통해 삼국지를 좀 알게 된 초보 독자와 똑같은 의문을 표시합니다.



 보통 여기서 일반적인 독자는 "뻥구라 심한 중국넘들" 혹은 "소설은 그렇고, 정사에서는?" 이 갈림길에 서는데, 이때의 귀츨라프는 전자 정도에 머무른듯 싶습니다. 여기서 또 재밌는 언급이 있는데, "현재 제국에서 군사를 세는 방식을 고려할때 몇만명을 몇백명으로 읽어야 할 것 같다." 라고 했는데, 이 말인즉은 당시 기강이 땅에 떨어진 청나라 군대는 대충 몇 백명 있으면 몇만명 있다고 사기쳐서 불렀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뜬금없이 디스 당한 청나라 군...




 서평은 다음과 같은 언급으로 마무리 됩니다.



 "작품의 문체는 역사 서술(historical writings)을 위한 전범이라고 할 수 있 지만 모든 종류의 글쓰기에 해당하지는 않는다. 자연에 대한 정밀 묘사는 같은 것은 소설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편이다. 왜냐하면, 이 소설은 당시 살았던 사람들의 모든 열정 (passion), 그리고 야비함(vice)에 관한 기록이기 때문이다. 똑같은 구절은 종종 반복해서 등장한다. 작품의 문장은 풍성함(copiousness)보다 간결함 (terseness)이 돋보인다. 문장들은 단정하게 정련되어 있고 특히 운율이 거의 모든 곳에서도 잘 지켜진다. 그러나 작가는 [이와 같이] 부드럽고 잘 다듬어진 표현(phraseology)보다 독창적인 생각을 제시하는 것에 주안을 두고 있다. 바로 이 점에서 일반적인 중국의 작가들과 다르다."




 귀츨라프는 삼국지가 역사 서술의 전범이지만 그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간 사람들의 치적과 행동에 대한 기록이기 때문에 자연묘사가 주를 이루는 글쓰기와는 관련이 없다고 설명하며, 문장은 간결하고 정렬되어 있으며 동시에 잘 다듬어진 표현 하나하나에 집착하는 다른 중국인 작가들의 글과는 달리 방대하고 독창적인 내용을 가지고 있다고 평했습니다.




 귀츨라프가 삼국지를 정말 인상깊게 보긴 했는지, 그는 다른 글에서도 삼국지를 언급했습니다. China Opened이라는 저서에서 귀츨라프는 문학을 역사 서(Historical writings), 철학서(Philosophical writings), 시가(Poetry), 산문(Miscellaneous writings), 소설(Works of fiction)로 구분한뒤, 역사서의 경우 사람들과 연도가 워낙 많아 그냥 있으면 흥미를 끌기 어렵기 때문에 일찍이 중국 문인들이 역사 소설로 역사를 채색했다고 하면서, 삼국지를 예로 들어 이런 시도를 높이 평가했습니다.



 "소설이 묘사하고 있는 삼국지 시대는 실제로 짧다. 하지만 당시의 상황을 현장감 있게 전달 해 준다. …… 우리는 이러한 책을 통해 어쩔 떄는 궁궐의 비밀스러운 금역으로 인도되고, 어쩔때는 소박한 가족들의 마음 속으로 들어 간다. 허구인 것은 심하게 과장되어서 서사[역사]와 이야기 사이를 구분 짓 는 것은 쉬운 일이다. 각 왕조대별로 이러한 성격을 가진 작품들이 있다. 모든 위대한 사람은 전기 작가가 있고 모든 대재난에는 이를 이야기로 만들어 내 는 사람이 있다. 비록 대부분은 쓰레기 같은 것이지만 다양한 종류의 최고의 작품들이 있어서 훌륭한 중국 역사를 쓰기 원하는 외국 사람은 읽어야 한다. 그것들을 모두 나열하려면 수 페이지가 필요할 것이다."



 
그 외에 밀느(William Charles Milne) 같은 사람은 삼국지연의를 어느 유럽 소설 못지 않게 훌륭하다고 소개했고, 와일리(Alexander Wylie)는 중국 소설을 소개하며 삼국지를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비중 있게 소개 했습니다. 여러모로 고평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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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리와 밀느.






 요약.



 1. 삼국지연의가 최초로 서양에 알려진 것은 1811년. 이때는 이름과 '무슨 책이다' 라는 정도만 알려졌다.

 2. 1833년 최초로 비평이 나왔다. 여러모로 극찬이었다.

 3. 19세기 다른 서양인들 대부분도 호평함.

 4. 삼국지 처음 읽은 요즘 초중학생들 비슷하게 "숫자 과장 아니냐" 는 반응 보인 서양인들.

 5. '문학의 천재' 라는 극찬 및 '타키투스' '호메루스' 에 비견된 나관중. 다만 정작 그 평을 내린 사람은 나관중을 배송지로 오해함.






참초 : 
19세기 전반기 유럽 선교사들의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소개 방식과 서술 태도 연구 -모리슨과 구츨라프를 중심으로. 신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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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뭐랬
17/03/06 02:07
수정 아이콘
삼국지 좋아하면서 왜 이런게 안궁금했을까 나는..
말다했죠
17/03/06 02:35
수정 아이콘
선교사들이 사서삼경을 번역하기 시작한 것이 1840년, 완료는 1860년 즈음에 되었다고 알고 있는데 번역은 아니지만 삼국지 비평은 10여년이나 일찍 나왔으니 역시 갓양인들이 봐도 사서삼경보다 삼국지가 더 재미있었나보군요.
됍늅이
17/03/06 07:41
수정 아이콘
원래 전공서적이랑 소설책의 재미는 비교불가...
홍승식
17/03/06 12:59
수정 아이콘
우리 조상님들도 서당에서 애들에겐 정사 삼국지 읽으라하고 뒤에서 훈장님은 연의 읽으셨다죠. 크크크
세인트루이스
17/03/06 02:48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조선소일용직노동자
17/03/06 03:00
수정 아이콘
좋은글 감사합니다
아틸라
17/03/06 03:12
수정 아이콘
흥미로운 주제라서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역시 서양인들 중에도 삼국지의 재미를 깨달은 사람들이 있었군요.
저 역시 삼국지를 처음 읽었을 때 손에서 놓지 못하여 헤어나오지 못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볼때마다 다른 재미가 튀어나오는 책이었죠. 그 때문에 삼국지 캐릭터가 나온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진삼같은 코에이 게임들에 손을 대고, 삼국지 캐릭터 아니었으면 손도 안댔을 수준인 조조전 온라인까지 빠지고.. 흑흑

여담입니다만 요즘은 삼국지를 안읽어서 잘 모르는 아이들이 많다고 하더군요. 삼국지보다 더 재밌는 것이 많아져서 그런걸까요.. (이렇게 쓰고나니 제 댓글에서 뭔가 40대 아재스러운 분위기가 나는데 아직 예비군입니다 크크크)
인간흑인대머리남캐
17/03/06 03:26
수정 아이콘
천만부 넘개팔린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급으로 잘뽑아내면 많아질지도 모릅니당..
톰슨가젤연탄구이
17/03/06 04:20
수정 아이콘
그점에서는 요코야마 미쓰테루씨가 그린 삼국지가 있긴한데, 접근성이 좀...
됍늅이
17/03/06 07:42
수정 아이콘
네이버 삼국전투기가 딱..이긴 한데 또 이건 너무 덕후느낌이 나는 면이 있네요
홍승식
17/03/06 13:00
수정 아이콘
삼국전투기는 입문서로는 별로 추천하고 싶진 않죠.
고우영삼국지 정도가 좋은데 그건 또 애들이 보기엔 좀...
아점화한틱
17/03/06 08:00
수정 아이콘
전 60권 전략삼국지를 한 20여번은 읽었던것같습니다 크크. 제 여친도 그렇고 요즘 어린애들은 삼국지 잘 모르는거같더군요... 삼국지라하니깐 '아 그 유비관우장비나오고 싸우는거!?' 이러던...
Nasty breaking B
17/03/06 03:26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신선한 주제네요.
톰슨가젤연탄구이
17/03/06 04:21
수정 아이콘
한번쯤 서양 개발사에서 만든 삼국지 주제의 게임을 보고싶기도 하네요. 예전에 하나 있었다던데 제목이 기억도 안날 정도고...
블랙번 록
17/03/06 07:44
수정 아이콘
일해라 역설사.
Paul Pogba
17/03/06 06:39
수정 아이콘
갑자기 만화전략삼국지 60권짜리 읽고 싶네요
어릴때 정말 재미나게 봤었는데
어른이유
17/03/06 14:55
수정 아이콘
진짜 수십번읽었죠 소설이든 만화책이든 정독수없이했는데 이제 가물가물하네요
꽃보다할배
17/03/06 07:02
수정 아이콘
원소가 70만 끌고가서 창정 오소에서 다 꼴아박은거나 조조가 100만 끌고가서 다 죽고 27기 남은거나 유비가 70만 끌고가서 불에 다 타죽고 조운빨로 튄거나 사실 말이 안되긴 하죠 무슨 병사가 무한 미네랄도 아니구... 저도 서양인 관점이 충분히 이해됩니다
홍승식
17/03/06 13:03
수정 아이콘
그렇다고 보기엔 후한때 6천만이던 인구가 삼국시대엔 천만으로 줄어요.
물론 도망가서 인구조사에 안잡히는 사람들도 많았을 테지만 실제로도 많이 죽었다고 봐야죠.
Galvatron
17/03/06 07:07
수정 아이콘
중국쪽은 판본이라고 할것도 없이 삼국지통속연의라고 하나밖에 없을겁니다. 아동용으로 분량조절한건 있는거 같던데
17/03/06 08:41
수정 아이콘
판본이 많습니다. 크게 나관중본(홍치본), 이탁오본, 모종강본이 있고 자질구레한 판본들은 엄청 많습니다.
신불해
17/03/06 09:21
수정 아이콘
글곰 님이 말한대로 홍치본, 이탁오본,모종강본들이 있고 그 외에도 지역에 따라 부분적으로 개작한 서술이 많습니다. 가령 가상인물인 관색인 경우도 초기엔 없다가 광동성 중심으로 그쪽에서 나오는 삼국지에 개작으로 등장해서 인기를 끌다가 모종강이 판본 새로 만들면서 거기에 집어넣었죠.
Agnus Dei
17/03/06 09:54
수정 아이콘
화관색전이었죠 아마...삼국지에서 관색이 유독 붕뜨는 캐릭터라는 느낌을 받았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여러모로 사연이 많더군요 크크크
블랙번 록
17/03/06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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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서양인들 관점에서 더욱 그러했던게 당대 최대 전쟁인 나폴레옹 전쟁 경험자가 다수니까요.당시 최대 전투였던 라이프치히 전투에서 각각 30~20만씩 싸운 것도 전장에서 소화 못시키는데 백만 70만이 말이 된다고 더 못느끼죠.
17/03/06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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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크 뜬금없는 감자..
해가지는아침
17/03/06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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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좋아하면서 왜 이런게 안궁금했을까 나는(2)
주제가 신선해요!
남광주보라
17/03/06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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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딩시절. . 저랑 친구가 종종 조운의 100만대군 돌파가 말이 되냐고 까댔던 기억이 나네요. 시중에 삼국지 소설들을 접했던게 다인지라, 조운이 멋있기도 하지만 조조군 100만명을 돌파해서 유선찡을 구하는게 너무 과장된 거라 생각했었습니다. 아무튼 그 친구는 이걸 이유로 들어어, 삼국지 최고로 싸움 잘하는 사람은 조자룡이다. 저는 유관장과 3대1로 붙어서 지지않는 여포가 최강이다. 이렇게 논쟁했는데. . . 참 픽션으로 소모적인 논쟁을 했다니. .
17/03/06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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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중국 사서 대부분이 병력 단위가 이해안가는 수준의 병력 단위인데,
운송시스템마저 제대로 확립안된 고대에서 수십만 단위 동원이 정말 가능했을까요 흠.
신불해
17/03/06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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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비정상적으로 많은 숫자의 군대가 동원될때에는 기록에 "호왈" 이라는 표현이 붙습니다. 실제 그 정도 병력이라기보다는, '그렇게 불려졌다' 라는 말이지요.

소설과는 다르게 사서에서는 예외적인 경우 제외하면 병력 동원이 분석적으로 봤을때 비정상적인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가령 가장 대표적으로 꼽히는 삼국지만 해도, 실제 정사 내에서 최대 규모의 병력이 동원된건 제갈각의 20만 대군과 촉 정벌전 위나라의 18만 대군 정도지요. 그 병력을 동원하자 나라가 뒤숭숭 했다는 기록이 있고.


병력수 부풀리기로 따지면 고대 그리스 쪽이 한수 위입니다. 페르시아 군 200만 이야기에, 그 유명한 가우가멜라의 병력 숫자는 본래 기록으로는 100만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17/03/06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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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백기가 40만을 생매장했다는 얘기도 있고 그래서 저게 가능한 수치인가 싶어서 궁금했는데 그렇군요.
답변 감사드립니다! 가우가멜라도 4~5만 정도가 서로 붙은 걸로 아는데 기록엔 100만이었군요 크크크
마법사5년차
17/03/06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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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가 20만명인가 매장했다는 곳은 실제로 있었다고 pgr에 올라왔던걸로;;
신불해
17/03/06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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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점도 있습니다. 가령 서양의 군사 숫자에서는 보급병은 빼고 말하는 경우가 많은데, 중국 기록에서는 몇몇 예외가 없지는 않지만 대부분 보급병을 포함해서 셉니다.

가령 고려의 위화도 회군 당시 실제 병력은 3만 명인데 보급병 합치면 5만 명으로 거의 1.5배 정도 불어납니다. 중국쪽 기록이 이를 '5만' 이라고 세는 식이면 서양 쪽에선 '3만' 이라고 세는 식입니다.
Chandler
17/03/06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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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시절의 레딧반응....쯤 되겟네요 크크
Overfitting
17/03/06 13:45
수정 아이콘
흥미로운 주제에 관한 글 잘 읽었습니다. 코에이의 삼국지 시리즈가 서양에서는 얼마나 팔렸는지 괜히 궁금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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