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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6/05/20 19:23:36
Name 탕웨이
Subject [일반] 약국, 폐지줍는노인
한가로운 그래서 조금은 슬픈 금요일 오후, 약국 밖에서 두 사람의 싸움소리가 들려온다.

‘잠시 저러다 말겠지.’ 하며 빠진 약들을 주문하고 있는데 소리는 계속 커진다.

구조조정이란 단어를 매일 뉴스, 손님에게서 듣는 요즘, 현대중공업의 심장인 울산 동구라서 그런지 해고당했다는 아니 사직을 권유받았다는

단골 40-50대 아저씨의 푸념을 많이 듣는 요즘, 지역민심이 바닥인 이곳에서 고성이 오가는 일이야 흔하게 되어버린 일이지만,

그래도 싸움구경은 불구경 다음으로 재밌다는데 안 볼수가 없다.

멀어서 잘 보이진 않지만 빈 리어카를 뒤로한 80대 노인이 폐지가 가득 담긴 리어카를 손에서 놓지 못하고 있는 70대 노인의 멱살을 잡고

빈주먹을 휘두르고 있었다.

가만히 보니 멱살을 잡힌 70대 노인은 우리 약국에 폐지를 매일 수거해가시는 할아버지다.

‘무슨일이야? 저 어르신 좋으신분인데 왜 저래?’ 하는 마음에 약국을 나설려는 순간 처방전이 몰려온다.

‘그래도 손님을 두고 갈 순 없지’ 전에 없던 직업의식인지 불경기에 대한 반작용인지 모르지만 일단 조제를 한다.

5분 정도 지났을까? 갑자기 두 노인이 약국으로 들어온다. 아니 80대 노인이 70대 노인의 멱살을 잡고 끌고 들어온다.

‘어??!’ 80대 노인은 지금 할아버지가 오기전에 2년정도 약국의 폐지를 가져가시다 수술로 입원을 오래하시는바람에

약국이라는 작지만, 안정적인 폐지공급처를 잃으셨었다.

두분다 땀냄새가 나서 인상이 찌푸려지긴 했지만, 인심좋고 고마우신분들인데 도데체 무슨일이 있었길래 70대노인은 계속 고개를 숙이고 연신

사죄하고 앞으로 안그러겠다고만 하고 싹싹 빌고 있고 80대노인은 쌍욕에 분을 못삼기코 빈주먹으로 계속 위협을 하고 있단 말인가??

“아저씨, 아니 원장님 죄송합니다. 아니 이새끼가 글쎄  어린놈이 내가 전에도 분명 경고했는데 글쎄 지하1층에서 박스 주어가지말라고 분명 말을 했는데 오늘 주어가다가 딱 걸렸다 아닌교!  한두번도 아니고 이새끼 앞으로 약국에서 다시 파지 못주어가게 하이소 내 앞으로 매일 올낑께”

약국에 있는 내내 어린놈이란것과 싸가지가 없다는 것을 연신 강조하시면서 그렇게 한사람을 개 끌고 가듯이 가버리고 약국에 남은 땀냄새..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못한 날 질책하는거 같은 직원의 혀차는 소리..

폐지도 구역이 있는건가.. 하는 생각과 올초에봤던 폐지가격이 급락해서 하루종일 일해도 몇천원 못벌어간다는 기사가 떠오른다.

두분다 윤택했던 인생의 순간들이 있었을텐데..

어쩌다 폐지박스에 대낮에 쌍욕을 하고 멱살을 잡히는 신세가 되어버린건지..

아무것도 하지못한 죄책감을 씻어주듯이 처방전을 든 손님이 연거푸 들어온다.

‘그래 난 약사지. 약지으러 가야지..’

그렇게 딸 얼굴보기 미안한 아빠. 아니 기성세대가 되어간다.

내일은 누가 폐지를 수거하러 오실지.. 미안한 마음보단 두려움이 더 커진다.
춘래불사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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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론티매니아
16/05/20 19:34
수정 아이콘
안타까운 현실이네요
차라리 시골에 사셨더라면 저렇게까진 안하셔도 될텐데 란 생각도 들구요
노인 빈곤 문제가 점점 심해질텐데 걱정되네요
16/05/20 19:49
수정 아이콘
사실 청년 실업률 문제만큼 심각한게 노인 빈곤 및 노인 자살이죠.
앞으로 더 심해지면 심해질 일만 남아 보이는데 어떻게 될지 참 걱정입니다.
요즘 문제가 되는 혐오 이슈도 살기가 갈수록 팍팍해져서 더 가속화될텐데 말입니다.
황금동불장갑
16/05/20 19:58
수정 아이콘
춘래불사춘...
봄이 왔건만 봄같지 않은 요즘입니다.
저 역시 울산 동구에서 생활을 하는 사람이어서 그런지 남의 이야기 같지 않네요.
저 상황에서 약사님이 무엇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정답이 없는 상황에 누구 편을 들 수도 없고, 마음으로 안타까워 할 수 밖에요...
약국이 잘 되어서 생산되는 폐지량이 두 배쯤 되면,
"그래, 80대 형님 영감님도 폐지 가져가시고, 70대 아우 영감님도 폐지 가져가시라." 고 울산 동구의 황희 정승이 되실수 있을테지만,
경기가 어려워진만큼, 그만큼 쌓여가는 처방전도, 내놓는 폐지도, 얇아지겠지요.
날씨만 봄이면 뭐 하겠습니까, 조선업 경기도, 사람들의 마음도, 제 통장 잔고도 아직 겨울인걸요.
그나저나 따님이 계시다니 부럽습니다. 전형적인 미괄식 문장이네요.
어라?! 약국장님을 장인어른으로 두는게 제 꿈이었습니다.
따님을 제게 주십시오.
16/05/20 22:08
수정 아이콘
폐지줍는 노인들의 다툼도 너무 흔하고 경쟁도 점점 치열해 가는것 같아요.
서울 이런 대도시 말고 시골에 가면 삶이 더 나을까요?
오래전 영등포 어디쯤에서 노숙인들 밥주는 곳에서 그들만의 칼부림을 우연히 목격하고
가난과 빈곤이 잘들어나는 장소는 일부러 피해 다녀요.
피해 다녀도 보이지만요ㅜㅜ
마스터충달
16/05/21 00:19
수정 아이콘
일베, 메갈 이야기를 하면 어른들이 그러시더라고요. 먹고 살기도 힘든데 왜 그런 거로 싸우냐고. 그러게 말입니다. 먹고살기도 힘든데, 이 끔찍한 혐오의 동력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그런데 이 글을 보니 알 것도 같습니다. 먹고 살기가 힘드니 미움이 생기고, 미움이 커지니 혐오가 되고, 증오가 되고...

오늘 날씨가 참 덥더군요. 세상은 빡빡하고 봄은 온적도 없이 지나가버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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