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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6/01/07 10:46:59
Name 쉬군
Subject [일반] "내가 너에대해서 아는게 뭐가있냐?"
결혼하고 애낳고 사느라 8년만에 만난 20년지기 여자사람친구가 소주 한병째잔을 마시고 나한테 던진 말이다.

"너랑 나랑 알고지낸지 20년이다.

근데 나는 너에 대해 아는게 없는거 같단 말이지.

아니아니. 아는건 있겠지. 쉬군이 OO고등학교를 나왔고 가족은 몇명이고 결혼은 언제했고...

근데 그거말고 니가 나한테 이야기 해준게 있냐?"

딱히 항변할 말이 없었다.

다른사람에게 크게 관심을 가지지않았고, 다른사람이 먼저 물어오지 않는이상 내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게 사실이니까.

"20년전부터 항상 그런식이였지.

너는 천가지 만가지 상황에 대비해놓고 맞춰줄 준비가 되어있으니 다른사람이 열가지 스무가지를 제시해도 뭐든 맞출 수 있어.

근데 너는 니가 먼저 뭘 하자는 이야기를 하지않아.

항상 맞춰주고 항상 오냐오냐 해주지.

그러니까 니가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노래방이 좋은지 호프집이 좋은지 전혀 알수가 없단 말이지."

여전한 침묵.

너무 맞는말만 해대서 답변할 말을 찾느라 머리가 복잡하다.

"지금도 어떤 대답을 하는게 좋을까 고민하는게 보인단말이지.

상대방이 들었을때 가장 기분좋을거 같으면서도 중립을 지키는, 그리고 두루뭉실하게 넘어가는.

대체 진짜 쉬군은 어떤 사람이냐?

내가 알고있는 쉬군말고 저~~깊숙이 숨겨놓은 쉬군말이야."

라고 말하며 그놈은 소주 2병째 마지막잔을 입에 털어넣었다.

그리고 결국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이렇게 사는게 맞는건줄 알았고, 그리고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그런데 이놈이 보기엔 그게 아니였나보다.

내기준에는 굉장히 친하고 가까운 사이라고 생각하는데..

지딴에는 20년지기 정말 가까운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자기나 다른 사람이나 별 차이가 없는 주변사람이라고 느꼈나보다.

문득 얼마전에 이야기를 나눴던 한 동생의 말이 생각난다.

"형이 싫다거나 한건 아닌데 대하기가 힘들어요. 약간 거리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주변사람들과 형성해놓은 관계들이 무너지는게 싫다.

그래서 최대한 중립을 지키고 상처를 주지 않을, 가장 좋은 말을 해주며 관계를 유지해나간다.

내가 생각했을때 남이 싫어할만하다고 생각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내 주변사람에게 위해를 끼치는 일이 아니라 나 하나만 조금 불편할 정도의 일이면 이해하고 넘어간다.

너무 솔직한 모습은 거의 보여주지 않는다.


이렇게 사는게 옳은거라 생각했던 내 생활에 의문이 생겼다.

이런게 남이 봤을때 서운할수도 있는거구나. 답답하고 거리감이 느껴질수도 있는거구나..라는 생각에 혼란이 생겼다.

이미 30년 이상 이렇게 살아온 인생에 변화가 생긴다면 거짓말일거다.

지금와서 내 속이야기를 다 꺼낼수도 없을거고, 다른사람이 싫어할만큼 내 마음대로 행동하지도 않겠지.


아..뭔가 잡설이 길어졌다.

내가 이놈 소주 두병째 시킬때 말렸어야 하는거였는데 그걸 못해서 이런 글까지 쓰게 됐네..

여러분 소주가 이렇게 해롭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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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07 10:51
수정 아이콘
애가 있는 유부남이 여자사람친구와 소주 2병을 마시며 독대를 하는게 가능하시다는게 참 놀랍네요.
16/01/07 11:05
수정 아이콘
글쎄요.
와이프한테 누구만나러 가는지도 다 알려줬고 허락도 받고 나간거라 문제가 될만한건 없는거 같습니다.
16/01/07 11:24
수정 아이콘
그니까요. 와이프분께서 그걸 허락해주시는게 놀랍다구요.

제 와이프는 얄짤없는지라...
16/01/07 11:26
수정 아이콘
서로 개인 사생활은 존중해주자고 처음부터 약속을 한지라..
그리고 와이프도 잘아는 친구이기도 했구요.

물론 여타 다른 유부남분들보다는 자유로운 몸이긴 하네요;;
불가촉천민
16/01/07 11:01
수정 아이콘
배우자 분과 그 점에 대해서 다퉈 보신 일은 없나요? 쉬군님 같은 성향을 가진 분이 드물진 않은데, 보통 가까운 관계를 맺게 될 때 많이 다투고 자신의 성격에 대해서 알게 되거든요. 배우자 분도 비슷한 성향이시면 오히려 편안할 수도 있겠네요!
16/01/07 11:05
수정 아이콘
그러고보니 결혼하고 와이프랑 한번도 다퉈본적이 없네요;
와이프도 저랑 비슷한 성격이라 그냥 서로서로 좋은게 좋은거 하고 넘어가서 그런거 같습니다.
그래서 결혼생활이 편안한걸수도 있긴 하겠네요 흐흐
바보야
16/01/07 11:13
수정 아이콘
그냥 성향 문제 아닐까요?
아래 링크는 내성적인 사람에 대한 만화인데요
자신를 쉽사리 드러내지 않는다는 의미만 가져온다면 비슷해 보이네요~
지인 분이 외향적인 사람인거구요~

100% 정답은 아니겠지만 제 생각은 그러네요~
http://blueluna.tistory.com/181
16/01/07 11:15
수정 아이콘
오 굉장히 공감가는 만화네요 흐흐
좋은 내용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퐁퐁퐁퐁
16/01/07 11:13
수정 아이콘
제 남자친구가 글에 적힌 쉬군님하고 비슷한 타입이에요. 전 얘가 뭘 좋아하는지 정말 알고 싶은데, 어렴풋하게 몇 개만 알뿐 진짜 뭘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좋아하는 음식이 뭐야?' 하면, '다 좋아.' '다 좋아가 어딨어. 하나만 말해.' '진짜 다 좋아.' '그럼 아주 조금이라도 특별하게 더 좋은 건?' '어, 음, 다 좋은데.' 이런 식이거든요. 그래서 항상 좀 불안한 것 같아요. 나랑 거리를 두는 것 같다기 보다는 쟤도 사람인데 저렇게 다 맞춰주다가는 언젠가 지칠 텐데. 그런 걱정이요. 때로는 그냥 뭐가 싫고 뭐가 좋은지 탁 말해줬으면 좋겠거든요. 무신경하게 넘어가지 않도록요.

쉬군님 친구분 마음을 조금 짐작해본다면, 친구로서 그런 쉬군님이 지칠까봐 걱정하는 게 아닐까요. 너무 잘 맞춰주기 때문에 내 친구에게 제멋대로 행동을 해서 상처입히는 건 아닐까. 어느 순간 확 돌아서는 게 아닐까. 친구관계에서도 어느 한쪽이 계속 맞춰준다고 생각하면 미안하잖아요. 그런 생각도 드네요.
16/01/07 11:17
수정 아이콘
만약 남자친구분이 저랑 비슷하다면 딱히 불안해하지 않으셔도 될거 같은데요 흐흐
이미 맞춰주는거에 익숙해진 사람은 그게 힘들다는 생각이 안들거든요.
그냥 숨쉬듯 당연한게 되버려서 외려 상대방이 그걸로 신경써준다는 느낌을 받으면 더 힘들거나 불편할 수 있을거 같아요.
제가 그렇거든요;
솔로왕
16/01/07 13:13
수정 아이콘
저도 비슷한타입인데 대답 자체가 진짜일 가능성이 큽니다 저의경우 그런 질문자체가 더 스트레스 받더라구요 꼭 답이 없는 문제를 받은기분이랄까...
16/01/07 11:48
수정 아이콘
[상대방이 들었을때 가장 기분좋을거 같으면서도 중립을 지키는, 그리고 두루뭉실하게 넘어가는.
대체 진짜 쉬군은 어떤 사람이냐? 내가 알고있는 쉬군말고 저~~깊숙이 숨겨놓은 쉬군말이야.]


본문에서 발췌했는데, 친구분도 이미 알고 있네요. 진짜 쉬군이 어떤 사람이긴요. [상대방이 들었을때 가장 기분좋을거 같으면서도 중립을 지키는, 그리고 두루뭉실하게 넘어가는] 사람이죠. 결국 그분의 이야기는 요컨대, '나는 네가 그런 사람이라서 마음에 안 든다'는 겁니다. 그런데 어차피 대다수 사람들은 '원래 그렇게 생겨먹어서' 그러는 겁니다. 진정한 자기 모습을 감추고 가면을 쓴 체로 다른 사람들과 격리되어 표면적인 인간관계만을 유지하는....... 뭐 그런 뻔한 설정은 소설이나 만화에 나오는 거죠. 진짜 그러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브루스 웨인은 현실에서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러니까 만화 주인공이죠.

그리고 친구란 그냥 데면데면한 사람들보다 좀 더 상대를 용납하는(비록 내 마음에 안 들더라도) 관계 아닐까요?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상자하나
16/01/07 12:08
수정 아이콘
정확히 거꾸로가 제 이야기 같아요. 전 지금 만나고 있는 여자친구가 저를 하나도 모르는거 같아서 섭섭합니다. 제 직업적 특성상 제가 무슨일을 하는지 전혀 모르는 것은 잘 이해하지만, 문제는 저는 정말 워커홀릭입니다. 일이 제 인생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일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이야기 하면 그냥 졸립다고 하고 자버립니다. 좋은일을 말해도 왜 좋은지도 모르고 축하한다고 한마디 하고 넘어갑니다. 그래서 다음에 똑같은 일이 생겨도 좋은건지 나쁜건지도 몰라서 처음부터 또 설명해줘야 합니다. 이렇게 3년 정도 지나서 보니 저에 대해 아는게 정말 아무것도 없는데 왜 절 좋아한다고 하는지 이해가 안됩니다.
문앞의늑대
16/01/07 12:10
수정 아이콘
저와 비슷한 성향이시네요.
예전에 그들이사는세상이라는 드라마 보다가 "어떤 관계의 한계를 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서로의 비밀이랑 아픔을 공유해야 할까 ?" 머 이런 비슷한 내용이었는데 이 대사 듣고 한동안 고민했었던 기억이 나네요.
커피보다홍차
16/01/07 12:23
수정 아이콘
많이 공감되네요. 저도 가장 오래동안 알았고 친한 친구가 몇 년전에 했던 얘기인데 다른 친구들은 나중에 뭐 하면서 살지 알겠는데 저는 어떻게 살고 있을지 상상이 안 간다고 하더군요. 그날 얘기를 하며 본문 내용과 거의 똑같은 말을 듣고서 충격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도 친구 좋다는게 뭐겠습니까? 마지막엔 뭐 어떻게 사는지 평생 보면 되겠지로 결론 났습니다.
바부야마
16/01/07 12:24
수정 아이콘
저도 쉬군님과 비슷한 성향인데요.
저랑은 정반대인 부분도 있네요.
저같은 경우는 가끔 만나는 여사친들이 저와 엄청 친하다고 생각하고 과거의 저를 기준으로 막 이야기를합니다.
그럼 저는 "넌 지금의 날 몰라"라고 이야기하구요.
뭔가 비슷하면서도 다른부분이 신기하네요.
사문난적
16/01/07 12:34
수정 아이콘
저도 이런 성향인거 같은데
제 주변 사람들도 이렇게 느끼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만감이 교차하네요
제 딴에는 신경쓴다고 하는 행동들인데 남들에게는 그렇게 비춰지지 않을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해봐야겠습니다.
솔로왕
16/01/07 13:22
수정 아이콘
저랑 비슷한거 같네요
[주변사람들과 형성해놓은 관계들이 무너지는게 싫다.

그래서 최대한 중립을 지키고 상처를 주지 않을, 가장 좋은 말을 해주며 관계를 유지해나간다.]


저도 이런 부분에대해서 참 공감이 가네요 요세는 이런게 약간의 강박증같은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슈퍼집강아지
16/01/07 14:06
수정 아이콘
저도 주변에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이 많고 저도 그런 성향이었다가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저의 경우에는 어떤것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려고 하지 않았었고 사람들과 대립해가면서까지 제 주장을 펴고 싶지 않았었어요.
개인적인 트라우마가 사람들이랑 갈등하게되는 걸 극도로 꺼려하게했습니다.
그러다 주변에 비슷한 친구들을 만나면서, 이 친구들을 만날때 뭔가 스무스하게 이뤄지는 일들이 없길래.
(가령 뭐 먹으러 갈까?라고 이야기를 해도 서로 다 좋다하는 바람에 놀러가서도 프랜차이즈집을 간다거나 정하는데 30분이 걸린다거나...하다보니)
그러다보니 짜증이 나더라구요. 왜 이래야하지..흐흐
그래서 친구들과 만날때면 제가 먼저 주도를 해서 의견을 냈고, 일부러 친구들이 싫어할만한 것들을 이야기했습니다.
친구들이 그건 싫다고하면 '너는 다 좋다며~'라며 반문해서 끌고갔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친구들도 자기주장이 강해져서 돌아가면서 정하고있네요.
16/01/07 15:02
수정 아이콘
누...누가 내 얘기를 여기에 썼지...
16/01/07 16:18
수정 아이콘
저는 정반대 타입인데, 대인관계 면에서는 마이너스가 많아요. 쉬군 님처럼 두루두루 둥글둥글한 편이 일반적으로 좋지 않나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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