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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6/21 09:10
잘못의 크기를 계량하지 않는 건 게으른 거죠.
이런 사람들의 흔한 화법은 이놈이나 저놈이나, 어쨌든 잘못은 잘못아니냐, 다 똑같다 이런 것들이죠. 의도적으로 저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더 안타까운 건 착한 의도를 가지고 저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라는 것. 아무리 좋은 의도지만 그건 게으름과 나약함의 표출 외엔 아무 것도 아니라고 봅니다.
13/06/21 09:27
더 나쁜 쪽과 덜 나쁜 쪽이 있을 때, 그리고 그 나쁨의 수준이 굳이 의미가 있을 정도의 차이가 발생하지 않을 때 양비론이 발생합니다.
그런데 그걸 굳이 의미부여를 해가면서 더 나쁜 쪽과 덜 나쁜 쪽을 구분해서 한 쪽에 비판을 집중해라라고 말하는 것도 아니라고 봅니다. 사람들이 양비론에 휩쓸리지 않기를 바라기 위해서는, 먼저 양비론에 휩쓸리지 않을 정도로 잘못의 차이를 확 벌려놓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게 안되니 양비론이 쉽게 득세하는 거겠지만요.
13/06/21 09:47
그 차이는 조작, 조정, 선동으로 커버가 가능합니다.
대상을 하나씩 떼놓고 보면 온전히 무결한 건 없을겁니다. 대상의 전환, 물타기 등으로 본질은 쉽게 왜곡, 매도 되거나 가려지기도 하죠.
13/06/21 10:15
잘못의 차이를 벌리는건 두가지 요건에 근거하겠지요.
하나는 litmus님이 위에 말씀하셨듯이 조작, 조정, 선동같은 외부요인일 것이구요. 다른 하나는 가치를 판단하는 개인의 인지능력같은 내부요인이겠지요. 저는 여기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두번째인 개인의 내부요인입니다. 아주 냉정히 말하면, "그 나쁨의 수준이 굳이 의미가 있을 정도의 차이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그게 바로 개인의 인지수준일 겁니다. 비꼬거나 비하하는 말이 아니라 "점수로서의 수준"이라는 거지요. 마치 각기 다른 수준의 현미경으로 1cm의 다른점을 구별하는 것과, 1mm를 구별하는 것과 1nm를 구별하는 것 같이 말이지요. 정말 쓰기 싫은 말이지만, 어찌보면 그게 우리네 수준일 수도 있겠지요. 저를 포함해서 말이죠.
13/06/21 09:27
UMC씨도 피지알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하필이면 전설로 남은 30화라니 껄껄..
글쓴 분도 그렇고, 안드로이드 팟캐스트 허브 쥐약 공장장님도 그렇고, 몇몇분들이 UMC의 진행이 난해하다고 하는데 정말 그런가요? 저는 유횽의 진행이 참 편안하고, 잘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논리적이면서도 쉽게 쉽게 요약 잘해주고, 지향점이 딱 보여서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방송이라고 생각합니다. 별개로, 정치와 정치에 대한 논쟁에 의한 피로감이 몇년 째 사람들에게 쌓여있다고 봅니다. MB이후 양비론이 더 쉽게 득세할 수 있었던 것이 방증이겠지요.
13/06/21 09:45
전설은 16a화지요. 일베햇볕정책. 허허.
개인적으로 생각할때, 유형과 궁합이 정말 잘 맞는 게스트는 물뚝심송 정치부장입니다. 왜냐하면 지향점이 명확하니까요. 반면, 프로그램의 목표와 성격(그것은 알기 싫다)과는 맞으나 정말 어려운 게스트는 이용과 춘심애비입니다. 지향점이 없으니까요. 그렇기에 청취자의 가치판단이 더욱 중요해지는 것이죠. 유형의 장점은 컴프레서가 걸려있는 목소리. 그리고 아외로워 이용이 이야기 했듯 상대의 말 한마디만으로 상대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본질을 깨닫는 능력, 그리고 가공할만한 상식과 논리입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감을 이끌어내는 파워가 "다른 능력에 비해서" 떨어지지 않나... 싶은 겁니다. 일례로, 유머코드가 현실의 강한 슬픔 혹은 비하, 그리고 부정에서 드러나는 아이러니가 주요 소스이기 때문에, 현실에 너무나도 지친 사람들 혹은 자신의 철학이 완전히 갖추어지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동감을 이끌어 내기에는 문턱이 약간은 조금 높지 않냐는 거죠. 극단적인 예를 들면, 마치 아인슈타인이 우리에게 "왜 상대성 이론을 이해못해? 그거 쉽잔어?"하는 말을 한 들, 우리가 그 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한, 혹은 아인슈타인만큼 천재이지 않는 한 상대성 이론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형만큼 좋은 시사 방송인(?)은 찾기가 쉽지 않죠. 적당히 가볍고, 적당히 무겁고, 적당히 예능감도 보이는...그런 사람이요.
13/06/21 09:33
개인적으로는 양비론이라는게 개인 차원이 아니라 어딘가에서 조직적으로 제공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가끔 있습니다.
공격적으로 넘겨짚자면, 의도된 키배지침이 존재할거라는 추측도 할 수 있겠지만, 굳이 그런 추측이 아니라도 종편, 언론의 보도 자체가 양비론의 강력한 근거가 되지요. 양비론을 주장하는 측은 그 보도의 내용을 그대로 가져와 주장하면 되는데, 양비론에 대한 반박은 그 보도 자체를 반박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려서.. 똑같이 키배가 벌어진다고 해도 그 피로도의 차이가 큽니다. 그리하여, 논쟁 자체를 회피하고 일종의 정신승리(ㅠ_ㅠ)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게 "양비론을 주장하는 자는 방송,뉴스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몰상식한 자" 혹은 "양비론을 주장함으로써 이득을 얻게되는 자" 라고 딱지를 붙여버리는 경우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게 반대입장에서 행해지는 것을 극단적으로 증폭시킨다면 "종북좌빨" 이 아닌가 싶네요.) 일단 저는 심정적으로는 이해가 가지만, 권장하기는 어려운 방식이 아닌가.. 합니다. 수혜자가 양비론을 펼친다는 전제가 성립한다고 하여도, 양비론을 펼치는 자가 수혜자 혹은 의도를 가진 자와 등치된다고 하긴 어렵거든요. 게중엔 일의 진행 중간부터 관심이 생겨 정리가 덜 되어 그런 경우도 있을 것이고, 정말 본인의 기준에 의해 그렇다고 믿는 경우도 있겠죠. 고의성, 혹은 수혜자가 되기에 그런거 아니냐고 의도를 짐작하여 공격했을 때, 억울함과 반감을 안고 더욱 극렬하게 양비론, 더 나아가서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 로 가버리는 경우도 우려되고요. 토론(?)을 "관전하는 사람" 의 눈높이에 맞춰 본다면, (퐈이어된 글이 갖는 파급력을 생각해 본다면) 피곤하더라도, 정도를 택하는 것이 나중에 닥쳐올 더 큰 피로를 예방할 수 있지 않나... 싶네요. ------------ 아.. 물론 저는 본문의 내용대로 실천할 듯 합니다. 제 멘탈은 약하디 약해서요..;; 능력자분들 화이팅! -_-;;
13/06/21 10:45
국정원 사건과 별개로...
양비론이라는 비난은 진보진영이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평생 듣던 소리죠. 누가 수혜자인지 보라는게 주 내용인 정도가 아니라 내용의 전부였죠
13/06/21 12:06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요한복음 8장7절)"
이 대사가 양비론이라니 ㅠ,ㅠ 확실히 논리상 양비론이긴 합니다. 하지만 요지는 깨끗하지 않은자는 비난의 자격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애, 혹은 이웃을 사랑하라는 뜻이기에 양비론의 극단으로 취급받는 것은 좀 부당하지 않을까요?
13/06/21 12:56
그렇죠. 말씀하신것처럼 "인간애, 혹은 이웃을 사랑하라는 뜻"이 원 뜻이죠.
저도 기독교인이라 그점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은 아쉽게도 원 의미를 잊은 채, 혹은 이해하지 못한 채 앞 뒤 뚝 자르고 단지 본 구절만을 마치 양비론의 바이블처럼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이지요.
13/06/21 13:24
어느 입장이든 정도와 극단이 있으며 자세히 살펴 보면 부분집합인 성격을 지니고 있음이 분명할터인데 이원을 기준으로 양비라 몰아세우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성격은 다르겠지만 광장의 이명준이 생각나네요.
13/06/21 13:59
제 글의 단락4에서 이야기 하였듯이,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 전재이기에 입장/견해차이를 이해하려 하지 않는 다면 그것이 곧 매카시즘과 같은 극단적 현상을 야기할 수도 있다는 것 또한 인정해야 할 겁니다.
그러나 제가 댓글에서도 이야기 했듯이, 물타기용의 양비인가 아니면 입장의 차이인가를 구별하지 못한다면, 그건 정말 아쉽게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의 "개인 수준"은 거기까지라는 걸 테구요. (위의 댓글에도 제가 조심스럽게 이야기 했듯이, 절대로 비꼬거나 제가 잘났다는 말은 아닙니다. 저도 결국 어느 수준에 머물러 있는 하나의 객체임에 분명하니까요.)
13/06/21 14:33
"물타기용의 양비인가 아니면 입장의 차이인가를 구별하지 못한다면,
그건 정말 아쉽게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의 "개인 수준"은 거기까지라는 걸 테구요." 라는 발상은 무슨 의도로 하시는 말씀인지는 알겠지만, 다소 위험하군요. 물타기용인가 양비인가는 개개인의 가치관마다, 속해있는 입장과 환경, 조직에 따라 다르게 판단될 수 있습니다. 같은 이슈라도 연령마다, 지역마다, 하물며 커뮤니티마다 차이를 구분하는 정도의 기준선이 다를 수 있는데, 본인의 기준선에 맞춘 구별을 두고 수준을 논하는 것은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멉니다. (민주주의가 괜히 귀찮고 어려운게 아니지요) 결국 이렇게 되면 답정너, 나는 맞고 너는 틀리고 내가 보기엔 물타기고 너는 수준이 낮다 로 귀결됩니다. 정치적 이슈에서 양비론은 주로 보수 지지층에서 개진하는 경우가 많은 편이고,(이 와중에 안철수 신당론은 뜬금없이 엮여들어가는 격이지만) 양비론을 펼치는 이들은 주로 검은 흑막이 있는 계층이라는 어조의 논조는 동감하기 어렵네요. 곽노현 교육감 이슈 당시 이곳에서 '곽이 잘못했지만 새누리(한나라)는 더 나쁘다.' 김용민 이슈 당시 '김용민이 실수했지만 그걸 걸고 넘어지는 새누리도 나쁘다'는 양비론도 많았는데 이 분들이 글쓴님이 말씀하는 수혜자층인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뭐.. 어쨋든 원세훈 구속 김용판 구속을 저 역시 바라고 있습니다만, 다른 생각과 물타기양비론을 판단하는 기준이 다른 것 같아 한 줄기 남기네요. 요즈음 국정원 글이 경마 보도식으로 자게에 지속적으로 올라와서 사실 왠만하면 스킵합니다만..
13/06/21 14:41
수준이라는 말은 결코 의도가 없습니다. 가치판단을 하는게 아니라고 다시한번 (세번째) 말씀드립니다.
더욱이 제가 한 사람의 수준을 평가하지도, 논하지도 않았구요. 괄호속의 제 말은 전혀 읽어보시지 않으셨나요? 그 단어를 그렇게 이해하시고 트집을 잡으시면 곤란합니다. 제글을 전혀 읽지 않으셨다는 겁니다. 제 글 중에서 어느 부분이라도 전혀 너수준 낮어. 내수준 높아라는 그런 비교가치를 뜻하는 의미로 적혀있다면 제발 지적해주세요. 그리고 그랬다면 제가 정중히 사과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제 글의 단락4번째를 읽어봐 주시길 바랍니다. 전 다양성의 존중이 곧 민주주의 근본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입니다. 댓글의 한 부분/단어를 가지고 오호.님의 가치관과 생각만으로 판단하여 댓글을 달아주신다면 그것 또한 제 글 자체의 의미를 달리 해석하시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외의 개진해주신 의견은 저도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13/06/21 23:28
어떤 한 사건에 대해서 가치판단을 내리는 것은 개인의 가치관에 따른 것이니까요.
시시비비를 제가 내릴 수 있는 깜냥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13/06/21 14:16
엄마 좋아해?
응, 세상에서 제일 좋아. 그러면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응, 둘 다 좋아. 아빠는 어디가 좋아. 응, 잘 모르겠어. 그렇다고 아이가 엄마를 좋아하는 건 변하지 않는다고 봅니다. 다만, 어디를 좋아하는 잘 모를 뿐이죠. 일단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어쩌면 그 아이는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는 나쁜 아이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린아이에게 어떻게 질문해야 아이가 이해하고 바라는 대답을 얻을 수 있을까요? 과자를 주면 됩니다. (...)
13/06/21 14:32
전 근본적인 문제를 이야기하는 겁니다.
"왜 엄마가 좋은지, 아빠가 좋은지 비교하는 질문을 해야하는가?"라는 질문에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네. 원하는 결과를 유도하기 위해서라면 과자를 주면 되지요. 그러나, 애초에 누가 좋은가를 묻는 질문이 "가치가 있는 행위"인가 하는 의문은 남습니다. 그리고 애초에 아이가 이해하고 바란다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교육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으로 미루도록 하지요.
13/06/21 15:02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제 생각을 간단하게 밝히면 이렇습니다.
먼저 정치의 기본적인 기능을 생각했을 때, 국가의 권력을 활용하여 민생 문제를 해결하고 여러 이익 집단의 이해 관계를 조율하며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것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이번 국정원 사태에 국한지어 생각한다면 '이 정도 부도덕/불법행위 가지고 분노할 필요가 있을까?' 라는 화제 설정이 잘못된 게 아닌가 합니다. 보다 정확하게 어떤 부분이 문제이며 우리는 어떻게 분노할 수 있을지, 그리고 만약 민중이 일어나야 한다면 다른 문제와의 관계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을 것인지에 대해 그 분야의 전문 집단이 방법을 제시해야 하는 것이죠. 예를 들어 이번 국정원 사태의 경우는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국가 기관의 정체성이 크게 흔들린 점에 초점을 맞출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러한 것들이 명백하게 드러나기 전까지는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모든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거나 굳이 분노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즉, 현대 사회에서 민중은 정치에 대한 기본 소양을 어느 정도 갖춰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정치 덕후가 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정치에 참여할 이유가 생긴다면 그것은 아마도 자신의 이익과 관련된 일이 되겠지요.
13/06/21 15:30
양비론의 극복은 그로 인해 더 손해보는 쪽을 편들어주거나 이득을 보는 쪽을 비난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양쪽의 시시비비를 모두 다 더욱 더 분명하고 날카롭게 가려낼 때 이루어지게 되는 것일 겁니다. 양비론이란 결국 무지와 게으름의 틈새를 비집는 것이니까요.
13/06/21 23:27
양비론에 대한 가치판단은 사람마다 다르지요. 절대적으로 con만 있는 경우는 드무니까요.
다만, 상황에 따라 전략적으로 사용하면 피로도가 올라간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니까요. 그리고 그 상황이라는 것이 현재 우리나라에 벌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니까요. 단지 개개인의 무지만을 탓할 수만 없죠. 마치 뉴스룸에 나오는 대사처럼, "길거리 개에게 먹이를 주지마라. 먹이를 주면 그놈들이 번식해서 또 길거리를 방황한다."라고 하는 방만한 생각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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