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술이 잦다. 학교다닐때도 이렇게 마시고 다니진 않았는데 너와 함께 어울리기 위해 소주를 들이 부어대는 것도 이게 맞아 돌아가는건가 싶기도 하지만 근 몇년만에 다시 만난 너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너무 쿵쾅거리는 가슴을 어찌 할수 없어서 다시 술자리에 나간다. 되지도 않는 허세와 지나온 너와 아무 상관없는 과거가 나만 힘든냥 말을 내뱉는다. 물론 위로 몇마디가 나에게 돌아오지만 알고 있다. 이런 분위기를 질색해 하는 너를. 그리곤 술도 너보다 못마시는 주제에 널 데려다준다고 말하고 있다.
생각해본다 넌 나와 정반대의 사람이란걸. 난 소심하고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라 내성적이라는 말을 듣고 자존감좀 갖고 살라는 말을 듣는데에 반해 넌 활달하고 낯도 안가리고 술자리마다 부를 사람이 끊이지 않는데다 항상 자신감에 넘쳐 있다. 난 연애경험도 없고 여자를 대하는 데에 엄청나게 서툴지만 넌 연애경험도 많고 스스럼없이 모두를 대하고 모두가 좋아한다. 아 물론, 난 아무리 얼굴 몸을 뜯어봐도 잘생긴 구석을 찾을 수 없는 놈이지만 넌 남자가 끊이지 않는 미인이란것도 정반대이다. 그래서 널 좋아하는건가. 넌 나랑 맞을 수 없는건가?
너와 관련된 추억들은 어째서인지 하나도 빼놓지 않고 기억한다 널 처음 본 20살 개강파티 너무 이뻐서 눈을 땔 수 없었던 날, 같이 간 엠티에서 네 신발이 없어져 부랴부랴 너에겐 너무 큰 내 신발을 내주고 난 근처 구멍가게에서 산 삼선 슬리퍼를 신고 돌아간 기억. 철없이 놀기 바빠 시험준비도 못하고 족보하나 얻어내서 너에게 주기위해 너희 동네를 처음 찾았던 날. 하지만 족보마저 보지 않고 그대로 밤새 바다를 보러간 기억. 술취한 널 처음 데려다준 날 택시 뒷자리에서 내 어깨에 기대어 자는 너의 손을 몰래 한번 잡았던 기억. 전역햇지만 친구들이 모두 휴학해서 혼자 어슬렁 거리던 내 어깨를 쳐서 반갑게 웃어주던 너 하지만 내가초라해서 자기비하가 너무 심한 나머지 너에게 못 다가가고 어정쩡하게 네 주위에 머물러있던 그 날들. 다음 학기에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고 휴학했었던 나는 너를 다신 못볼줄 알았다. 몇년이 지나가고 우연치 않게 친구들 모인 술자리에서 다시 만난 너는 여전히 아름다웠고 여전히 담배도 피우고 있었고 여전히 입도 걸걸했다. 그리고 추억들은 여전히 나만 추억하고 있었다.
술에 취해 너희 집앞에서 한 고백같지도 않은 고백도 치부로 둬야되나 아니면 영광의 상처로 새겨놓고 있어야 하는걸까. 너무 아파서 어디 하소연할 곳이 없어서 이곳에 글을써서 남겨두었었는데 술에 취한상태에서 아파하면서 쓴글이라 그런지 이따금씩 읽어보면 내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한다. 27살이란 나이가 젊기도 하겟지만 그런 찌질찌질한 글을 올릴만큼 경험없이 살아올 세월은 아닐텐데 그동안 난 무얼하고 살앗나 돌아보게 된다. 그 사건이 있던 다음날 나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무슨일 있었냐고 태연히 묻는 너에게 난 바보같이 너와 어색해지지 않으려 별일없었다고 얼버무렸다. 아니면 그때 만나서 한번 더 말을 했어야 했나 싶기도 하다. 그런다고 달라질 일이었을까 싶지만. 널 잃는게 나에게 제일 두려운 일이니 속이 썩어문드러져도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바보같게도 너가 보고싶어서 그 후로도 너와는 주마다 만난거 같다. 항상 약속시간에 늦는 너, 내가 도착했다는 메세지를 보내면 한시간 후에 나온 너를 보고 바보같이 화도 못냈다. 너가 나에게 해주는 자신에게 어필하는 남자의 얘기를 들을때마다 심장을 무언가가 쿡쿡 찌르는 듯한 느낌이 든다. 너에겐 일상이니 내가 티를 낼 수는 없어 어색한 웃음으로 맞받아 친다. 그러던 어느날 아는 오빠라고 소개시켜준 형. 그 형이 날보고 너에게 말한다 '너는 좋은 친구 뒀네 엄청 잘 챙겨준다.' 그 형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나에게 저 사람이 내 남자친구하면 어떨것 같냐고 너는 내게 묻는다. 가끔 티비속에서 나오던 '억장이 무너져 내린다' 라는 표현이 체감됐다. 내게는 없을 것 같던 자존심마저 산산히 부숴져 내린다. 생각해본다. 난 그동안 뭐였을까 매번 데려다 주는 너를 그 형이 대신 데려다 준다고한다. '담에 또 봐요. 좋은 동생 봤네요' 그 형에게 미안하지만 난 다시보고 싶지도 않을뿐더러 좋은 동생도 아니다. 둘을 보낸 새벽녘에 자리를 뜨지 못하고 담배를 연거푸 피웠다. 그날따라 10년을 핀 담배가 너무 매워 눈이 따끔거렸던거 같다.
나도 안다. 넌 느끼고 있을거다라고 바보같이 생각한 일, 다른 사람앞에서 조금은 혹은 많이 찌질했던 행동, 바보같이 너가 혹여나 귀찮을까 연락을 망설이던 시간, 너에게 다가오는 남자들은 항상 적극적인데 반해 소극적이었던 내모습들을. 주변 친구들은 모두 내 잘못이라고 한다. 내가 잘못해서 이지경까지 된게 아니냐고 한다. 맞는 말들이다. 전혀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래서 더 슬프다.
그렇게 밤 너와 내가 친한 친구와 만난 자리 즐겁게 마시다가 그 형이 널 보러온다고 했을때 참을 수 없이 구겨져 버린 내 표정이 후회된다. 그 형이 미워서 그런것도 있겠지만 내가 생각해도 너무 찌질했다. 다시 그 형이 널 데리고 갔을때 남은 친구는 내게 말한다. '너 이제 많이 힘들거 같다. 너무 마음 아퍼 하지말아라 한번 질르고 나서 경험으로 여겨라.' 그 말을 듣자 내가 너무 창피해진다. 내가 정신병에 걸린 사람처럼 보인다. 술이 들어간 입에서 흐느낌이 새어 나온다. 친구어깨에 기대어 울어버렸다. 너를 친구의 감정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나도 밉고 나를 친구 이상으로 보지 않는 너도 밉다.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싶지만 그 때 남은 이성이 없었던거 같다.
마음을 정리를 하려고 한다. 아직도 아침에 일어나서 일련의 일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진정이 되지 않아 쿵쾅 거린다. 이 증상은 언제쯤 없어지는 걸까. 하지만 생각해보니 고마운 일들도 많다. 널 못보던 날들에 얻는 것도 없이 나를 버리는 생활해온 덕에 내몸에 비축된 혐오스런 산물들이 그제서야 보이기 시작했다. 15kg이상 늘어나버린 체중, 정리되지 않은 머리, 늘씬할때 입었던 옷들이 이젠 다리한쪽 통과시키기도 어려운 걸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덕분에 난 운동도 시작했고 머리도 깔끔하게 잘랐고 급한대로 현재 체형에 맞는 옷들도 사놨다. 널 다시 보지 않았더라면 아직도 내 모습을 몰랐겠지. 고맙다.
이제 기분좋게 지낼 수 있다면 나도 조금은 나아진 모습이겠지. 라고 생각하고 살아야겠다. 그동안 겨울이 가면 봄이 오듯 봄을 기다렸던게 나의 제일 큰 오산이라고 생각된다. 봄을 기다리지말고 봄을 찾아 나서야 하는걸 이제서야 깨달았다. 한번 봄을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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