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과 같은 기사를 읽고서 생각나서 그냥 끄적여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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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들이 원숭이로 퇴화중이다”
(::휴대폰을 가진 원숭이/마사타카 노부오 지음/유레카북스::)
집안에 틀어박혀 나오기를 거부하는 아이들. 혹은 거리에서도 마 치 집안에 있는 것처럼 땅바닥에 태연히 앉거나 휴대전화로 목청 껏 통화하는 등 스스럼 없이 행동하는 청소년들. 정반대의 경향 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사적 공간에 집착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 다. 전자가 사회(공공장소)를 공포로 느낀다면, 후자는 아예 무 감각한 상태로 대처한다는 점에서 다를 뿐이다. 둘 다 공공장소를 거부한다는 점에서는 뿌리가 닿아 있는 것이다.
일본 교토(京都)대학 영장류연구소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저자가 일본 청소년과 가정의 변화양상을 영장류, 즉 원숭이의 행태와 비교하면서 독창적으로 해석해놓은 책이 번역, 출간됐다. 책에 따르면 전후 일본사회에서 자녀에 대한 과도한 보호를 일삼는 ‘ 집안주의’가 팽배해짐에 따라 일본 청소년들의 사회성과 독립성 이 현저히 떨어졌다는 것. 이같은 ‘퇴보’의 대표적인 예로, 휴 대전화로 간단한 메시지만을 주고받는 ‘커뮤니케이션의 원숭이 화’가 나타나고 있다고 저자는 꼬집는다.
책은 체계적인 이론서라기보다는 일본 사회와 가정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들을 저자 나름의 독특한 시각으로 분석하고 있는, 일 종의 사회문화비평서로 읽힌다. 하지만 현상들을 단순히 나열하 는 것이 아니라 비교행동학을 전공한 저자의 이력에 걸맞게 설문 조사와 각종 도표를 통해 이론적 분석을 시도하고 있다.
핵심적인 논리는, 엄마가 자녀에게 일방적으로 과도한 애정을 쏟 아붓는 ‘모자밀착형’ 자녀양육의 심화가 오히려 신세대의 ‘인 간적 퇴보’를 가져오고 있다는 주장이다. 집안에서만 정서적인 안정을 찾을 수 있는 젊은이는 결국 사회지향성을 거의 잃어버리 고, 기껏해야 또래집단에서 통용되는 사적인 언어(저자는 이를 ‘유아어’라고 지칭한다)로만 의사를 주고받는 지경에 이르게 됐다는 것.
저자가 지적하고 있는 현상들에서 우리 사회도 결코 벗어나 있지 않다. 오히려 일본의 신세대가 보여주는 모습들이 어쩌면 이토 록 우리와 유사한지 혀를 내두를 정도다. 우리 사회 역시 온갖 이모티콘과 약어들로 의사를 주고받는 점에 있어선 오히려 일본 을 능가하지 않을까. 저자는 ‘공공어’의 퇴보를 ‘커뮤니케이 션의 원숭이화’와 연관시키고 있다. 마치 원숭이들이 단절음으로 상호 의사를 주고받는 것처럼 신세대의 의사소통 역시 공적인 언 어보다 휴대전화와 컴퓨터 메일 등을 통한 단초적인 의사전달 위 주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일본 젊은이들의 행동 특징을 ‘집안주의’로 인해 공(公)적 상황으로 나아가기를 거부하는 것으로 읽고 있다 . 또한 어머니의 과도한 보호아래 자라게 된 아이들이 오히려 자 신은 그러한 짐을 지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출산율이 급락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자신들은 장기간에 걸쳐 부모의 보살핌을 받아 왔지만, 정작 누군가에 대한 책임을 전면적으로 떠맡기에는 심리 적인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것. 전반적으로 논리전개상 다소 거 친 면이 없지 않지만 일본 지식인 특유의 독창적인 해석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박애란 옮김. 김영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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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얼마전에
'빗물은 빈맥주깡통 속'님이 올려주셨던 얘기와는 조금 다른 내용일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신세대를 넘어선 그 이후 세대의 얘기를 다룸에 있어서는 비슷한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적인 언어... 언어가 사람의 삶을 투영하고 있는 만큼, 사람의 삶도 그가 사용하는 언어가 반영이 된다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어의 수 만큼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한계가 반영된다, 그러니까 xx만개 단어가 있는 한글이 yy만개 단어가 있는 영어보다 좋은 언어다 라고 얘기하고 있기도 하고..
남을 공대하는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공대하는 마음을 갖게 되고, 공적으로 얘기하는 방법을 아는 걸로써 그 사람이 일을 개차반으로 하건 어떻게 하건 일단은 공적인 사회 안에서 같이 지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전에 모 대학원 박사 과정 학생이 현장 실습한다고 왔었습니다. 박사 과정 학생(석박사 통합과정이었나)이라면 적어도 대학교는 졸업한 친구인데, 와서 하는 언행은 중학생이더군요 - 얘기도 없이 오후에 나타나질 않나(자기는 올빼미 스타일이라고 늦게까지 잔답니다. -_-), 자기 할 일 있다고 각자 일 하자는 식으로 말하질 않나... 팀에 온 팀원이라면 어디로 끌고 가기라도 하겠는데, 며칠 보고 말 인간이란 생각에 잠시 험하게 대해주고서 무신경하게 지나쳤죠... '뭐 저런 인간이 다 있어?'하고선요...
위의 기사의 내용을 보는 걸로 저 책의 내용은 다 볼 필요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만, 저 기사의 내용을 읽고 그 친구가 다시 생각나더군요... 그리고, 말이라고 글이라고 다 똑같은 말이나 글이 아니란 생각도 들고요...
하지만, 이런 저런 얘기를 한다고 해서 그 얘기를 들어야 할 당사자들은 전혀 귀기울이지 않는 것 같아서 아쉽기도 합니다...
하여간, 사회란 곳은 어쨌거나 상하가 있고, 표준어를 사용하는 것이 기본인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윗사람을 보면 그 내용물이야 어떻든 일단은 공대를 하고-먼저 인사를 해준다거나, 말을 공손히 한다거나- 얘기를 하면 일단은 내가 생각지 못한 걸 얘기하는 건 아닌가 살핀다거나 하는 등 여러가지 '당연한' 일들을 해줘야 하는데, 그 '당연한' 일들을 하는 것 자체가 취업준비를 하면서 갖춰야할 소양이 되고, 그런 일을 배우는 것이 '사회 경험'이 되는 것이 조금은 못마땅합니다...
신문 기사에 황당한 면접생들이란 기사가 올라와 그 내용을 보면 어이없기 그지 없거나 앞서 얘기한 것과 같은 일을 격으면서, 뭐가 잘못된 것일까를 생각하다 보면 꼽을 것이 한도 끝도 없지만은... 일단은 PGR 게시판에서 중요시되는 표준어를 바르게 쓰는 것을 잘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초기(인터넷 도래 즈음까지)에 통신어의 등장은 정보전달을 빨리 하고자 함에 따른 표준어를 알면서 그것을 간략화하는 성격을 띄었다고 본다면, 그 이후는 엄청난 물량(?) 속에서 자신의 글이나 말을 튀어보이게 하는 독특한 방향으로 진행되어 마침내 외계어까지 낳게 되고, 이후의 세대에 있어서는 표준어는 교과서에 있는 것일 뿐, 진정한 언어는 인터넷 상의 말인 것으로 주객전도가 되어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여간, 저 기사를 읽고서 생각난 것들을 그냥 주제 없이 쓰다보니 산만한데... 결국은... 표준어를 잘 쓰자란 얘기로 귀결지어지는 것 같습니다... (다른 주제를 건드리긴 좀 자신이 부족해서...;;)
그러니까, 뜬금 없이 PGR 화이팅~ 입니다. -_-
미니.
PS:
공적 사회에서는 표준어를 쓴다. 그러니 표준어를 잘 쓰자.
PGR 화이팅~
KTF 매직엔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