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원래 롤을 해본적이 없습니다. 튜토리얼만 몇번 해보다가 말았고, 유명한 챔프 몇명 정도는 아는데 스킬이 뭔지도 모릅니다.
다만 동생이 롤을 하다보니 옆에서 본게 좀 있고, 또 주로 가는 커뮤니티에서 롤 이야기가 많이 나오다보니 자기도 모르게 '프로게이머 누가 잘한다' '요새 누가 기세 좋다' '어느 팀이 강하다' 이런걸 저도 모르게 막 눈에 들어오게 되던데...
최근에 자영업 새로 하면서 손님 안오는 시간 대에, 가게에 TV도 없고 하니 심심풀이 삼아 롤드컵 방송을 그룹 스테이지부터 꾸준히 봤는데, 좀 눈에 익다 보니까 대충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구나 개념 정도는 알겠고 그렇게 보다보니 상당히 재밌더라구요.
한국팀 우수수 떨어지는데 원래가 딱히 롤팬은 아니라서 팬덤이 없다보니 별로 크게 와닿지는 않았고, 대충 이름 들은 우승후보들은 제외하더라도 이름도 몰랐던 팀들끼리 붙어도 꽤 재밌어서 몇번 보다가,
오늘 출근해서 장사 하는데 아침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리면서, 날씨를 타는 장사라 시작하자마자 장사가 망하고...
그래도 계속 가게 열어놓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파리만 날리고... 답답하던 차에 커뮤니티 돌아다니다가 "롤드컵 4강 광주에서 하는데 자리 텅텅 비었다" 하는 글을 보고,
찾아보니 경기장하고 가게가 고속도로 타고 가면 한시간 거리 밖에 안되더군요. 어차피 오늘은 장사도 망해서 에라 답답하다 하던차에 이런거 지방에서 볼 일도 별로 없을테니 여기나 가보자 하고 갑자기 계획도 없이 가게 문 닫고 그냥 가봤습니다.
자리 텅텅 빈다니 예메 안해도 되겠지, 하고 현장 도착해서 노란색 옷 입은 도우미들에게 "티켓 현장 판매 하나요?' 하고 물어보니, 난데없이 "안해요." 라고 하더군요. 인터넷에선 한참 전에 예메 닫아놓았던데 엄청 당황스러웠습니다. 다급해서 다른 도우미 붙잡고 물어보니 또 하는 말이 "안합니다." 그리고 안내방송으로는 "경기가 시작되오니 입장을 마무리 지어주시기 바랍니다."
장사하다가 접고 한시간 달려서 와서 난데없이 돌아가게 생겼으니 황당해서 주위 빙 둘러보는데, 갑자기 '티켓 판매' 라고 써진게 보이는 겁니다. 그래서 티켓 파냐고 물어보니 판다고 합니다. 아니, 그 두 분은 대체 뭐였던건지...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와중에 밖에서 간식으로 호떡을 파는 분들이 있더군요. 얼핏 지나가면서 이야기를 들으니,
"야, 얼마나 팔았냐?"
"형, 망했어요. 거의 안 팔렸어요. 사람이 너무 없어요." 이러더군요. 아무튼 들어가봤습니다.
전용준 캐스터가 선수 소개 하는걸 보고 싶었는데 밖에서 허우적대며 시간 보내다가 들어와보니 이미 벤픽 하고 있더군요.
플래티넘 석은 생각보다 꽤 꽉찬 상태더군요.
그런데 위쪽은 거의 빈자리가 듬성듬성 있었고, 그나마도 어느정도 한곳에 모아 좀 사람 더 차있게 하려고 보이려고 애를 쓴게 빈자리 천막으로 가려놓은게 보였습니다. 제가 자주 보는 WWE에서도 관중들 덜 차면 모양새 덜 구리게 천막 치는거 자주해서 익숙한 광경...
대충 이런 느낌이었습니다. 위쪽은 거의 아무데나 앉아도 되겠더군요.
전 기왕 온거니 플래티넘 석으로 표를 잡았습니다. 아주 가까이는 아닌데 그래도 가까운 편이었는데 선수들 얼굴은 보이기는 하는데 잘은 안보이더라구요.
사실 그냥 보는것만 따지면 집에서 보는 편이 더 집중은 잘 됬었을것 같습니다. 대형 모니터 화질로 별로 안 좋았구요. 그래도 현장에 오니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재미가 있더군요.
관객들은 거의 중국인들이 많았습니다. 한국말보단 중국말을 더 들은것 같네요. 대충 체감으로 한국인 4 - 중국인 5 - 그 외 서양인 1 이 정도.
자리에 앉아보니 옆자리에는 대충 저보다 나이 어려보이는, 캡스 비슷하게 보이는 서양인 친구 한 명이 앉아 있더군요. 비슷한 외국 친구 한명과 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옆에는 중국 여자 관객분들이 몇명 오셨던데 저한테 옆에 있는 가방 좀 주워주면 안되겠느냐고 부탁하던데 생각지도 못하게 한국말 잘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바로 뒷자리에는 친구로 보이는 한국인 청년 두 명이 앉아 있던데...
그냥 보는것만 따지면 고개 딱 60도 정도로 들어서 위를 쳐다봐야 해서 목이 아프던데, 대신에 시작하자마자 관중들 반응이 후끈 달아오르는거 보고 현장에 왔다는 체감이 왔습니다.
방송으로 볼떈 중국팀 팬들이 경기 시작할떄마다 길게 짜요를 외치던데, 이날 가서 그거 듣게 될까 생각했었는데 의외로 짜요 소리는 별로 못 들었습니다. 오히려 그냥 막 한쪽에선 IG! IG! IG! 하고 다른족에서는 G2! G2! G2! 하고 막 그냥 외치는 정도. 그나마도 생각보다 소리가 적더라구요.
대신 경기 들어가니까 극초반에 기본적으로 한두대씩만 때려도 사방에서 "으아아아! 으아아아아!" 하는데 재밌었습니다.
제 자리에서 대형 모니터가 보이는 시야상 제일 눈에 들어오는게 옆의 서양인 친구였는데, 이 친구는 처음에는 웃으면서 자기 옆의 친구와 이야기 하다가 G2가 초반부터 말리기 시작하니 급격하게 말이 없어지고 나중에는 얼굴을 손으로 가린채 옆에서 무슨 소리 내는것도 좀 조심스러워질 정도로 의기소침 하더군요.
반면에 옆의 여자분들 있는 쪽 자리는 그냥 아주 축제 분위기로 경기 내내 혀짦은 목소리로 "야아아앗!" 하고 있고,
제 바로 뒤에서는 한국인 친구 한 명이 자기 친구에게 아주 쉬지도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해설을 하더군요. "여기서 이걸 먹으면 XX가 유리해...!" "여기서 이게 이렇게 되서 이런 상황이 된거야..!" "리신 저거 쓰레기야!" 등등..
아무튼 나름 국제적인 반응이 바로 옆에서 느껴져셔 흥미진진했습니다.
한 세트 끝나고 할떄 방송으로 볼떄는 "텀이 엄청 기네" 싶었는데, 막상 현장에 오니까 왜 그런지 알겠더라구요. 수백명이 한꺼번에 화장실에 가고, 출출해서 먹을것도 사고 하는데 줄서고 하니 시간이 오히려 부족했습니다. 저녁도 안 먹고 와서 샌드위치 하나 샀는데 입장할때 물 말고는 가져가면 안된다니까 급하게 앞에서 바로 먹느라고 체해서 한참을 켁켁 대고..
2세트 보려고 들어오는데, 플래티넘 석 맨 뒷자리 쪽에 라이엇 관계자, 스태프 보이는 백형들이 앉아서 이런저런 정비를 하던데, 그 와중에 라이엇 관계자 백형 한 명이 뜬금없이 "IG! IG! IG! IG!" 하면서 IG를 목 터져라 응원하더군요. 응?
다시 들어가서 앉았는데 2세트 극초반에 G2가 유리한 장면이 나오자 옆에 시무룩하게 앉아있던 서양인 친구가 진짜 깜짝 놀랄 정도로 아예 어퍼컷을 하면서 "으아아아아아아악!" 하더군요. 죽은듯 앉아있다 갑자기 저러니까 진짜 놀랐습니다. 이내 다시 시무룩해져야 하긴 했지만...
2세트 끝나고 중간에 쉬는 시간에 추첨으로 노트북을 주던데, 옆에서 수군거리는 소리 들어보니 가격이 무슨 300에서 400은 되는 물건이라고 하더군요. "무슨무슨 라인, 11열" 하길래 "어? 나 11열인데?" 하고 허겁지겁 티켓 꺼내 봤는데 다른 라인이길래 그냥 조용히 다시 집어넣었습니다.
3세트 시작하면서 밴을 하는데 처음에 제이스를 풀어두니 옆의 서양 친구들이 영어는 분명 아니고 무슨 다른말로 뭐라고 하는데 다른 말은 몰라도 "왜 제이스 밴 안하냐" 라는 건 알아먹겠더군요. 나중에는 벤하긴 했지만.
이 경기가 제일 치열했는데 여기저기서 킬 터질때마다 난리가 났습니다. 초반에 G2 쪽에서 킬을 좀 따내자 옆의 서양 친구들이 아주 벌떡 일어나서 난리를 치고 "G2! G2!" 콜소리가 들리자 아까까지 다 죽어가던 사람 맞는지 G2! G2! 하고 외치더군요.
그런데 점점 경기가 비벼지기 시작하고... 미드에서 중간에 격돌이 일어나서 그냥 다들 "으아...으아..으아아앗!" 하고 비명만 지르는 참인데, 언뜻 미니맵을 보니 위에서 아트록스가 내려오는게 보이는겁니다.
그때 진짜 무슨 김성모 만화처럼 저도 모르게 모니터에 삿대짓을 하면서 "저, 저거! 아트록스!" 하고 말이 튀어나더군요. 그리고 그 직후에 갑툭튀한 아트록스가 킬 따내면서 다시 옆의 중국인 여성 일행이 반대로 난리가 나고,
하이라이트는 더샤이 아트록스가 쿵쿵 찍으니 한번에 3명인지 4명이 얻어맞고 그대로 다 나가떨어지는 장면이었는데 그때가 제일 소리가 컸던것 같네요. 진짜 아주 장내가 떠나갈듯하고, 마지막에 경기 끝나기전까지는 그냥 중국 쪽 팬들의 축제 분위기였습니다.
딱히 롤을 잘 아는것도 아니라서 경기의 세세한 내용에 관해선 별로 할말이 없고....그런데 막눈으로 봐도 루키와 더샤이가 진짜 잘하는건 알겠더라구요.
제 뒤에서 해설을 하던 한국인 친구가 어느 시점부터 루키 플레이를 보고 그냥 해설을 안하고 "와...X발...와...X발...와..존나...와...시X" 이것만 연발하던데 그것만 들어도 아, 지금 엄청 잘하는구나... 싶었습니다.
저는 그냥 막 싸움 벌어질때마다 그냥 "으아아아...으아아아악!" 이것만 연발했구요. 장내 분위기가 뜨겁다 보니까 그냥 막 미친놈처럼 비명 질러도 아무도 신경 안쓰더라구요. 은근히 평소에 스트레스 발산도 되고 괜찮더군요. 그 외엔 G2건 IG건 뭔가 멋지게 한번 싸움에서 이길때마다 그냥 물개박수 치는 정도.
경기 끝나고 나선 중국팬들 함성이 어마어마했고, 나중에 또 중국쪽 부스에서 일어나서 손을 흔드는데 그거 보고 중국팬들이 또 반응이 엄청 크더군요. 중국 쪽 해설진 중에 머리가 빛나는 대머리 분이 한분 있었던것 같은데, 정확한진 모르겠네요.
경기 끝나고 나가는데 많은 사람들이 해설진 부스에서 한참을 머물더군요. "전용준 화이팅!" 이러고. 체감상 선수들보다도 전용준 캐스터가 더 인기가 많았습니다. 나중에 결국 얼굴 비쳐주고 손 흔들어주자 다들 좋아 죽고.
전용준 캐스터 : "여러분, 오늘 경기, 재밌게 보셨나요? 내일도 꼭 오셔서 즐겨주십시오!"
그러니까 다들 남자, 여자 관객들 가릴 것 없이 다들 "네~" 하는데, 꼭 뭔가 학교에서 인기 많은 선생님한테 학생들이 네 하는 것 같더군요. 뭔가 좀 흐뭇해서 보기 좋았습니다. 다들 전용준 캐스터를 엄청 좋아하고 그러는게 느껴져서요.
다 끝나고 돌아가기 전에 화장실이나 한번 들려서 가려고 하다가, 1층에선 좀 오래 기다려야 할것 같아서 2층을 갔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몰려 있는겁니다. 뭐가 뭔지 모르고 가보니까 선수들 인터뷰를 하려고 해서 기다리고 있는거 였더군요.
중국인들 한국인들 모여 가지고 다들 루키 나오냐, 더샤이일까 하고 있는데 루키, 더샤이, 재키러브 세명이 한꺼번에 오더군요.
방송 같은데서 그냥 인터뷰 봤을떄는 몰랐는데 관객들 바로 앞에서 하다보니, 관객들이 "루키 오늘 쩔었어요!" 하고 소리 치니까 웃으면서 손 흔들던데 신선했습니다. 루키는 좀 말하는거나 태도가 자연스러운게 약간 연예인 느낌이 나더군요. 반면에 더샤이나 재키러브는 그냥 모르고 보면 말하는것도 그렇고 다들 일반인이라고 생각할듯...
루키 인터뷰 다 하고 더샤이 나오는데 누가 "더샤이, 아트록스 잘하는 방법 좀 알려줘요!" 해서 다들 웃었습니다.
그리고 재키러브 인터뷰 하는데 인터뷰어가 한국인이라 뭐가 준비가 안되서 엄청 준비가 오래걸리던데, 그러자 루키가 "저, 그럼 제가 중국어 통역 해드릴까요?" 하더군요. 옆에 관계자가 영어로 되야 한다고 해서 그렇게는 안하긴 했지만요. 한참 기다리니까 전문 통역사가 오고 한국인 인터뷰어가 중국어 통역사에게 버벅하면서 영어로 질문하고 통역사가 중국어로 그걸 재키 러브에게 말해주고 다시 그걸 영어로... 하는 복잡한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다른 선수 인터뷰 할때 다른 선수들은 구석 자리에 대충 낑겨 앉아서 휴대폰 만지느라 여념이 없더군요. 재키러브고 더샤이고 루키고 그냥 자리 앉으면 자동반사적으로 휴대폰부터 찾던데, 방송으로 보면 좀 덜 느껴지는데 이렇게 보니까 다들 어리다는게 실감이 나더라구요.
그리고 나가는 길에 해장국 집 하나 있길래 거기 가서 대충 국밥으로 저녁 먹고 왔습니다. 해장국 집 가보니 젊은 사람들 엄청 많고, 검은색 옷 입은 진행요원들도 잔뜩 보이는게 롤드컵 봤던 사람이나 관계자들이 많이 온듯, 한참 기다려야 했습니다. 난데없이 롤드컵 특수 맞은 국밥집..
어렸을때 스타크래프트 리그 같은거 한번 가보고 싶기도 했지만 못 갔는데, 아무튼 흥미롭고 재밌었습니다. 현장에서 반응 나오는것도 즐거웠구요.
다만 4만 2천원 주고 들어왔는데 대충 예상으로는 한 9시 정도 되면 끝나서 돌아가지 않겠나, 싶었는데 워낙에 황당할 정도로 순식간에 끝나버려서 경기 끝나고, 한참 기다려서 인터뷰 하는거 보고, 밖에 나와서 선주문 한참 기다리며 국밥 한그릇 먹고 이제 갈까 하고 차에 타서 시간 보니 8시 50분 정도.
정확히는 몰라도 제대로 본건 한 2시간 정도 밖에 안될듯... 좀 당황스러웠습니다. 결과적으로 일방적이었는데 워낙에 화끈해서 리액션하기 바빴던지라 볼떄 뭐 재미없다 이런 느낌은 없었는데 너무 금방 끝나긴 했던듯...방송으로 볼떄는 시끄럽다 이런말도 본것 같긴 한데 가서 보니까 그 시끄러운게 엄청 재밌는거였더군요. 살면서 처음 해본 E스포츠 직관이었는데, 여러모로 즐거웠습니다.
그래도 내일은 장사하다 열받아서 발작적으로 이거 보러 오는 일 같은건 없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