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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0/20 09:35
일요일 오전, 8시간이나 퍼자고 허리 아파 낑낑대면서 일어나 어제 먹다 남은 오징어를 씹으면서 식용오이님의 글을 읽으니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네요.
식용오이님의 시니컬한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추억해라! 추억해라!"라며 강요하고 있는 거 같아요, 제 안의 제가 일상의 저에게. 저희 아버지도 시니컬 하나는 장난 아니셨는데, 무뚝뚝 구할에, 씨익 일할 정도 될까. 아버지와 저의 밥상머리에서 대화를 듣고 애인이 말하길, "가족 맞아?"라고 했을 때 전 그저 씨익 쪼갰었는데. 아버지도 그 말을 들으셨다면 역시 그랬을 것 같다는. 암병동에서 사형선고 받으신 양반에게 "딴나라당기관지 보지 마세요, 그나마 한겨레가 나아요."라며 개겨 보기도 했지만, 당신의 침묵 투쟁, 혹은 금식 투쟁에 이길 수 없어 결국 기관지들을 사오곤 했었지요. 평생을 친야 성향으로 사셨던 분이, 친구분(정확하게 군대동기분)들이 박통을 그리워 하는 정서로 술잔을 기울 때면 입 싹 닫고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돌아오셨던 분이, 그리고서 아들놈과 이런저런 사는 얘기(사실 몇 마디 나누진 않을망정)를 안주삼아 술 걸치시곤 했던 분이, 민들레를 보면서 소리 없이 함께 우셨던 분이, 왜 딴나라당일까, 결국 이 양반의 모든 논리 이면에는 반DJ정서 하나밖에 없는 건 아닐까. 고개 참 많이도 갸웃거렸던 같네요. 당신 가신 후에, 밥상머리에서 정치, 시사 문제를 가지고 몇 마디 나누지는 않을망정 퉁명스럽게 논쟁할 상대가 없어서 꽤 허전해 하는 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씨익 쪼개던 것도 기껏해야 1년 전 무렵이었는데 꽤 오래된 기억으로 느껴지네요. 암튼, 좋은 글 읽고 이런저런 기억 떠올려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꾸벅. 아, 근데 해장술이 그리워지는 건 무슨 까닭일까요. -_-;;;;;
02/10/20 10:59
부모님과 나와의 관계는 세상을 살아가게 하는 출발점의 사작이겠죠.
아무리 미흡하고 불안한 출발점이라도 끝은 항상 서로간에 이해와 사랑이 함께 한다는 것을 알기에..... 작은 위안과심란했던 나의 마음을 다시 잡아볼려고 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02/10/20 11:02
휴일 아침, 식용오이님의 아뒤를 발견하곤, 이게 왠 대박인가? 싶습니다.
일전의 태풍피해는 모두 마무리 되셨는지요. 저번 식용오이님의 글 속에서 얼핏 지나 간 교보문고와 태평로 지명 보고서는, 한미르에서 그 쪽 지도 프린트해서 보면서 추억에 젖곤 했습니다. 한동안 프린트를 가방 속에 넣고 다녔지요. 식용오이님 부모님께서는 참 멋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당당하고 싶은데, 언제나 저를 짓누르는 강박관념 때문에 선택의 폭이 좁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짧은데, 그 기억 속의 아버지는 너무도 엄격했습니다. 난 절대로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그런데... 중국속담이던가? 무자비한 아버지 밑에서 원망하며 자란 자식이 나중에 똑같이 그런 아버지가 된다던데... 하여튼 난 절대로, 절대로... 인간속성... 을 깨뜨리겠다고... 난 절대로 그렇게 되지 않겠다고... 이게 지나치게 날 구속했던 것 같습니다. 결국 옛이야기 틀린 것 없군요. 결국 어떤 방향으로든 영향을 받았으니 말입니다.
02/10/20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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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아버지, 어머니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네요. 역시 좀 어린가 봅니다. )
제 가장 오래된 기억 속에서(그래봤자 20년 안쪽이지만 ^^;) 아빠는... 아직 꼬마라 잠 안 자고 칭얼거리는 저를 재우느라 자장가를 불러주시던 그 저녁의 모습으로 남아있습니다. 직업이 목사님이시다 보니.... 거의 성악가를 방불케 하는 낭랑하고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우리 아기 착한 아기~ 소록소록 잠들라~' 하는...좀 단조풍으로 군가 느낌이 나는 자장가 있지 않습니까? 애들 재우기보다는 깨우기에 딱 맞을 것 같은 목소리로 그 노래를 불러주시던 모습. ....얼마 전 아빠의 오래된 책상을 정리하다 뜻밖의 물건을 발견했습니다. 책상 제일 윗 서랍, 옛 교회 도장과 묵직한 문서철, 낡은 명함들 사이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으로 놓여 있는 그것... 스티로폴 조각에 사인펜으로 눈코입을 그리고, 색동 포장지 조각으로 옷을 입혀서, 이쑤시개로 다 쓴 풀 통에 꽂아 놓은, 어설픈 허수아비. ...그건 제가 유치원 다닐 때 만들어서, 아빠한테 드렸던 거였습니다. 아빠가, 자그마치 13년 동안... 말썽만 부리는 큰딸이 그래도 처음으로 부모님께 드린 선물이라고, 그 보잘것없는 허수아비를 책상 맨 윗 서랍에 넣어 두셨었구나... 하는 생각에 순간 우습게도 눈물이 날 것 같더군요. 아!~~~ 그러고 보니 오늘은 아빠가 일주일 중 가장 바쁘신 날입니다. 저녁예배 전에 전화라도 꼭 드려야겠네요... 사랑한다고까지는...^^a 쑥스러워서 말 못할지 몰라도, 저 잘 있다고, 밥도 잘 해먹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라고...꼭 전화 드려야겠네요. 식용오이님 글을 읽다가.... 문득 부모님 생각이 나서 이것저것 끄적거려 보았더니 원 글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른, 그저 추억담이 되어버렸군요. ^^; 좋은 글 감사합니다~
02/10/20 13:30
모두들 훌륭한 아버지 밑에서 크셨군요.
아버지에 대한 좋은 기억이 없는 사람으로선 소외된 느낌입니다. 옛날에 아버지라는 소설이 유행일때도 일부러 읽지 않았던 저로선 씁쓸합니다.
02/10/20 13:58
외지에서 부모님과 떨어져서 살다보니 어린시절 기억이 너무도 빨리, 하수구 속으로 구정물 빠져 나가듯 사라지는 것이 느껴집니다. 식용오이님도 자기사업을 하시는군요. 부모님들은 어쨌거나 번듯한 직장에서 월급 잘 받고 다니는 것을 그래도 좋아하시니까요. 매번 전화를 걸 때마다 밥은 먹고 사냐?고 물으시고..(으레적인 말이 아니라 정말로 밥은 먹고 살까 궁금해하십니다. 원래 몰골이 말이 아닌지라.)
식용오이님 말씀을 들으니 옛기억이 새록새록 나네요. 어린시절에는 이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1.우리 부모님이 가장 부부싸움을 많이 한다. 2.우리 아버지가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이다. 3.우리 부모님은 우리가 어떻게 되든 관심이 없다. -->위 세 항목에 고개를 끄덕이시는 순간, 구세대 부모님을 두셨다고 시인하시는 겁니다^^ 맞고 들어오거나, 개한테 물리고 들어오면 칠칠맞다고 쫓겨났습니다. 심지어는 체벌의 한 방법으로 누나와 제가 제일 좋아했던 독서 금지령을 내리기도 하셨습니다. 매일 미술대회 나가서 상장을 받아도 붓 하나 안사주셨죠. 결국 고등학교 1학년 때 지긋지긋해서 그림을 때려쳤습니다. 3년을 자전거를 사달라고 졸랐지만 결국 안사주셨습니다.. 결국은... 동네 쓰레기장에서 자전거를 하나 주워서 타고 다녔습니다(^^) 재수를 하겠다고 졸랐다가 집에서 쫓겨날 뻔했습니다. 제 편을 들던 누나는 쫓겨나서 1년 반을 밖에서 살았습니다.(누나가 대학에 다닐때였죠, 그 때 누나 방을 찾아갔을 때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냉방에 스티로폼 하나 올려 놓고 겨울을 났거든요. 그 추위속에서 바퀴벌레의 시체들이 다락을 가득 메우고 있더군요. 누나는 그 때 공장에 다니고 있었는데... 참 기억하기도 싫은 그렇고 그런 시대였습니다. 지금도 그 영향인지 아이를 낳지 않고 있습니다. 애를 한 둘 둔 친구들은 애는 낳으면 알아서 큰다고 큰소리 칩니다. 솔직히 그런 친구들을 볼 때마다 그들의 용기에 탄복합니다... 저는 아직도 아이가 아이를 낳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나이 삼십이 겨우 넘어서 부모님을 인간적으로 이해하게 되더군요. 제가 학생들을 5년여 간 가르쳐본 적이 있는데 그 때 든 생각은... 나는 그래도 참 잘컸다^^라는 위안이었습니다. 물론 참 훌륭한 부모님도 많습니다. 어쩔 때는 부럽기도 하고 질투나기도 할 정도로요. 하지만 아이를 달랑 하나만 낳는 요새 추세 속에서 잘 키워내기란 쉬워 보이지 않는군요. 저는 그래도 엄한 부모님 밑에서 꿋꿋이 자라난 사람들을 신뢰합니다. (가끔 공공 장소에서만 그런 생각이 납니다. 온통 휘젓는 아이들을 보면... 우리집에서 컸으면 벌써 시체가 되어있겠거니 ㅋㅋㅋ) 저도 어쩔 수 없을까요? 이미 무뚝뚝하다고 아내에게 찍혔으니... 피는 못속이는 듯.
02/10/20 16:55
....젊은 청년입니다..여기서 밝히기는 조금은..힘든..그런 삶을 살아온..저는.. 뭐랄까~ 친구들의 아니 거리를 걷는..모든 이들이 부러웠던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왜 아직 이런방에서 사나.. 왜 나는 귀찮게 연탄불을 갈아야 하나. 왜 나는 비싼옷을 사입지 못하나... 정말로 정말로 바보 들이나 하는 생각 이었습니다.. 제가 한숨쉬던..그때에도 이제 쉬셔도 될 어머님은 힘든 몸을 이끌고.. 단100원이라도 더 버시려고 인내라는걸...배우셨나 봅니다.. 이제는 그때 보다 외형적으로는 살만 해졌지만... 그때.. 주무시던 어머님 등에 붙어 혼자 눈물을 삼키던 제가 지금은 용성 할수 없네요.. 나아 주신걸로도... 이렇게 조금이나마 사람구실 할 수있게 해주신것 만으로도 정말 머리숙여 감사합니다... 식용오이님...께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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