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te |
2002/10/07 19:30:25 |
Name |
김호철 |
Subject |
[잡담] 저의 베넷일화 |
제가 베넷에서 경험했던 지난 얘기들 걍 함 할려고 합니다.
한가지 얘기만 하기엔 글로 올리기엔 좀 짧아서 그냥 몇가지 얘기 뭉뚱그려서..;;;
1.
제가 1:1 고수만 오세요란 방을 만들었습니다.(제가 고수라서 그런게 아니라 지더라도 고수하고 많이 붙어봐야 실력향상에 도움이 될꺼란 생각에 그런겁니다.)
한 사람 들어왔는데 전적이 영 초보는 아니었고 초보단계를 막 벗어나는 듯 했습니다. 제가 지금 이 사람하고 겜을 한다면 제가 고수만 오세요란 방을 만든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에 전 '난 고수를 원합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겜 해요. 플즈', '한수부탁합니다' 이렇게 말하더군요.(영어로 한 대화지만 그 콩글리쉬를 일일이 영어로 지금 제 글에다가 쓰기엔 여러분들 보시기엔 오히려 난잡할 수 있으므로 걍 한글로 해석해서 쓰겠습니다.)
아무리 제가 고수하고만 겜하길 원한다고 하지만 저 역시 고수한테 한수부탁합니다성의 겜을 원하는 거나 마찬가지이기에 그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저도 더 이상 겜을 거부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데도 불구하고 제가 그와 겜을 같이 안하거나 추방시켜버리면 저 또한 제가 싫어하는 자기가 잘한다고 건방떨고 하수 무시하는 그런 고수인 사람과 다를 바가 없으니까요. 결국 겜했습니다. 역시 겜은 쉽게 저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그러자 상대방으로부터 나온 메시지..
'제가 졌어요. 전 역시 바보인가봐요.'
좀 황당했습니다..아니, 졌으면 진 거지...왜 저런 소리까지...
제가 아무 말 안한채 그가 걍 지금 겜에서 나가버린다면 저렇게 자학하는 그를 방관했다는 자책감에 평생을 괴로워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지금 이순간 무슨 말이라도 해줘야 했습니다.(역시 난 너무 맘이 착해서 탈이라니깐;;;;)
'아니예요, 아니예요..저도 초보때 님과 똑같이 플레이했어요..님도 더 연습 많이하면 금방 고수가 될 겁니다.'
이렇게 말하고나니 그제서야 그가 웃는 표정의 이모티콘을 띄우더군요.
그리고 서로 '빠이' 하면서 기분좋게 겜에서 나갔습니다.
정말이지 제가 겜에 이겨놓고도 진 상대방한테 미안하기는 첨이었습니다;;;;
2.
베넷방제를 보니 '1:1 초고수만 오세요'가 있더군요..하룻강아지 범 무서운줄 모르는 이 허접은 그 방에 당당하게 들어갔습니다.(그때 당시엔 제가 주로 고수방을 찾아다니면서 한수 배운다는 자세로 겜했었습니다. 그 결과 제 전적은 패가 엄청났습니다;;)
들어가자 상대방으로부터 나오는 이모티콘
'-_-;;'
승보다 패가 더 많은 제 전적에도 불구하고 고수방을 여러번 들어가서 상대방으로부터 나오는 저런 이모티콘을 한 두 번 본 적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 거엔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한판 했습니다. 상대방은 랜덤..저야 주종족 프토...
결과는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제가 무참히 깨졌습니다. 제가 여러 고수방을 들어가면서 겜해봤지만서도 지금 이 상대방이 가장 잘하는 것 같았습니다. 정말 초고수다웠습니다.
그렇게 겜 끝내고 나와서 다시 제가 겜할 방을 찾기 위해 방목록을 훑어보니 또 '1:1 초고수만 오세요'가 있더군요. 그래서 또 들어갔죠. 이 번에는 쉽게 겜하지 않으려 하더군요. 기억이 정확히 나진 않는데 저보고 방 나가라..난 고수하고 붙고싶다...이렇게 말한 거 같고..전 그가 만든 방에 다른 사람은 안들어오고 저만 들어왔기 때문에 겜 또 하고 싶다고 말하면서 방 안나가고 버티고 있었습니다. 만약 다른 사람이 들어왔었다면 제가 더 이상 겜하자고 달라붙진 않았을 겁니다. 그렇게 조금 실랑이를 벌이다가 또 겜했습니다.. 상대방은 역시 또 랜덤...그리고 결과는 역시 또 저의 패배....
그렇게 겜을 끝내고 또 제가 겜하러 들어갈 방을 찾는데 또 그 방이 있길래 또 들어갔습니다. 역시 다른 사람은 아직 안들어왔고 저혼자만 있는 상태....
이번에도 역시 '-_-;;' 이런 이모티콘이 나왔지만 이번에는 별 다른 말 없이 바로 겜하더군요..뭐 빨리 겜해서 좋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갑자기 왜 저러지 하는 뭔가 불안한 맘이 들었습니다. 이 불안감은 결국 현실로 나타나게 됩니다.
세 번째판도 결국 졌고 저의 허접한 실력에 괴로워하면서 겜 나오려고 하는데 상대방이 저보고 채널에서 만나자더군요...
그때 전 기뻤습니다...자신이 저보다 고수로서 제가 한 겜에 대해서 뭔가 조언이라도 해줄려나 보다 하고 말이죠.....그러나 그것은 저의 헛된 망상에 불과했습니다.
채널에서 만나 얘기했습니다.
초고수 : 님..자신이 고수인줄 아나 보죠? 왜 자꾸 제방에 들어와요?
저 : 아니 그게 아니라 제가 고수방에 들어가서 연습좀 하려고...
초고수 : 저 고수 아니예요. 저 허접이예요.
저렇게 말하자..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당황했습니다. 지금 자신이 허접이라고 말하는 건 고수가 자신을 겸손하게 말하는 분위기가 절대 아니었습니다. 절 오히려 비꼬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슬슬 열이 오르기도 하고 자기입으로 자기가 고수라는 말이 나오도록 제가 그의 비위를 거슬리게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저 : 아니 뭐 고수도 중고수, 초고수 또 그렇게 나뉘는 거니까 내가 실수 좀 해서 님한테 졌어요.
초고수 : 저한테 랜덤으로 세 번, 그것도 세종족 골고루 한번씩 다 져놓고 무슨 말하는 거예요? 자기 자신을 잘 아셔야죠. ㅋㅋㅋ
(전 계속 주종족 프로토스,,그는 랜덤으로 그렇게 세판했는데 공교롭게도 테란,프로토스,저그 모두 다 한번씩 나오더군요;;;;....위의 말로써 세 번째판은 왜 그렇게 별 말없이 빨리 겜했는지 이해가 갔습니다.)
저 : 뭐 님도 보니 저보단 그렇게 잘하는 것 같지 않은데요...내가 실수를 좀 해서..중고수가 초고수한테는 질 수도 있죠. 뭐....(분명 그가 저보다 월등한 실력이었지만 제가 이렇게 비위를 거슬리게 말해서 그의 입에서 자기가 고수라는 말이 나오는 걸 보고 싶었습니다..;;;)
초고수 : 저 허접이라니까요. ㅋㅋㅋ
대충 이렇게 대화하다가 갑자기 대화가 끊어진 걸로 기억납니다..
저렇게 자기가 허접이라고 말한 것은 자신한테 진 절 더욱 비꼬기 위해서 한 말로 전 생각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허접한테도 진 사람은 뭐죠? 초허접??;;;;
전 지금 그때 이 말을 못한 것을 천추의 한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자신이 허접이라면서 왜 방제를 초고수만 오세요라고 만들었나요? 거 참 이상한 사람이네..'
그럼 과연 그가 무슨 말을 했을까? 얼마나 말도 안되는 변명거리를 댔을까?
제가 그 당시 왜 저런 말을 생각못해서 그에게 말하지 못했는지 그때만 생각하면 한이 됩니다.
겜 끝나고 채널에서 만나자길래 저한테 무슨 조언이라도 해 줄 줄 알았던 그에게서 소크라테스의 명언 '너 자신을 알라'는 쓴 소리를 들었던 것입니다.
다른 말로 바꾸면
'허접주제에 감히 고수한테 덤벼?'
3.
1:1 한판 했습니다. 상대방이 잘하더군요...제가 프로토스, 그는 저그였는데 결국 제가 졌습니다. 겜 시작한지 중반쯤 되서 저그가 슬슬 병력이 모이길래 앞마당 치러 갔는데 제 병력 몰살했습니다. 제가 지고 나서 리겜하자고 하니 흔쾌히 응하더군요. 두 번째 겜에서도 거의 앞판과 똑같은 패턴으로 겜이 진행되었는데 이번엔 제가 아까 앞마당 친 병력보다 더 많이 모아서 치러 갔는데 역시 몰살....그래서 지지..그래서 또 리겜하자고 말했는데 이번엔 제가 좀 망설이면서 리겜하자고 말한 건 사실이었습니다. 아무리 사람이 좋아도 자기보다 못하는 사람하고 그것도 생판 모르는 첨 보는 사람한테 두겜해줬으면 됐지..세판까지는 좀 무리인 듯 싶었습니다. 그래도 일단 밀어붙였습니다. 그러나 우려했던 기대와는 달리 'OK' 하더군요..또 겜했습니다. 이번엔 이기기 위해서 또 스타일을 바꿨습니다. 근데 놀라운 것은 전 매번 할 때마다 제가 진 앞판과는 다른 스타일로 가는데도 그는 세판 똑같은 빌드..똑같은 유닛구성...똑같은 타이밍에 병력생산...그렇게 겜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저그가 이렇게 나올땐 제가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 연습해봐라 이런 의도였던 것입니다. 자기가 평소대로 하는 겜이 아니라 거의 저의 연습상대를 해준거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전 속으로 정말 고맙더군요...
그런데 세 번째판 또 졌습니다. 맘속이야 또 리겜을 외치고 싶었지만 상대방한테 미안해서 도저히 더 이상 리겜하자고 말할 용기가 안났음에도 불구하고 얼굴에 철판을 당당히 깔고 또 리겜을 부르짖었던 것입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너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겜해주겠다'
눈물 났습니다. 감동의 도가니였습니다.
그래서 다시 4번째판으로 돌입..앞에 3판에서 모두 졌기에 이번에도 역시 전 또 다르게 해서 겜을 진행했고 상대방은 앞의 3판과 판박듯이 똑같이 겜을 운영해나갔습니다.
이번엔 제가 그를 공격할 때 유닛에다가 제가 저그전에서는 거의 안쓰던 다크템플러를 동반해서 치러갔는데 마침 그가 오버로드가 유닛들위에 없었던지라 제가 이길 수 있었습니다. 앞에 세판에서도 역시 오버로드가 없었지만 그땐 제가 다크템플러가 없었으니 괞찮았지요.
그렇게 해서 3전4기로 드디어 이겼던 것입니다. 전 승리의 기쁨에 심취해있었는데 이번엔 그가 저보고 리겜하자고 하더군요.
제가 져서 그에게 리겜하자고 했듯이 그도 졌으니 저한테 리겜하자는 건 당연했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전 리겜하기 싫었습니다. 이제서야 겨우겨우 한번 이겼는데 지금 또 겜을 한다면 이번엔 그가 앞판들처럼 똑같이 겜운영하지 않을 건 뻔한 사실이고 그렇게 해서 제가 지면 저의 승리의 기쁨은 순식간에 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전 리겜을 거절 할 순 없었습니다. 리겜을 거절한다면 자신한테는 아무 재미도 의미도 없었던 4판의 겜을 저한테 해준 그의 성의를 제가 저버리는 배은망덕한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뭐 베넷에서 첨 보는 모르는 사람이기에 제가 아무말 않고 걍 겜 나가버리면 그가 저한테 좀 섭섭하던 말던 저하고 아무상관이 없었지만 아무리 서로 얼굴 안보는 인터넷상이라지만 도저히 그럴순 없었습니다. 하기 싫어도 해야만 했습니다.
전 하기로 했고 방을 새로 만들고 그를 기다렸습니다.
근데 안오더군요...
계속 기다리기도 하고 똑같은 방제로 다시 방을 만들어 보기도 하고 그렇게 5분여 흘렀습니다.
앞게임들에선 그렇게 방만들자마자 바로 들어오더니 지금은 왜 안들어오지?
'아예 안오니 잘됐네 뭐. 안그래도 하기 싫었는데..히히' 제가 이런 생각했을 것 같습니까?
전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의리의 사나이..으쌰..으쌰..)
또 기다리고 다시 방만들어보고 하다가 시간은 어느덧 10분이 지났더군요...
아까의 겜하기 싫었던 맘은 어느덧 사라지고 그에게 고맙다는 말한마디 못한 게 맘에 걸리더군요. 사실 앞에 겜할때는 맘속으로만 고맙다고 생각했지 메시지는 못보냈거든요.
이번겜에서 다시 만났으면 고맙다는 말을 꼭 했을텐데....많이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그 때 그렇게 겜했던 기억은 아직도 제맘속에 따뜻한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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