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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2/10/06 06:39:56 |
Name |
jerrys |
Subject |
승부에 대한 짧은 생각 |
나는 어려서부터 지독히도 운동을 못했다. 남들과 같이 뛰어 노는 것을 즐기긴 했지만 으레 다른 동네와 야구시합이라도 할라치면 나만 달랑 빼놓고 팀을 구성하곤 했다. 운동회의 꽃인 달리기 시합에선 항상 꼴찌는 내 독차지였다. 어려서 주사를 근육에 잘못 맞아 다리가 선천적으로 약한 탓도 있었지만 스스로 운동신경이 잼병이라고 생각했었다. 운동회를 전날엔 다음 날이 오는게 어찌도 싫던지 아무도 없는 곳으로 도망가고 싶을 정도였다. 부모님들이 오신 자리에서 남들보다 한참이나 뒤쳐져서 들어오는 것을 보여주기 싫었던 까닭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나는 5번 달리면 1번은 넘어졌다. 초등학교 6학년 때의 마지막 가을 운동회때, 나는 멋진 슬라이딩 태클과도 같은 동작으로 넘어져서 지금도 확연히 드러나 보이는 길고 굵은 상처를 무릎에 남겨 놓았다. 남들이 결승선을 지난 한참 후에 어기적거리며 뛰어 들어갔고 그날 운동회에 모인 수천의 사람들은 홀로 초라하게 결승선을 지나치는 나를 보았을 것이었다. 나는 수치심에 양호실 갈 생각도 잊고 점심도 챙기지 않았다.
13살의 아이에겐 뻔한 승부를 반복적으로 강요하는 세상이 무지막지하게 야만스러워보였다. 또한 승부를 앞에 두고 천진난만하게 웃을 수 있는 아이들이 다른차원에 속하는 이질적인 존재들로 비춰졌다.
그러나 "질지도 모르고" "우스개거리가 될지도 모르는" 공포스런 승부는 계속 되었다. 어느새 나는 평소에는 잘하다가 시선을 받는 자리에 서면 어김없이 우스꽝스런 실수를 반복하는 존재가 되어 가고 있었다. 반 대항 야구 시합을 하면 나는 나를 향해 날아오는 플라이볼을 바라보면서 너무 많은 생각을 하곤 했다.
'저걸 못받는다면 우리반 아이들의 얼굴을 어떻게 바라볼까?' '다른 반 아이들은 나를 비웃겠지' '왼손으로 받아야 할까 오른 손으로 받아야 할까' '좀 더 뒤로 물러나야 하나'
공은 생각이 지나가는 속도에 비해 항상 너무나도 느리게 날아왔다.
찰나의 시간에 수많은 의심과 다른 이들의 반응에 대한 수많은 추측과 걱정이 스쳐지나가고, 나는 타이밍을 놓치고 공을 뒤로 빠뜨려 결국 웃음거리가 되곤 했다.
어느새 패배감에 익숙해져 가고 있었던 것일까.
고 2가 되자 나는 어떤 승부에도 참여하지 않게 되었다. 남들이 공을 차고 놀 때 교실 한편에서 소설책을 읽었다.
고3이 된 어느 가을날이었던가 야구부가 유명한 우리 학교의 운동장에선 연습경기가 벌어지고 있었다. 친구들과 나는 교정의 뒷편을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그 때 들리는 땅-하는 소리. 고개를 돌리자 빨랫줄 같은 직선타구가 내 면전으로 쇄도하고 있었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나는 하드볼을 맨손으로 탁 받아냈다. 친구들이 어! 하고 소리질렀고 하드볼을 손에 쥔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야구부원들이 오- 소리를 내며 박수를 쳐주었다. 공을 되돌려주고 난 뒤 손을 보니 빨갛게 부풀어 있었다. 우스운 이야기지만 당시 나를 잘 몰랐던 친구들은 내가 상당한 운동신경의 소유자라고 착각을 하게 된 것이다.
대학시절에 이런저런 심리학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내가 처한 패배감이 지나친 호승심에서 비롯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적당한 긴장과 자신감은 좋지만 "패배가 자신에 대한 평가를 전부 바꾸리라는" 너무 진지하고 무거운 생각. 결과에 대해 많은 의심과 두려움을 가지는 것은 모두 초를 다투는 반응을 요구하는 어떤 경기에서도 해악이 됨을 서서히 깨닫고 있었다. 예를 들어 나는 논쟁에서 지지 않기 위해 남들보다 잠을 안자가면서 책을 여러번 읽고, 내용을 외우고 또 남들의 평가에 대해 민감한 나 자신을 서서히 눈치채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게임방송을 즐겨 보는 근본적인 이유는 이렇게 승부에 대한 내 열의, 긴장감에서 비롯된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진정으로 후회없이 승부를 내기 위해선 "너무 많은 생각을 해선 안된다" 승부사는 자신이 승부를 겨루고 있다는 긴장감, 그리고 목적에 대한 집중,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 이외에 어떤 요소도 머리 안으로 끌어들이면 안된다. 내 패배감이 치유된 것은 어느날, 참으로 뛰어난 운동신경을 가진 선배의 충고로부터였다.
겨루고 있다는, 살아 있다는 느낌, 흐르는 땀방울, 숨소리. 모든 것들이 포함된 그 안의 상황을 느끼라고. 그 이외의 것들, 예를 들어 승부 끝에 올 환호나 손가락질, 사람들의 수많은 입담들, 이런 것들에 대해선 어떤 상상도 무의미 하다는 간결한 충고. 더 간결히 하자면 승부에 임하는 순간부터 "단순해지라"는 이야기였다.
그 이후로 나는 사람들의 앞에 서는 상황에서 예전처럼 실수를 남발하거나 떨지 않게 되었다. 그것은 남들의 평가로 내가 구성된다는 지나친 자의식에서 서서히 탈피한다는 증거였고, 어떤 면에선 자신의 더 신뢰해야 한다는 스스로에 대한 약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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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열 선수의 강함은 그가 가진 놀라운 실력 이외에 승부를 통한 스트레스를 적게 받는다는 것에 있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평소에 게이머들의 표정에서 그가 승부에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 추측하곤 한다. 그리고 대체로 전투에 대한 중압감을 잘 견디는 게이머들이 좋은 성적을 내곤 한다. 이것은 다음에 올 상황을 너무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는, 즉 승부 그 자체에만 몰두하는 태도를 가진 승부사의 특징이다. 흔히들 말하는 "백지 한장" 싸움에서 승부에 대한 자신의 태도. 스스로에 대한 신뢰가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런 면에서 승부에 강한 게이머들에겐 실력을 뛰어 넘는 뭔가가 있다. 임요환 선수의 무서운 표정, 김동수 선수의 꽉다문 입매를 보면 그들이 이토록 쟁쟁한 프로 선수들이 대거 참여한 경기에서 어떻게 우승할 수 있었는지 보여주는 듯 하다.
원래 이 글은 오늘 박정석 선수의 경기를 보고 심란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쓰려 했던 것인데 사설이 너무 길고 말았다. 박정석 선수는 분명 최선을 다했지만 마음 속엔 아쉬움과 후회가 분명 교차하고 있을 것이다. 분명히 예전의 박정석 선수는 경기 중에 너무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어떤 면에서는 이재훈 선수의 놀리우리만치의 냉정함처럼 그의 플레이엔 승부에 대한 대담한 태도가 넘쳐 흘렀었다.
오늘은 눈에 띄는 긴장감. 적당한 정도가 아니라 잡아당기면 끊어질 듯한 긴장감이 그의 얼굴에서 배어나왔다. 처음으로 밟아보는 너무 큰 무대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한편으론 그의 어깨에 올려진 유형 무형의 짐들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경기를 즐기라는 가당치도 않은 이야기를 하고 싶지도 않고, 우승하라는 주문을 외고 싶은 것은 아니다. 환호를 배경으로 링에 오르더라도 언제나 싸움은 고독하고, 승부와 패배는 항상 혼자서 감당해야할 몫이기 때문이다.(이것은 그의 주위에 누군가가 없다는 의미는 절대로 아니다)
다음의 경기 때, 나는 박정석 선수가 어깨를 털어버린채로 링 위로 올라갔으면 싶다. 기대를 한몸에 안고 있는 종족의 대행자나 팀의 대행자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지금껏 몸에 익혀왔던 모든 감각들과 연습의 결과들을 보여주기 위해서만, 링 위에 올랐다는 생각을 했으면 싶다. 경기가 끝나고 승패에 관계 없이 씨익 웃으며 땀을 닦고 상대방과 악수할 수 있는 그런 전투가 되었으면 한다. 결과가 나를 바꾸지는 못한다는 것을 항상 믿었으면 한다.
P.S.지나가면서 책선전 하나.
고민이 많은 분들에게 추천하는...
끝나지 않은 길(아직도 가야할 길)-스캇팩의 저서로 스무살에 참 감명깊에 읽었던.
절망이 아닌 선택 -저자는 기억나지 않네요. 이 책을 읽고 치부가 드러난 것 같아 깜짝 놀랐던 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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