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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2/05/13 17:21:55 |
Name |
p.p |
Subject |
[re] 저도 어제... [지리산 등정기] |
쯧쯔... 딱한 하루를 보내셨군요. 나애리! 나쁜 기집애!
그러게 저 처럼 누구와 약속 하지 말고 자기 자신과 하루를 보내면... ^^γ
며칠 전부터 인터넷 and 아는 수다맨 도움을 얻어,
휴일 하루 혼자서 산악회 따라 등산가는 방법을 파악 했습니다.
도시마다 휴일 아침 산악회 출발하는 장소 고정되어 있을겁니다.
파악한 정보로는, 부산은 범일동 시민회관 앞
시간은 06:00 ~ 08:00 사이
토욜 밤 자명종 06:00 맞춰 놓고 일찍 잠자리 들다.
일요일 아침 06:00 일어나서 대충 씻고 06:40 간단한 차림으로 집에서 나서다
07:30경 범일동 역에 도착 시민회관 찾느라 헤매다.
휴일 아침이라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 등산 차림인데 누구한테 묻는 걸 싫어하는 성격 탓에
좀 헤매다가 할 수 없이 물어서 찾아가다.
시민회관 앞뒤로 관광버스 10여대가 전면에 산악회 이름과 행선지 붙여 놓고 일일회원 모집하고 있었다.
잠시 주위 분위기 파악하니, 아침 안 먹고 나온 사람들 포장마차에 붙어 있다.
쭈삣쭈삣 끼어 들어보니 시락국밥 들 먹고 있다.
나도 한 그릇 시켜 먹다. 한 그릇 \2,500
먹다 보니 다른 사람들 도시락 주문해 간다.
스티로플 도시락에 반찬은 김치 한가지 비닐봉지에 담아 준다.
밥 먹는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점심은 각자 준비란다.
나도 도시락 주문하다. \3,000
주위에 슈퍼가 없어 역시 물어보니 앞 리어카 행상에서 생수 판매한단다. 생수 \600
모두 휴일아침 등산객들을 위해서 임시 장이 서는 것이다.
다음은 차량-산악회- 선택
회비는 차비 정도만 걷는다. 지리산은 \18,000 ~ \20,000
어차피 자기들 산악회원들 가려고 준비한 차량이고,
당일 회원 받아서 빈자리 채우고, 가능하면 회원 늘이는 방법이기도 할 테니까...
젊은사람들 모인 산악회 기피, 내 나이또래들 모인, 아줌마들 섞인 산악회 선택하여 차량 탑승하다.
흑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아무래도 젊은사람들 체력을 못 따라 갈 것 같아서...
부부들이 회원의 대중이고,
일일회원은 이삼십대 오피스 걸 네명과, 거의 환갑이 넘어 보이는, 아마 직업이 의사 아닐까 싶은
중년의 남자친구 두명, 그리고 나! 총 삼십명 출발!
근데, 나중에 보니 완죤~히 오판이었다.
막상 산에 오르면서 보니 젊은 산악회원들은 완만한 코스 택하고,
노땅들은 매주 산에 오르내린 사람들이라 일부러 딴 사람들 안 다니는, 악코스를 골라서,
산에서 훠~얼훨 날아 다녔다
지리산 [바래봉] 철쭉제 라고 붙어 있는 차량에 올라 탔다.
차가 출발하고 나서야 산악회를 잘못 골랐다는 걸 알았다.
산에 오르는 여러 코스 중에서 완만한 코스는 당연히 시간이 많이 걸린다.
산악회원들은 이미 바래봉에 여러 번 올랐던 사람들이어서, 완만한 코스는 싫증난다며
지름길 택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지름길은 험난하다!
1,165m! 오를 때는 그래도 어찌어찌 올랐다.
바래 봉 철쭉제, 이 글 쓰는 도중에 잠깐 쉬느라 아침에 배달 된 조선일보를 펼쳐 보니,
61면 [여행특집]란에 '지리산 바래 봉 철쭉제' 특집이 나왔다. 참으로 우연이다.
그런데, 신문에 실린 사진이 언제 쩍 사진인가?
신문에는 '불타는 철쭉 만산, 황홀한 탄성 절로' '5월중순부터 5월말까지 절정' 이라고 나와 있지만,
기실 어제 내가 본 철쭉은 이미 절정을 지나, 시들고 있었다.
아마 4월말 경부터 5월 초순이 절정이었던 것 같다.
그 시기는... 정말 황홀했을 것 같다.
산이 불타 오른다! 라고 했을 것 같다.
산에서 내려 올 때, 또 코스를 변경한다고 했다.
처음 계획보다, 사람들 발길이 거의 닫지 않은 등산로를 택했다.
우거진 산대나무 숲을 헤치고,
길인지 아닌지...
지리산에 맹수가 살지 모른다는, 매스컴 보도가 수긍이 되었다.
이제야 정말로...
왜 625때 지리산에서 빨치산들이 장기적인 매복전투가 가능했는지 알게 되었다.
산이 웅장하게 크면서도,
비탈이 많았다.
어느 책에선가 읽었는데, 빨치산의 수기였는데,
토벌대가 바로 위로 지나가도 아래쪽 비탈에 붙어 숨어 있으면 모르고 그냥 지나 갔다는...
나중엔 너무 힘들어 거의 발을 질질 끌며 산을 내려 왔는데,
등산 배낭이 없어 어깨 걸쳐 매는 빽 하나 매고 갔었는데, 어깨 빠지는 줄 알았다.
그래도 뒤쳐지기 싫어서 항상 선봉대열에 끼어 내려 왔지만,
참, 산을 별로 안 좋아 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그 고생을 왜 사서 하느냐... 일 듯...
갑자기 예전에 혼자 설악산 대청봉 1,708m 오를 때 생각이 났다.
그 때, 삼십대 후반이었는데, 혼자서 준비도 전혀 없이 충동적으로 올랐기에
- 슬리퍼 신고, 객기로 -
악전고투였다.
기어서 올랐고, 굴러서 내려 왔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악으로, 깡으로 올랐다고 할까...
돌아오는 차 안에서 산악회 전,현직 회장단이 낸 성금으로 맥소 파티가 벌어졌다.
공짜로 푸짐히 얻어 먹었다.
오늘 걸음 걷는 게 힘들다.
오래 전 고래잡는 수술했을 때 걸음걸이 같다 ^^;;;
그래도 왠지 시원하다.
항상 뭔가 묵적지그리 하던 게... 시원하게 내려 간 느낌
거의 한해 한번 쯤, 찾는 산인데,
앞으로는 좀 자주 올라야겠다.
ps : 산에 한번도 안 오른 분이 계신다면,
저처럼 한번 가 보시길...
산에서 일행을 놓칠까 봐 너무 안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헤어졌다, 만났다 하는 게 사람들 아닙니까.
여유있게 산과 자연을 즐기십시오.
오르다 보면,
어느덧 나무들 키가 작아 진걸 느끼게 될 거고,
산아래 풍광이 나뭇잎 사이로 조금씩 보이게 될 겁니다.
그 때 쯤 이면 숨차서 신경 쓰지 못했던
산새 지저귀는 소리, 바람소리 들릴 겁니다.
산에서 일행을 잃어도,
산악회원들 어떻게 하든 당신을 찾아옵니다.
산사람들은 책임감이 강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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