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te |
2002/02/03 20:41:52 |
Name |
Apatheia |
Subject |
[잡담] 마린 일병 구하기. |
마린. 테란의 기본 유닛.
HP 들입다 약하고 공격력도 별볼일 없고
가스 안들고 미네랄만 있으면, 배럭만 있으면
꽤 꾸준히 뽑아낼 수 없다는 거 말고는
어찌보면 좋은 점 하나도 없는 약하디 약해빠진 유닛.
쪽수로 밀어부치기에는 저글링한테 안되고
맷집으로 버티기에는 질럿한테 안되고...
이만저만 다른 데 신경 좀 쓰고 있노라면
으아악~하는 비명 소리 한 번 남기고 핏자국으로 사라져버리는
너무나 약해서 보기 안스러운 녀석들.
새벽밤을 새워 베넷에 매달리고 난 오늘 새벽
몇가지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를 들었다.
화가 나고 기가 막히고, 적당히 삐딱해지는 생각 속에서도 든 생각 하나.
어쩌면 우리 모두는, 무언가를 지킬 힘도 진실을 말할 목소리도 없는 우리는
성큰 밭에 던져진 마린 한기가 아닐까.
초반 바이오닉 러쉬, 생각은 좋았으나
여기까지 데리고 온 드랍쉽은 이미 폭파돼 버리고
같이 온 많지 않은 동료들 또한 다 죽어나가고
HP는 연신 깎여가는데, 나를 치료해 줄 메딕 한 기 옆에 없는
믿을 것이라곤 허약해빠진 가우스 건 한 정과
그나마 없는 자원을 쪼개 커맨더가 개발해 놓은 스팀팩 몇 개 정도...
여기는 남의 본진, 어차피 살아서 돌아가긴 틀렸다.
연신 촉수를 뻗혀대는 성큰 콜로니와, 괴성을 지르며 달려드는 저글링 떼들
저 편에서 이리로 몰려드는 히드라들...
조용히 눈을 감아 숨을 한 번 고르고
윗주머니 어딘가에 들어있는 어머니 혹은 애인의 사진을 한번 쓰다듬어보고
오히려 미소를 지으며 가우스 건에 새 탄창을 재는
못다한 삶에 미련이 남아 눈물은 흐를지언정
마지막 한 번의 일격을 위해 마지막 스팀팩을 장전하는
성큰밭에 혼자 떨구어진, 빨간 갑옷의 그런 마린 말이다.
아무리 공3업 방3업에 사거리업 스팀팩 리서치까지 해도
허접한 커맨더의 손에 목숨을 맡긴 이상
사지로 몰려나가 힘에 부치는 싸움 끝에 개죽음을 할 수 밖에 없는 마린들.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못하고
말해야 할 것을 말하지 못하는
우리는 어쩌면 그런 마린이 아닐까.
너 나 할 것없이, 우리 모두.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다.
혼자 떨구어졌더라도, 이젠 가망이 없을지라도
가만히 앉아서 저글링 개떼에 파묻혀 죽음을 맞이할 수는 없다.
죽어도 혼자 죽지는 않으리라는 독기로
한번 더 가우스건을 난사해 보고 죽을 일이다.
한 마리의 드론이라도 더 죽이고 피를 뿌릴 일이다.
눈을 떠봐 주위를 둘러봐 쓰러져만 가는 사람들을 봐.
이제 모든걸 다시 시작해봐 두번다시 이런일은 없게.
-Apatheia, the Stable Spir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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