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ports in 2008
(1) - 산, 그리고 계곡의 심연
환호성이 울려퍼졌다. 고래등만한 무대 위에서는 스타일리쉬한 폰트의 'WE' 가 새겨져있는 하
얀 옷의 한 남자가 막 들어올린, 무대 위로 비춰진 찬란한 오색 빛을 빨아들여 굴절시키는, 반
짝이는 자그마한 트로피에 입을 맞추고 있었다. 그의 양 옆에는 이 행사의 진행자로 보이는 정
장 차림의 남성 셋과, 하얀 옷의 그를 - 승자 같았다 - 무덤덤하게 바라보는, 연한 청색의 유
니폼을 입은 또다른 남자가 서 있었다.
"박세룡 선수, 일명 쇼부가- 전 시즌에 이어서 이번 시즌도 차지하면서 2002년의 이형주 선수
다음으로,
그리고 휴먼 프로게이머들 중 최초로 워3리그 2회 연속 우승을 달성합니다!"
"작년부터의 새로운 워크래프트3 리그, 즉 워3리그가 금요일로 방송 시간을 옮긴 후로는 처음
이죠-"
"양대리그 제패 후 또 우승을 했어요!"
흥분에 찬 정장의 남자들의 목소리가 울려퍼지면서 환호성을 덮을듯 말듯 했다. 그들의 얼굴과
목에선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아마도 상당히 흥분했던 것 같았다. 가운데의 남자가 헛기
침으로 목소리를 가다듬고 다시 입을 열었다.
"자, 박세룡 선수! 우승 소감 한말씀 해주시죠!"
마이크를 건네받은 하얀 옷의 사나이는,
박세룡이라고 불리는 모양이었다.
-----------------------------------------------------------------------
"우선 이렇게 큰 무대에서 두번이나 우승을 할 수 있어서 정말 영광이구요, 비가 오는데도 불
구하고 이곳에 와주신 저와 장재호선수의 팬 여러분, 연습 도와준 우리 팀원들 모두, 격려해준
친구들, 지금 무대 바로 옆에 계신 부모님, 우승을 일궈낸 저 스스로, 그리고 다른 많은 분들
께 감사드립니다!"
세룡은 그의 앞에 펼쳐져 있는 인간 융단 - 왼쪽 방향에는 박세룡의 사진, 빨간색 응원용 풍선
, 플래카드들과 함께 착석해있는 그의 팬들, 그리고 그 반대쪽에는 우승 소감으로 보아서는 장
재호라고 불리는 사람의 팬들이, 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 을 향해 고개숙여 인사를 했다.
"네! 박세룡 선수! 우승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이어지는 환호성.
"하지만 오늘, 장, 장재호- 선수도 정말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긴 했지만, 정말 잘 싸워줬습니
다! 용호상박 다웠어요! 준우승 소감, 한말씀 해주시죠-"
정장의 남자들 중, 안경을 쓴 사람이 승자에서 패자로, 렌즈의 시선을 옮기려는 것 같았다. 그
는 그의 말에 의하면 '아깝게 패자가 된' 장재호의 이름을 말하면서 그 패자와 눈을 마주쳤다(
용호상박은 두 선수의 대결 구도를 말하는 것 같았다), 재호는 무덤덤했던 방금 전과는 달리
어느새 표정이 조금 굳어져 있었다. 재호와 눈을 딱 마주친 남자는 말을 더듬었다. 당황한 기
색이 조금 서렸다.
"오늘 아쉽게 졌지만, 다음 시즌에서는 반드시 우승을 차지하고야 말겠다는 말씀을 먼저 드리
고 싶습니다. ..저와 오늘의 멋진 승부를 펼쳐주신 박세룡 선수, 팬분들, 팀원들, 특히 김태인
선수, 부모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박세룡 선수의 우승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 다음 시즌에서도 높은 곳에서, 될 수 있으면 꼭 결승전에서 만나고 싶습니다."
마지막 문장이 제일 처음으로 와버린 듯한, 그래서 기백이 넘쳤던 - 어찌보면 당돌했던 준우승
소감이었다. 조금은 굳은 표정에 미세하게 떨린 목소리임에도 재호는 무덤덤하게, 그리고 자신
의 앞에 앉아있는 팬들을 보지 않고 인터뷰를 마치고, 마이크를 넘겼다.
마이크를 건네줄 때 세룡과 재호의 눈이 마주쳤다. 짧디 짧은 눈빛 교환이 이뤄졌다 - 다른 사
람들은 눈치채지 못했다 - 재호의 눈빛은 강렬했다, 그리고 차가웠다. 세룡은 매섭지는 않지만
진지한 눈으로 재호를 그 짧은 시간 동안 마주했다.
"자, 그럼 이번 시즌의 폐막이라고 할 수 있는, KHN배 워3리그 시상식이 있겠습니다!"
그런데 가운데의 진행자는, 이상하리만치 짧은 인터뷰의 시간을 가지고 다음 순서로 넘어가려
는 듯 했다. 뭔가 문제가 생겼거나, 아니면 경기 직후보다 조금 싸해진 분위기에 내심 놀란 듯
했다.
-----------------------------------------------------------------------
'픽-'
"음? 왜 끄셨어요? 시상식도 봐야.."
"연습해야죠~ 시간도 없는데.."
"에이.. 그래도 시상식은 봐야돼지 않겠어요?"
"음.. 오-, 아하~ 우승소감을 미리 연습하실려고 그러시는거구나, 전 또 왜그러시는줄.. 하하"
"농담도.."
"아니, 왜요~ 다다음 시즌이면 얼마 안 남았는데.. 지금부터 차근차근 해두셔야.. 후후-"
"들어왔어요. 빨리 가죠."
"..하여간 그 유머센스란.. 예이~"
어두컴컴해서 넓이도 가늠할 수 없는 공간인데, TV까 꺼지니 더 어두워지면서 불빛이라고는 마
주보고 있는 두 컴퓨터 테이블에 얹힌 모니터 두 대의, 생기없는 광채 뿐이었다. 마주보고 앉
아있는 두 남자들이 빛에 비쳐 나타났다. 한명은 아직 고등학생 같았다 - 미미하게나마 얼굴에
나 있는 여드름과 그의 의자에 걸쳐있는 교복 상의가 그것을 간증했다 - 안경 너머의 진지한
눈동자와 짧은 머리모양이 더더욱 그렇게 보이게 했다. 다른 한명은 그와는 달리 머리가 헝클
어졌지만 전혀 내색을 안하는 것 같은, 마치 그게 평상시 모습같이 편안한 표정의, 의자에는
보통 점퍼같은 옷이 걸려있는 것으로 봐서 학생 신분은 아닌 것 같은 남자가 마우스를 잡고,
모니터를 응시하며 앉아 있었다. 하지만 서로 존칭을 쓰면서 대화하는 걸 보니 둘의 나이차는
가늠할 수 없어 보였다.
두 모니터의 화면은 동일했다 - 워크래프트3, 멀티플레이어 게임 방이었다. 오른쪽에는 전장이
나와 있었다.
[Neo Twisted Meadows v1.3]
밑엔 두 플레이어 - 필시 그 두 남자들이다 - 의 채팅 메시지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두명의 아
이디로 봐서는 둘은 같은 단체에 소속되어 있는 것 같았다.
-----------------------------------------------------------------------
86.Parasol : 살살요 충사마~
Sting.Parasol : 저야말로.. 덜덜덜
86.Parasol : -┏
86.Parasol : ㄱㄱ
Sting.Parasol : gg gl hf
86.Parasol : gl
-----------------------------------------------------------------------
빨간 글씨가 천천히, 연달아 떠오르기 시작했다.
Starting in 5 seconds...
Starting in 4 seconds...
Starting in 3 seconds...
Starting in 2 seconds...
Starting in 1 seconds...
Starting in 0 seconds...
e-Sports in 2008 (1) - 산, 그리고 계곡의 심연 <終>
-----------------------------------------------------------------------
두서없을지도 모르지만, 돌이나 안맞았으면 좋겠네요. ^^;;
처음엔 워3 이야기부터 시작입니다~
스타 이야기도 나옵니다. 다음 화부터요.
많이 봐주시길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