뚫으면 이긴다...
저 탱크라인만 뚫으면 이긴다. 저기만 넘으면 본진이다.
뚫린다...아니...뚫었다! 이겼다! 우승이다..!
"GG! GG를 선언합니다! 첫 스타리그 진출에 우승을 차지하는군요!"
"첫 스타리그 진출에 우승을 하는건 정말 대단한 일이죠, 차기연 선수!"
캐스터와 해설의 말이 오고갔다. 경기에 대한 설명부터 우승이라는 것, 특히 첫 진출에 우승이라는 것에 대해 많은 말이 나온다. 그리고 조금은 지리한 대화가 끝나고, 인터뷰를 하러 온다.
"우승 축하드립니다."
상당히 큰 키에 안경을 낀, 평범한 얼굴을 한 사람이 우승자다. 우승자는 작게 감사합니다 라고 말했지만, 마이크가 없었기에 들리지 않았다.
"소감 한마디 해주시죠."
그에게 마이크가 다가간 순간,
'따르르릉!'
자명종 소리가 울린다.....
침대위에서 한 소년이 조금 두꺼워 보이는 이불을 아직 덮은채로 상체만을 일으킨다. 그리고 머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린다.
"아...좋았는데..."
자신의 즐거웠던 꿈을 깨버린 자명종은 아직도 하염없이 울리고 있다. 화풀이라도 하는 듯 자신의 머리맡에 있는 자명종의 위를 강하게 때리고 몇신지 본다. 7시. 기연이 학생일 때, 등교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기연은 이불을 멀리 냅다 던지고 거실로 나간다.
그에게 달라진 것은 꿈일 뿐, 지금의 현실은 언제나와 똑같이 흘러간다. 세면 후 먼저 나가신 어머니께서 차려준 아침을 먹고 컴퓨터를 켠다. 간혹 숙제를 할때도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간혹일 뿐, 그는 보통 게임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그러니 만큼 기연의 장래희망은 프로게이머.
스타를 실행시키고 키보드와 마우스를 다시 잡는다. 오늘도 역시 제대로 말을 듣지 않는다. 몇년은 썼던 마우스와 키보드기 때문에 고물이 되어버려, 사용이 힘든 지경이다.
'오늘이라도 당장 새로 사야겠다.'
생각을 하며 조그맣게 중얼거린다.
학교에서도 역시 기연의 생활은 일정하다. 중학생이기에 1교시부터 6교시까지 끝내고 나면, 청소라는 것이 기다리고 있다. 아무튼 이런저런 일이 있어가며 방과 후엔 언제나 친구와 만나서 스타크레프트를 하기로 약속을 한다.
집에 가는 길은 얼마 되지 않는다. 걸어서 10분 거리. 가는 길에 노점상들이 많다는 것만 제외하면 꽤나 좋은 자리다. 이번에도 역시나 노점상들이 깔려있다. 이번엔 수는 얼마되지 않지만 개인당 수량이 많다. 기연은 언제나처럼 지나가는 데, 퍼뜩 생각이 났다.
'아, 마우스...'
제발 이 중에 마우스가 키보드가 있기를 바라며 쭉 둘러보았지만, 없는 듯 보였다. 하지만 계속 찾던 도중 마우스를 발견했다. 그 옆엔 키보드도 있었다. 기연은 관찰력이 부족한 자신을 속으로 자책하며 가격을 물었다.
"이거 얼마에요?"
"응? 이거? 4000원이야."
"아니...스피커 말고 이 마우스요."
정확히 네번 질문해서 가격을 알아냈다. 그리고 집에서 가져온 돈으로 산 뒤, 집으로 달려간다. 아무래도 이런 짐이 있으면 길거리를 활보하기는 좀 그렇다, 라는 생각에 말이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가방을 현관에 던지고 컴퓨터를 켠다. 그리고 켜지는 동안 그 동안 써온 고물들을 떼어버리고 새로 세팅을 한다. 마우스 박스에 들어있던 설명서를 아무데나 집어 던진다, 마우스에 무슨 설명서가 필요한가, 라고 생각하면서. 과연 새로산거라, 상당히 좋아보인다. 바로 스타에 들어가 만나기로 한 친구와 만난다. 그는 자신보다 더 실력이 좋은, 그런 사람이다.
메신저를 통해 채널을 정하고 이내 만나서 게임에 들어간다. 맵은 루나, 기연은 플토 상대는 테란. 과거엔 테란전에 자신이 있었지만 요즘에 들어 점점 자신이 없어지고 반대로 저그전에 자신이 생기는 기연은 조금 질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경기는 끝났다. 이겼다. 그것도 아주 쉽게, 너무나도 쉽게 이겼다. 자신보다 잘하는 사람을, 자신이 자신없는 테란전을 너무나도 쉽게 리버하나로 끝내 버렸다. 그 뒤로 내리 4경기를 더 했지만 모두 이겼다. 한번은 리버, 한번은 다크템플러, 두번은 중앙 힘싸움으로.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기연은 경기를 하는 동안 무언가 이상한 것을 느꼈다. 자신이 원래 하던것과는 다른, 상대방의 테크트리를 조금만 보고도 어떻게 나올지 모두 알수도 있었고, 자신의 컨트롤도 믿겨지지 않을 만큼 좋아졌다. 심지어 물량도, 프로브를 찍는 타이밍도, 자잘한 자신만의 테크트리도 모두 달라졌다. 물량은 언제나 스피릿이었고 프로브를 찍는 것은 절대 자신의 타이밍이 아니었다. 로보틱스도 언제나 원게이트에서 노사업에 올리는 원래의 자신과는 달리 매번 다른 타이밍에 올리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쯤됐지만, 기연은 아직 이상한 것을 별로 느끼지 못했다. 그저 기분 탓이겠지, 생각하고 넘어갔다. 그리고 친구가 학원 탓에 나간사이, 실험도 해볼 겸 다시 배틀넷에서 밀리를 했다. 언제나 주종족인 프로토스로.
기연도 이제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을 했다. 모두 이겼다. 10여판을 모두 이겼다. 모두 아주 쉽게, 친구와 했던것처럼 아주 쉽게 이겼다. 그리고 이번에도 친구와 했을 때의 느낌을 그대로 받았다. 마치 자기가 하고 있는 것이 아닌 느낌, 누군가가 대신 해주고 있는 듯한 느낌.
기연은 그제서야 바닥에 떨어져있는 설명서를 들고 읽어본다.
p.s현실보단 판타지에 가까운, 그런 내용이라고만 해두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