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Date 2006/08/18 21:17:37
Name 윤여광
Subject [yoRR의 토막수필.#23]*외전*아픔에 기뻐해야 할 우리

[BGM]
[Stigmatized By The Calling]

  네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처음으로 자기 힘으로 일어나보려 시도했던 첫 걸음이 결과론적으로 실패로 다가왔으니 나름대로 충격도 있을 것이고 자신에 대한 실망감이 남아있는 의욕마저 갉아 먹을까 걱정도 되고 하는구나.


  우리 나이가 올 해 22살이다. 남들은 웃는 소리로 20살이 넘어서 눈 한 번 깜빡이면 바로 30대라고는 하지만 시간이 그렇게 빠르진 않다. 물처럼 흘러 가는게 시간이라지만 하기 나름에 따라선 시간이 빨대로 소주 한 병 빨아 마시는 시간 마냥 길어질 수가 있다는 거다. 너나 나나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어른들이 말하는 냉혹한 ‘사회’라는 집단으로 스스로 발을 들인게 겨우 6개월전이네. 6개월동안 너는 겨우 1번 실패 했을 뿐이다. 하루 한 번 좌절해서 그 다음날 바로 다시 일어나야 하는게 내가 지난 시간동안 느낀 ‘사회’라는곳이야. 어쩌겠니. 흔하게 하는 말로 네가 힘들다고 지쳐 쓰러져도 세상은 아무 변화 없이 야속할 정도로 무난하게 흘러 가는 거야. 그럴수록 넌 네 존재감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되겠지.


--나라는 인간이 정말 필요한 곳이 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세상에 대답이 없는 질문을 하나 꼽으라면 나는 이 말을 너에게 해주고 싶다. 답은 네가 만들어 내는 거야. 그냥 그대로 앉아 있으면 답은 없는 것이고 죽자 살자 부딫히고 밟히고 그래도 다시 일어나면 어느 순간 분명히 그 ‘답’은 나오게 되어있어. 그렇게 무심하고 매정하게 보이는 세상도 스스로 살아보자고 나쁘게 말해 발악하는 사람들에겐 소박한 보답이라도 돌아오게 해. 목표는 크게 잡을수록 좋다지만 어떻게든 그 출발은 보잘 것 없이 마련이다. 너무 먼 곳만 보지 않았으면 한다. 훗날 네가 얻을 수 있는 수억의 재물이나 사람들 중 네 눈 앞에 떨어져있을지 모를 10원짜리 하나가 그 시작이 될 수 있어. 우린 우선 그 보잘 것 없는 10원짜리 하나를 얻어 보자꾸나. 네 노력으로 얻게 될 첫 결실이 판단하기에 너무 작다고 성공에 앞선 욕심으로 마음을 채우진 말자. 죽도록 노력해서 얻은 것이 겨우 이거..라고 생각하기 보단 죽도록 노력해서 이 작은 것 밖에 얻지 못했으니 앞으로 더 많이 힘써야 겠다...라고. 아주 쉬운 말이지 않니.
  그렇게 지겨워했던 12년간의 의무 교육 기간동안 죽어라 미워했던 선생들이 우리에게 했던 말. 나는 이제 와서 그 말들이 조금씩 내 가슴에 하나 씩 박히고 있는 것 같다.


  손가락 하나가 아프다고 밥을 못 먹는 것도 아니고 발가락 하나가 아프다고 해서 걷지 못 하는게 아니잖니. 앞으로 다가올 수 많은 실패들은 어떻게 감당하려 지금의 아픈 시간에 그렇게 아파하는 건지. 부끄럽게도 너보다 앞 서 그런 시간들을 겪어본 나로선 네가 조금은 답답하구나.


  왜 일까. 우리가 대학이라는 곳에 발을 들이며 상상했던 그 밝고 희망찬 날들이 오지 않는 것은. 각자 꿈이 있었고 나름대로 대학이라는 곳에 대한 상상에 젖어 힘들게 맞이했던 아침 햇살이 그렇게 반가울 수 가 없었던 날들이 있었는데. 반성해보건데 나는 내 꿈에 대해 그렇게까지 소흘하지 않았었는데. 조금만 더 가면 잡힐 것 같은 그 미래들이 내 걸음보다 반 보....한 보 멀어지는 것을 체감하며 서서히 지쳐가는 마음이 괴로운 날들이 오고. 그래도 내일은 괜찮아지겠지. 이제 내일부터는 내가 생각하는 세상이 되겠지 하며 철없는 생각으로 웃을 수 있는 날들이 있었는데. 어째서 우리는 이렇게 힘들고 슬퍼해야 하는 것일까.


  나는 가끔 내 뒤에 주저앉아 있는 너를 보며, 너와 나의 멀어지는 거리를 보며 걸음을 늦추기 보다는 좀 더 빨리 걸어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 함께 가는 세상사가 훨씬 즐겁고 덜 힘들겠지만 나는 그렇게 편하게만은 살고 싶지 않구나. 조금 더 짓밟히고 싶다. 조금 더 상처받길 원하고 훨씬 더 고통스러워지길 바란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걸을 수 있는 기력만큼은 세상이 허락해주길 바라며 하루 하루를 산다. 나와 같은 속도로 걸을 수 있도록 네게 손을 내미는 일을 세상이 허락하지 않을 것을 알기에 매정하게도 나는 너를 기다리지는 않으련다. 그저 하루 하루가 지나며 조금씩 빨라질 내 걸음 걸이를 늦게라도 네가 따라잡아주길 그리고 나보다 앞 서 나가주길 바라며 산다. 이게 내가 너에게 줄 수 있는 도움의 전부다. 친구여. 지금 잠시 내 뒤에 앉아 쉬고 있는 친구여. 앞 서 나가는 내 시간에서 다시 너를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이제 곧 가을이 올테지. 잘난 듯이 푸르게 색을 높이던 수풀은 점점 그 색이 옅어 질 것이고 우리 주변의 세상도 조금씩 변할것이야. 어떻게든 세상은 변한다. 그것이 우리가 원하는 방향이든 아니든. 너와 내가 원하는 정점에 서게 된다면 그 때엔 우리가 다가올 변화를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있겠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오늘이지 않겠느냐. 너무 앞에 있는 일만 봐서도 곤란하겠지만 그렇다고 지금의 네 모습처럼 멀리만 내다보며 마음 졸이는 일 보다는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끄고 보는 것도 나쁘진 않다고 본다. 일단은 여유를 갖자. 너 자신을 나 자신을 조절할 수 있는 여유.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급하게 집어먹던 닭다리에 입천장이 데어 식식대던 어린 날들을 생각하며 조금은 천천히 앞을 보자. 아주 쉽게 보일거야. 당장 네 앞에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앞으로 우리가 살아가야 할 날이 지금까지 살아온 날보다 훨씬 많이 남아있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겠지. 어떻게 살아도 우리는 생각지도 않던 작은 일에 아파 할 수도 숨이 끊어질 만큼 큰 상처에 고통스러워 할 수도 있지만 그 아픔을 네가 어떤 입장에서 받아들이느냐가 제일 중요해.


  한 가지 묻고 싶구나.
너는 적어도 내일 하루 더 숨 쉴 수 있는 기회에 기뻐하며 아파하겠니. 아니면 이젠 더 잃을 것도 없다 싶어 가만히 주저앉아 줄줄 흐르는 피를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눈 감을 날만 기다리는 시한부의 아픔을 원하니.


  아. 한 가지 더.
우리는 애초부터 잃을 것이 없었다.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이 발을 들여 놓은 사회 안에서 너와 내가 갖고 있는 것이 무엇이 있었겠느냐.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니니. 아니면 잊어버린 것이냐. 앞으로 하나 하나 만들어가는 삶을 살자던 소박한 약속. 더 이상 피를 뿜어낼 힘도 없는 심장을 가슴에 박아두고 죽어버린 눈동자로 멍하니 내 등을 바라볼 벗은 미안하지만 사양하고 싶구나.


  지금 우리는. 가슴이 터질 듯 아파야 하는 편이 더 좋지 않겠니?


[제 가까운 벗이 조금은 힘을 내줬으면 하는 마음에.]

* homy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6-08-21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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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낙타
06/08/18 21:35
수정 아이콘
글을 읽고 잠시 '멍~' 하니, 있었는데.. 음악이 멈춰 졌을 즈음..
키보드를 두드리네요..

짧게 한숨을 내쉬면서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는데..
손에 떨림이 멈추질 않군요..
윤여광님 글은, 뭔가가.. 참 댓글 쓰기 어려운 글이네요.;;
지금도 쓰고 있는 댓글을 지울까 하는데..(이번엔 끝까지 써볼까 합니다)

이번 글은 상당히 와닿는 부분이 많네요..
사실, 제가 나이도 어려서 글이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글이....뭐라 말하기 어려운...
눈으로 보고 읽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읽히고 있는 기분(?) 하하;;

여튼간에.. 횡설수설을 하고 있네요...
상당히 글을 읽고 방황 하고 있습니다 -_-;;

글 잘 봤구요~

그리고 BGM 너무 좋네요~ (어디서 이런 곡들을 -_-??)
아케미
06/08/18 23:43
수정 아이콘
……역시 힘이 되네요. 고맙습니다!
지포스
06/08/18 23:48
수정 아이콘
항상 좋은 글들 고맙습니다..
인생에 있어 한 방울의 이슬과 같이..
아무것도 아닌 무의미한 제 삶에 생명수가 되어 주시는 그런 글입니다.

여광님 계속해서 좋은 글 써주시길 바랄게요..
06/08/19 00:51
수정 아이콘
자기전에 잠시 들렀는데 들르기를 잘 한것 같아요.^.^
06/08/19 10:12
수정 아이콘
우리 모두 내일 하루 더 숨 쉴 수 있는 기회에 기뻐하며 아파합시다..!^^
여광님 요즘 글 자주 써주시네요. 출근길에 소박한 기쁨 하나 얻어 갑니다.
06/08/19 12:37
수정 아이콘
항상 고맙게 생각하며 읽고 있습니다.
06/08/22 02:36
수정 아이콘
아직 10대지만
항상 가슴에 지니며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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