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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5/03/15 03:04:07 |
Name |
kama |
Subject |
[연재소설]Romance - 7. 끝과 시작 |
휴, 이번에는 좀 빨리 올렸군요. 이 부분은 소설 구상 시부터 완성되어있던 부분이라 속도가 좀 빨리 나왔습니다. 더욱이 자유게시판에 소설을 올리시는 Timeless님의 속도에 자극을 받았기도 했고요^^;;(소설 잘 보고 있습니다~) 물, 물론 빨리 쓰다보니까 뭔가 문맥이 안맞거나 맞춤법이 틀렸던가 할지도ㅡㅡ;;;; 하여튼 이번 편도 재밌게~ 봐주시길!
아, 근데 신기한게 5화와 6화 조회수가 두 배에 가깝더군요.(6화가 더 많다는) 흐음, 이 건 '연재'소설인데 우째 이런 일이.....
7. 끝과 시작
턱까지 올라온 숨을 고르면서 손을 내밀어 검게 코팅이 된 문을 연다. 그 안으로 들어가면 온통 하얀색으로 꾸며진 건물의 내부가 들어온다. 사실 다른 건물들과 별 다를 바가 없는 내부 구조다. 다만 특별한 차이점으로 다가오는 것은 냄새. 소독약 일까나, 그 특유의 냄새가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나의 코를 자극한다. 물론 지금의 나는 그 냄새를 맡으면서 정확한 분석을 내놓을 만한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금방 신경을 끄고선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각기 다양한 질병과 그에 부과된 장비들을 지니고 다니는 환자복을 입은 사람들의 모습이 스쳐지나간 후에 내가 찾는 장소를 발견하였다. 안내 데스크. 그 안에는 분홍빛의 간호복을 입은 간호사가 세 명. 하지만 각자 어떤 일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 나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조급함을 달래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나는 그나마 시간이 있어 보이는 간호사에게 말을 걸 수가 있었다.
“저기요, 환자의 이름은 문가연입니다. 몇 호실이죠?”
“면회 오신건가요?”
“네.”
“어디보자......309호실이네요.”
“감사합니다.”
나는 대충 인사를 하고선 계단을 향해 달려갔다. “병원 내에서는 뛰면 안돼요!”라는 간호사의 말이 들리기는 했지만 그냥 무시하고 3층으로 단걸음에 올라갔다. 309호, 309호가 어디지? 나는 잠시 멈춰서 다시 주변을 살펴보았다.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눈에 익숙한 누군가가 보였기 때문. 그 역시 나를 발견했는지 손을 들었다.
“형!”
“여, 왔냐.”
의식 형은 나를 바라보고 살짝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내 생각, 부드러운 미소가 어울리는 얼굴이 아니라 억지로 입술을 비트는 것 같은 느낌이다. 아마도 안면 근육이 굳어있어 그렇겠지. 나와 마찬가지로.
“도대체 어떻게 된 거에요?”
“큰일은 아니야. 적어도 부상 정도만 따지면.”
“......”
의식 형은 가볍게 한숨을 내쉰 다음에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모든 사건이 그렇듯, 이번 일도 여러 가지 악의적 우연이 겹겹이 겹쳐서 생겨난 사건이었다.
예선이 이틀 앞으로 다가온 오늘. 수업이 끝나고 가연은 언제나와 같이 교실을 벗어나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하교길. 그 상황에서 그녀와 같이 하교를 하던 반 친구가 그녀가 가방을 메고 있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고선 말을 해줬고, 그녀는 이에 다시 교실로 돌아가기 위해 몸을 돌리며 한 쪽 발을 들었다. 그 때 오랜 연습과 계속된 정신력 소비로 축적된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고, 그것은 어지럼증의 형태로 나타났다. 별 것 없는 현상이었다. 그 어지럼증은 몇 초 만에 사라졌을 것이고 그녀는 고개를 살짝 흔들면서 ‘내가 피곤하긴 한가봐’라면 웃었을 것이다. 그 상황만 아니었다면. 몸을 돌리기 위해 발을 든 상태에서 찾아온 어지럼증은 순간적으로 그녀의 균형감각을 무너뜨렸고 그녀는 그대로 넘어졌다. 본능적인 방어기재가 발휘되어 왼손을 뻗었기 때문에 얼굴과 머리 같은 중요기관은 별 충격을 받지 않았다.
다만, 손을 조금 다쳤을 뿐이다.
“손가락 뼈 두 개가 골절되었고 손목뼈에 금이 갔다고 한다.”
그래, 조금 다친 것에 불과하다. 뼈는 고정만 제대로 하면 금새 원상태로 돌아온다. 나이도 많지 않으니 회복한 후에도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보통 때와 같았으면 운이 없었네, 라면서 휴식 시간이 생겼다고 즐거워할 수 있을 정도로.
“그렇다면......”
“당연히 키보드 누르는 것 같은 행동은 할 수 없지.”
“그렇군요......”
“들어가 봐라, 피곤해서 쉬고 싶기도 할 것인데 널 기다리고 있으니까.”
“네, 형은 안 들어가요?”
“아아, 이제 가봐야지. 오래 있기도 좀 그렇고 하니까. 잘 위로 해줘. 할 수 있다면.”
말을 마치자마자 그는 계단 쪽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사랑하는-어떤 의미로 해석하던지-여동생이 부상을 당했으니 심정이 착잡한 것은 이해가 가지만 그런 것을 넘고 들어가도 뭔가 석연치 않은 느낌이 공기를 통해 느껴져 왔다. 어쨌든 의식 형은 그렇게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계단을 내려갔고 나는 일단 생각을 접고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병실은 6인용 실이었다. 하긴 생명에 관련이 있는 큰 부상이 아닌 이상 독방을 줄 리는 없겠지. 대부분 골절상을 입은 듯이 각각의 부위마다 깁스를 하고 있는 환자들이었다. 그리고 난 그 환자들 가운데에 왼쪽 손목 부분에 깁스를 하고 있는 가연을 발견할 수 있었다. 혼자는 아니다. 그녀의 옆에는 처음 보는 사람이 앉아서 과일을 깎고 있다. 나이는 조금 들어 보이지만 젊었을 때는 꽤나 미인이었을 것 같은 40대 정도의 여성. 가연이의 어머니인가. 그렇다면 의식 형이 오래 있으려 하지 않은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군.
“아, 왔네.”
“응.”
가연의 얼굴은 예상만큼 나쁘지는 않았다. 여전히 피곤이 쌓여있는 듯한 모습이긴 했지만 그 점을 제외하고서는 평소와 다를 것이 없다.
“아, 처음 보지? 우리 엄마야. 엄마, 알지? 내가 매일 이야기 하던......”
“같이 프로게이머가 되려고 한다는 그 학생? 반가워요, 가연이의 엄마에요.”
“아, 네. 안녕하세요.”
형식적으로 인사는 했지만 어째 그리 좋은 눈초리가 아니다. 으음, 하긴 아직 고등학생인 딸에게 항상 남자가 같이 있었다면 일단 걱정을 먼저 하겠지. 그게 어머니의 심리겠지.
“엄마, 잠깐 이야기 할 것이 있거든. 미안하지만 잠깐 나가있어 줄래요?”
“내가 들으면 안 되는 내용이니?”
“그건 아니지만......”
“알았다. 너무 길게는 하지마라.”
“네.”
가연이의 어머니는 깎던 과일을 옆으로 치워두고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뭔가 불길한 느낌이 드는 시선으로 나를 한 번 흘겨보더니 방 밖으로 나간다. 왠지 무서운데. 나는 잠시 눈치를 살피다가 어머니가 앉아있던 그 자리에 앉았다. 가연이의 얼굴이 더 자세하게 보였고, 나는 뭔가 기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괜찮아?”
아마 고대 그리스의 유명한 연설가들을 한 트럭에 실고 온다 하더라도 이 상황에서 꺼낼 말은 이것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괜찮을 리가 있겠어. 이렇게 두꺼운 깁스를 하고 있는데.”
말과는 달리 깁스 하고 있는 왼손을 들어 활기차게 흔든다. 음, 원래 저러면 안 되는 것 아닌가?
“하하, 걱정할 것 없어. 멀쩡하니까. 병원에 있는 것도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깁스는 좀 오래해야 할 것 같긴 하지만.”
“그래. 그거 다행이네.”
“걱정했어?”
“당연하지. 전화 받았을 때는 얼마나 놀랬는지.”
“헤헤, 왠지 기분이 좋은 걸. 걱정해주는 사람도 있고.”
“뭐, 아까 보니까 의식 형 얼굴이 상당히 안 좋던데. 무지하게 걱정하는 것 같더라.”
“......어쩔 수 없으니까.”
“예선?”
“그래, 이 손으로는 키 하나 제대로 누르지 못할 건데.”
“아쉽겠네. 정말 열심히 연습했는데.”
“......그래.”
가연이가 희미하게 미소를 짓는다. 뭐, 그녀의 웃음이야 지금까지 수도 없이 봐왔지만 지금 것은 뭔가 새롭다. 그녀 스스로 짓는 것이 아닌 작은 입자가 쌓여서 만들어지는 것과 같은, 메마르고 씁쓸한.
“하지만 그렇게 걱정할 것은 아니잖아. 물론 부상 기간 동안에는 연습을 못하니까 손이 둔해지긴 하겠지만, 네 실력이라면 충분히 부활할 수 있잖아. 다음 예선이 있으려면 아직 멀었......”
“끝이야.”
그녀는 두서없이 내뱉는 내 말의 꼬리를 밟고선 일거에 잘라버린다.
“응?”
“끝이라고. 이번이 마지막이었으니까.”
“무, 무슨 소리야. 그럼 다시는 예선을 보지 않겠다는 말이야?!”
“그래.”
“......이유라도 있는 거야?”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고 나를 바라본다. 여전히 그녀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남아있지만 결코 그녀가 웃고 있다는 인상은 받지 못했다. 아까 느꼈던 것들이 조금 더 명확하고 짙게 다가온다.
“우리 집 사정은 잘 알지?”
“으응.”
“친 아빠와 엄마가 이혼을 한 게 내가 5살 땐가 그랬을 거야. 오빠처럼 사별이 아니야. 그때는 잘 몰랐지만 쉬운 말로 하면 아빠가 바람이 났거든. 그래서 엄마는 혼자 일하면서 어렸던 나를 키웠어.”
“......대단하시네.”
“응, 대단해. 여자 혼자 아이까지 키우면서 장사도 하고, 정말 힘들었겠지. 그리고......외로웠을 거야. 우리 엄마 입버릇이 뭐였는지 알아? 남자 따윈 없어도 세상 사는데 문제없다! 였어. 하지만 결국은 재혼을 해버렸지 뭐야.”
하지만 그 마저도 오래가지 못했지.
“그렇지만 그 재혼도 3년 만에 디 엔드. 뭐, 양 아버지와는 그래도 계속 연락은 주고받는 것 같았지만.”
“그게 관련이 있는 거야?”
“......내색은 안 하지만 난 알 수 있거든. 친 딸이 몰라주면 세상 누가 알겠어. 첫 남편은 바람나서 떠나버리고 꾹꾹 참다가 한 재혼도 오래가지 못했고. 이제 정말로 엄마 곁에는 나 밖에 안 남았지. 그래서 내가 어딘가로 떠날까봐 두려워 해.”
프로게이머가 되면, 같은 직업을 가진 오빠의 곁으로. 저 멀리 스웨덴으로.
“그럴 리는 없지. 한국에서 그 생활 못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지. 하지만 엄마 입장을 헤아리면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야.”
너도 외로웠을 테니까......?
“그리고 또 하나가 대학 문제야. 엄마는 전 남편, 그러니까 내 친 아빠가 자신을 떠난 게 자기가 못 배우고 가난한 집안에서 자라서 그렇다고 생각하고 있거든. 실제로 바람난 상대가 같은 직장의 상류층 여자였기도 하고. 그래서 어떻게든 나는 좋은 대학에 보내려고 예전부터 극성이었어. 예전에 말했었지? 게임은 해도 좋지만 성적은 일정 이상 나올 것, 이란 조건. 더 늦어지면 대입 준비도 하느라 정신이 없을 것 같아서, 그래서......”
“......”
“그래서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후회는 하지 않게 한 번이라도 도전해보게 해달라고 졸라서 허락을 받았던 것이거든. 그런데 운이 따라 주지 않네. 하하, 부상이라니. 멍청하기도 하지.”
“......말도 안 돼.”
“응?”
“결국 예선은 시합 한 번도 못해본 것이잖아. 납득할 수 있어? 아직 우린 2학년이야. 수능 준비하려면 약간의 시간은 더 남았어. 한 번 더, 한 번 더 도전해봐! 이렇게 어이없게 꿈을 접어도 돼? 이번은 특별한 상황이니까 네 어머니께서도 이해하실 거야!”
“고마워.”
“응?”
“그렇게 이야기 해줘서 고마워. 헤, 역시 오빠와는 다르네. 오빠는 내 눈치 보느라고 그런 말도 꺼내지 못했는데.”
난 다시 한 번 아까 만났던 의식 형의 모습을 떠올렸다. 역시 몇 번이고 나처럼 말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아......미안. 사정도 잘 모르면서 나선 건가.......”
“아니. 정말 고마워. 하지만 이제 됐어. 난 워3란 게임을 정말 좋아해. 살아오면서 그렇게 깊이 빠졌던 무언가가 있을까 생각될 정도로. 그래서 꿈을 가졌고 실행하려고 노력했지. 그렇지만 엄마가 그렇게 힘들게 일 해오며 살아왔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웃으면서 클 수 있었으니까,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으니까 이번만큼은 내가 작게나마 엄마를 위해 양보를 하고 싶어.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난 괜찮으니까.”
“하지만......”
“올라가.”
“응?”
“그러면, 그러면 네가 대신 올라가.”
“어이, 나는 의식 형이랑 같은 조......”
“좋아한다면서.”
“......”
“그럼 올라가.”
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지금까지 내가 그녀의 미소를 보면서 느꼈던 그 위화감이 무엇인지 깨달았고, 누군가를 안아주고 싶다는 충동을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꼈다. 하지만 그러면 애써 그녀가 쌓아올린 모래탑이 쓸려 내려갈 것임을 알았기에 난 그러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은 단 한가지 뿐.
“알았어.”
나는 말을 마치고서 동시에 몸을 일으켰다. ‘안녕’이라는 간단한 인사말 하나 나누지 않고서 나는 병실을 걸어 나왔고, 그녀 그런 나의 등 뒤로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내가 밖으로 나오자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가연의 어머니가 나를 한 번 살짝 쳐다보더니 별다른 반응 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문 옆의 벽에 몸을 기댔다. 병원 내를 돌아다니는 많은 사람들-간호사, 의사, 환자와 그 보호자들이 만들어내는 각양각색의 소음들이 흐르고 그 사이로 작게나마 가연의 말소리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나는 존재하지는 않지만 전신의 신경을 통해 전해지는 어떤 축축함을 느끼면서 고개를 뒤로 젖혔다.
어쨌든 시간은 계속 흘러갔고, 드디어 내 첫 예선전이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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