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Date 2005/02/24 20:38:20
Name 아케미
Subject 스컬지의 순교자, Star의 이야기. by 토성
집안의 어른에게 옛날 이야기를 조르는 어린아이의 심정은 어디나 다 같은 것인가 봅니다.
지금 여기는 어느 한 마을, 좀전의 낮잠으로 잠을 잊은 조그만 꼬마 하나가 할아버지를 난처하게 만들고 있군요.

"얘야. 어서 자야지. 그러다 내일 학교 늦으면 어쩌려고 그래."

"졸리지 않은걸요, 할아버지가 재밌는 얘기 하나만 해주면 잠이 올것도 같아서 그래요."

"허허 참, 녀석도....좋다. 대신 이야기가 끝나면 꼭 자야한다?"

"네!"

들뜬 기분으로 꼬마아이가 얼른 할아버지 앞에 편하게 자리를 펴고 앉아서 이야기를 들을 준비를 하자
그 재빠른 움직임에 할아버지는 웃으면서 손자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한번 숨을 고릅니다.

창 밖에서는 손톱모양을 향해가는 이지러진 상현달이 한밤의 어둠을 부드럽게 쓰다듬고, 홀로 떠있는 달을 위로하는 듯,
별들이 제각각 힘을 다해 빛을 뿜어냅니다.

그리고 이 별빛과 달빛의 이중주를 배경음 삼아 할아버지와 손자의 이야기도 점점 흘러가기 시작합니다.


"이건 내가 예전에 들었던 이야기인데......"









휘날리는 바람에 낡은 간판이 흔들리고 있는 허름한 어느 선술집에 한 사내가 걸어들어온 시각은 잠을 청하기에는 아직 이른
초저녁이었다. 이미 술집안에는 하루의 피로를 술 한잔으로 풀기위해 모여든 남자들로 북적이는 중이었고 가게 주인은
이 여행자 복색의 남자를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맞았다.


"빈 방 있습니까?"

"네, 2층에 올라가시면 방이 있을겁니다. 그 외에 뭐 필요하신 것은?"

"술 한잔 주시오."




적당히 자리를 잡고 앉아 맥주를 들이키고 있는 그에게 다른 사람이 말을 걸어왔다.


"어이, 자네 여행자인가?


이미 술을 한잔 걸친듯 기분좋아보이는 얼굴에 머리에는 고깔모양의 삿갓, 옷은 이 근방에서는 보기 힘든 동방국가의 옷을
걸친데다 상당히 술을 좋아하는 듯 아예 조그만 술통을 옆구리에 낀 체로 긴 장대하나를 들고 있었다.
적어도 외관상으로는 상당히 특이해보이는 사람이다.

"예, 그렇습니다만 당신은...?"

"아, 내 소개가 늦었군, 내 이름은 판다렌 브루마스터라고 하네. 덧붙여 말하면...."

"소문난 주당이지요. 우리 선술집에 붙박이랍니다."

"맛좋은 술을 한잔 걸치면 세상에 두려울게 없는 법이니까, 하하!"

서로간에 잘 아는 사람인지 가게주인이 끼어들어 말을 거들자 남자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말을 이었다.



"저는 이번에 크립트 지방에서 온 사람입니다. 수도로 가는 와중에 여기에 들렀지요."

"크립트? 거기는 지난번에 적에게 침략당한 곳이 아닌가? 거기 사람들은 다 죽은 줄 알았네만..."

"예, 저도 처음에는 성이 함락당할 지경이 오자 살아나지 못할거라 생각했지요."

어느새 의기투합한 두 명은 이야기를 안주삼아 술잔을 부딪히며 밤을 지새우기 시작했다.









"적병이다! 전군 비상!"

성벽의 보초병이 긴박함을 실어 길게 소리치며 망루의 경계용 북을 정신없이 두드리자
평온했던 공기가 빠져나가고 그 빈자리를 긴박함과 위급이 대신 채우게 되면서 성 내의 사람들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긴급히 달려온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서둘러 성문이 닫히자 병사들은 깔고앉았던 방패를 줏어들고 창칼을 고쳐잡은체 성벽에 올랐다.

"젠장, 또 몰려오는군."

변방의 도시였던 크립트에는 그다지 많은 병력이 배치되어 있지 않았다. 지금 성을 포위하고 있는 적병들은 규모로 보아 틀림없는
그들의 주력부대다. 일개 수비군이 감당해 낼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기댈 수 있는 것은 외부로부터의 구원,
낙성 직전의 이 도시를 지탱하고 있는 실낱같은 희망이었다.



하지만 외부에서 간신히 살아돌아온 정찰병의 보고는 그 희망을 잡아 찢어버렸다.

"원군이 오지 않는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

"이곳을 향해 행군해 오던 왕의 군대가 방향을 돌렸다고 합니다. 그 외에 추가적인 원조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습니다."

"대체......대체 무슨생각으로, 여기있는 사람들 모두를 죽이겠다는 것인가."

"적의 수가 너무 많은 데다가 이 성 하나 내주어봐야 별다른 타격이 아닐테죠. 그 시간에 병력을 재정비하겠다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단 말이냐. 우리가 무엇을 위해 싸워왔는데....."


지금까지 버텨올 수 있었던 것 만도 기적적인 일이다. 하지만 이제 군량은 떨어져가고 몸에 부상을 입지 않은 병사들이 드문 상황에서
더이상 항전을 계속한다면 결국 성을 내줄 수 밖에 없다.

원군이 오지않는다는 소식은 삽시간에 전 도시에 퍼져나갔다.
사람이란 지옥의 현실보다는 천국의 환상을 원한다지만 그 냉혹한 현실은 꿈꿀 수 있는 마지막 기력조차도 앗아갔다.
한 가지 위안이라면 여러번 패퇴한 적군이 성을 말려죽이기로 결정하고 더 이상의 공격을 중지했다는 것 뿐, 적군 전술의 변화가
생사의 여부를 바꿔주지는 못한다.






"저런, 그거 큰일이었겠구만, 그래서 어떻게 했나?"

"결국에는 우리가 먼저 적의 왕에게 사신을 보냈지요. 항복할테니 목숨만 살려달라고요. 물론 쉽지는 않았어요."






"안된다. 지금껏 저항해온 너희들에게 왜 내가 양보해야 한단 말이냐?"

"제발 부탁드립니다. 지금 성내에는 젊은이들은 다치지 않은 자가 드물고 노약자와 여자들만이 남아있을 뿐 입니다."

"마음대로 하라, 성문을 열던가, 아니면 이대로 다 죽던가는 너희들이 선택할 몫이다."


그때 옆자리에 앉아있던 왕의 신하가 입을 열었다.


"폐하, 그렇게 나쁜것만도 아닙니다. 만약 이들을 다 죽인다면 앞으로 있을 행군에서 목숨을 건 항전에 부딪혀야 할 것이
자명한 바, 이번만은 특별히 용서를 해주시는 것이 어떠할지요."

"흠...그도 그렇군."

어차피 이 조그만 성하나가 목적이 아닌만큼 필요이상의 가혹함은 역효과를 불러올 것이라는 데에 생각이 미치자 왕은
마음을 바꾸었다.

"곧바로 성문을 연다면 너희들의 안전을 약속하겠다. 허나 그동안 흐른 우리 병사들의 피는 보답을 받아야한다.
단 한 명, 저 시에서 한 명의 목숨으로 모두의 목숨을 구제해주마. 2일간 기다리겠다. 그 안에 한 사람을 이리로 보내라.
그의 피로 병사들을 위로할것이다."






"나 참, 거 성격나쁜 왕일세, 한 명을 꼭 죽이겠다니 대체 어쩌란말인가."

"누구나 할 것 없이 눈치만 보고 있던 무렵에 한 기도원의 사제님이 나섰습니다. 그것도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게
밤중에 적진을 찾아가 목숨을 잃었지요. 아침에 일어난 우리는 대체 무슨 일이 있는지도 모른체 용서를 받았고요.
그 분의 이름이 무언지는 아직도 모르겠어요."

"대단한 분이군. 그럼 그분을 위해 건배나 하세."



"이름모를 누군가를 위하여!"

"위하여!"















"......여기까지가 내가 젊은 시절에 판다렌에게 들었던 이야기란다."

"어? 그런데 그 사제의 이름은 뭐죠?"

"그거야 나도 모르지, 다만....그 일이 있고난 이후에 밤하늘에 새로운 별 하나가 출현했단다.

찬란한 빛을 뿜는 것도 아니고, 뭔가 특별해 보이지도 않는 별이었지만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별이었지.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치 그 별이 자신만을 위해 빛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는구나.

그래서 사람들은 그 별을 가리켜서 "Myonlystar", 나만의 별이라고 부르게 되었단다."

"나만의 별....정말 멋있는 별이네요."

"아, 그래. 그의 죽음을 애도한 사람들은 시신을 화장하여 묘에 묻어주었는데, 묘비에는 그가 남긴 유서의 일부가 적혀있단다.





[나는 죽어서 이곳에 묻혀있다. 생전의 죄 겁화의 불길속에 모두 벗어버리고 내 몸을 태운 재는 빗물에 씻겨 땅에 들어가
다시 나무나 풀의 혼으로 화(化)하리라. 명부의 신이 있다면 감사드리리, 내 한몸은 사라지지만 나의 혼은 사라지지 않음에.]













후, 대단치도 않은 글인데 막상 쓰려니까 꽤 힘드네요.

최원일 선수의 이야기를 한번 써보고 싶었답니다. 더불어 팬더도 한번 등장시키고 싶었지요.

이번 이야기는 실제로 백년전쟁 당시에 프랑스 칼레에서 있었던 일을 따왔습니다.
영국군의 공세앞에 칼레가 항복하자 영국의 왕은 시의 지체높은 사람들 중 6명의 목숨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이 때 스스로 자원해 나섰던 이 6명의 용기는 아직까지도 칭송을 받고 있으며 유명한 조각가 로댕은 이 이야기를
듣고는 "칼레의 시민"이라는 걸작 조각품을 남겼습니다.


사실 최원일 선수는 그다지 높은 성적을 올린 것도 굉장히 눈에 띄는 플레이를 보여준 것도 아니었지만
팬들에게 있어 한번 더 바라보게 만드는, 스스로 빛을 발하던 선수였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은퇴하여 더 이상 볼 수 없지만 사회에 나아가서도 그 만의 별을 잃지 않고 무엇을 하건 당당히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직 젊어요. 눈앞의 일을 재며 걸어가는 것이 노년의 능력이라면 새로운 도전을 꿈꾸는 것은 젊은이의 특권이지요.



이 글은 PGR21과 엠비씨게임 워크래프트 사이트에 동시에 올라갑니다.


P.S 이번 프라임리그 결승을 직접 가서 보려고 생각중입니다. PGR에도 가시는 분 있으면 만나서 같이 보고 싶네요.
어지간 하면 갈 계획이지만 개인적으로 바쁘게 지내는 중이라 무슨 돌발사태가 벌어질지 몰라서....





        
아케미 (2005-02-23 17:51:06)  
최원일 선수… 그 거짓말 같은 선언이 1월 5일이었지요. 벌써 한 달은 물론이고 두 달이 코앞이네요. 저는 그의 경기를 몇 번밖에 보지 못했지만, 그 몇 번만으로도 그는 분명 MyOnlyStar였습니다.
토성님, 중간에 Onry라고 되어 있는 것 고쳐주세요^^ 멋진 글 더 멋졌으면 하는 마음에… 아무튼 잘 읽었습니다. PL 결승…은 갈 수 있다면 정말 가고 싶은데 모르겠네요. 흑흑.

Grateful Days~ (2005-02-23 20:00:02)  
동대문을 지키시는 공익이 되셨다고 전해져오는 이야기.. Star의 전설이었습니다. :) 뭘 하든 좋은 결과있기를..

토성 (2005-02-23 20:38:02)  
수정했습니다. 이런 실수를....

처제테란 이윤열 (2005-02-24 01:15:47)  
동대문을 지키는 공익이 되셨냐고 물어봤더니 남자라면 현역이라고 발끈하셨던 우리 원일선수.. 저희는 다 알아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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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케미
05/02/24 20:54
수정 아이콘
여기가 새 서버가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 이런 글을 날려보내면 안 되기에 미리 복사해 놓은 것까진 좋았는데, 운영진 분들이나 토성님의 권한을 침해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뭐, 그냥 좋은 글을 읽은 독자의 애교로 봐주십시오^^;
05/02/25 12:39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아니므로 무효! 침해해도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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