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냥 새벽에 블로그에 끄적인 글입니다. 어투가 반말체니 양해해 주세요.
공부하려고 책을 폈지만, 공부가 되지 않아 즐겨찾기에 저장된 사이트들을 하나하나 들어가보았다. 아무 생각없이 들어간 한 클랜의 홈페이지에서, 나는 내가 참 좋아했던 선수의 글을 보았다. 예전 팬까페에서도 봤던 것처럼, 하나도 달라진 것 없이 문득 그의 글을 보고 나니 감회가 새로웠다. 생각지도 않았던 아이디, 그러나 너무나도 낯이 익었던 그 아이디.
문득 그와 찍었던 아주 예전의 사진을 찾아 보았다. 온라인과 MW (MBC Warcraft)에서 팬이라고 워낙 빨빨거리고 돌아다닌 탓에 주위에서 참 많이들 챙겨주곤 하셨었지만, 소심한 나는 말 한마디 잘 건네지도 못했고 사인 한장 받아두지도 못했었다. 앞에 나가는 것도 참 무서워했었지. 어딘가 뒤지면 다른 좋아했던 선수들 - 이재박 선수의 사인도, 곽대영 선수의 사인도 김동준 해설의 사인도 있을 텐데, 그의 사인만큼은 나에게 있지 않더라. 재영님이 챙겨주셨던 독사진, 그리고 같이 찍었던 단 한 장의 사진. 그 두 장의 사진을 보며, 머리가 샛노랗던 열아홉살의 나를 떠올리며. 한참 미친듯이 활동하던 MW에, 수능때문에 잠수탄다는 글을 올렸을 때 수능 잘 치라는 그의 댓글이 생각나 잠시동안 나도 추억에 젖었다.
처음으로 오프에 간 날 - 프라임리그3 경기였다고 기억한다 - 무언가 주고 싶어서 선인장을 샀었다. 컴퓨터 옆에 두면 좋대요, 라는 짤막한 말과 함께. 그때부터였다, 오프에서 소리질러서 응원하기 시작한 것은. 가끔은 민망할 때도 있었지만, 그래서 경기 잘하면 어떠랴 하는 마음이 더 컸다. 부끄러운건 아주 잠시뿐이었고, 진심으로 그가 이기길 바랬고 진심으로 그가 우승하길 바랬었다. 그래서 학원을 다니는 일정에도 그가 출전하는 경기는 꼭 봤었다. 하지만 16강에서 연전연승하고 8강에 올라와 장용석, 천정희 선수를 꺾어 4강을 바라보던 그는, 내가 용기를 내어 오프를 보러 간 그 날 김태인 선수에게 패배했다. 그리고 2승 1패로 이어진 재경기에서도 결국 김태인, 장용석 선수에게 미끄러지며 4강에 오르지 못했었다. 나는 그날 참 많이 슬펐었다. 다 이긴 경기를, 한번도 넘어보지 못했던 4강의 벽을, 그래서 이번에도 넘지 못하는구나.. 하고.
프라임리그4 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치어풀 이벤트를 했을때. 하지도 못하는 포토샵으로 엉망진창 만들어 가도 (부끄러워서 차마 드리지도 못했던 걸 같이 다니던 동생들이 갖다드렸음. ㄱ-) 괜찮다고 하던 모습도 기억났다. 아마 두번째 만들어 갔을 때인가? 스펠링도 틀려서 모님께 "너 중학교도 안나왔지" 라는 핀잔을 들으며 도도도 거렸던 기억도 나고. 그때 받은 배틀체스트는 아직도 소장하고 있다. 그 배틀체스트를 보며 가끔 그때 생각이 나서 혼자 웃는다. 그를 아끼는 사람들은 주위에 참 많았지, 하고.
징크스가 있었다. MW에 많이 올리기도 해서 유명해지기도 했었지. 꼭 내가 오프 가서 경기만 보면 그는 졌었다. 그래서 한번은 오프 가서 경기를 보다 뛰쳐나갔는데, 그날 역전승으로 이겨서 같이 경기를 보던 많은 사람들을 당황시켰다. 그래서 나는 꼬박 오프에 나가도, 꼭 그의 경기는 보지 않고 옆 맥도날드에 가서 책을 읽으면서 혼자 마음졸이던 기억이 선명하다. 집에 와서 재방송으로 경기를 보면서 혼자 손을 쥐고 땀이 나도록 응원하던 기억도 있었다. 한때 회자되던 오뎃사 3시의 저주처럼, 그렇게 내 징크스가 맞아주길 바랬다. 내가 경기를 생방송으로 보지 못한다는 것 쯤은 충분히 참아낼 수 있었다.
그렇게 프라임리그4에서는, 그는 무난하게 30강 벽을 뚫고 조 1위로 플레이오프전에 진출했다. 4승 1패로. 유난히도 파란만장했던 그 시즌 프라임리그에서. 그 징크스가 깨진 건, 8강 플레이오프에서 만난 천정희 선수 때문이었다.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길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징크스는 깨졌고, 천정희 선수는 이겼다. 언데드 선수들이라면 평소 무조건 좋아했던 나지만, 그 때만큼은 천정희 선수가 정말로 미웠다. 그 때만큼 미운 적이 없었다. 4강에 올라가지 못하고 뒤돌아서는 그의 처진 어깨를 보면서 응원해 주고 싶었지만 그럴 마음이 나지 않았다. 마지막이라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것이 내가 본 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언젠가 팬까페에서 정모를 했을때, 나는 팬까페 까페장이었던 짧은다짐님께 오란 권유를 많이 받았지만 가지 못했었다. 10월이라 수능을 앞두고 있었기에 도저히 갈 수 있을만한 상황이 아니었지. 내가 워크래프트3 리그를 매진해서 본 것은 프라임리그3, 그리고 프라임리그4. 그리고 이때가 마지막이었고 나는 다시는 그를 볼 수 없었다. 몇년동안 계속 공부를 한 탓도 있었고 워크래프트 자체에 흥미가 떨어져버린 탓도 있었다. 그리고 그가 군대에 갔다는 소리를 들었다. 일병을 달았다는 소리도 들었지.
가끔 드는 의문인데 나는 왜 그의 팬이 되었을까? 인상적인 플레이를 하는 선수라면 참 많았었는데. 유독 나는 그의 팬이었다. 그는 휴먼이었고 나는 언데드였음에도 불구하고. 이유는 모르겠다. 포탈도 안쓰고 끝까지 밀리지 않겠다는 각오로 싸우는 선수라서? 아마도 등뒤에 배수진을 쳤던 것 같은 그 절박함과 강인하게 싸우는 플레이가, 나를 끌어당긴 것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그의 플레이를 정말로 좋아했고 한번쯤은 꼭 우승하기를 바랬었다. 그의 팬으로서도, 워크래프트의 팬으로서도.
제대한 뒤 워크래프트 리그에 돌아오는 선수들이 많아지고 있다. 오프라인에서 리그는 없을지 몰라도 온라인에서의 리그는 여전히 활발하다. 그는 돌아올까? 잘 모르겠다. 그가 떠남으로서 워크래프트란 게임은 나에게 있어서 존재 가치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나는 그 뒤로 워크래프트 리그를 본 적이 없다. 하지만 그가 돌아온다면 아마도 나는 다시 팬의 입장에서 열심히 리그를 보면서 그를 응원하겠지. 그래서 지금도 그가 제대한 뒤 돌아오기를 바라고 있다. 모님 말씀대로, 오히려 지금이라면 그가 더 빛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오프라인 리그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는 더 이상 없을지 몰라도, 그래도 꾸준히 한 우물을 파서 그가 우승했으면 한다. 그리고 그는 충분히 우승컵을 거머쥘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마지막으로 그가 지던 경기를 보고, 그의 쓸쓸한 뒷모습을 본지 2년이 지난 지금에도, 나의 유일한 Champion은 그 하나 뿐이다. 용감하게, 그리고 강인하게 싸우는 브레이브 팔라딘 Brave Paladin, 오창정 선수를 지금 나는 추억한다. 그리고 기억 속에서 꺼냈던 그 추억들을 다시 혼자 간직하기 위해 마음에 묻는다. 다시 돌아올 수 있을 때까지 그를 기다리기 위하여.
- 2007년 4월 19일, 시아
내가 가진 단 한장의 독사진. 그나마도 다른 사람이 챙겨준 이 사진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나는 그를 추억할 거리를 모두 잃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서랍 깊숙히 넣어둔 사진을 몇년만에 처음 꺼내 찍어봤다. 나는 그의 팬이지만, 그의 팬이 아닌 사람들이라도 "아 그렇게 플레이하는 선수가 있었지" 하고 한번쯤은 생각해 주었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