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한 사과의 시대 -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 속에서 문과생이 살아님기
...라는 제목을 지었는데 잠깐 인터넷에 핫했던 '심심한 사과'가 사실은 젊은 세대의 문해력과는 무관하게 그냥 남이 하는 말에 딴지걸고 싶어했던 놀부 심뽀의 발현 때문이었다는 것이 알려졌지만...
이미 이 감상문을 쓰기로 할 때 저 한 줄에 꽂혔던 지라...
암튼.. 이영도 씨의 근작 시하와 칸타의 장 - 마트 이야기는
제목에서 보이다시피 마트 이야기라는 큰 서사 속에서 '시하와 칸타'가 나오는 장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 물론 마트 이야기라는 제목은 맥거핀, 이영도 씨잖아요.
우리가 온전한 형태의 마트 이야기를 볼 일은 없을 겁니다,
단지 이영도 씨가 보여주고 싶어한 장면인 '시하와 칸타'의 이야기만을 알게될 뿐이겠지요.
이 소설을 읽고 제일 먼저 생각난 이야기는 로저 젤라즈니의 '내 이름은 콘라드', '인류는 쇠퇴하였습니다'였습니다.
네, 조용히 멸망해 가는 인류들과 그 흐름에 저항하는 이들을 보여주는 이야기들이었지요.
하지만 시하와 칸타는 마트퀸(인류의 부흥을 꿈꾸는 지도자)가 아닙니다.
시하는 OO시 하수 처리장에서 태어났기에 시하이고
칸타는 그 아이를 발견한 장소가 '칸타타'라는 까페였기에
각각의 이름을 가진 등장인물들일 뿐입니다.
하지만 둘이 만나면
칸타와 시하니까... '노래를 시작하자'가 됩니다.
헨리가 쇠퇴해버린 인류의 자원으로 남기는 것은
해황기의 멜다자가 아니라 인류가 만든 노래입니다.
그 노래를 외워 구전하게함으로써 헨리는
인류 혹은 인류의 흔적을 남기려고 합니다.
그리고 시하는 헨리가 선별한 노래들을 모두 외운 존재이고
칸타는 헨리가 엄선한 노래에 속할만한 노래를 만들 수 있는 존재이죠.
그래서 이미 인류가 멸망해버린 시점에서도
'노래를 시작하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잠깐 언급한 해황기의 멜다자와 비교하면 참 재밌는 선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해황기라는 만화 속의 멜다자는 이미 잃어버린 인류의 기술들에서 사용했던 수식을 외웁니다.
쫌 심하게 비약시키자면 이과 위키백과를 강제로 암기해버린 것이죠.
시하는 다릅니다. 헨리는 인류에게 노래가 필요하다고 결정을 했고
헨리의 심미안에 따라 엄선한 곡들을 시하가 외웠습니다.
물론 칸타가 만들 노래 또한 시하가 외워야할 노래가 되겠지요.
그러니 시하는 멜다자의 대척점(?)에 선 존재가 됩니다.
시하와 칸타의 장 - 마트 이야기는 저 시점에서 이야기가 시작합니다.
마트퀸이라 불리는 영웅이 상호확증파괴로 요정에게 놀림받을 정도로 황폐화된
핵 전쟁 이후의 세계에서 인류의 부흥을 꿈꿀 때
시하라는 문과생이 다른 이들이 가지지 못한 가질 수 없었던 인문학적 지식을 가지고
살아남는 이야기...라고 하고 싶지만
재밌는 지점은 그 인문학적 지식은 생존에 1도 영향을 끼치지 않습니다.
암튼 그런 인문학적인 소양을 가진 인물이 그런 아포칼립스의 세계에 살아남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를 다룸으로써
현대 사회의 우리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를 되묻는 소설입니다.
시하와 칸타의 장 - 마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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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 : 노래를 문명의 대표재로 사용하는 예는 이영도씨의 단편선에서 몇 번 보였던 방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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