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1/12/07 11:04:23
Name HJS
File #1 movie_image.jpg (77.6 KB), Download : 48
Link #1 https://brunch.co.kr/@jisung0804/101
Subject [일반] 왕위를 계승하는 중입니다. 아버지


영화 <파워 오브 도그> 리뷰


필은 강력한 카리스마로 목장을 이끄는 리더이다. 남성성의 화신이자 숭배자인 그는 로즈의 아들 피터가 하찮아 보인다. 마른 몸과 하얀 얼굴, 말끔하게 빼입고 어머니의 식당일을 돕고 있는 피터는 종이로 꽃을 접는 섬세함을 지닌 자다. 필은 그의 권력으로 피터를 조롱했고, 로즈는 그걸 듣고 울었다. 필의 동생 조지는 그 순간 로즈에게 빠졌다. 버뱅크 가족의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


버뱅크 형제는 같은 침대를 쓸 정도로 돈독하다. 피 한방을 나지 않을 것 같은 필은 동생이 들어오기까지 잠에 들지 못한다. 그런 그가 로즈와 결혼하겠다 선언한다. 필의 세계는 부정당했다. 브롱코 헨리로부터 계승받은 과거의 유산에서 탈피하겠다고, 자신을 떠나 새로운 가정을 꾸리겠다 말하는 조지에게 필은 분노한다. 브롱코 헨리의 안장을 따로 걸어 둘 정도로 필은 그를 숭배하고 기억하려 한다. 냇가에서 그는 천으로 자신 나신을 쓰다듬는다. 위로한다. 애무한다. 그 천에는 BH라는 이니셜이 새겨져 있다. 브롱코 헨리라는 인물은 두 형제의 상징적 아버지로 묘사된다.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지만 목장은 그로부터 받은 유산으로 보이며 리더인 필은 헨리의 선택을 받은 계승자인 것으로 보인다. 물질뿐 아니라 그의 문화와 정신까지 물려받은 필은 내면의 어떤 비밀을 숨기고 있다. 피터가 은밀한 그의 장소에서 발견한 것은 우람한 남성들의 나체 사진이다. 필이 동성애자임을 영화는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는다. 이 영화는 인물의 성격을 서술하는 방식을 제외한 모든 것이 상징적이며 비유적이다. 천 끝으로 몸을 천천히 쓸어내리듯 은밀하고 섬세한 방식으로 인물의 관계를 서술한다. 한편으론 남자들의 세계로 대변되는 웨스턴 시대에서 퀴어 코드를 심었다는 측면에서 문화적 대비를 이루고자 했을 가능성도 있겠다. 필은 과거를 수호하려 한다. 브롱코 헨리로부터 계승한 세계, 이제는 자신의 세계가 된 버뱅크 목장은 외부인이 들어올 수 없는 견고한 그의 성이다. 그런데 자신과 가장 가까운 혈육인 조지가 외부인 로즈를 끌어들인다 심지어 아들 피터까지.


필은 집요하게 로즈를 압박하고 괴롭힌다. 물심양면 그녀를 향한 사랑을 표현하는 조지와 어떤 식으로든 그녀를 괴롭히는 필. 그리고 아들인 피터는 그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힘이 없는 소년에 불과한 그가 할 있는 것이라곤 힘을 기르는 것이다. 조지의 돈으로 대학에 진학해 힘을 기른다. 의과대학에 진학해 해부학을 공부하는 피터는 조용히 웅크린 채 지켜본다. 그 모습은 장작 더미에 겨우 몸을 숨겨 떨고 있는 토끼의 모습이다. 필의 집요한 압박에 로즈는 술로 자신을 달랜다. 집안 곳곳에 술을 숨겨둔다. 그림자처럼 자신을 죄여 오는 필의 시선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술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세계에 침입한 자를 망가트린 필은 소기의 목적을 이뤘다 생각한다. 하지만 로즈는 필의 가죽을 싹 다 팔아버림으로써 필에게 가할 수 있는 복수를 행한다. 분노한 필은 시선을 돌린다. 저기 병약해 보이는 토끼에게로.


아버지가 죽고, 어머니는 힘들어했다. 나는 그녀를 지켜야 했다. 영화 시작부터 나오는 피터의 다짐은 언제부터였을까. 더 이상 필을 피하지 않는다. 살기 위해, 생존하기 위해 그의 것들을 배운다. 비록 둘의 목적은 달랐지만 서로가 가까워진다. 필은 아마 그를 이용해 로즈를 무너트리고자 한 것으로 보이지만, 어느새 피터에게서 자신을 계승할 자질을 발견한다. 저 끝없이 펼쳐진 언덕에서 개의 모습을 본 피터에게 홀린 듯 자신의 것들을 가르치고 내어준다. 상징적 아버지가 되어 로즈로부터 그를 빼앗아 버리는 것이 최고의 복수라 생각했을까.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털어놓는 피터의 모습에 필은 흔들린다. 그 순간 피터가 쳐놓은 덫에 걸려드는 필. 그를 계승한 피터는 그로부터 받은 밧줄을 침대 밑에 숨기고 창 밖으로 조지와 로즈의 포옹을 지켜보며 미소 짓는다. 영화는 힘없는 소년에서 남성으로의 탈피, 자신의 재산과 소유물을 지켜야 하는 인류의 기원적 투쟁을 섬세하고 우아한 방식으로 묘사했다. 신화적 이야기로서 아버지와 아들의 적대적 관계, 수호자와 계승자의 이야기, 과거 세대와 현재 그리고 미래 세대에 대한 이야기, 혹은 얼핏 오이디푸스 신화가 보이기도 한다. 자신의 세계를 지키기 위한 기원적 인류의 투쟁에 대해, 그 역사를 쌓아 올린 수많은 인간의 작은 소우주란 얼마나 처연한 것인가에 대해 씁쓸한 뒷맛이 느껴진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우주전쟁
21/12/07 11:11
수정 아이콘
넷플릭스에 있던데 한 번 볼까 생각중입니다...
Cafe_Seokguram
21/12/07 11:23
수정 아이콘
제인 캠피언 이라는 이름 하나 믿고 봤는데, 역시 영화는 감독이 만드는 거구나 싶더군요.
다부짐
21/12/07 11:38
수정 아이콘
영화의 만듬새나 세련됨, 숨은 메시지 이런건 좋은데
저는 일단 재미가 너무 없었습니다
21/12/07 13:01
수정 아이콘
속된 말로 영화제용 영화죠...
분위기로 압살하는 영화다보니 대중적인 재미를 찾기는 쉽지 않아보입니다
21/12/07 12:18
수정 아이콘
총은 언제 쏘나 봤다가 기분만 찝찝해진 영화
21/12/07 12:54
수정 아이콘
느슨하고 불분명한 연출이 글쓴분 의견처럼 의도된건지, tv 드라마 스타일로 해보려다 이도저도 아니게 된건지 모르겠더라구요. 전반적으로는 데어윌비블러드의 내면적 버전 같은 느낌이라 괜찮았습니다.
21/12/07 13:00
수정 아이콘
저 역시 컴버배치 역할에서 데어윌비블러드의 다니엘 데이 루이스 모습이 보였어요. 굉장히 강렬한 연기였습니다.
조과장
21/12/07 20:29
수정 아이콘
정말 간만에 여러가지 생각이 들게하는 좋은 영화를 봤습니다.
위악적인 척하는 여린 남자와
여린척 하는 감정없는 남자의. . .
여린 남자는 아카데미상 받을것 같아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94289 [정치] 문재인 정부 4년간 서울 아파트 값 평균 2배 올라 [212] Leeka25427 21/12/08 25427 0
94288 [일반] 최고로 어색한 크리스마스를 보낼 쿠오모 브라더스 [5] 오곡물티슈10129 21/12/08 10129 1
94287 [정치] 검찰개혁에 대한 소고 [55] Promise.all16999 21/12/08 16999 0
94286 [정치] 신의진 "다시 그 법을 볼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 [97] 어강됴리22570 21/12/07 22570 0
94285 [정치] 여성의 말을 믿지 않으면 나쁜거다? [101] LunaseA22343 21/12/07 22343 0
94284 [정치] 노재승 국민의힘 선대위원장 발언 논란 확산..5·18 발언 논란 이어 '가난 비하'까지 [181] 선인장23835 21/12/07 23835 0
94283 [일반] 굴림체 지옥으로부터 탈출했습니다. (Chrome update) [59] Tiny12548 21/12/07 12548 9
94282 [정치] 이재명, 서울대 경제학 특강.. "가난하면 고금리 대출, 정의롭지 않아". [194] 미생20567 21/12/07 20567 0
94281 [정치] 야당을 향한 공수처-검찰의 수사 성과가 아예 전무하네요. [54] Alan_Baxter14876 21/12/07 14876 0
94280 [일반] 가볍게 쓰려다가 살짝 길어진 MCU 타임라인 풀어쓰기 [44] 은하관제11760 21/12/07 11760 25
94279 [일반] 미국이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공식사절단을 파견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103] 강가딘18100 21/12/07 18100 8
94278 [일반] 왕위를 계승하는 중입니다. 아버지 [8] HJS12038 21/12/07 12038 6
94277 [일반] [서브컬쳐] 10 년이 되었습니다. [2] 카페알파9484 21/12/07 9484 2
94276 [일반] 오미크론+백신 조합 오히려 좋을수도 [268] 21288 21/12/07 21288 3
94275 [일반] [영화]인성논란을 통해 본 다크나이트 트릴로지(배트맨의 정의관) [20] 달렉10182 21/12/07 10182 9
94274 [일반] 한국 수출과 주식시장 [9] LunaseA16427 21/12/07 16427 20
94273 [일반] [책이야기] 소비의 역사 [6] 라울리스타8811 21/12/06 8811 10
94272 [일반] 고인물들이 봉인구를 해제하면 무슨일이 벌어지는가? [61] 캬라19318 21/12/06 19318 72
94271 [일반] 판타지 소설과 과학 [16] 레드빠돌이10219 21/12/06 10219 0
94269 [일반] 대구에 새 마스지드는 지어질 수 있을까요? [178] 라이언 덕후20641 21/12/06 20641 0
94268 [일반] [역사] 북촌한옥마을은 100년도 안되었다?! / 한옥의 역사 [9] Fig.117528 21/12/06 17528 35
94267 [일반] 증오하는 pgr에서 퍼간 글로 딴 추천은 달콤하더냐 [63] 오곡물티슈17193 21/12/06 17193 53
94266 [일반] 중국의 미래에 대한 잡생각 [46] 이연진16653 21/12/06 16653 1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