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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쌀쌀한 가을날씨 만큼 증시는 빠르게 얼어붙고 있었다.
불과 수개월전 2600 고지를 점령하며 승승장구하던 코스피는 무려 24%나 폭락해 한때 2000선이 무너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tv뉴스엔 온갖 부정적인 이슈들로 넘처났고 특히 반도체 업황에 대한 예상이 심각한 수준이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필두로 반도체주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시장은 큰 혼란에 빠졌지만 몇달전부터 매수할 종목을 찾고 있었기에 괜찮은 기회가 왔단 생각이 들었다.
1. 종목 선정
기준은 4가지 였다.
1) 대형주 2) 낮은 부채수준 3) 장기간 일정기준 이상의 꾸준한 성장 4) 배당
포트폴리오 첫단추를 꿰는 만큼 안전한 종목을 넣고 싶었기 때문에 대형주에 부채가 적은 종목을 탐색했다. 물론 일정 기준이상의 ROE가 보장된 기업중에 말이다. 하지만 매우 빠른 성장을 해온 기업이라도 대기업이 앞으로 10배, 20배 더 성장하긴 사실상 어렵기 때문에 배당도 3% 정도는 되는 주식이었으면 했다.
며칠동안 이런저런 기업들의 재무제표를 뒤적이며 골머리를 썩었지만 현재 내 기준에 전부 들어맞는 주식은 한가지 밖에 없다는 결론이 났다. 바로 삼성전자 였다.
2. 가격 책정
해당 주식의 적정 가격을 책정하려면 통계가 필요하다.
삼성전자의 2009년부터 2016년까지 매출액, 영업이익, EPS 성장률을 기준으로 삼았다. 17,18년도는 반도체 업황이 이례적으로 좋았던 시점으로 판단해 통계치에서 제외했다.
09~16년 매출액 성장률: 12.3%, 영업이익 성장률: 15.5%, EPS 성장률: 13.4%
이례적으로 좋았던 17,18년 수치를 제외한걸 감안해 앞으로 삼성전자가 중간치인 13.4%정도의 성장은 달성할 수 있을거라 판단.
계산한 미래예상가격을 현재시점으로 할인해 대략 42000원대로 떨어지면 매수를 시작해도 되겠다는 판단이 섰다.
당시 삼성전자의 가격은 44000~46000원 수준을 오르내리고 있었다.
3. 매수 과정
감당할 수 있는 최대 투자금액을 책정하고 그걸 5로 나눠 최대 5회까지 분할매수 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주가가 하락 추세에 있었기 때문에 삼성전자는 매수 시작시점인 42000원대까지 빠르게 내려왔다.
(매수 시점)
첫 매수 가격은 42000원대 후반, 두번째 매수가격은 41000원대 초반, 세번째 매수가격은 38000원대 였다.
사실 종가기준 37000원대로 떨어졌을때 원칙상 한번 더 매수해야 했지만 주가가 너무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어 이에 반응한 사람의 감정(공포감)이 매수를 막았다(..) '한번 더 떨어지면 추가 매수를 하자' 라고 편하게 넘겼지만 그 단계는 다시 오지 않았다.
4. 감정 컨트롤의 어려움
감정의 영향력에 대해 한번 짚어보자.
사람의 감정은 돈을 잃게 만들어져 있다. 다른 사람들과 반대로 행동하게 되면 본능적인 거부감에 휩싸이는데 이는 인간의 사회성 때문이다. 그래서 모두가 등을 돌리고 도망치고 있는곳으로 달려 들어가는데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 사람들은 보통 어떤 자산이든 가격이 쌀때 외면하고 거품이 절정에 달했을때 돈가방을 들고와 난리를 친다.
(19년 어느정도 회복한 후 삼성전자 차트)
지나고 보면 어디가 저점인지 명확히 보인다. 경우에 따라선 아 왜 저기서 안샀을까 라며 후회하는 사람도 있을것이다.
(18년 폭락이 한창일때의 삼성전자 차트)
하지만 이 시점엔 어디가 바닥인지 쉽게 가늠할수 없다. 아무리 정교한 계산과 원칙을 기반으로 투자한다 해도 높은곳에서 떨어지는걸 무서워하는 사람의 본능적인 감정은 떨쳐내기 어렵다. 때문에 oo가 어디까지 떨어지면 전재산을 털어넣겠다고 호언하던 사람도 막상 때가 오면 떨어지는 칼날 잡지 마라는 격언이 있다며 말을 바꾸게 되는것이다.
5. 보유기간
그레이엄은 소외된 주식이 적정가격을 찾아가는데 3년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레이엄의 직계 제자이자 소외주 투자 대가인 월터 슐로스는 그보다 긴 4년을 제시했다. 나 또한 최소 3년에서 5년 정도의 재평가 기간을 생각하고 삼성전자 주식을 매수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현재 일부 물량을 매도하게 되었다.
6. 매도 시점이 빨라진 이유
최근 삼성전자 주가가 예상보다 훨씬 급격히 상승했기 때문이다.
보수적으로 계산한 향후 기대수익률이 9%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버핏식 가치투자에 있어 1년은 찰나의 시간이다. 복리의 마법이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끝나는 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유 주식을 1년 단위로 평가했을때 향후 기대수익률이 기준에 못미친다면 더 기대수익률이 높은 종목으로 교체하는게 확률을 높이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현재 강한 삼성전자 주가가 곧바로 하락 반전할거란 얘기는 절대 아니다. 앞으로 10% 혹은 그 이상 상승할 가능성도 높다고 본다.
단지 개인적인 원칙에 따라 매도를 결정하게 된 것이다.
7. 수익률
매도한 주가기준 수익률은 25.1%. 받은 4번의 배당금을 포함한 수익률은 28.1% 이다.
지난 11월 첫번째 매수를 했기 때문에 보유기간은 대략 11개월. 종목선정하며 들인 며칠의 시간과 간단한 원칙에 따라 매매하고 관리한 시간을 따져보면 꽤 과분한 수익이라고 생각한다.
8. 마지막으로
흔히 투기를 하면서 투자라고 착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재무제표 상태가 막대기로도 건드리기 싫은 수준의 바이오 기업에 거액을 쏟아붓고, 주변 사람이 추천했다는 이유로 가격이 오를대로 오른 테마주를 꼭대기에 사고, 세계 정세가 위험하다며 금고에 보석과 금을 쟁여놓는 등 형태도 다양하다. 돈을 밀어넣기 전에 생각할 수 있는 간단한 원칙은 해당 자산의 가치와 기대수익률을 대강이라도 측정할 수 없다면 그건 투기일 확률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벤자민 그레이엄, 워런 버핏, 필립 피셔 등 가치투자 거장들의 가장 큰 강점은 자신의 투자이론을 수십년간의 결과로 증명했다는 점이다.
증명된 건전한 투자법인 가치-장기투자에 관심 갖는 개인투자자가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주식으로 돈을 벌기 위해선 그것들을 볼 수 있는 통찰, 살 수 있는 용기, 참을 수 있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이 세가지 중 인내가 가장 희귀한 능력입니다" - 토마스 펠프스
"돈을 번 사람들의 특징은 자주 베팅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 찰리 멍거
"기술주든, 부동산이든, 금이든, 돼지옆구리살이든 당신이 아는 사람들이 무언가를 두고 '잃을 수 없다'고 말한다면 그 투자는 잃을 수 있고, 곧 잃게 될 것입니다" - 켄 피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