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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30 19:28
봉준호는 어쨌든 50살이며 20세기에 장편 데뷔했고 (2000년. 당시 류승완도 데뷔),
21세기 데뷔 감독 중 확실한 두각을 보인 감독이 나홍진, 윤종빈 정도라는 점이 아쉽습니다. 90년대 데뷔햐 박찬욱, 홍상수, 최동훈, 김지운, 이창동 등을 이을 재목이 더 나왔으면 좋겠어요. 특히 2010년대 이후 데뷔 중에선 이제 데뷔작 하나 있는 독립영화계의 윤가은 감독 정도만 떠오르는 상태거든요.. 아 그리고 기생충에 대한 얘기 다 공감합니다. 명작이었어요.
19/05/30 20:00
저는 우상을 좋아하고 또 뛰어난 부분들이 있다고 생각하나 관객과 평단 모두에게 외면당한 것 역시 백번 이해됩니다. 부디 3번째 작품은 욕심을 버리고 매끄러운 영화가 되길 바라요
19/05/31 15:18
물은 권력의 방향 혹는 압박을 나타낸다고 저는 느꼈습니다. 예컨대 주인공 가족이 간신히 탈출한 집에서 물을 따라 이동하니 물이 잔뜩 고여있는 자신들의 반지하 집으로 가게되는 점이나, 똑같은 비에도 이선균의 집은 매우 멀쩡할 뿐더러 (캠핑을 취소하는 수준의 불운만 겪죠) '미제'인 텐트는 매우 안전하게 방수되어 버텨냅니다.
인디언은, 정확히는 아메리카 원주민이 맞는 표기로 알고있습니다만 여튼 그들의 입장에서는 지금은 주류가 된 미국 백인들이 기생충이라고도 할 수 있지요. 잘 살고 있는 집에 기생해 들어왔으니까. 하지만 그들이 주류가 되면서 지금은 인디언 쪽이 Affirmative action등의 혜택을 받을 때 기생충 취급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영화 자체의 근본적 질문; 즉, 누가 숙주이며 기생충인가? 를 드러내기 위한 소재로 읽었습니다. 마지막 칼을 휘두르는 송강호가 인디언 분장을 한 것이 화룡점정이지 않나 싶어요.
19/05/30 22:36
빈부 격차와 한국 근현대사의 풍자 그러면서도 영화적 재미와 반전 그리고 남는 여운
정말 잘만든 영화 입니다 칸에서 황금 종려상 받을만 한 작품입니다
19/05/31 00:19
지하철 냄새, 반지하 냄새 이런 걸 외국어로 번역하면 한국인과 같은 정서로 느낄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상받을만 했다는 건 극공감. 주차장 탈출씬이나 씨씨티비 아귀 들어맞히는 설정들도 참 기가 막혔습니다.
19/05/31 14:14
수석은 말장난이죠.
큰아들 그친구 4수째였나 그래요. 처음부터 애착이 있었던게 아니라 ‘물난리’에 집구석이 날아가면서 집착하게 됩니다. 가슴팍에 큰 돌덩이 하나를 ‘좋은 학교에 입학할 때 까지’ 이고 살아왔던 거죠. 가난을 벗어난게 아닙니다 돈으로 바뀐거죠. 돌덩이는 알아보는 사람만 알아보는 거고, 돈은 누구나 알아보는 가치있는 종이조각이니까요. 귀하다고 받아들인게 아니라 ‘어떤 이에게는 값진데’ 이 집구석에는 쓸모가 없었죠. ‘귀하다’라든지 ‘값지다’의 정의까지 갈 수 있는 문제입니다. 사실 개울에서 주워온 돌인데 말 그대로 수석인거죠
19/05/31 15:12
그냥 돌이면 물난리 이후 대피소 씬이나("이게 나한테 붙어서 떨어지질 않아요"), 돌이 살해도구로 선택된 이유조차 전혀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냥 칼을 준비하면 되는데. 그리고 장남의 마음속 응어리라면 그 돌을 지하의 그분이 흉기로 사용하는 시퀀스 조차 낭비이죠. 마지막 장남의 편지를 통해 장남이 '입시보다도, 취직보다도 돈을 벌겠다' 고 선언 한 바, 그 편지속 상황이 환상이 아니라 현실이라도(당연히 최후 장면을 통해 환상임이 보입니다만) 그는 좋은 대학에 가는 방법을 택하지 않았을 것이 확실해 보입니다. 그러므로 맥핑키님의 지적에도 저에게는 돌은 여전히 가난으로 보입니다.
19/05/31 22:14
말씀하신 것에 답이 있습니다. 총 4명이 사망했는데 1명은 뇌진탕으로 죽고 나머지 3명은 현장에서 쉽게 구한 흉기로 사망했습니다.
봉준호 감독의 인터뷰를 보면 한국 관객은 외국관객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느낄거라고 했는데, 수석이 정확하게 이 케이스에 해당하는 장치고요. 상식적으로 물난리통에 수석을 건져와서 가슴팍에 안고 잔다는 것은 정상적이 아닙니다. 이건 죄책감이나 책임감에 대한 은유죠. 이전에는 ‘최소 연세대는 간다’ 라는 n수생에 대한, 현재는 이 사태가 발생한 근본적인 원인 또는 식구를 불러들인 자신에 대한 겁니다. 이걸 떨쳐버리기 위해서 ‘해결’을 하려고 하는거죠. 이 해결을 위한 ‘수단’ 이 수석이고요. 마지막에 수석을 개울에 가져다 놓는 것으로 n수생이 끝나고 사회인으로 기능하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은 여전히 반지하에서 마무리됩니다. 영화에서 가난은 냄새라는 장치를 사용하고요 가생충은 에일리언 외에는 대부분 숙주를 죽이지 않는 선에서 공생하려 하는데, 마지막의 송강호를 보면 우리 사회에서 숙주는 부자일까요 집일까요? 큰 아들의 목표는 ‘좋은 대학’ 에서 ‘집’으로 바뀐 겁니다. 어찌 보면 성장이지만 어찌 보면 수석처럼 마찬가지로 허황된 수단과 목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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