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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17 11:39
제한적이나마 교류가 있었던 것이 주효했지만, 개인적으로는 가장 중요하게 [도그마]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따라서 정보의 수용과 해석이 자유로웠던 것이죠. 유교적 도덕관에 입각해서 사물을 해석하고 세계를 바라보던 조선과 달리 일본은 실재하는 [힘의 차이]로 세계를 인식했으니... 요즘 국제정치학적 표현을 빌리자면 [현실주의]적 사고를 한 것이죠. 18세기부터 일본은 세계를 7개 열강이 경쟁하던 [다극체제]로 보았고 일본은 여기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나가 주된 고민이었습니다. 반면 조선은 세계를 [중국 중심]의 [일극체제]로 보았고 [천하질서]를 영구불변하는 것으로 보았죠.
19/01/17 13:35
뭐 이런 논리면 우리나라도 서구 중심의 민주주의라는 도그마에 빠져있는 거겠네요. 행여나 중국이 다시 패권국이 됐는데도 서구식 민주주의를 고수한다면 그걸 힘의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아집쯤이 되겠군요.
19/01/17 13:43
맞습니다. 정확합니다. 우리도 도그마에 빠져있죠. 물론 서구식 민주주의는 우리의 정체성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에 이를 결코 버릴 일은 없겠지만, 타국이나 국제정세를 논할 때 민주주의의 유무나 우리와 비슷한 가치를 공유하는지의 여부를 따져선 안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이념적 편견으로, 또는 지나치게 미국적 시각이나 또는 지나치게 좌파적 시각으로 국제정세를 바라보는 일이 많습니다. 중요한 건 객관적 힘과 우리의 상대적 위치, 그리고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전략적인 판단 등인데...가끔은 그런 논의들이 실종되는 경우가 있죠.
19/01/17 14:05
타국의 정세를 논할 때 유교의 유무를 조선도 별로 안 논했어요. 그럼 일본이나 북방민족과 교류를 했을리가 없죠. 그냥 스스로 유교를 버리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게 사상적 가치였으니까요. 지금 우리의 민주주의가 그렇듯이요.
또한 지금 한국 역시 과도할 정도로 현실적 판단만 합니다. 님이 말하는 건 인터넷에서나 일어날 뿐이지 정부차원에선 님이 말하는 건 하나도 없습니다. 오히려 유럽에선 중국이나 여타 인권 탄압이 이루어지는 국가에 대한 거부감이 국제 교류에서 영향을 받는 경우가 많으나 한국은 뭐 그런 거 신경 1도 안 쓰죠. 가장 힘의 논리에 의존하고 현실적인 부분만 입각하여 판단하는 게 한국입니다.
19/01/17 11:40
임진왜란 전에도 일본은 서양과 교류하고 있었습니다. 조선과는 그냥 넘사벽이었어요. 임진왜란때 일본은 조총이라는 신무기가 있었는데 그게 다 포르투갈과 교류해서 총기 제작술을 배웠고 그로인해 양산이 가능해서였죠. 조선은 서양과 직접 교류하기 시작한 시점은 강화도조약 맺고도 7년이나 지난 1883년(미국과의 수교)이었죠.
19/01/17 15:00
사소한 부분이긴 한데 조미수호통상조약은 1882년 아닌가요?
1880년 2차 수신사에서 김홍집이 황준헌에게 조선책략 들여오고 여기서 연미국이라 해서 미국이랑 통교해라 하는데 이걸 듣고 유생들이 1881년 영남 만인소등 개화 반대 하며 늦어지다 이듬해 결국 수교 시작..
19/01/17 11:28
17세기에서 18세기로 넘어갈때 쯤이면 서양에선 근대과학이 급속한 발전을 이룩한 때죠. 그냥 동양이 낙후했고 그중에서 그나마 중앙집권이 약한 일본의 엘리트계층인 무사들이 서양에 대한 관심이 더 컷고 자유가 더 많았던거구요.
19/01/17 11:37
조선은 그저 우물안 개구리였죠. 일본이 18세기에 급속도로 발전을 이루었는데 반해 조선은 그냥 대동법이라는 수취제도의 개선만 조금 좋아졌을 뿐 나머지는 나아진게 거의 없었죠. 그러다보니 조선통신사도 나중에 가서는 일본에서 경멸당했고 일본 내에서 국학 운동이 일어남과 함께 조선에 대한 멸시도 생겨나서 조선통신사도 못오게 해버렸죠.
임진왜란 전에도 일본 국력이 조선 밑이 아니었는데 임란 후에는 확실하게 역전해버렸고 18세기 기점으로는 거의 넘사벽이 되어버렸습니다. 미국에게 강제 개항당하기 전에도 네덜란드를 통해 이미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있던 일본은 옳은 길을 택해서 막부를 타도하고 메이지 유신을 성공시켰죠. 조선은 19세기에 와서도 세계 정세에 깜깜이라서 일본에 강제 개항당해놓고도 1884년 갑신정변까지도 아무런 발전이 없었고 갑신정변 실패하자 1894년까지도 별다른 발전이 없었죠. 1876년부터 1894년까지 무려 18년 동안 해놓은게 거의 없던게 코미디 수준입니다. 일본이 1854년에 개항해서 18년이 지난 1872년에는 이미 근대국가로 발돋움했는데 조선의 동시간대의 발전과 비교하면 넘사벽으로 빠른 발전을 했구요.
19/01/17 11:43
별론이지만, 우리나라의 흔한 오해중 하나가 막부=보수파, 유신파 = 개화파라는 도식인데... 사실 근대화에 대해서는 막부나 유신파나 같은 의견이었습니다. 오히려 유신지사들이 시대착오적인 양이를 내세웠었죠. 메이지 유신의 본질은 근대일본의 권력을 누가 차지할 것인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19/01/17 11:49
무슨 일본이 옳은 길을 택하고 그런게 있었겠습니까. 다만 이전부터 얻은 축적된 정보, 무엇보다 일본특유의 정치구조로 인해 대의가 천황에게 있었다는 점이 그러한 형태의 권력구조 변화를 가능하게 만든거지. 천황이라는 실권없는 구심점이 없었더라면 메이지유신이 가능했겠습니까.
물론 그럼에도불구하고 그 정도의 극단적인 변화가 가능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긴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해서 조선에게 왜 18년 동안 한게 없었느냐는 질문이 허용되냐면 그건 아니라 생각합니다. 카톨릭세력의 위협으로 인한 1800년대 초반부터 이어진 장기쇄국이 집권자들에게 조차도 데이터부족을 초래한지 오랩니다. 아니 너무 성급해서 더 문제였을지 모릅니다. 뭐했냐고요? 개항 8년만에 쿠데타 일으켜서 나라를 한 번에 바꿔보려고 했습니다. 갑신정변이 실패하자 별다른 발전이 없던게 아니라 갑신정변이 실패했기 때문에 개항이후의 각종 정책이 후퇴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고 싶어도 갑신정변이 조선판 이릉대전에 가까웠던 탓에 기껏 기르기 시작한 젊은 브레인들이 다 날아가버렸고요. 무엇보다 왜 꼭 이런 비교를 일본과 조선사이에서 들이대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보다 한참 전에 서양문물을 인식한 중국은? 인도는? 동남아시아는? 바로 코앞에서 유럽을 지켜봤던 오스만 제국은? 그 촉박한 시간속에서 발버둥치다 쓰러져갔던 사람들의 괴로움들은 외면한채 "왜 쟤보다 못했어?"라는 질문을 하는 건 너무 부당한 노릇입니다. 까놓고 말하면 그 메이지유신이란 것도 까닥잘못했으면 신기루로 끝날뻔 했다니까요.
19/01/17 12:18
조선은 지리적으로 서양과 교류하기엔 너무 불리했습니다. 중국도 일본도 먼저 나서서 서양이랑 교류한게 아니라 걔들이 먼저 찾아온건데..
조선은 하필 두 나라의 가운데 깊숙히 있어서 찾기도 힘들고.. 규모도 두 나라에 비하면 작은데다 마땅한 특산물도 없었죠. 실제 네덜란드 같은 경우는 하멜 표류기 이후에 조선 찾아서 무역하려고 코리아호 선단 꾸리지만.. 일본이 그러면 우리랑 무역 못하게 한다고 협박하니 깨갱.
19/01/17 13:17
조선이 근대화에서 뒤쳐진건 맞는데, 그렇다고 일본의 근대화가 제대로 이루어진 것인가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메이지 유신 이후 삿쵸도비 출신들이 정치와 군부를 독점하면서 가장 중요한 정치 체제의 근대화에는 사실상 실패했고, 그 결과가 군국주의 일본 제국과 이후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일본의 막장 정치판이죠.
19/01/18 00:04
그렇지요. 사실은 위태위태한 불완전한 개혁이었다고 볼 수 있었는데 청일전쟁 승리하고 러일전쟁도 판정승하면서 완전히 성공한 개혁으로 포장된 느낌이죠.
19/01/17 11:38
생각 이상으로 자세해서 놀랐습니다. 해적 국가라는 본질과 헨리 8세 이혼, 그린란드까지 다 알고 있어?
역시 첨단지식이란 외계인을 고문해서 얻어지는 거시다!
19/01/17 12:09
조선만 잘 몰랐지 일본 중국은 의외로 국제정세에 대해 어둡기만 한건 아니었죠. 일본은 난학이 유명하고..
청 황제들은 선교사들에게 프랑스 혁명이나 나폴레옹 전쟁 같은 것도 듣고 그랬으니.. 임칙서 같은 관료는 국제법과 세계정세를 진지하게 연구했고 오병감 같은 상인은 동인도 회사나 미국 철도 건설에 투자.
19/01/17 17:07
중국은 조선,일본이랑 비교를 거부하는게
이미 명말기쯤 부터 서구 선교사들이 뻔질나게 드나들면서 자국의 출판물이나 동향같은것들을 뿌리고 다녀서..;;
19/01/17 13:53
근대화라는게 해처리에서 레어찍듯이 바로 되는게 아니죠.물론 그것도 스포닝풀이랑 베스핀가스가 있어야하긴 하지만.정치체계와 사회체계,경제기반이 모두 있어야합니다.흥성대원군이 화폐개혁을 하자 국민들이 거지가되고 고종이 무관세경제정책을 펴자 대한제국의 적자만 눈덩이같이 불어났죠.그런상황에서는 근대화를 할돈도 없죠.
기술이나 사상 역시 중요하고 모두 단기간에 할수있는건 아니죠.결국 누적된차이가 게임을 터트렸다고 생각합니다.
19/01/17 17:04
조선이란 나라를 보면 참 아쉬워요. 서양을 그저 오랑캐로 보고 배울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게 큰 패착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좋은 정보 잘 봤습니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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